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이호정 지음 『하오팅캘리의 슬기로운 기록생활』
기록의 삶
일상 기록자, 프로 산책로, 캘리그라퍼, 사진 찍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 저자 이호정에 대한 소개가 흥미롭다. 현재 ‘하오팅캘리’로 활동 중이며 일상을 기록하고 수집하는 일을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시작하면서 왜 기록이라는 것을 하고, 또 꾸준히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먼저 떠올린다. 처음에는 늘 무언가를 주절주절 쓰고 있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록을 하는 그 순간의 멈춤 덕에 소중한 시간을 붙잡아 간직할 수 있고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저자에게 기록이란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기록자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아카이빙이다. “의미 없는 기록은 없다.”라고 말하는 저자는 성실한 일상 기록자이다.
저자는 기록 생활을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한 일로 여긴다. 계획한 대로 일을 끝내고 체크할 때 생기는 작은 성취감은 자신의 삶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존감의 원천이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왜 이렇게까지 기록을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든다. 저자 역시 한동안은 자신이 왜 기록에 진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좋아서 한 일이지만 결국 기록은 저자에게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었다. 주어진 하루의 가치를 알고 자신의 속도대로 열심히 살고 싶다는 저자의 인생 목표가 소박해 보이지만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내 시간은 결코 가볍지도 빠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내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포기하기 십상이다. 천천히 나를 기다릴 줄 아는 저자의 삶의 자세가 참 멋있다.
기록과 삶의 속도
저자는 기록의 가치나 의미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 시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삶에 구체적인 계획이나 기록이 없이는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기 쉽다. 특히 코로나19 덕분에 즐거운 휴식의 시간(?)을 갖게 된 나는 오히려 시간의 압박을 더 받는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하는 하루는 내게 어떠한 기회도 주지 않고 도망가듯이 흘러간다. 그렇게 보낸 하루의 끝은 늘 후회만 남을 뿐이었다. 저자도 그런 삶을 경계한다. 계획 없는 하루가 자신을 느슨하게 만들고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삶은 주도적으로 살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시간에 대한 현명함이 결국에는 내가 꿈꾸는 삶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24시간 안에 무엇을 어떻게 배치하고 실천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에서 기록이 하는 역할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기록의 또 한 가지 역할은 아이디어를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작자에게 창의력은 중요하다. 창작자는 독특한 나만의 색을 지니고 싶어 한다. 내가 잘하고 개성을 드러낼 수 있으며 나다운 것을 찾는다. 그래서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을 기록하는 일은 중요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모두 창작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누군가가 만든 틀 안에서 몰개성의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뿐 일 테다. 내게 주어진 환경을 모조리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나를 찾아가는 노력과 연습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저자는 틈새의 기록들이 일상에 활력을 준다고 말한다.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안 좋은 생각과 스트레스는 기록을 통해 꺼내어 놓음으로써 내면의 건강도 지킬 수 있다. 또한 지속적인 기록을 통해 긍정의 결과를 얻으려면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쓸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록의 의미
“내가 쓰면 장르가 된다.”라고 말하는 저자에게 쓰기란 마냥 즐거운 일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저자도 한때는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되는 엄격한 자기검열 때문에 고민한 시간이 있었다. 내 기록 방식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그게 맞는 건지 잘 쓰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와 같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다 보니 기록의 방향을 잃은 채 그저 좋은 것을 ‘잘’ 써야 한다는 기분에 사로잡힐 수 있다. 답은 언제나 자신에게 있다. 모든 포커스를 나에게 맞추고 그저 쓰고 싶은 것을 적고 남기고 싶은 것을 남기면 된다. 기록하는 시간도 그렇게 남은 결과물도 다른 누구도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나만의 데이터베이스가 되어 삶의 밑거름과 자양분이 된다.
저자는 기록을 한마디로 어떻게 정의할까? 저자에게 기록은 누군가의 딸이자 친구, 작가, 선생님이 아닌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시간이자 존재다. 내 생각을 기록하고 쓸 때는 완벽함에 무뎌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때론 엉성한 것이 더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제대로’와 ‘잘’에 매달리면 어느 순간 어렵고 지겨운 일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왜 쓰려고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진지하게 답해볼 수 있었다. 나는 나를 다듬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것이 쓰기로 연결되었다. 에지 있게 나를 다듬는 일에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일상의 말기록을 통해 평소에 괜찮은 단어와 좋은 문장들이 차곡차곡 쌓인다면 나만의 데이터로서 지적재산을 만들 수도 있다. 기록에 관해 다양한 생각과 노하우를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소개한다. 또 하나의 새로운 시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책 익는 마을 유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