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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난 주에 들은 말씀은 높으신 하나님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죠. 바울이 예수님의 높으심을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주라고 부르고 따르는 이 분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 잘 알게 하고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거기에 맞는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죠.
특별히 지극히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은 우리가 높은 산에 올라가거나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높이 올라갔을 때 얻게 되는 퍼스펙티브 이 하늘의 퍼스펙트를 배울 만한데 이것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다 경험을 해보셨죠?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이 땅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많은 분들에게 비슷한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을 주는 차원에서 지금 바울도 지난 시간에 우리가 말한 말씀은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 같은 뜻에서 오늘의 본문은 교회를 위한 사도의 수고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바울이 이 부분에서 자신의 수고를 좀 알아달라 아니면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자신의 수고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주와 같이 여기서도 교회 성도들의 삶을 돕기 위한 뜻에서 자신의 수고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바울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또 그것을 왜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알려주는 말씀인데 또한 우리가 듣고 배우고 적용해야 할 여러 말씀들이 담겨 있는 본문입니다. 여기를 하나하나씩 따라가면서 살펴볼 때 참여한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교회에 일꾼에 관한 말씀이 있는데 우리가 28절 29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교회를 위한 수고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말씀인데 여기에서 생각해 봐야 할 세 가지 측면이 있어요. 먼저 사도 바울의 경우 그가 하는 수고는 첫째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하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바울이 하는 수고의 내용입니다.
둘째로 이 복음의 말씀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온전한 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단순히 복음만 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쳐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에요.
세 번째는 바울이 일하는 데 있어서 자기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능력을 따라서 힘을 다해서 일한다 하는 겁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자기의 힘으로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고 이미 그 안에 계신 하나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일을 한다.
이것이 바울의 일의 세 가지 측면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해서 보면 다음 세 가지를 말할 수 있는데, 첫째로 우리 교회의 일꾼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하는 것이에요.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어야 하고 또한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 자신으로 일하거나 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지 말아야 한다 하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또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치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세우는 일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말씀의 사역을 주신 자들, 바울처럼 그런 자들이 하는 일이지만, 이것은 교회의 모든 일꾼이 교회에 온 성도가 서로 공유하고 그리고 서로를 대할 때 있어서 기억해야 할 목적 목표가 되어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이유가 된다 하는 겁니다.
무엇이요? 우리가 각자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 완전한 자로 세워지는 것 이것을 우리가 같이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아무 목적 없이 오늘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이 자리에 온 것도 아니죠. 우리는 모두 다 서로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움을 받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온 겁니다. 완전한 자로 세우는 거는 말씀이 하시는 일이고 성령이 하시는 일이지만 또한 우리가 서로서로 도와서 하는 일이다 하는 겁니다.
세 번째로 교회 일을 할 때 우리도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릇되지 않고 바르게 할 수 있고 그래야 지치지 않고 기쁨으로 계속 할 수 있는 것이 교회의 일이고 하나님의 일이에요. 이미 경험을 하신 분들은 있지만 내 힘만으로 하려는 수고는 오래가지 못하고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한다. 꼭 기억을 해야 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일꾼, 또 앞으로 일꾼이 되어야 될 사람들이 기억할 세 가지인데 다시 반복하자면 첫째는 누구든지 교회 일꾼은 그리스도의 일꾼,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수고하는 일꾼이다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서로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며, 끝으로 내가 가진 힘으로 능력으로 하는 게 아니고 믿음 안에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능력을 따라 그가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을 잘 기억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26절 27절인데 역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와 이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라
여기에 세 번 반복되는 말이 있는데 바로 비밀이라는 말이에요. 이것은 알려지지 말아야 하고 밝혀지지 말아야 하는 그런 사적인 비밀 시크릿이 아니고 이것은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진기하고 묘한 공적인 비밀 미스터리를 말하는 겁니다. 앞절에서 언급된 것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끝났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그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지만 본문 27절로 보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비밀 둘을 연결해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관한 것이에요.
여러분에게 지금 우리에게 이것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이 당시 하나님의 큰 구원 계획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것이 드러난 것이에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믿음으로 된다는 이 그것에 관한 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비밀이죠. 영혼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던 비밀인데 이제는 하나님이 부르신 모든 사람들 성도에게 환하게 나타난 비밀이라 하는 겁니다. 비밀인데 비밀이 아니죠. 왜냐면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사람들에게 보이는 아주 신비로운 비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이 비밀 이 신비 외에 다른 비밀이 없습니다. 다른 신비가 없어요. 여러분의 관심을 끄는 세상에 신비로운 것들이 많이 있을 수 있지만 구원에 있어서는 이 비밀 외에 다른 것이 없다 하는 것이요. 이것은 구원만 아니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많아요. 특별히 남의 비밀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죠. 그것이 팔리니까 또 두루 다니면서 남의 비밀을 이렇게 퍼뜨리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처럼 비밀이라는 것이 사생활이라는 것이 중요한 정보가 되고 그 정보가 돈이 되는 세상에는 더욱더 많습니다. 살려고 하는 사람, 팔려고 하는 사람 너무나 많은 세상이죠.
그러나 그리스도의 비밀이 그 영광스러움이 얼마나 풍성한지, 지금 성경에서 말하는 이 미스터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귀한 것인지 아는 사람들, 그것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남의 비밀에 그렇게 관심을 갖지도 않고 남의 비밀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퍼뜨려서 자기의 이익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언의 말처럼 마음이 신실하여 그런 일을 숨길 줄 알아요. 그리고 이웃과 다투더라도 누군가 말싸움을 하더라도 남의 비밀은 누설하지 않는다 하는 것입니다.
자언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그랬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서는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하겠느냐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죠. 더 나아가서 그런 사람들은 부당하게 남의 비방거리가 되어도 분노하지 않고 또 슬퍼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도 비방을 받으셨고 그의 사도들도 모두 세상의 비방을 받았고, 그의 길을 행하려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비방, 그래서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부분에서 바울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24절 25절 말씀입니다. 특별히 24절만 우리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던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네 거기까지만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어려운 말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을 곰곰이 생각해 볼 때 저는 차에 기름을 넣는 것을 떠올렸어요.
우리가 차에 기름을 채우잖아요. 그 그림을 가지고 보면 조금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차가 움직이려면 차에 기름이 있어야 돼요. 전기차는 전기가 충전이 돼요. 핸드폰은 충전이 돼야 쓸 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움직일 수도 없고 갈 수도 없고 목적지로 갈 수도 없어요. 그거를 염두에 두고 이 바울의 말을 우리가 이해를 해보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단은 마치 그를 앞으로 가게 하는 연료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연료를 가지고 그가 나아가는 목적지는 더 나은 교회의 모습, 더 나은 성도의 삶이라 하는 것이죠. 그 목적지로 가는 데 있어서 지금 필요한 연료가 재료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어려운 말입니다. 어찌해서 다른 것도 아니고 왜 고난일까요? 다른 사람들도 싫어하고 나도 싫어하고 피하고 싶은 왜 고난일까요?
말씀도 있고 치유도 있고 기적도 있었는데 왜 고난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표하는 내용이 되어야 합니까라고 우리가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 우리가 쉬운 답을 얻기 어렵지만 다만 고난의 종류에 대해서 생각해 봄으로써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가 찾아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왜 고난인지 우리가 알듯이 고난 어려움 힘듦 이런 것들이 다 같은 것이 아니죠. 여기서 말하고 있는 지금 고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어떤 잘못을 해서 마땅히 받는 그런 고난이 아니고 또 남이 잘못을 해서 내가 부당하게 받는 고난도 아니고 또 이 세상이 불완전해서 모든 사람이 겪는 그런 종류의 고난도 아니에요.
여기서 말하는 고난은 세상 죄를 가져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처럼 자발적이고 그리고 대속적인 뜻에서 고난입니다. 그러니까 생각해 보세요. 고난이라고 다 피할 것이 아닌 것이죠. 산모가 아기를 위해서 겪는 고통 고난이 있습니다. 또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기꺼이 택하는 고난이 있어요.
위기에 처한 사람,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자기 몸을 던져가면서 살리는 의인의 고난이 있는 거죠. 모두 다 사람을 구하고 살리는 데 필요한 동반되는 고난인 것이죠. 이 고난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왜 고난이어야만 하는지 했는지 또 해야 되는지 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를 위해서 채운다고 하는 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도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에요.
그리스도께서 무슨 일을 이루셨죠? 그 일을 이루시는 데 있어서 고난의 길을 거치셨어요. 고난을 당하심으로 세상의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바울이 그와 같이 바울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라고 하는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서 그에게도 역시 필요한 고난이 있는데, 그거를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하는 것이죠. 여기에 담긴 뜻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먼저 그리스도께서 하신 부분이 있고, 그리고 바울이 뒤이어서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공통점은 고난이라고 하는 부분이죠. 그리고 예수를 믿고 그와 행한 길로 가는 바울처럼 행한 길로 가는 사람들 모두에게도 감당해야 할 고난의 분량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일꾼이 있다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많은 뜻이지만 그중에 하나는 오늘 말씀하고 연결해서 보면 교회의 어려운 일을 어려움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재정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고 또 관계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고 물리적인 고난일 수도 있고 또한 영적인 고난일 수도 있어요.
어떤 것이든지 간에 감당하는 사람이 있어야 교회가 설 수 있고 교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은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내 육체에 채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교회의 고난만 있는 거 아니에요. 바울이 다른 곳에서 전하듯이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고난만 아니라 영광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고난만 아니라 영광이 있음을 분명히 말씀을 해주고 있는 것이고, 고난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시는 말씀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회에도 여러분의 가정에도 여러분 인생에도 심지어 몸에도 어려움만 있을 것이 아닙니다. 그죠 어려움을 일으키는 문제가 계속 남아 있으면 어려움도 계속 있을 것이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면 그 문제의 길을 지나가면 그에 따른 어려움도 고난도 지나간다는 것이 우리들 인생에 또 가정에 또 교회에 어려움이 있고 고난이 있고 힘든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힘든 거 있죠? 없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한다고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에요. 유튜브에 제목만 올라오 보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반전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도 있는데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우리 인생의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계속 믿는다고 우리의 인생에 문제가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이오.
그거는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이고 그리고 기억해야 될 것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무엇이든지 우리가 다 겪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내 삶을 내 인생을 우리 가정을 우리 교회를 무너뜨리는 종류 그러한 파괴적인 고난이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해요?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는 건설적인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너희를 위하여라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가 오늘 본문에도 몇 번 나오는데 성경에 정말로 많은 말씀입니다. 바울이 괴로운 일을 기쁘게 당해요.
그가 괴로움을 기쁘게 당하는데 왜요?
골로새 교회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또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 역시 골로새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말씀을 이루는 모든 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행한 길로 가면서 행하는 믿음 안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 그것은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 성도를 위한 것이에요. 그리고 그 면에서 자신을 위하는 것이 됩니다. 누군가 이것은 다 너를 위한 거야 이렇게 말한다고 진짜로 다 그런 것은 아니죠. 너를 위해서 부모가 엄마가 아빠가 이건 너를 위해서 하는 거야 이런 말을 많이 들어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부모님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자기의 유익을 하면서 남을 위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인데 너를 위한 거야라고 말하는 게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특별히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서 무엇을 필요로 하는 분이 아니죠.
그가 우리를 위해서 뭔가를 하신다.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 진짜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고 사도, 바울도 그렇고 그 길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하셨다. 또 우리를 위해서 하신다 하면 정말로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성경 안에 우리를 위해서 하셨다고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도다. 그렇죠. 또 그가 하나님께서 여기 하나님 아버지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그가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다. 다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이 믿음이 지금 이 말씀의 믿는 그 믿음이 우리 각 사람을 다 붙들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굳건히 세워지는 믿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일하는 모든 일꾼, 모든 일꾼들은 오늘 말씀을 잘 기억을 하시기를 원하고, 일꾼만 아니라 교회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도 이 성경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하고 수고하면서 가졌던 사람, 그 목적, 그것들을 다 잘 배우고 그리고 내 삶을 거기에 맞춰서 다시 잘 정리할 수 있는 사람 다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한 주간의 삶도 쉽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우리 하나님, 그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인데, 그 가운데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과 탄식을 다 보시고 들으시는 우리 하나님 그 하나님을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이유는 그분께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들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오래전에 일어났지만 성경에는 잘 기록되어 있죠. 이 기록된 말씀을 보고 실제를 만날 수 있는 복되고 귀한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