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경기도 양평의 한 캠핑장에서 석유난로 폭발로 추정되는 화재가 일어나 두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불과 8일 후인 22일 새벽에는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의 한 글램핑 시설에서 전기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일어나 어른 2명과 어린이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본지 4월호 포커스 ‘강화도 동막해수욕장 화재로 5명 사망’ 기사 참조). 이 사고들은 ‘예고된 인재(人災)’였다.
강화도에서 사고가 난 글램핑 시설은 이른바 인디언 텐트라고 불리는 원뿔형 텐트다. 최근 우리나라에 글램핑이 인기를 끌면서 몽골식 텐트인 게르와 인디언 텐트 등이 우후죽순 생겼다. 이 텐트는 방염처리되지 않은 가연성 소재를 주로 사용하며 안에서 불이 나면 불길이 밖으로 퍼지지 않고 천막 안에서 돌며 순식간에 모든 걸 태운다. 하지만 문제는 텐트의 생김새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캠핑장을 운영하는 업주나 캠핑장을 이용하는 컴퍼 모두에게 해당하는 ‘안전 불감증’이다.
- ▲ 자연에서 즐기는 캠핑은 도심을 벗어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지만 화재나 안전사고 등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
- 우선 캠핑장을 운영하는 쪽을 살펴보자. 그동안 일반야영장에 포함된 캠핑장은 자유업으로 등록돼 있어 별도의 허가나 규제를 받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캠핑장의 글램핑 시설은 미리 텐트와 가전제품들이 들어서 있어 사실상 숙박업과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숙박을 하는 곳이지만 소방 점검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윤관석 의원은 “전국 캠핑 시설 1,866곳 중 1,460곳의 민간 캠핑장은 소관 부처가 없고 관리 감독의 법률 근거가 없어 사실상 안전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에 사고가 난 강화도 캠핑장 화재도 CCTV를 보면 알겠지만 화재가 났을 때 주변 사람들이 소화기를 들고 왔지만 작동이 되지 않았다. 설마 했던 안전 불감증이 최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1월 29일부터 관광진흥법 시행령을 개정, 야영장업(일반야영장업, 자동차야영장업)을 신 캠핑장 등 야영장은 적합한 등록 기준을 갖춰 담당 시·군·구에 신고하도록 했다(관광사업자로 등록한 캠핑장은 www.gocamping.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개정된 시행령에 따르면 야영장은 침수·산사태 등의 우려가 없는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하고, 비상시 이용객의 안전을 위해 게시판·소화기·대피소·대피로·관리요원 등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시행령의 유예 기간이 5월 31일까지여서 사고가 난 강화도 캠핑장은 엄밀히 말하면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닌 셈이다. 사정은 전국의 다른 캠핑장들도 별 다를 바 없다.
- ▲ (위)캠핑장 안전사고가 연이어 벌어지면서 각 지자체와 행정기관에서 캠핑장에 대한 긴급점검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강화도에서 불에 탄 인디언 텐트와 같은 시설의 내부(위)와 전기장판 온도조절장치(아래). 가연성 소재의 텐트 안에 냉장고와 TV, 선풍기, 전등 등이 설치되어 있고 바닥엔 전기장판도 깔려 있으며 전선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어 전기 누전에 취약한 모습이다/
- 관광진흥법 시행령 개정, 당장 효과 기대는 무리
그렇다면 5월 31일 이후에는 캠핑장에서 안전불감증과 예고된 인재가 사라질까? 캠핑장 업주들은 ‘많이 나아질 것이다’와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다’란 반응을 보였다.
‘많이 나아질 것이다’란 의견을 낸 업주들은 “이제까지 별다른 규제나 점검이 없어 안전시설이 미비한 영세 캠핑장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다”며 “야영장으로 정식 등록을 하게 되면 소방안전시설을 보강해야 하고 보험 가입도 해야 하는 만큼 자연히 시설이 부실한 캠핑장이 걸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업주들도 업체 등록을 위해 소화기 등 소방장비를 보강하고 글램핑 시설의 방염 소재 선택과 전기제품에 대한 과전압 예방책도 세우는 등 어느 정도 자정작용을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다.
반면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다’라는 의견은 “비현실적인 개정 방안이어서 이를 따르는 캠핑장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며 “실제로 많은 캠핑장 업주가 행정기관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투자할 자금이 부족하고 등록을 한 후에는 대피소 등 소방·안전시설과 수영장 놀이터 등 문화시설 등에 각종 규제를 받게 될 것을 우려해 등록을 최대한 늦추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 ▲ 1 숲속에 있는 캠핑장에서 불을 피울 때는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서 화로를 이용해야 하고 불씨가 남은 재를 함부로 버려선 안 된다. 2 차가 들어가는 오토캠핑장에서는 운전에 항상 주의하고 절대 음주운전을 해선 안 된다. 사진은 2013년 8월 7일 충남 태안군 안면읍 꽃지해수욕장 앞 해안도로에서 20대 운전사가 몰던 승용차가 야영 중인 가족 텐트로 돌진해 사고가 난 모습. 3 텐트를 미리 설치한 서울 시내의 한 캠핑장 전경.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텐트는 방염처리가 안 된 가연성 소재라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 4 지난 3월 22일 강화도 동막리 캠핑장에서 일어난 화재 당시 CCTV 캡처 화면. 사진 인천지방경찰청 제공
- 실제로 시행령에서는 ‘캠핑장 내에 대피소와 대피로를 설치해야 한다’는 등 업주에게 부담스러운 시설물 설치 조건을 두고 있고 등록업자로 바뀔 경우 화재 등 시설 보험에 의무가입을 해야 하므로 캠핑장 업주로서는 최대한 시간을 벌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도 캠핑장 등록에 대해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캠핑장 등록 의무화를 담은 시행령은 1월 시행됐지만 미등록 캠핑장에 대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처벌 규정은 3월 3일에야 시행됐다. 이 또한 1년간의 유예기간을 두어 미등록 캠핑장에 대한 처벌은 내년 2월 4일부터나 가능하다. 캠핑장 업주로서는 굳이 서둘러 등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시행령 자체도 허술하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진흥법 시행령 개정에 따른 야영장업 구분 및 등록기준’을 살펴보면 일반 야영장은 ‘침수, 유실, 고립, 산사태, 낙석의 우려가 없는 안전한 곳에 위치할 것’, ‘비상시 긴급상황을 이용객에게 알릴 수 있는 시설 또는 장비를 갖출 것’, ‘야영장 규모를 고려해 소화기를 적정하게 확보하고 눈에 띄기 쉬운 곳에 배치할 것’ 등으로만 기술해 구체적인 화재 대비책은 없는 실정이다.
또한 문체부는 화재 안전 점검이 가장 필요한 캐러밴과 글램핑 시설을 건축물로 적용할지 여부는 각 지자체가 알아서 하도록 위임함으로써 사실상 안전 관리 책임을 일선 시·군에 떠넘겼다는 지적이다.
- 경기도 포천에서 캠핑장을 운영하는 안모 업주는 “차라리 ‘방염처리가 된 소재의 텐트를 설치하고 각 동마다 소화기 1개씩을 의무 확보하라’는 식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업주의 입장에서도 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자로 등록해 안전시설 기준을 갖춘 캠핑장이라 해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일부 캠퍼들의 ‘안전 불감증’ 때문이다. 경기도 가평에서 시설 좋기로 소문난 한 캠핑장의 업주는 “소화기를 곳곳에 비치해 놓고 전기사용 제한, 화기 사용 주의점 등을 적은 안내문을 돌리고 수시로 점검을 다녀도 기본상식을 지키지 않는 캠퍼가 일부 있다”며 “한 번은 겨울철에 불씨가 남아 있는 화로를 혼기도 하지 않은 채 텐트 안에 넣고 자는 캠퍼가 있어 깨워 주의를 주었더니 며칠 후 인터넷 게시판에 ‘갑질하는 캠지기’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며 푸념했다.
기본 안전상식 무시하는 일부 캠퍼 문제
우리나라 캠핑문화는 해가 갈수록 성숙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캠퍼들은 숲 속 캠핑장에서 화로를 이용하지 않고 모닥불을 피우거나 불씨가 남아 있는 재를 잡초더미에 그대로 버리고 건조주의보가 내린 날씨에 불꽃놀이를 하고, 불붙은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는 등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재로 바꾸어 버릴 만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 ▲ 캠핑장에서 인기가 좋은 캐러밴은 내부에서 취사와 숙박이 이루어지지만 건축물로 등록되지 않기 때문에 소방법 적용을 받지 않는 등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 한 인터넷 캠핑 동호회의 게시판에는 “캠핑은 자연으로 나와 자연 속에서의 여유를 즐기자고 하는 것인데 집에서 하던 행동들을 왜 자연 속에서도 그대로 하려 하고 편리함을 추구하는지 모르겠다”는 취지의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우리는 지난 세월 동안 안전불감증과 관련된 수많은 사고를 겪었고 또 봐왔다. ‘괜찮겠지’, ‘설마 내가’,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은 어김없이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그때마다 정부와 행정당국은 ‘재발 방지’를 반복했고, 사고는 기억에서 잊혔다.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한다. 국민의 여가안전을 위해 캠핑장을 법의 테두리 안에 포함해 관리하고, 야영을 즐기는 캠퍼들도 최소한의 ‘안전 양심’을 지키는 성숙함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