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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살 길
함석헌
나라가 망한다
우리 나라는 지금 아주 위태한 자리에 있다. 잘못하면 다시 아주 망하는 길로 빠져들 염려가 있다.
우리가 나라라 할 때는 이 남한만 아니라 북한까지도 넣은 전체를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그중 어느 하나가 빠질 것은 우리의 참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나라가 망해 버린다는 이 다급한 생각으로 마음을 깨우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나라가 망한다는 말은 좋은 말은 아니다. 될수록 입에 올리지 않아야 한다. 개인의 경우에도 죽는다는 말을 헤프게 해서는 못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첫째 그런 말은 스스로 방정을 떠는 말이다. 개인이나 나라가 스스로 방정을 떨면 정말 그렇게 되고야 만다. 제 입이 곧 하늘의 입이다. 스스로 복스런 말을 하면 복이 오고 방정을 떨면 화가 오고 만다. 방정은 곧 믿지 않음이기 때문이다. 삶은 무조건 긍정으로 시작해야 한다.
또 사람은 심리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자기 암시에 걸린다. 망한다는 생각을 자꾸하면 마침내 제 정신이 스스로 죽어 버린다. 기도 그 자체가 곧 들어줌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삶의 중대한 일을 헤푸게 말하면 정신이 그만 늘어져 버려서 그 중대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로는 정말 그 큰 순간이 닥쳐왔을 때 멍청해서 아무 반응도 못하게 된다. “魚不可脫 於深淵이요. 邦之利器不可以示人”이다. 고기가 깊은 소에서 뛰어 나와서는 아니되는 것이요. 나라의 중대한 것을 남한테 내놔서는 못쓰는 것이다.
나는 우리 민족의 큰 결점의 하나가 “죽겠다” 소리를 너무 헤프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래도 “죽겠다” 제래도 죽겠다, 옳아도 죽는다, 글러도 죽는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하는 하나의 형용사가 돼 버렸다. 깊이도, 무게도, 이를 악뭄도,속을 파고듬도 부족한 탓 아닐까'? 아마 하도 많이 죽음의 선을 넘다가 그렇게 버릇처럼 죽음을 부르게 된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참말로 눈물나는 일이지만, 지금의 일로는 우리는 확실히 평가가 절하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죽을 결심을 할 줄 모르는 백성이 돼 버린 듯 하다. 죽음을 밥 먹듯 했기 때문에 죽음의 맛을 모르게 됐고 죽음의 맛을 잊었기 때문에 삶의 맛도 거의 잃어버린 것 아닐까?
그러기 때문에 죽는다 나라 망한다 소리 될수록 아니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정말 죽을 목에 다다랐는데 어찌할까? 이제야말로 “나라 망한다” 라고 부르짖어야. 하지 않을까?
손톱 곯는 줄은 알아도 염통이 곯는 줄은 모른다. 하나는 뵈게 겉에 있고 하나는 뵈지 않게 속에 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요, 뵈지 않는 것이 정말 없어서 는 아니되는, 뵈는 모든 것을 있게 만드는, 중요한 것이다. 뵈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뵈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요, 뵈는 것을 지키는 것이 의가 아니라 뵈지 않는 것 을 지키는 것이 의다. 우리가 모르는새, 어리석은 것들이 지킬 줄을 몰라 나라의 지성소가 그만 이방인에게 다 엿보여졌고, 모처럼 처녀성을 도로 찾으려 골방에 들어앉으려던 수난의 여왕이 다시 큰길거리로 끌려 나가게 됐다.
돌아보라, 우리 역사야말로 눈물과 피와 한숨과 몸부림으로 엮어진 역사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파란 많은 고난의 역사라도 나라가 아주 망해서 남의 종이 되기는 일본 제국주의의에서 처음이었다.
부끄럽고 분한 가운데서도 스스로 우리 자신을 달랠만한 것이 거기 있다. 그러므로 다행히 나라를 다시 찾는 날이 올 수 있었다. 하물며 그것이 우리 혼자만이 아니고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힘을 아울러 도움으로써 된 것에 있어서일까? 거기 큰 뜻이 있고 우리 할 일이 크게 있어야 할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나라가 30년이 거의 다 되도록 완전히 일어서지 못 할 뿐 아니라, 다시 잃어질 위험이 있는데 어찌할까?
스스로 서 나감
무엇보다 먼저 생각할 것은 스스로 섬이다. 제 몸을 제가 가누지 못하고는 개인이 사람노릇을 할 수 없고, 제 나라를 제 힘으로 세우지 못하고는 한 민족이 역사를 지어 나갈 수 없다.
요새 미국이 아시아에서 물러나려 하는 정책으로 인해 중공과 일본이 우리 좌우 옆에서 크게 작용하게 되는 것을 보고 새삼 놀래서 걱정하기를 시작하는 것은 우리의 큰 부끄러움이다.
우리는 이날껏 미국에 너무 매달려 있었다. 본래 제2차세계대전 후 미국이 세계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라는 어디까지나 제 속셈으로 하는 것이라, 남을 도와도 저 본위로 하는 것이었지 결코 인도주의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 때문에 전쟁으로 피폐한 유럽 모든 나라들이 그 원조를 아니 받는 나라 없지만 그들은 본래 자립정신이 강한지라, 첨에는 원조를 감지 덕지 고맙게 받았지만 급한 시기를 지난 다음에는 미국과 맞서게 됐다. 그러기에 보라, 오늘 미국의 후회하는 것을 보고 어느 유럽 나라가 섭섭하고 걱정스럽게 생각하는 나라가 있나? 그뿐 아니라 사실 미국으로 하여금 후회하게 만든 것은 그들의 압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유럽보다도 우리에게 더 좋은 거울은 일본과 자유중국이다. 전쟁 직후에 우리와 그들의 어려운 사정이 무엇이 다를 것이 있었나? 그런데 지금 일본은 미국을 떠밀어 제치고 동양에서 맹주가 되려 중공과 맞서고 있고, 자유중국도 유엔에서 내 쫓김을 당하면서도 우리 같이 당황하지는 않는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스스로 서자는 정신이 강했던 데 있다.
중공의 유엔 가입을 보고야 놀래지만 그것이 어찌 1971년 10월 26일에 와서 된 일인가? 눈이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벌써 몇해 전부터 알았고 주장해 온 일이 아닌가? 거기 반대한 것은 미국 정부와 거기 매달려 있는 우리나라 지배자들이었다. 왜 그들은 반대했나? 권력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요새 중공의 유엔 가입을 놓고 여러 정치인들의 논평이 있으나 그 일반적인 경향을 보면 돼진 역사를 어쩔 수 없이 인정은 하면서도 어딘지 잘못된 일로 보려는, 아쉬워하는 기색이 들어 있다. 나는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본다. 아직도 미국 체제를 떠나 우리는 우리로 스스로 서자는 결심이 분명치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생각이라고 본다.
중공을 넣고 자유중국을 내쫓는 것을 유엔이 약해지는 것으로 미국 외교의 실패로 보려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는 그런 사고방식을 용감히 청산해야 한다. 유엔이 약해짐이 아니다, 미국 유엔에서 정말 세계의 유엔으로 발전하는 한 단계로 보아야 하고, 미국 지배층에는 실패인지 몰라도 미국 민중으로는 일단의 성공으로 보아야 한다.
이데올로기 시대는 지나갔다고, 실라 주의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그것이 무슨 뜻인가? 이데올로기란 기업국가시대에 있어서 지배자들이 민중을 묶기 위한 한 구호였다. 그동안에 역 사는 나가서 하나의 세계로 발전했으므로 그 이데올로기로만 민중을 묶어 둘 수는 없어졌다. 실리라지만 누구의 실리인가? 민중의 실리다. 사상이 서로 다르면 원수로 알고 서로 없애 버리려는 생각을 이제는 할 수 없게 됐다. 생각이 서로 달라도 서로 다른 생각을 허용하면서 하나로 살아가는데 보람을 느끼게 된 것이 오늘의 인류다. 한때 서로 적대국이었던 미국과 중공이 손을 잡는 것을 보고 모순된 일인 것같이 생각하지만, 모순이 아니라 한 단계 높아지는 일이다, 생각해보라,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가. 사상이 다르니 영 같이할 수 없다고 유엔 속에 넣지 않으려는 것과, 사상은 아무리 달라도 지배층의 그것 때문에 인류의 사분지일인 중국 민중을 내놓고 세계의 일을 의론할 수는 없다는 것과 밉거나 곱거나 간에 서로 의론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고, 나와 같거나 아니 같거나 간 서로 하나로 화목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 오늘의 인류가 선 자리다. 그것은 전보다는 낮은 자리가 아니고 높은 자리다. 전보나 더 강한 주체성, 자주 의식을 가지고야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외국 원조를 그만두기로 정책을 바꾸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것을 우리를 위해서도 미국을 위해서도 잘되는 일이라고 본다. 물론 한 때 어려움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는 자립 못한다. 절처봉생(絕處逢生)이다. 궁내통(窮乃通)이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야 길을 연다. 그리고 내가 여는 길이 정말 사는 생명의 길이다. 생명은 지독한 것이다. 무자비한 것이 역사다. 데모도 어서 더 악마처럼 탄압해 주는 것이 자유를 위해 좋 다!
스스로 서 나감의 세 단계
스스로 서는 것은 서기만 하는 것이 목적 아니다. 서거든 나가야 한다. 거기세 단계가 있다.
개인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우선 제발로 곧장 일어서야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린애가 나서 맨첨으로 하는 공부는 이것이다. 말도 하기 전에 우선 일어서야 한다. 무쌍한 고생을 하며 그것을 배운다.
민족도 마찬가지다. 제 발로 서야한다. 민족의 발은 서민층이다. 서민층이 튼튼해야 한 민족이 자립할 수 있다.
人之生也直이라 사람은 곧곧이 서야 한다. 곧은 몸이 건강한 몸이다. 한 나라도 사회 구조가 공정한 정의의 법칙에 의해 어느 부분도 꾸부러짐이 없이 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나라를 어떤 대적도 넘어뜨릴 수 없다.
둘째 단계는 생활의 자립이다. 다리가 튼튼히 서면 손이 자유롭게 해방이 된다. 사람은 손을 자유롭게 쓰면서 동물의 지경을 벗어나 사람이 됐다. 손은 살림을 하기 위한 것이다. 손을 자유로 쓸 줄 알 때 제 살림을 제가 할 수 있게 된다.
서민계급이 튼튼히 서면 각 층의 사람이 제 기능에 따라 활동하고 그러면 국민경제가 이루어진다. 국민경제 이루어지지 않고 자유 독립 있을 수 없는 것은 오늘 우리의 사실이 증명하고 있다.
왜 국민경제가 발달하지 못하나? 특권계급이 모든 물자와 기회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안으로 사회문제를 가지면서 밖으로 강한 나라 없다.
그담 마지막으로 정신자립의 단계다. 제 살림을 제가 할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제 생각이 있어야 사람이다. 시비 선악의 판단을 제가 할 줄 알아야 비로소 인격적인 사람이다.
한 국민도 지적 데모크라시가 발달해서 활발한 여론이 작용하여야 참 자립 하는 국민이다.
설명에 편하게 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말했으나 사실로는 늘 같이 작용하고 있다. 마치 나선운동과 같다. 몸의 자립에서 생활의 자립으로, 생활자립에서 정신자립으로 올라가지만, 또 정신의 자립없이 몸의 자립도 생활의 자립도 있을 수 없다. 그 세 가지 자립 활동이 서로 작용하면 나가는 것이 나라 살림이다.
이 셋이 서로 작용하는 것이 마치 한 사람이 씩씩히 걸어나갈 때 발과 허리와 머리가 잘 협력하여 걸음마다 달라지는 환경에 대해 중심을 잘 잡으면서 넘어지지 않고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점은 그 중심에 있다. 중심을 잘 잡을수록 빨리 갈 수 있다. 나라의 중심이 어디 있나? 몸의 중심이 아랫배에 있듯이 나라의 중심도 씨알에 있어야 한다. 머리가 무거우면 몸이 곤두박질하고 지배계급이 저만을 위하면 나라가 곤두박질을 한다. 중공 일본이 나오는 것을 보고 몸을 가누지 못하고 머리가 돌아 좌충 우돌 식으로 이 대학 부수고 저 대학 을 부수는 것은 나라의 중심인 씨알의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 머리에 찬물을 끼어 얹고 피를 네 배와 다리로 보내라. 그러면 네가 똑바로 서서 세계를 정면으로 대하고 네 손을 자유로 놀려 협조의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통 일
그러나 닥쳐온 이 난국에 자립하지 않고는 아니 될 줄 알지만 그 국민적 자립은 민족의 통일 없이는 아니된다. 그러므로 우선 남북통일에 민족의 마음과 힘을 다 모아야 한다.
첫째 민족이 둘로 갈라져 있으면 언제든지 외국 세력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다. 본래 분열이 올 때는 외국세력의 침입으로 시작됐다. 남한에 데모크라시가 있어서 미국을 끌어 들이 고 북한에 공산주의가 있어서 소련을 끌어들인 것이 아니라, 미군이 남한을 점령하고 소련군이 북한을 점령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러므로 문제의 요점이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에 있는 것 아니다, 남의 나라의 그 세력을 빌어서 제가 정권을 쥐어 보려하는 그 마음에 있다. 그것은 외면으로 정치인 것 같고 나라 일 하는 것 같지만 그 속 고갱이에 있어서 권력욕이요, 하나의 사사 마음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은 자기 세력을 위해 언제나 밖의 세력의 도움을 구한다. 그 이유는 자기네게 민중의 동의와 신임으로부터 오는 아무런 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야심적인 정치가는 언제나 외국세력을 끌어들이는 법이다. 우리 자신의 일보다 월남의 일을 보면 환하다 키거나 티거나 다 믿을 놈이 못된다.
둘째 분열이 있는 한은 서로 제가 독차지 하려 경쟁하기 때문에 국민은 거기 말려들어 물질적 정신적 모든 정력을 다 소모해 버리고 만다. 그러면 자주 독립은 도저히 바랄 수 없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그러한 야심적인 군벌들은 언제까지든지 그런 긴장 상태, 전시 기분 속에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비상시라는 이름 아래 언론의 자유를 막고 민중을 눌러두기가 좋고, 국방이란 이름 아래 외국 원조를 얻어 호화로운 사생활을 하며 특권을 누리기 좋고, 나라를 망치는 부정 부패를 행하고도 그것을 가리워 두기가 쉽기 때문이다. 남쪽 민중과 북쪽 민중 사이에는 언제나 분열될만한 어떠한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국방은 참 의미의 국방이 아니다. 그 권력 구조에 대한 방위다. 그러나 그런 상태가 계속하면 할수록 군인 계급은 살찌는 대신 나라는 파괴해 버린다. 보라 우리가 지금 문화적으로 일본에 떨어진 것이 얼마나 큰가? 도리어 그 차이가 일제시대보다 더하다. 그 주되는 원인은 다른 것 아니고 남북 긴장으로 되는 민족적 정력 소모에 있다. 남북을 합해 백만이나 되는 젊은이가 생산은 이무 것도 없는 소모전에만 잡혀 30년이 되도록 있으니 그 손해가 얼마인가? 이러고는 경제부흥도 문화창조도 바랄 수 없다. 가장 우수한 두뇌를 쓸데 없는 신경전에 써버려야 하고, 더구나 본래 평화적이던 성격을 아주 망가쳐 서로 미워하고 의심하고 시기하는 데만 시간을 보내니 정신적 발달을 어떻게 바랄 수 있겠는가? 책은 하나 읽지 않고 퇴폐적인 풍조만 느는 것은 그 원인이 모두 여기 있다.
그러나 이것을 불행으로만 알고 서로 원망 한탄만 하는 것은 어진 일이 아니다. 이 불행을 발전을 위한 좋은 계기로 전환을 시켜야 한다. 이제 이 분열의 비극을 극복하고 다시 하나되는 자리에 가노라면 전에 없던 좋은 새 것을 많이 얻을 수 있다.
사람의 모든 기관을 보면 대개 쌍으로 되어 있다. 눈도 둘인데 하나로 보고, 귀도 둘인데 하나로 듣고 손도 둘인데 하나로 붙잡고 발도 둘인데 하나로 걸어간다. 왜 그렇게 됐을까? 아마 하나로만 하는 것보다 둘이 합해서 하나로 하는데 더 효과적인 것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심리작용을 보면 한 쌍만이 아니다 여러 가지로 복잡하다. 생각이 한없이 많은데 그것을 하나로 통일하는데 정신의 발달이 있다. 본능적으로 자극 하나에 반응 하나, 지각 하나에 행 동 하나로만 된 동물은 언제까지 동물에 머무는데 사람만이 고등한 지능의 발달을 한 것은 그 생각이 서로 반대되는 여러 가지로 갈려서 그것을 통일하려는 가운데서 된 것일 것이다.
그러면 민족의 분열도 보다 높은 발전을 위한 계기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여기 남북 분열의 역사적 의미가 들어 있다. 서로 다른 식의 생활 다른 체계의 생각을 하는 동안에 불행도 있지만 이제 그것을 합하지 못하면 멸망에 이르고 말 것이니 그 어려운 종합을 이루노라면 남이 모르는 훨씬 귀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不同同之之謂大란 말이 있다. 같지 않은 것을 같이하는 데 위대가 있다. 그것은 물질적 힘의 큼이 아니다. 정신의 큼이다. 우리는 조그만 땅에 넉넉지 못한 자원을 가지고 강대국 틈 에 끼어 있다. 무엇을 가지고 중국의 큼, 일본의 큼, 러시아의 힘, 미국의 힘을 겨뤄낼 수 있을까? 그 네 이웃이 반드시 다 착한 마음만이 아니라. 이런 틈에서 무엇으로 버틸 수 있나? 정치적 경제적 힘으로 되지 못할 것은 너무도 빤한 일이다.
대답은 오직 하나 위대한 정신으로 밖에 갈 길이 없다. 그럼 우리 당하는 시련의 의미는 이런데 있지 않을까? 같지 않은 것을 같이 해보려하는 동안에 남의 가지는 물질적 위대보다 더 위대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네 개의 강한 대적이 총칼을 겨누고 있는 십자로에서 무사히 걸어나가려면 그 지혜는 무슨 지혜며 그 용기는 어떤 용기일까? 세상에 그에서 더한 재주와 위대가 어디 있겠는가? 옛날 승(勝)이라는 조그만 나라가 큰 제(濟), 초(楚) 두 틈에 끼어 부대끼다 못해 그 임금 文公이 孟子 보고 事齊乎이까 事楚乎이까 齊나라를 섬기랍니까 楚나라를 섬기랍니까 하고 물었다. 요샛말로 하면 친중정책을 취하랍니까, 친일정책을 취하랍니까 하는 말이다. 보통 말로 하면 참 어려운 대답이다. 그럴 때 맹자는 대답하기를 “그것은 저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겠거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백성으로 더부러 죽기를 각오하고 지켜서 백성이 도망가지 않는다면 해볼만합니다. 천하에 왕노릇 할 수 있습니다.” 했다. 그것은 인화(人和)를 가르친 말이다. 정책에 있는 것 아니라 국민이 하나되는 데 있다. 죽을 자리에 있어서도 서로 살 길 찾아 도밍하려 하지 않고 같이 죽기를 달게 여기리 만큼 인화가 되어 있다면 제(濟), 초(楚)만 아니라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다. 그런 덕을 가지면 온 천하도 통일할 수 있다 하는 말이라. 그러기 때문에 天時不如地利요 地利不如人和라 한다. 예와 이제가 아무리 달라도 인간이 인간인 이상은 그점에서는 다름이 올 수 없다. 오직 하나됨 뿐이다.
중립 노선
통일이 중요하고 근본적이요, 시급한 문제인 줄은 알지만, 실지로 어떻게 그 통일을 이를 것이냐 하는데 이르면 대답이 쉽지 않다.
그러나 쉽지 않다는 것은 그 문제가 어려워서 보다는 사람들이 꺼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꺼리는 것이 이무것도 없이 다만 사실만 바로 정면으로 드려다보고 내 마음을 직선으로 거기 연결한다면 대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꺼리는 것이 있다는 것은 통일이 아직 시급한 문제로 되어 있지 않는 심리다. 지금의 이 상황에 아직 붙어 있고자 하는 비겁한 생각이다. 그러니 지금은 상황이 급박하여서 그런 구차한 평안을 탐하는 비겁한 생각 속에 그냥 머물러 있을 수가 없어져가고 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좋건 언짢건 응하지 않을 수 없는 대새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러다가는 일을 그르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그 다급한 자리에 가기 전에 미리 그 진상을 이해해 두어야 한다. 그것이 선견지명이다.
몸을 아끼는 사람이 수술해야 할 줄 뻔히 알면서도 수술대에 누어 배를 째울 생각에 겁이 나서 오늘 내일 연기를 하다가 죽고 말면 그 아낀 것이 정말 제 목숨을 아낀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른 것이 돼버린다. 외국군대 원조 밑에서 그날 그날 평안을 탐하고 있는 것이 그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죽을 각오하고 문의 복판을 가르는 것이 사는 길이다. 역사의 수술대가 어딘가? 美. 蘇. 中. 日이 서로 윽물고 서는 십자로다. 복부 수술을 하듯이 그 어느 편에 붙으려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나대로 설 생각을 하잔 말이다. 한 마디로 중립 노선이 야 말로 살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이란 말이다. 동서 대립에서 중립을 하면 남북노선이 될 수 있고,남북 대립에서 중립을 하면 동서 노선이 될 수 있으나 이것은 동서남북의 교차이 기 때문에 그 어느 것을 할 수도 없고 直上天을 하는 외에 다른 길이 없다. 글자대로 중립, 가운데 버티고 서는 것이다.
다 마음에는 두고도 꺼리고 고려하고 주저하고 재고 사양하니 그렇지 만일 누구나 있는대로를 솔직히 말하라면 다 같은 의견일 것이다. 사실이 밖에 길이 없으니 말이다.
지난번에 통일에 대한 말을 하면서 나는 통일이란 결코 한 지배권 밑에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과, 통일이 되려면 지금 있는 두 정권은 물러나야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 두 정권을 어떻게 물러나게 하느냐 거기 문제가 있다.
여기서 지금 말하려는 것은 그 구체적 방법에 대한 나의 의견이다. 세 단계로 되어 있다.
첫단계는 남북이 불가침 조약을 맺는 일이다. 이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이북 김일성 정권이 항상 침략적인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의 선전은 늘 평화통일이 란 것을 말해 왔다. 물론 그것이 거짓 선전인 것은 모를 사람이 없지만, 생각할 점은 그런 거짓 선전을 왜 하느냐 하는 것이다. 두 말 할 것 없이 일반 국민은 누구나 전쟁에 의한 통 일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 대해 남한에서는 어찌했느냐? 기회 있는대로 그 평화 공세에 속아서는 아니된다 했고 평화 소리 하는 사람만 있으면 용공주의자로 몰아쳤다. 그러면 그것으로 미루어 결론을 짓는다면 남한 정부의 정책은, 말로는 분명히 하지 않지만, 통일은 무력에 의해 되는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오다가 언젠지 모르게 평화통일론으로 바뀌어졌다. 어째 그렇다는 분명한 설명없이 그렇게 돼버렸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또 알 수 없는 것은 일향 군사열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정치가 군사 일색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위수령을 펴고 학원을 짓밟으면서까지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있고, 미국이 군사원조 중지한다고 눈이 휘둥그래 걱정하고 국군의 현대화 자립화를 부르짖고 야단이고 심지어는 대통령이 고등학교에도 총쏘기를 열심으로 가르치라고 명령을 한다. 그럼 그 어느 것이 진짜인가? 평화통일 하잔 것이 진짜인가 군사열을 올리잔 것이 진짜인가? 만일 군사열은 올리지만 통일은 평화로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고등학생까지 군사교육한 그 군대는 무엇에 쓰잔 말일까? 월남전 때 모양으로 또 어디 삯 싸움이라도 할 심산인가?
그 기괴한 현상을 놓고 판단을 해본다면 가장 그럴듯한 것이 이런 결론일 것이다. 즉, 남ㆍ북 두정권이 군사정권이니 만큼 그 군사적인 버릇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의 대세가 평화적인 경향으로 나가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둘이다 평화통일을 구호로 하면 갈 수 있는데까지 현상 유지로 나가자는 생각이라고.
큰 나라들이 될수록 충돌을 피하려하는 것은 사실이므로 우리 두 정권이 군사적 야심을 가지고 충돌하는I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은 당분간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ㆍ북의 대화가 진심이건 진심이 아니건 시작이 된 이상 어떻게서든지 서로 침략하지 말자는 약속에까지 이끄는 것은 노상 불가능 한 것이 아닐 것이다.
둘째 단계는 군비 축소다. 사실 한 민족이 제 뜻으로도 아니고 남의 세력에 끌려 이데올로기 쌈으로 대립이 돼가지고 이 악몽에 벗어나지 못하고 몇 십년을 간다는 것은 가만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조금 이성을 활동시키면 쓸데없는 군비경쟁으로 민족을 자멸의 길로 돌아 넣지 말고, 완전히는 몰라도 이 이상 더 군비경쟁은 하지 말자는 합의에는 이를 수가 있다.
마지막 단계는 아주 평화를 국시로 하는 단계다. 첫째 둘째 단계가 성공 된다면 이 마지막 단계는 쉽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불가능하다 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세 단계가 다 처음부터 중립 노선 이외에 살 길이 없다는 것을 길이 인식하지 않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중립 노선 밖에 살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결코I 못할 것 아닐 것이다.
내가 중립이라 하는데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사상적으로 하는 것이요. 하나는 정책적으로 하는 말이다. 사상적으로는 민주, 공산 두 주의 대결하는 태도를 버리고 그 둘의 대립을 지양한 보다 높은 자리를 찾자는 말이다. 이데올로기의 싸움은 어느 한 편이 다른 편을 내몰아서 될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사상의 진전이 오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싸 움의 의미는 보다 높은 사상을 찾아 둘의 대립이 자연 해소가 되는 자리에 가야만 된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이론으로 반드시 설명 못하더라도 신조로 그것을 믿는다. 그밖에 길이 없다. 역사는 이미 그 방향으로 들고 있다.
정책 면에서는 전쟁을 아주 내버리고 평화의 나라로 설 것을 선언 하자는 말이다. 이상 이론이라기 보다 사실이 그것을 요청하고 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군비 강화를 하면 누구와 전쟁을 하겠다는 말인가? 이기지 못할 것을 미리 알고 군비를 강화하고 전쟁 연습을 하는 그런 모순이 어디 있단 말인가? 주위의 네 나라가 우리에 비해서는 너무도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무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왕 무력으로 될 수 없는 것이라면 따라 가다가 힘이 부족해 마지못해 포기하는 것보다는 일찍부터 내편에서 자진해서 포기하고 나서자는 말이다. 그러면 정신적으로 주도권을 우리가 쥐어 역사의 방향을 한번 크게 돌릴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한 큰 모험이다. 나라의 운명을 걸고서야 해볼 수 있는 모험이다. 그러나 모험 인 점에서는 전쟁주의도 마찬가지다. 더한 모험이다. 폭력 경쟁은 인간을 의심하고 인간 속에 있는 악한 것을 상대하고 하는 것이지만 평화주의는 인간 속에 있는 선한 부분을 상대 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다가 예상대로 결과를 못 얻어도 멸망에 이르지는 않는다. 모험 이지만 이날까지의 일로 보아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 평화주의가 만일 실패한다면 인류의 끝이란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죽음이 두려워 그냥 있을 수만은 없다. 이러한 생각을 남과 북의 씨알들이 철저히 가져야 한다. 두 지배단체는 무력으로 된 것이니 만큼 최후까지 무력주의를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남ㆍ북의 전체 씨알의 힘에 의해서만 버리게 만들 수 있다. 사실 이밖에 우리 살 길은 없다. 만일 이렇게 순전한 우리 민중의 자각으로 되지 못하고 또 해방 때 모양으로 밖의 세력의 영향으로 통일의 기운이 올 때 양편의 무력 정권이 절대 양보 하려하지 않을 것이요, 그러면 6.25 때 보다 더 참혹한 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지금 있는 남ㆍ북의 기성세력 그 정부와 정당과 군대와 재벌들이 그대로 있는 한 평화통일은 절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평화로 통일이 아니 된다면 죽는 사람이 많을 터인데 그 죽는 사람이 누구겠나? 권력 계급은 죽기 위해 권력 싸움을 하지 않는다. 제가 살아남아 영화를 누리기 위해서지. 그러므로 죽을 것은 볼쌍한 서민뿐이다. 서민이 망해서는 아니된다. 나라도 역사도 문화도 이 서민이라는 씨알에 있다. 그러므로 절대로 씨알이 야심가들을 위해 개죽음을 해서는 아니된다. 이왕 죽을진대 앞에 오는 역사를 위해 죽어야지 역사의 반역자를 위해 희생이 돼서는 아니된다.
지금 가족찾기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참 좋은 기회다. 역사의 대세는 지배자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길을 터 놓고야 말 것이다. 그러면 씨알의 하나되는 대화가 오고 갈 것이요, 그러면 이데올로기나 그것을 내 세우고 민중을 속이는 지배체제가 문제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인 민족이 문제다 하는 큰 정신 운동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 큰 물결속에서 모든 낡은 시대의 찌꺼기가 없어져버리고 새 시대의 싹틈이 일어날 것이다. 이 의미에서 앞에 오는 통일은 하나의 혁명이어야 한다.
오직 혁명만
중립 노선은 곧 혁명 노선이다. 혁명이란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갈아치우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우리나라는 살 수 없다는 말이다.
눈 앞에 닥친 문제를 말한다면 세 가지가 있다 할 수 있다. 하나는 경제 문제요 하나는 남ㆍ북 분단문제요, 또 하나는 이웃 나라와의 외교 문제다, 이 셋이 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큰 문제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혁명 아니고는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문제의 근본은 우리 자신 속에 있단 말이다. 우리 자신은 문제 삼지 않고 수단으로 방법으로 지혜로 해결하려 해도 될 수 없단 말이다. 왜? 우리 자신 속에 병이 들었기 때문이다. 혁명이라면 프랑스혁명이나 러시아혁명이나 같이 폭력을 써서 사람을 죽이고 들부수고 전쟁을 하는 것으로 이날까지 알아 왔으나 이제 그것은 낡아 빠진 방법이요. 그것으로 세상이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우리 말하는 혁명은 바로 그런 식의 혁명을 혁명해 버리자는 일이다.
혁명의 첫 단계는 제도의 혁명이다. 우리는 다 지금있는 제도의 종이다. 이것은 세계적인 것이다. 지금 인간들이 하고 있는 정치 제도,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종교 교육의 모든 제 도가 인간의 자람을 방해하고 있다. 자본주의 밑에서 아무리 정직해도 그 정직은 정직이 아니요, 공산주의 밑에서 아무리 자유하려해도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제도 자체를 고쳐야 한다. 다음 단계는 사상의 혁명이다. 지금까지의 사고 방식이 우리의 닥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생각을 근본에서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도 세계적인 문제다.
그러나 정말 깊은 마지막이요, 또 처음인 혁명은 혼의 혁명이다. 혼이 뭔지 설명할 수 없으나 사람의 개인적 또는 단체적 육체적 또는 정신적 모든 살림이 저 엄청난 전체 생명, 미생물을 낳고 식물 동물을 낳고, 진화의 긴 과정을 낳은 그 생명과 어디서인지 직결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을 혼이라 넋이라, 영이라 얼이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그것이 얼마큼 씩씩하냐에 따라 모든 활동이 결정된다.
하수도가 제가 받아들인 구적물로 구멍이 메워버리 듯이 사람도 제가 살고 나는 찌꺼기로 제혼의 숨통이 막혀버린다. 그것이 모든 병 모든 약함 모든 죄의 뿌리다. 그러므로 때때로 그 구멍을 확 열어버릴 필요가 있다. 그것이 혁명이다. 부족사회에서는 축제로 그것을 했고 종교에서는 부흥 운동으로 했고 정치에서 말하면 보통 혁명이란 것이다. 그 방식도 여러 가지고 그 순수도도 제각기이나 그 찌꺼기에 잡힌 생명을 놔주어 한번 크게 산기운을 불어 일으키자는데서는 마찬가지다.
긴 말을 할 수 없으나 나는 우리 민족은 숨통이 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잘못이 거기서 나왔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수단 방법도 필요치 않은 것 아니라 우선 이 멘 숨통을 여 는 것이 가장 긴급한 일이라고 한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토론할 때는 매양 결론이 고양이 목에 방울에 이르고 만다. 이론이 옳지만 누가 하느냐가 문제다. 우리게 필요한 것이 백가 지 천가지지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산 숨이다. 제 손으로 죽을 제 제자의 명단을 만들어 사형 집행자에게 넘겨주는 일이 참아못할 일인줄 모를 교수야 누가 있을까? 마는 감히 자리를 박차고 목에 칼을 받을 각오를 하면서라도 “나는 그것은 아니한다” 하는 사람은 하나요 둘 뿐이다. 그 차이가 다른 데 있지 않고 그 혼 속에 숨이 통하나 아니 통하나에 있다. 숨은 곧 하늘 숨, 다른 말로 하면 전체 한삶(大生命)의 입김이다. 지구 중심에 길이 트여 화산이 폭발하면 천하 어느 기계로도 막을 수가 없듯이 한 삶의 숨의 내뿜는 것을 막을 정권도 군대도 없다.
나는 그 혁명을 우리가 하잔 말이다. 역사가 우리겐 그 길밖에 딴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본다. 우리가 한번 큰 혁명을 할 각오를 하고, 우리만 사는 것 아니라, 중국도 살리고 일본도 살리고 세계의 모든 인류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한번 완전한 중립노선으로 나갈 것을 선언할 때 나는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믿는다. 기적이 무슨 하늘에 서부터 내려 와서가 아니라, 중공도 핵무기를 두고도 못쓰고 일본도 재무장을 하고도 감히 한국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기적이다.
혹은 이북 정권이 있는 한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느냐 할는지 모르지만, 그러기 때문에 모험이다. 중립을 국책으로 세우려면 충실히 그것을 실행하고 이북에서 침입하는 경우에도 아무 무력의 대항이 없이 태연히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심하면 죽더라도 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정말 그런 평화적인 태도로 맞으면 나는 이북군이 아무리 흉악하더라도 절대로 그 흉악을 부리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첫째는 그들도 사람이요, 한국민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음으로써 그들을 사랑했을 때 총칼이나 이론 가지고는 못 움직였던 그들의 양심을 움직여 우리 속에 있는 것과 같은 한삶
의 숨을 마셔 인간 본래의 자세에 돌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세계가 아무리 타락했다 해도 그래도 정의는 살아 있다. 결코 우리를 죽도록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아마 중공이 가장 먼저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목숨을 희생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 이것도 저것도 다 실패되어 죽고만다 해도 우리의 옳은 것은 남는다. 인류가 아주 멸망한다면 몰라도 적어도 인류가 생존하는 한 우리의 거룩한 희생으로 반드시 인류 운명에 바 로 섬이 있을 것이다.
하나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말할 때마다 이 정권들을 나무래고, 지배자라, 압박자라, 욕하지만, 결코 그 사람을 미워하자는 것 아니다. 내 말로 인해 감정이 일어났거든 천백 번 사과한다. 나는 그 제도 그 자리를 미워할 따름이다. 그 자리를 내버리고 씨알로 용감히 돌아올 때 우리는 언제든지 얼싸안고 혁명의 큰 길로 행군해 나갈 것이다.
정예 분자 길음
어떤 혁명도 혼자서는 못한다. 전체가 일어서서만 된다. 저들의 강합은 날카로운 칼과 터지는 폭발력에 있지만 우리의 힘은 하나됨과 단단히 뭉침에 있다.
그러나 그 전체의 동전과 훈련은 정예분자 없이는 아니된다. 우리는 우리 평화 사랑의 정예부대를 길러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목적은 사람 죽이는 데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지하운 동 비밀결사운동이 필요치 않다. 우리는 청천백일 아래 들어내놓은 운동을 해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운동과 생활이 구별돼서는 아니된다. 생활을 통한 운동이요, 운동하는 생활이어야 한다. 정성이 단하나의 밑천이다. 잘 하면 우리를 따라오던 정보원이 우리 동지가 될 것이다.
사회에서 하다 아니되면 학교로 가고, 학교에서 하다 아니되면 교회로 가고, 교회에서 하다 아니되면 가정으로, 가정에서도 아니되면 다방, 캠프장으로 가서 저절로 되기를 바라지 말고 동지를 찾아내고 길러내야 한다. 악한 것들도 제 동지 하나를 찾아 바다와 육지로 헤매는데 선한 것을 위해서야 더구나도 할 것 아닌가.
중무장과 법률의 장벽과 정보망올 다 녹여버릴 수 있는 사랑의 방사선을 네 숨에서 발사해라! 이끗는 기도로 네 가슴을 앙축하면 거기서 생명의 핵분렬이 일어날 것이다.
씨알의소리 1971. 11월 6호
저작집30; 3- 171
전집20; 14-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