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서너 살쯤 되었을 때인가, 단칸방에서 애를 가운데 누이고 자려면 옛날얘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때 해줬던 옛날얘기 중엔 단연 ‘별주부전’이 대세였던 걸로 기억됩니다. 할머니, 아버지로부터 들은 내용에다 고딩 때 고전으로 배우기까지 하였으니 말이죠. 더욱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얘기해 줘도 이 녀석이 싫증을 내기는커녕, 매번 까르르 웃는 통에 여러 얘기할 필요 없이 쉽게 가기로(?) 했던 거지요. 딸이 좀 커서 물으니 사실 너무 많이 들어 나중엔 별 재미가 없었다네요.
수년 전만 해도 나는 집에서 가까운 사당동, 봉천동, 상도동 등에 있는 고서점에 적잖이 들락날락했는데, 고희를 넘기면서 많이 뜸해졌지요. 며칠 전 운동을 마치고 장승배기를 지나는데 코딱지만한(?) 고서점이 눈에 들어와 별 기대 없이 들렀습니다. 바로 여기서 문제의 별주부전, 장끼전 등이 들어있는 작은 책(구인한이 엮은 토끼전)을 발견하였습니다. 두 냥을 주고 횡재를 한 셈이지요.
생각보다 근세에 쓰여진 우리 고전소설
책을 몇장 넘기지 않아 ‘유로반(유럽)에서 각국을 응시하던 나파륜(拿破崙)도 해도(海島)에 갇혔는데..’ 라는 대화가 나옵니다. 나파륜은 나폴레옹을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폐된 것은 1815년이고 죽은 해는 1821년입니다. 더욱이 그런 사실이 우리나라에 전해지기까지 한참 걸리지 않았겠습니까. 한 페이지쯤 뒤에는, 토끼 화상을 그릴 화가를 모셔옴에 ‘조선에 이르면 산수(山水) 잘 그리던 정겸재와 나비 잘 그리던 남나비며..’ 라는 글도 나오지요. 나비만을 전문적으로 그려 ‘남나비’라는 별칭으로 더 알려진 남계우(南啓宇, 1811~1890)는 19세기 중후반에 활약했던 화가입니다. 따라서 이 소설이 쓰여진 시대를 유추하면 1900년 전후쯤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와 비슷한 내용이 중국이나 일본에도 있고, 우리나라 별주부전도 여러 판본이 있다고 하지요. 또한 상당 기간동안 첨삭되었을 것이니 시대를 특정하는 것이 부질없다 할 수도 있습니다만..
첫 대면부터 동양 고전의 인물들을 자유자재로
자라가 육지로 올라와 토끼와 조우하는 장면을 옮겨 봅니다.
“고봉준령(高峯峻嶺)에 산수도 좋다. 그대 토선생이 아니신가. 나는 본시 수중호걸(水中豪傑)이니, 양계(陽界)에 좋은 벗을 얻고자 광구(廣求)타가, 오늘에야 산중호걸(山中豪傑)을 만났도다.(중략)” 이에 토끼가,
“그 뉘라서 날 찾는고. 수양산의 백이숙제(伯夷叔齊)가 고사리 캐자 날 찾는가. 소부허유(巢父許由)가 영천수(潁川水)에 귀 씻자고 날 찾는가. 부춘산(富春山) 엄자릉(嚴子陵)*이 밭 갈자 날 찾는가. 면산(綿山)의 불탄 개자추(介子推)*가 날 찾는가. 한고조의 스승 장량(張良)이 퉁소 불자 날 찾는가. 상산사호(商山四皓)* 벗님네가 바둑두자 날 찾는가. 굴원(屈原)이 물에 빠져 건져달라 날 찾는가. 시중천자(詩中天子) 이태백이 글 짓자고 날 찾는가. 주덕송(酒德頌) 유령(劉伶)이 술 먹자고 날 찾는가. 염락관민(濂洛關閩)* 현인들이 풍월 짓자 날 찾는가. 안기생(安期生) 적송자(赤松子)*가 약 캐자고 날 찾는가. 남양초당(南陽草堂) 제갈선생 해몽하자 날 찾는가 한종실 유황숙(劉皇叔)이 모사 없어 날 찾는가. 적벽강 소동파가 선유(仙遊)하자 날 찾는가. 취옹정(醉翁亭) 구양수(歐陽修)가 잔치하자 날 찾는가.”
위 내용 중 보는 이의 검색 수고를 덜고자 몇 인물들만 주를 달아 보겠습니다.
*엄자릉(嚴子陵) : 후한(後漢)을 창업한 광무제의 어릴 적 절친으로 여러 번 입조를 청했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고 부춘산(富春山)으로 들어가 밭을 갈고 살았다 함.
*개자추(介子推) : 춘추시대 5걸 중 하나인 진문공(晉文公)이 임금이 되기 전 여러나라를 전전할 때 따라다닌 충신으로,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할 적에 자기 넓적다리를 베어 공양도 하였음. 진문공이 제위에 올랐으나 논공행상에서 제외되자 산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진문공이 나중에 알고 면산(綿山)에 불을 지르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대로 타 죽었다 함. 한식(寒食)의 유래?
*상산사호(商山四皓) : 진시황 때 폭정을 피해 상산(商山)에 숨어 살던 네 현인들로, 눈썹과 수염이 흰(皓) 노인들이라 하여 붙여진 별명. 한고조 때에는 불러도 오지 않았으나, 그 적장자의 황위계승에는 입궐하여 도움을 주었다고 함.
*염락관민(濂洛關閩) : 송나라 때 성리학의 적통. 염계(濂溪)에 있던 주돈이(周敦頤), 낙양(洛陽)의 정이(程頤)와 정호(程顥),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그리고 민중(閩中)에 살았던 주희(朱熹)를 일컬음
*안기생(安期生) 적송자(赤松子) : 중국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들로 바둑을 즐기며 불로장수 하였다 함
다음에는 자라와 토끼가 과장되게 통성명하는 장면을 올려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