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음력 춘삼우ㅓㄹ이 지나가고 푸른 오월이 성큼 다가왔다. 녹음이 날로 짙어가는 계절, 산과 들에는 싱그러운 푸르름이 가득하다. 이 아름다운 시록의 계절을 맞아, 우리 58년 지기 십여 명의 교우들이 인왕산 서촌 자락에 모여 반창회를 가졌다. 세월이 흘러 남은 날들이 그리 길지 않다는 생각 때문일까. 한 해 한 해 갈수록 얼굴 마주하는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그립다. 날씨마저 유난히 선선하고 맑아 산책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특히 이번 모임에는 멀리 경북 봉화, 강원도 횡성과 원주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준 친구들이 있었다.
불원천리 달려와 준 교우들의 얼굴을 보니 반가움과 함께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져 왔다. 우리의 여정은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시작되었다. 마을버스에 올라 창의문(자하문)으로 향했다. 한양도성의 사대문과 사소문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창의문. 내게 이곳은 197년 10월, 수경사 소대장으로 부임하여 청와대 내곽을 지키던 청춘의 피와 땀이 서린 곳이다. 세월이 흘러 풍경은 몰라보게 변했지만, 이곳에 설 때마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옛 기억에 잠시 감회가 젖어든다. 창의문 맞은편, 옛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윤동주문학관을 거쳐 인왕산 한양도성 순성길에 올랐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북한산의 자태에 교우들의 감탄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서서 시인의 유택이 있는 용정의 흙을 뿌렸던 '서시' 시비를 바라보았다. 나무숲 사이로 그림처럼 들어오는 남산타원와 시가지 풍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울창한 숲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윽한 아카시아꽃 향기가 감도는 쉼터에 도달하자, 누구라 할 것 없이 나무 의자와 바위에 걸터안잤다. 청정한 공기를 깊이 마시며 정성스레 준비해 온 안주와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니 부러울 것이 없는 신선 놀음이 따로없다.
기이하게 생긴 이빨바위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깊은 협곡 위 흔들리는 가온다리를 지나 무명전망대에 다다랐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속 배경이 된 이곳에 서니 남한산과 검단산, 롯데월드타워까지 서울 도심이 파노라마처럼 시원하게 펼쳐졌다. 숲길을 따라 해맞이공원을 지나 정선의 산수화로 잘 알려진 수성동계곡으로 내려왔다. 옥류동천의 상류, 기암괴석과 흐르는 물소리가 어우러진 계곡에는 조선시대 안평대군이 풍류를 즐기던 비해당터와 기린교가 여전히 예전의 멋을 간직하고 있었다. 수성동계곡을 지나 옥인길을 따라 걷다 보니 시인 윤동주가 하숙했던 한옥 터가 나타났다.
연희전문 시절, 종종 인왕산에 올라 시상을 가다듬었을 시인의 청년 시절을 떠올려 본다. 정겨운 엽전 시장으로 유명한 통인시장과 1951년에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대오서점, 그리고 스물일곱 해의 짧고 강렬한 삶을 살다 간 천재 작가 이상의 집을 둘러봤다. 까까머리 학창 시절의 향수를 나눌 즈음, 점심 약속 시간이 다가와 체부동 잔칫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름하지만 정겨운 식당에 둘러앉아 부추전과 도토리묵을 안주 삼아 술잔을 주고받았다. 각자의 가슴속에 품어두었던 정겨운 이야기들이 실타래처럼 풀어져 나왔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레 건강에 관한 화제가 많아진다. 서로의 아픔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유용한 정보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담소는 콩국수와 들깨칼국수로 식사를 마치 후에도 오랬동안 이어졌다. 오후 4시가 가까워질 무렵, 아쉬움을 뒤로하고 경복궁역에서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사흘 내내 내리던 봄비가 거짓말처럼 그치고 온 세상이 푸르게 빛나던 날. 하늘마저 우리 반창회를 축복해주는 듯했다. 돌아가는 교우들의 얼굴에는 만심환희(滿心歡喜), 기쁨과 만족이 가득해 보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주 앉아 정을 나눌 기회는 조금씩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건강할 때 자주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음을 나누는 이 시간이 삶의 가장 큰 활력소이자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화창한 오월의 인왕산 자락에서 나눈 58년 지기 교우들과의 소중한 추억은 우리 가슴속에 오래도록 가슴 따뜻한 상징으로 박제되어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