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는 7월, 우리는 태안 안면도와 보령 원산도를 잇는 서해안으로 1박 2일 라이딩을 떠났다. 안면도는 몇 해 전 다녀 온 적이 있었지만 원산도는 처음 만나는 섬이었다. 낯선 길을 향한 설렘은 언제나 새로운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새벽 어둠을 가르며 집을 나섰다. 산곡역에서 출발해 보라매역에서 동료들을 만나 밴에 탑승하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차창밖으로 동이 터오고 있었다. 여행길의 즐거움은 목적지뿐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에게도 있다. 람보림이 들려주는 흥선대원군과 조선 역사 이야기는 긴 이동 시간을 짧게 만들어 주었고, 웃음과 대화는 어느새 여행의 풍경이 되었다. 간월도에 이르러 무학대사의 발자취가 남은 간월암을 바라보고, 천수만 방조제를 지나며 끝없이 펼쳐진 초록 들녘을 만났다. 넓은 평야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주었다. 간월호 쉼터에서 본격적인 페달링을 시작하니 흐린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드르니항과 백사장항을 지나 삼봉해변으로 이어지는 길은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안길이었다. 삼봉 정상 쉼터에서는 광주에서 온 라이더들이 건네준 흰떡 한 조각에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여행의 진정한 기쁨은 화려한 풍경보다도 낯선 사람과 나누는 작은 정에서 피어난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만이 여행의 전부는 아니었다. 방포항을 지나 꽃지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거센 바람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노면은 순식간에 미끄러운 길로 변했다. 결국 동료 한 명이 빗길에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우리는 더 이상의 라이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은 컸지만 안전보다 소중한 것은 없었다. 밴 차량에 올라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여행은 계획대로 흘러갈 때보다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날 때 더 오래 기억 된다는 것을. 비바람 속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격려했던 시간은 아름다운 해변보다 더 깊이 마음에 남았다.
병술만과 운여해변에서는 서해가 품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났다. 비 때문에 기대했던 황홀한 낙조와 숲속의 데칼코마니는 볼 수 없었지만, 언젠가 찾아와야 할 이유로 남겨 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모든 풍경을 한번에 다 담을 수 없다기에 여행은 늘 다음을 기약하게 만든다. 영목항에 도착해 하루를 마무리하고 싱싱한 농어회와 함께 서로의 수고를 위로했다.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 몸을 누이자 피곤함은 밀려왔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가벼웠다. 폭우와 강풍, 가파른 언덕을 넘어 여기까지 달려온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사람들은 행복을 편안함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내가 자전거 위에서 배운 행복은 조금 달랐다. 힘든 오르막을 넘고, 비바람을 견디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페달을 밟을 때 비로소 얻게 되는 성취감이야말로 오래도록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행복이었다. 서해의 푸른 바다와 거센 비바람은 지나갔지만,함께 달린 동료들과 흘린 땀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속도는 조금 느려질지 몰라도 새로운 길을 향한 열정만은 늙지 않는다. 오늘도 우리는 삶이라는 긴 길 위에서 힘차게 페달을 밟는 행복한 라이더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