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 이혜숙
이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 같은 말
시월
바삭거리는 가을볕에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는
꽃향유와 꿀벌의 시간들을 지나
바람이 닦아 놓은
말간 하늘 속으로
들어가는
먼 가지 위
까치밥 하나 마련해 놓고
느리게 걷는 저녁나절
창호지 문살에
어둠이 얹히면
고무신 콧등의
흙먼지 털어내고
눕는 아랫목
시월이 참 좋다.
나는
----이혜숙 시집 {웃음이 번져 봄이 되는} 에서
‘꽃향유’란 이름에서부터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꽃이고, 꽃이 아름다우면서도 향기가 강해 밀원蜜源 식물로도 재배한다고 한다. 꽃은 칫솔모양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피고, 꽃말처럼 4-5개월이면 큰 개체로 자라난다고 한다. 4월에 씨앗을 뿌려도 가을이면 5-60cm로 자라고, 꽃이 아주 탐스럽고 한 달 이상 피기 때문에 가을 화단용으로 더욱더 좋다고 한다.
시월, “이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 같은 말/ 시월”---. 이혜숙 시인의 [시월]은 노년의 아름다움과 행복이 ‘즉심시불卽心是佛’, 즉, ‘부처의 마음’으로 피어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이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 같은 말”로 만악의 근원인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이제까지의 근면과 성실함의 결과로 가을의 끝자락인 [시월]의 행복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것이다. “바삭거리는 가을볕에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는/ 꽃향유와 꿀벌의 시간들을 지나”면 “바람이 닦아 놓은/ 말간 하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의 풍경은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과 하나가 되는 풍경이며, 그 풍경 속에서 그 풍경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역동적인 풍경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 같은 말/ 시월”도 살아 있고, 꽃향유와 꿀벌들도 살아 있으며, “먼 가지 위/ 까치밥 하나 마련해” 놓은 이혜숙 시인의 따뜻한 마음도 살아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은 어떠한 삶일까? 모든 것을 다 가졌고,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은 것이 행복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자기 자신의 삶에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이 가장 행복할 것이다. 만족한다는 것은 불평불만이 없다는 것이고, 불평불만이 없다는 것은 더없이 즐겁고 기쁘다는 것이다. 그토록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고 ‘고대의 오후’같은 [시월]에 까치밥 하나 마련해 놓고 느리게 느리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이혜숙 시인의 행복이 아니라면 그 무엇이란 말인가? 까치밥 하나는 아주 소중한 식량이고, 내가 나의 노력으로서 후세대를 위한 유산이라고 할 수가 있다. 불평불만이 많은 자는 까치밥 하나를 남길 수가 없고, 까치밥 하나를 남길 수 없는 자는 느리게 느리게 걸을 수가 없다. 만족하면 느리게 느리게 걸을 수가 있고, 만족하면 그 모든 것을 다 소화시킬 수가 있고, 만족하면 ‘고대의 오후’같은 [시월]의 단잠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가 있다.
“먼 가지 위/ 까치밥 하나 마련해 놓고/ 느리게 걷는 저녁나절”, “창호지 문살에/ 어둠이 얹히면/ 고무신 콧등의/ 흙먼지 털어내고/ 눕는 아랫목”, “시월이 참 좋다/ 나는”----.
까치밥 하나로 우주가 열리고, 까치밥 하나로 이혜숙 시인은 부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