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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장 25-32절. 바울이 장로들에게 사나운 이리를 경계시킴
25절.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now, behold, I know that all of you, among whom I went about preaching the kingdom, will no longer see my face.
보라--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καὶ νῦν ἰδοὺ, ἐγὼ οἶδα ὅτι οὐκέτι ὄψεσθε τὸ πρόσωπόν μου
and now behold, I have known that no more you will see the face of me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단호히 보라는 뜻으로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입니다.
‘아노라’(οἶδα)는 완료형으로서(have known)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고, 이 문장에서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시 보지 못할 줄’에서 동사(ὄψεσθε)는 미래형입니다(you will see).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ὑμεῖς πάντες ἐν οἷς διῆλθον, κηρύσσων τὴν βασιλείαν.
you all among whom I have gone about, proclaiming the kingdom
‘왕래하며’(διῆλθον)는 부정과거로서(I have gone about) 과거에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 사이에서 왕래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전파하였으나’(κηρύσσων)는 현재분사로서(proclaiming) 전파하면서 왕래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τὴν βασιλείαν)는 원문에 그냥 ‘그 나라’(the kingdom)로 되어 있습니다.
1. 바울은 또 다시 <보라>란 말로써 자기가 중요한 말을 한다고 표시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말은 <내가 다시는 여러분을 보지 못할 줄 아노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지만, 자기는 사명을 위해서 목숨 바칠 각오로 예루살렘에 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다시는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보지 못할 줄을 아노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결박을 당하고, 여러 번 재판을 받은 후에 결박된 몸으로 로마로 호송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간이나 머물면서 전도와 목회를 했으나, 이제 밀레도에서 장로들의 얼굴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얼굴을 본다고 하니까, 20장 37절에서 장로들이 바울의 목을 안고 울면서 입을 맞추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모범적인 사랑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즉 목회자는 어느 때나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에, 성도들과 목회자는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서로 아쉽고 부족한 면들도 용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나마 장로들은 바울의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지만, 일반 성도들은 바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지도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에베소 교회 장로님들의 관계는 서로 부등켜 안고 울면서 입을 맞추고 헤어지는 장면이므로, 가장 이상적인 작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6절.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I testify to you this day that I am innocent of the blood of all men.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διότι μαρτύρομαι ὑμῖν ἐν τῇ σήμερον ἡμέρᾳ
therefore I testify to you in the this day
‘증언하거니와’(μαρτύρομαι)는 현재형입니다(I testify).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ὅτι καθαρός εἰμι ἀπὸ τοῦ αἵματος πάντων·
that innocent I am from the blood of all
동사(εἰμι)는 현재형입니다(I am).
1. 바울이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한 것은 전도인의 책임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에스겔 33장 5-8절을 보면, 죄인에게 하나님의 종이 경고의 말씀을 전하지 않아서 그 죄인이 죽으면, 그 죄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는 것이지만, 그 죄인에게 경고의 말씀을 전하지 않은 책임(피 값)을 하나님께서 말씀 선포자에게 묻겠다고 하셨습니다.
에스겔 33: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에베소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 불신자는 자기 죄로 지옥 가겠지만, 하나님이 그 피 값을 바울에게 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복음 전도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 복음을 전하지 않는 죄에 대한 책임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각자가 가족들과 친척들에 대해서 복음 전도의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 남편이 안 믿는다든지, 자녀가 안 믿는다든지, 부모와 형제가 안 믿는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 피 값을 우리에게 묻기 때문입니다.
27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 did not shrink from declaring to you the whole purpose of God.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οὐ γὰρ ὑπεστειλάμην τοῦ μὴ ἀναγγεῖλαι πᾶσαν τὴν βουλὴν τοῦ Θεοῦ ὑμῖν.
not for I shrunk back the not from to declare all the counsel of the God to us
직역하면 ‘왜냐하면 너희에게 하나님의 뜻을 모두 전하는 일에서 내가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전하는 것에서’에서 동사(ἀναγγεῖλ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declare) 단호하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물러서지 않았다’에서 동사(ὑπεστειλάμην)는 부정과거로서(I shrunk back) 바울이 단호하고 용감하게 물러서지 않은 사실을 가리키고, 원영(ὑποστέλλω)은 ‘뒤로 물러가다, 부끄러워하다, 감추다, 숨기다’(withdraw, draw back, keep back, shun, conceal)는 뜻입니다.
1. 바울이 피 값에 대해서 깨끗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아무에게나 거리낌 없이 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목사들도 설교할 때,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솔직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물론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어떤 깡패 같은 사람에게는 전도를 잘 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어떤 깡패 같은 사람에게는 전도를 잘 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무당이나 타종교 지도자에게도 전도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무 사람에게도 거리낌 없이 복음을 다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에 책임을 다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가정에서도 포악한 남편에게는 전도하기 어려워하고, 말 안 듣는 아들에게는 전도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말씀은 아무에게도 꺼리지 말고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28절.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e on guard for yourselves and for all the flock, among which the Holy Spirit has made you overseers, to shepherd the church of God which He purchased with His own blood.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προσέχετε ἑαυτοῖς καὶ παντὶ τῷ ποιμνίῳ,
take heed to yourself and to all the flock
‘삼가라’(προσέχετε)는 현재 명령형입니다(take heed).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ἐν ᾧ ὑμᾶς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ἔθετο ἐπισκόπους,
among which you the Spirit thd Holy has set overseers
‘삼고’(ἔθετο)는 부정과거로서(has set) 확실하게 세우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ποιμαίνειν τὴν ἐκκλησίαν τοῦ Θεοῦ,
to shepherd the church of the God
‘보살피게 하셨느니라’(ποιμαίν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shepherd) ‘교회를 보살피도록 감독자로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ἣν περιεποιήσατο διὰ τοῦ αἵματος τοῦ ἰδίου.
which he purchased with the blood of the own
‘사신’(περιεποιήσατο)은 부정과거로서(he purchased) 직역하면 ‘그가 사신’이란 뜻이고,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써 교회를 사신 역사적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교인들의 감독자인 장로들은 첫째로 자기와 교인들을 위하여 삼가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인의 최고 직분자인 장로가 되면, 이제는 더 이상 높아질 직분이 없다고 생각하여, 절제하지 않고 성실한 믿음 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집사 때는 새벽기도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던 사람이 장로가 되고 나면 교인들 평가나 하고 잘못을 지적하기나 하지, 도무지 자신은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장로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집사 때는 말도 조심하고, 덕이 있게 했는데, 장로가 되고 나니 말을 너무도 함부로 하고, 다른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로가 첫째로 해야 할 것은 삼가 조심하고, 스스로 언행과 기도 생활과 봉사 생활을 힘쓰고, 교인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장로가 되어서 겸손하고, 성실한 믿음 생활을 하고, 언행이 덕이 있으면, 그런 장로는 마음으로 존경을 받고, 그런 교회는 부흥 성장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가 스스로 조심하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여 성도들에게 상처 주고, 기도 생활과 봉사 생활에 힘쓰지 않으면, 마음으로 무시를 당하고,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첫째로 삼가 조심하는 생활을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습니다.
2.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교회의 장로들은 사람이 선거를 통해서 뽑은 직분자일 뿐만 아니라, 성령님이 세워주신 직분자입니다.
그러므로 교인들 앞에서 잘해야 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 앞에서도 삼가 조심하고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교인들의 감독자입니다.
그래서 장로들은 교회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잘 보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은 장로들이 감독자로서 교인들을 잘 보살피고, 이단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감독해야 하는데, 어떤 잘못된 장로는 목사를 감독하려고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장로 자기가 목사를 월급 주고 일을 시키면서, 일꾼인 목사가 일을 잘하나 잘못 하나 감독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장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분명히 장로가 교인들을 감독하고, 특별히 교인들을 잘 보살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장로교 헌법에도 장로들은 교인들을 심방하여 목사에게 보고하는 것이 장로의 일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처럼 장로는 목사의 목회를 협력하는 조력자이지, 목사의 목회를 감독하는 자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3. 장로는 주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신 직분자입니다.
여기서 교회란 교인들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로들은 주님이 희생하신 보혈을 소중히 여김 같이 피로 사신 성도들을 소중히 여겨서 잘 보살펴야 합니다.
보살핀다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기를 때, 목자가 양 떼를 기를 때, 농부가 곡식을 기를 때, 정성을 기울여 잘 보살피고 기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장로 때문에 교인들이 시험 받아서 교회를 떠난 경우가 있습니다.
29절.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know that after my departure savage wolves will come in among you, not sparing the flock;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ἐγὼ οἶδα ὅτι εἰσελεύσονται μετὰ τὴν ἄφιξίν μου λύκοι βαρεῖς εἰς ὑμᾶς
I have known that will come in after the departure of me wolves grievous among you
직역하면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 들어갈 줄을 내가 아노라’는 뜻입니다.
‘들어갈 줄을’(εἰσελεύσονται)은 미래형이고(will come in), ‘내가 아노라’(ἐγὼ οἶδα)에서 ‘내가’(ἐγὼ)가 강조되어 있고, ‘아노라’(οἶδα)는 완료형으로서(I have known) 이미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μὴ φειδόμενοι τοῦ ποιμνίου,
not sparing the flock
‘아끼지 아니 하며’에서 동사(φειδόμενοι)는 현재분사입니다(sparing).
1. 바울은 교회를 위해서 섬기고 양 떼를 잘 보살핀 선한 목자였는데, 바울이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 같은 목자가 들어와서 양 떼를 아끼지 않고 헤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사나운 이리>란 당시 영지주의 이단 같은 이단 목사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단 목사가 아니더라도, 바울처럼 희생하고 사랑으로 섬김으로써 교인들에게 영적으로 육적으로 많은 유익을 준 목회자가 아니라, 양 떼에게서 봉사와 물질을 착취하고, 교인들을 억압하고 부려먹고 빼앗아 먹는 사나운 이리 같은 목사를 삼가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요즘 교인들에게서 유행하는 말 하나는 목사는 양 떼를 착취하는 이리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목사에게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하도 이전에 목사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목사가 와도 마음을 안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은 목사라고 똑같은 목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교도 육사 출신이 있고, 삼사 출신이 있고, 학군단 출신이 있듯이, 목사도 여러 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7년 이상 정규 신학교 과정을 거친 목사가 있고, 1-2년 단기 속성과로 나와서 편목으로 전입한 목사가 있고, 그것도 아니라 자기들끼리 안수하여 스스로 목사가 된 사람들조차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목사의 질도 십여 가지가 있으므로, 잘 분별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으로 말하면, 가말리엘 문하라는 일반대 나오고, 아라비아 3년 정규 과정 훈련을 거치고, 안디옥 교회에서 부교역자 시절까지 거친 목사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믿음 생활하면서 <분별력>(φρόνησις: prudence)이라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30절.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from among your own selves men will arise, speaking perverse things, to draw away the disciples after them.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καὶ ἐξ ὑμῶν αὐτῶν ἀναστήσονται ἄνδρες, λαλοῦντες διεστραμμένα τοῦ ἀποσπᾶν τοὺς μαθητὰς ὀπίσω ἑαυτῶν.
and from you yourselves will rise men, speaking perverse things
‘내가 아노라’는 원문에 앞절에 나와 있습니다.
‘어그러진 말을 하는’에서 동사(λαλοῦντες)는 현재분사이고(speaking), ‘일어날’(ἀναστήσονται)은 미래형으로서(will rise) ‘장차 일어날 것이다’는 뜻입니다.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τοῦ ἀποσπᾶν τοὺς μαθητὰς ὀπίσω ἑαυτῶν.
of the to draw away the disciples after them
‘여러분 중에서도’(ἐξ ὑμῶν)는 앞 소절에 있어서 ‘여러분 가운데서 일어날 것이다’는 뜻입니다.
‘끌어’(ἀποσπᾶ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입니다(to draw away).
1. 여기서 바울은 장로들에게 교인들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잘못된 선동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보통 선거를 통해서 장로가 된 직분자들은 선거 맛을 알았기 때문에, 교인들이 자기를 따르도록 인기 전술을 쓰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장로들이 교인들에게 어그러진 말을 해서 자기를 따르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로들 중에서 교인들을 인기 위주로 선동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는 이단자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처럼 이단이란 외부에서 교회로 들어온 이단보다도 교회 자체에서 자기를 따르도록 교인들을 선동하는 자생적 이단이 더욱 큰 문제가 됩니다.
바울 사도는 3년간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섬기면서 교회를 큰 교회로 설립해놓았는데, 바울이 떠난 후에 장로들 중에 어떤 사람이 말로 선동하여 교인들이 자기를 따르도록 인기몰이하는 사람이 생길 것을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2. 여기서 <어그러진 말>이란 장로가 자기를 따르도록 선동하는 말을 가리킵니다.
마땅히 교회의 지도자라면, 교인들이 주님을 잘 따르도록, 주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도록 격려하고 교훈해야 하는데, 자생적 이단은 주님 보다 자기를 따르도록 인기 활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장로는 대표 기도 시간에 목사처럼 설교를 하면서 교인들을 정치적으로 선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을 무시하고, 자기가 주님처럼 기도 시간에 설교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처럼 겉으론 양의 가죽을 썼지만, 속에는 흉악한 이리가 교회의 중직을 맡으면, 교회는 모두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악한 이리를 섬기는 불쌍한 양들이 되고 맙니다.
31절.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be on the alert, remembering that night and day for a period of three years I did not cease to admonish each one with tears.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διὸ γρηγορεῖτε,
therefore stay awake,
‘일깨어’(γρηγορεῖτε)는 현재 명령형으로서(stay awake),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μνημονεύοντες ὅτι τριετίαν νύκτα καὶ ἡμέραν οὐκ ἐπαυσάμην μετὰ δακρύων νουθετῶν ἕνα ἕκαστον.
remembering that three night and day not I ceased with tears admonishing one each
‘기억하라’(μνημονεύ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remembering) 기억하면서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쉬지 않고’에서 동사( ἐπαυσάμην)는 부정과거로서(I ceased) 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훈계하던’(νουθετῶν)은 현재분사로서(admonishing) 계속 훈계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31절과 32절은 사나운 이리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방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31절은 바울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고, 32절은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로들 가운데 사나운 이리가 교인들을 제자 삼아서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할 때, 그 첫째 해결의 방안은 바울 사도가 3년 동안 눈물로 훈계하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들 가운데 잘못된 길을 가는 자녀가 있으면, 나머지 자녀들이 합세해서 잘못된 길을 막아야 하고, 부모님을 생각해서 올바른 가정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장로들은 혹시 한 장로가 교회를 이단으로 몰고 가려고 할 때, 같은 동료라고 잘못된 장로를 따라 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올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이처럼 가정에서도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돌아서게 하는 것은 부모의 희생적 사랑입니다.
아무리 공산당 같은 악한 사상에 물든 자녀라고 할지라도, 유식한 말로써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눈물과 희생적 사랑이 자녀를 잘못된 길에서 올바른 길로 돌아서게 합니다.
교회에서 교인이 이단으로 물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성경과 신학적인 지식으로 설득하려고 해도 돌아오지 않던 교인이, 권사님의 희생적 사랑과 눈물의 호소를 듣고 돌아오게 됩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목회도 지성보다는 감성적 목회가 성공적인 목회로 이끌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2. 여기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은 19장 8절에 유대인의 회당에서 3개월 말씀을 전한 것과, 19장 10절에 두란노 서원에서 2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한 것을 합한 기간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간 전도하고 목회한 것은 AD 54년에서 57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목회할 때, 공적으로 설교하는 것만이 아니라 각 사람을 개별적으로 훈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심방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권면하고, 또 개별적인 상담을 통해서 개인적으로 권면하게 됩니다.
이처럼 공적인 자리에서 설교하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지적하면서 훈계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2절.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now I commend you to God and to the word of His grace, which is able to build you up and to give you the inheritance among all those who are sanctified.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καὶ τὰ νῦν παρατίθεμαι ὑμᾶς τῷ Κυρίῳ καὶ τῷ λόγῳ τῆς χάριτος αὐτοῦ
and the now I commit you to God and the word of the grace of Him
‘부탁하노니’(παρατίθεμαι)는 현재형으로서(I commit) 지금 부탁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τῷ δυναμένῳ οἰκοδομῆσαι
to the being able to build up
‘그 말씀이’(τῷ)는 앞의 말(τῷ λόγῳ)을 풀어서 해석한 것입니다.
‘능히 든든히 세우사’(δυναμένῳ οἰκοδομῆσαι)에서 앞의 동사는 현재 분사이고(being able) 뒤의 동사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uild up) 확실히 든든히 세우는 것을 가리킵니다.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καὶ δοῦναι τὴν κληρονομίαν ἐν τοῖς ἡγιασμένοις πᾶσιν.
and to give the inheritance among those having been sanctified all
직역하면 ‘거룩하심을 받은 모든 자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기업을 주시도록 (내가 부탁한다)’는 뜻입니다.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에서 동사(ἡγιασμένοις)는 완료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sanctified) 이미 거룩하심을 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기업을 너희에게 주시도록’에서 동사(δοῦ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give) 확실하게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
1.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주님과 주님의 말씀께 부탁했습니다.
즉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고, 자기 추종자들을 만들어 교회를 분열로 몰고 가지 않도록 하는데, 주님께 부탁하고, 또 바울이 3년간 가르친 주님의 말씀에 부탁했습니다.
이처럼 말씀 교육은 중요합니다.
어린아이들도 어렸을 때 말씀으로 교육해놓으면 늙어서도 그 말씀을 떠나지 않습니다. (잠 22:6)
그래서 어렸을 때 가정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려서 가정교육을 받지 않은 자녀들은 방탕한 삶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타락하기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도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교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자기가 전도해서 3년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장로들이 하나님 말씀에서 떠나지 않을 것으로 알고,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주님의 말씀에 부탁하고 떠났습니다.
이런 바울의 교훈은 에베소 교인들의 유훈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훈은 자녀들이 고이 간직하고 지키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목사가 들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유훈처럼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4장 2절에는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도 목회의 성패를 하나님의 말씀 교육에 두어야 합니다.
즉 아무리 인간관계를 잘해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믿음으로 든든히 서지 않으면, 오래 가지 못합니다.
2.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성도들을 든든히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은혜받고 신앙생활 하는 성도는 거룩한 성도로 성장해서 장차 천국 기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성도들의 영혼을 변화시켜 성장하게 만듭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시키기에 충분한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3:15-17.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의 인생길에 등불이 됩니다.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길에 빛이요 내 발에 등이니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어려운 환난을 당할 때, 우리를 살려주는 생명의 말씀이 됩니다.
시편 107: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천국 가는 노정기에 있는 성도들은 육신의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서 가나안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악한 이단에게 유혹당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천국 기업을 얻으시고, 날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 속에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