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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코프/ Taking a snow fortres
수리코프 Yermak's conqest of Siberia
(···) 동료들과 작별을 고한 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2분이 찾아왔지요. (···)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것에 대한 혐오감과 불투명성은 실로 무섭기 짝이 없었던 게지요. 그렇지만 이 순간 그에게 가장 괴로웠던 것은 ‘만약에 이대로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나?’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상념은 독한 마음으로 변하여, 차라리 한순간이라도 빨리 총살을 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났다고 술회하였습니다.”
- F.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중에서
도스토옙스키
도스토옙스키는 장편 『백치』에서 총살 직전까지 갔던 자신의 실제 경험을 미쉬킨 공작의 입을 통해 그대로 옮겨놓았다. 작가는 비밀단체였던 페트라쉐프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총살집행 직전에 황제의 칙령으로 감형되어 유형을 떠났다. 작가는 운명적으로 살아났지만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1분 1초까지 계산해서 사는 그런 삶을 살지는 못했다. 아마 아무도 그렇게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노름에 빠지기도 했고 그 빚 때문에 ‘영원히’ 남을 작품들을 항상 시간에 쫓겨서 써나가곤 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자신을 정리하는 도스토옙스키를 보면 역시나 대작가로서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 준다. 모두가 한 번 맞는 죽음인데 그것을 바라보고 또 맞이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너무나 다르다.
수리코프, 〈친위병 사형 날의 아침〉, 캔버스, 유화, 218×379, 1881
바실리 수리코프(1848∼1916)의 〈친위병 사형 날의 아침〉(1881)은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러시아 역사를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던 수리코프의 첫 번째 대작으로 표트르 대제 시대의 친위병 반란을 소재로 다룬 것이었다.
표토르 대제
표트르 대제는 황권을 잡자, 여러 개혁을 추진하였고, 그 일환으로 친위병들을 정규군으로 대체하였다. 그러자 정규군으로 편입되지 못한 기존의 친위병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장받기 위해 여러 번 봉기하였고 1698년 마지막 반란이 일어났다. 표트르 대제의 누나 소피아 공주는 황위에 오르기 위해 그들을 이용하려 하였지만, 반란은 실패로 끝나고 그들은 잔혹하게 진압당하였다. 결국 소피아 공주는 1704년 47세로 죽을 때까지 노보데비치 사원에 유폐당하였고 봉기에 가담했던 친위병들은 색출되어 처형당했다.
1698년에 최초의 친위병 공개 처형이 있었는데,
표트르 Ⅰ세가 직접 5명의 친위병의 머리를 베었다.
그리고 57명을 처형하였는데, 1698년 9월부터 1699년 2월까지 6개월 동안 1,182명이 처형당하였다.
601명은 태형을 받고 낙인이 찍힌 후 유형에 보내졌다. 거의 10년간이나 반란의 여파로 처형이 계속되었고,
그 일로 사형당한 이가 2,000명에 달했다.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실존인물들을 모델로 하였다. 검은 수염의 친위병은 화가의 외삼촌인 스테판 페도로비치 토르고쉰이었고, 여인들은 화가의 고향인 크라스노야르스크(시베리아)의 아낙네들이며, 친위병 노인은 70세 정도의 시베리아 유형수였고, 붉은 수염의 친위병은 고향의 묘지기였다. 그림 속 수레는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그곳에서 보고 그렸다. 표트르 대제의 모습은 친위병 사형을 목격했던 I. 코르브(Korb)라는 오스트리아 대사의 비서가 쓴 『모스크바 여행 일기』에서 묘사된 것을 참고로 그린 것이다.
수리코프는 처형 장면 자체를 묘사하지는 않았다. 성 바실리 사원을 배경으로 붉은 광장의 로브노에 메스토(황제의 칙령 발표 장소) 옆 사형장 쪽에 결박당한 친위병들이 처형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가 오곤 하는 가을밤이 지나고 동쪽이 막 밝아오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의 푸르스름한 전경 속에서 광장에는 아직 보랏빛 안개도 다 걷히지 않았다. 어둑한 아침에 사형수들의 흰 셔츠가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 촛불은 빛을 발하며 불안한 음영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제 곧 시작될 어찌할 수 없는 사형을 앞두고 있는 마지막 몇 분이다.
화폭 왼쪽에 붉은 모자를 눌러쓴 붉은 수염의 친위병은 손이 묶여 있고, 발도 족쇄가 채워져 있지만 여전히 굴복하지 않은 모습이다. 적을 향해 달려들 태세로 칼을 든 것처럼, 날름거리는 불꽃이 이글거리는 초를 꼭 쥐고 있다. 그는 크렘린 벽 옆에 준엄하게 말을 타고 있는 표트르 대제를 향해 꼿꼿한 시선으로 맞서고 있다. 자신의 권력을 확신하는 표트르 대제는 냉혹하고도 오만한 시선을 그들에게 던지고 있다.
어깨에 붉은 상의를 걸친 검은 수염의 친위병은 포획당한 짐승처럼 침울하고 의심쩍은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하얀 수염의 늙은 친위병은 가까워오는 사형에 대한 공포로 의식이 흐릿해진 것 같다. 그의 시선은 넋이 나간 듯하고 주위를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
군인들이 교수대로 끌고 가고 있는 친위병의 손은 힘없이 늘어져 있고, 머리는 무겁게 떨어져 있다. 땅 위에 이젠 필요 없는 윗도리와 모자가 버려져 있고 손에서 떨어진 초의 심지가 거의 타들어갔다. 초는 꺼져가고 삶도 끝나간다.
젊은 친위병의 아내로 보이는 여인의 가슴에서 절망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손을 뻗어 엄마에게 매달린 소년은 얼굴을 그녀의 옷자락에 묻었다. 수레바퀴 옆에 한 친위병의 어머니로 보이는 노파가 아무 기운이 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는 흙빛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웠다. 그녀 옆에 주먹을 쥔 소녀가 공포에 휩싸여 소리치고 있다. 그녀의 빨란 머리 수건이 어두운 군중 사이에서 두드러져 보이는데, 마치 광장 전체로 소녀의 외침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수레 위에 선 친위병은 겸손히 고개를 숙여 사람들과 작별하고 있는 모습이다. 힘없이 늘어진 몸과 꺾인 고개가 마치 이미 교수형당한 듯한 모습으로 그들의 운명을 예견해 주는 듯하다. 수리코프가 화폭의 중심에 그를 배치한 것은 되돌릴 수 없이 다가온 죽음 앞에서 그것을 온건히 맞이하며 남은 자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은 아닌가 싶다.
울부짖든, 포기하든, 결연한 자세로 맞서든, 의식을 놓아버리든, 겸허히 받아들이든 간에 죽음이란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인간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수리코프의 그림처럼 그 앞에서 필요한 것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보고 남은 자든, 돌아가는 자든 스스로를 용서하고,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은 아닐까.
페로프, 〈아들의 묘에 온 노부모〉, 캔버스, 유화, 42×37.5, 1874
근처 마을에서 이미 늙을 대로 늙은 두 노인-남편과 아내-이 가끔 이 무덤을 찾아온다. 두 노인은 무릎을 꿇고 오래도록 슬피 울면서 말없는 비석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 묘비 밑에 그들의 아들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 두 노인은 한두 마디 말을 나누고, 비석 위의 먼지를 털기도 하고, 전나무 가지를 손질하기도 한 다음, 다시 기도를 올린다. (······) 아무리 과격하고 죄 많은 반역의 정신이 이 무덤 속에 잠들어 있다 할지라도 그 위에 피어 있는 꽃은 순결한 눈으로 평화롭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이 꽃은 변함없이 영원한 안식만을, ‘비정한’ 자연의 위대한 정적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꽃들은 또한 영원한 화해, 무한한 생명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