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안 친구였던 김태길 전 서울대 교수의 9주기를 보냈다. 신록이 우거진 초여름이었다. 그때가 잠재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었던 때문일까. 며칠 전에는 김 교수가 꿈에 나타났다. 벌써 두 번째다.
내가 어디론가 멀리 갔다가 서울 집으로 오고 있었다. 녹음이 우거진 길가여서 발걸음을 멈추고 왼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김 교수가 누군가와 정구를 치고 있었다. 살아 있을 때는 언제나 자기 정구 실력을 자랑했고 나는 속으로 웃곤 했다. 함께 정구를 치던 제자가 "교수님이 받아치기 좋도록 공을 보내주곤 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꿈속의 김 교수는 달랐다. 젊은 선수같이 뛰고 있었다.
내가 감탄스러운 자세로 보고 있는데 눈치를 챈 모양이다. 라켓을 든 채로 내가 서 있는 길 위쪽으로 다가서면서 '내 실력을 봤지?' 하는 식으로 환하게 웃었다. 내가 '그래! 놀랐어. 실력 인정해 줄게. 그런데 왜 가까이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했지?'라면서 반가워했다. 그런데 말은 하지 않고 어서 가보라는 듯이 운동장으로 다시 내려갔다. 마치 '나 바빠서 더 얘기할 시간이 없어'라는 표정이었다. 밝게 웃고 있었다. 꿈에서도 생각했다. '보란 듯이 자기 자랑뿐이군' 하고.
김 교수는 나보다 머리가 좋은 편이다.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기 싸움을 한다. 주제는 두 가지다. 자기가 나보다 미남자라는 것과 나보다 생일이 늦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자기가 형님이라는 변명이다.
한번은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였다. 우리들보다 약간 늦게 도착한 그가 내 맞은쪽에 앉으면서 "김형석 교수 넥타이가 양복에 잘 어울린다. 백화점에서 고르는 것을 보고 어떨까 싶어 걱정했는데…"라면서 시치미를 뗐다. 내 옆에 앉았던 서영훈 적십자사 총재가 "두 분 사이가 각별한 줄은 아는데 넥타이까지 골라 사주는 사이세요?"라고 물었다. 김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떡하겠어요. 형님이 동생을 살펴주어야지요.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지만, 어려서부터 정이 있어서" 하면서 말꼬리를 다른 데로 돌린다. 마치 '오늘은 내가 이겼지?'라는 식이다.
김 교수는 자기가 나보다 못생겼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르겠다. 키가 크니까 열등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만나기만 하면 자기가 미남자라고 자랑한다. 40대부터 80 중반까지 봤는데 평생 소원이 자기가 미남자라는 사실을 내가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대구의 KBS 방송국에 함께 갔을 때였다. 김 교수의 대학 때 제자였던 여자 아나운서가 "선생님, 여전히 옛날같이 멋지시네요" 하자 내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알았지! 나 이 정도야'라는 듯이 좋아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조반을 끝내고 커피를 마시면서 '저세상에서 다시 만나도 기 싸움을 하면서 웃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했다.
첫댓글 안병욱, 김태길교수와 김형석 박사 세 분이 절친한 친구이면서 우리나라의 3대 철학자라고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