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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23주일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같이 하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5:28-30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그리스도는 교회를 사랑하신다.
그가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교회가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제공하고 계신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또, 교회를 대하시는 그의 따뜻하고, 돌봐주시는 자세로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가 교회를 어떤 관계로 여기시는지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특별한 관계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진리일 뿐 아니라, 오늘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야 옳은지 알려준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그리스도인 부부들이 가져야 할 이상적인 모델이다.
그럼에도 현대사회에서는 많은 부부들이 그 모델을 따르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는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이상을 변형시키고, 그것을 따라간다.
현 시대의 정서의 영향을 받아, 결혼관은 재해석되어 가고 있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 부부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
원래 하나님께서 뜻하신 결혼관은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실에 맞추어 진화되어가는 결혼은 오늘의 목적을 당장 이룰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부부의 결혼관계가 조화롭게 잘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저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한 결혼으로 자꾸 따라간다.
그러면, 창조시에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결혼을 통해 이루려는 목적은 이룰 수 없게 된다.
현대의 결혼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가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베푸시는 일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대단히 아쉬운 일이다.
주님은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 교회와 주님과의 관계,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를 비유하면서, 마땅히 가져야할 부부관계를 말씀하신다.
부족한데도,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우리 생이 지나기 전에 이해하고 순종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몸을 아끼고 돌본다]
누구든지 자신의 몸을 아끼는 것은 특별히 하나님이 주신 말씀도 아니고, 누구든지 자동적으로 자기 몸을 위하고 있다.
이를테면, 누구든지 자신을 예쁘게 보이고 싶어한다. 그래서 화장도 하고, 머리도 빗질하고, 아름답게 단장한다.
하지만, 원래 생긴 것보다 더 좋게 보이기는 쉽지 않아서, 옷도 잘 입고 싶어한다.
키가 작다면, 키를 더 크게 하기 위해, 굽이 높은 신발을 신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먹는 문제도 몸에 관한 것이므로 신중하게 한다.
요즘은 콜라겐이라고 하면, 여성들 눈이 돌아간다.
닭가슴살 맛이 없어도, 잘 먹는다.
똑같은 닭인데도, 튀긴 닭은 조심하려고 한다.
게다가 소금 많이 들어가도 먹지 않고, 설탕이 많이 들어가도 먹지 않는다.
그리고, 많이 먹으면 좋지 않기 때문에, 밥도 두어 숟가락만 뜨고 만다.
어제 많이 먹었다고, 오늘 아예 먹지 않기도 한다.
이와같이 자기 몸을 생각하는 것은 시키지 않아도 잘한다.
모든 위험요소에 대해 경계심이 발동한다. 몸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다.
또,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하면, 약을 먹거나 쉬거나 한다.
몸이 불편하면, 몸이 사인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내 의지가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것이다. 몸이 보내는 것이지만, 무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또, 당장 아니더라도, 미래를 위해 운동을 하면서, 노화를 늦추려고 노력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자기 몸에 대해서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몸이 좋으면, 내 마음도 즐겁다.
이처럼 사람의 몸은 자기와 분리된 독립된 개체가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과 거의 다름 없다.
[양육하는 것, 보호하는 것]
본문의 말씀에 양육, 보호, 보양이라는 단어가 있다.
양육은 무엇이 성장하도록 기르는 것이다.
보호는 위험에서 막는 의미가 아니라, 원래 따뜻하게 해준다는 말이다. 사랑스럽게 돌보는 것을 말한다.
보양은 원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양육과 보호를 합친 우리나라식 번역이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보양하심]
주님은 절대 교회를 미워하지 않으신다.
헬라, 유대식 표현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미워하는 것이다. 중간은 없다.
주님은 교회를 사랑하신다는 말이다.
주님은 교회를 지원하고 계시고, 교회에 속한 자들이 잘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사랑을 쏟으신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원래 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죄인들이다.
어떤 영적 자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안녕을 보호한다든지 자기 생존도 도모할 수 없는 자들이다.
또, 미래의 행복, 미래를 준비할 능력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성질을 많이 갖고 있다.
자기를 망하게 할 성질을 많이 갖고 있다. 인간은 의가 너무 부족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신자들에게 그의 의를 부어서 채워주시려고 하신다.
신자들은 온전케 되기 상당히 힘들고, 진짜 온전케 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주님이 그 부족함을 계속 채우고 계신다.
그렇다면, 이것은 현재 진행적인 현상이다.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주님은 신자들이 의롭게 행하며 살도록 깨우쳐 주시고, 능력도 주신다.
롬6:17-18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그들이 하늘로 들어갈 수 있게 하려함이다.
하늘은 아무나 갈 수 없다. 오직 의로운 자만 들어간다.
그러면 인간은 절대 갈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들어갈 수 있다. 주께서 의로 덮어주시기 때문이다.
은혜 받기 합당한 자가 들어가는 것이다. 나머지는 주께서 채워주시는 것이다.
이 사람의 자세는 그 은혜를 주시는 것에 대해, 합당하게 행하는 자세다.
다른 말로 하면, 순종하는 자다.
그래서, 이 땅에서 죄에서 해방되어, 의를 위해 사는 자로 천국에 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인간이 멸망하기 쉬운 점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이 성질이 매 스텝마다 죄를 범하게 만들고, 벗어날 수 없는 악의 축으로 계속 굴레를 돌게 된다.
사단이 그렇게 사람을 가두어 놓고 있다.
사단은 거짓말 조금 집어넣고, 욕심만 넣으면 된다.
주님은 그것을 절대 모르시지 않는다. 주께서 꺼낸 자들은 사단을 능히 대항할 수 있다.
주님은 악한 행실에 자신을 내어놓지 않도록 우리를 가르치신다.
우리가 악에 오염되고, 침투하려고 할 때, 빨리 움직이도록 경고하신다.
경고를 받지 않으면 사단의 계략에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매번 경고를 받는다.
가만히 삶을 두고 보면 안된다. 주님도 그냥 보고 계시지만 않는다.
그날까지 그들을 지키고, 힘을 주어 움직이도록 하신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관여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하신다.
그는 우리에게 위기가 올 때마다 반사적으로 우리를 도우시려고 한다.
이미 우리는 많이 주님의 말씀으로 훈련받았다.
주님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거룩함을 확보해주려고 애를 쓰시는데, 위험이 올 때마다 막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주어 깨우쳐서, 우리가 원수를 거절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죄에서 해방된 자, 죄를 끊은 자가 되는 것이다.
증명해야 할 대목이다.
다른말로 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지식을 주어, 우리로 하여금 움직여서, 주꼐서 제시한 길을 달려가게 하신다.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것은 영의 양식이다.
우리가 영의 양식을 계속 취하고 있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일주일간 말씀을 주시면, 다음 말씀을 주실 때까지 버텨가는 것이다.
식사하고, 배가 부른 상태로 계속 되지 않는다.
얼마 있으면 다시 배가 고파져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말씀도 마찬가지다.
요4:32-34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주님께도 이것은 필요한 양식이었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내게 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또, 그를 따르는 군중에게도,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셨다.
이 양식은 그분이 주시는 것이다.
오늘 주시는 말씀도 주님께서 승인해서 오는 것이다.
요6:53-55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목사가 선포해도 주님의 말씀이다.
바로 인자는 하나님이 인치신 자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의 종도 주께서 원하셔서 말씀을 하게 하신다.
2천년이 지난 오늘도 그 때와 하나도 다름없이 주의 육성을 들은 자들에게 똑같이 역사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하찮게 여겨서 문제다.
주님은 우리의 사적인 삶 속에서도 역사하신다.
어떤 사람은 매일 주님의 손길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몇달에 한번 느끼는 사람도 있다.
여기 주님이 함께 계셨구나.
주께서 도우셔서, 여기 있는 것이다.
영 뿐 아니라, 육도 도우시고 계신다.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나간 일도 많다.
주께서 나를 통해 작지만,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데, 그것을 위해 나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마귀가 살짝 들어와 거짓말을 할 때, 우리에게 이미 주신 말씀이 그것을 저항하게 한다.
양심이 살짝 찔린다. 이것은 경고다. 빨리 반응해야 한다.
우리는 몸이 사인을 줄 때, 무시하지 않는다. 신속히 반응한다.
우리는 매일 돌이킬 일들이 많다. 인생은 계속 회개하는 것이다.
주님도 이렇게 애쓰시는데, 나도 반응해야 한다.
그래서, 그 원인을 찾아내 원인을 제거한다. 우리 영혼도 달래주어야 한다.
우리 일상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
신자의 영적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내가 일하는 것이 세상에 너무 집중되어 있어서, 영적 환경이 나빠도 안된다.
우리 환경은 말씀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찬양도 시원하게 해야 하고, 기도하면서, 계속 하나님과 교통이 있어야 한다.
또 섬김이 있어야 한다. 섬기므로 진짜 주님을 사랑하게 된다.
나도 일주일에 한번 봉사한다. 그래서 할일 다 했다고 하면 안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삶도 바쁜데, 많이 섬긴다. 일주일 내내 머릿속에는 교회가 들어있다.
이 사람들은 충실한 일꾼들이다.
사회에서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님께는 귀한 칭찬받을 자들이다.
그렇게 하므로, 본인이 거룩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할 뿐이다.
원래 내가 살던 삶에 플러스 신앙의 삶이 더해진 것이 아니다.
자기 영생의 문제가 우선적이다.
원래 내 삶은 부차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신자가 된 이후에도 옛삶을 그대로 갖는다. 그러나 완전히 바뀐 것이다.
이제는 주의 나라를 위한 자이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다.
벧전4: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의미가 달라졌다.
원래 있던 내 직업, 삶, 이것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육체의 남은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써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직장 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먼저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내 영생에 대한 시각을 분명히 갖고, 회개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모든 인간이 다 불의하다.
그러나, 이제는 의를 행하는 자로서,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다 바뀌어야 한다.
고후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변화받은 사람은 달라야 한다. 다를 수 밖에 없다.
태도, 얼굴색, 말한마디가 다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사람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자기 속의 생명이 소중한지 모른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롬6:6,9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우리에게 의가 주어졌으면, 의를 제공받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의를 받았으면, 의가 역동해야 한다.
나는 사단의 종이었는데, 이제는 사단을 물리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그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내 인생은 주님께 보여드릴 아름다운 시험대다.
주께서 의를 주실 때 내 반응을 보여드릴 기회다.
은혜 베푸신 것에 대해서, 그가 실망하지 않도록.
그래야 내 속사람이 행복하다. 속사람이 행복해야 진짜 행복하다.
속사람이 행복하면, 세상환경에 쓰러지지 않는다.
용솟음치는 소망과 자신감이 가득하다. 거친 풍파가 와도 눈물을 한두방울 흘릴 뿐, 절망하지 않는다.
주님은 우리를 이렇게 위로하신다.
세상의 위로는 중요시하면서, 주님의 위로는 무시하면 안된다.
세상은 거짓말이 많다. 좋게 말해도 거짓말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생명을 보장하고, 자기 명예를 건 능력으로 도우신다.
히6:17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그 나라로 들어가는데, 실패하지 않도록 애를 쓰고 도우신다.
그리고, 두말을 하지 않으신다.
즉 말을 바꾸시지 않는다.
[우리는 주의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 제공하신다.
교회는 주의 몸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께서 우리 각사람도 양육하시고, 보호하신다.
우리는 그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잘 알아야 한다.
주께서는 항상 개인을 돌아보시기보다는 먼저 교회가 잘되는 일에 집중하신다.
우리가 육신에 있는 동안은 교회가 성공하는 일에 참여하여, 주께서 허락하신 의로 쓰여져야 한다.
이것이 거룩한 병기로 일하는 것이다.
함께 주의 거룩한 일을 이루는데, 주의 지체로서 하는 것이다.
주의 몸이라면 거룩하고, 의로울 것이다. 정말 순종의 자세로 할 것이다.
각 지체가 하는 것이다.
몸이 승리해야 나도 승리하고, 하늘의 영광이 가득해야 나도 영광이 가득한 것이다.
교회가 쓰러졌는데, 나는 상관없다고 하면, 주의 나라를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이다.
주의 나라에 결국 못들어가는 자들은 결국 자기만 생각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이 전부 자기만 생각하니까, 주께서 자기만 보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완전 지옥 자식들인데,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우리 각자 모두가 은혜 받았다.
은혜 받은 이후에는 이들이 서로 주의 몸을 이루어, 역할을 해야 한다.
모든 개인들이 축복받는 것은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를 이루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우주적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개인이 축복받는 것은 몸이 행할 일에 마땅히 쓰여졌기 때문이다.
주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다 제공하신다.
만약 그가 제공하지 않으신다면, 그가 자기 몸을 돕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럴리가 없다.
교회의 삶은 이제는 주님의 삶이다.
인자는 올라가셨지만, 여기는 현대적인 주의 성육신이다.
고전6: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주의 성육신이 우주적으로 중요했던 것처럼, 교회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주의 이름이 살아있는 동안, 교회도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그가 죽으면 우리도 죽고, 그가 살면 우리도 산다.
그와 우리는 한 영이다. 내가 사는 삶도 내 욕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사는 것이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가 원하시는 일에 나를 부르실 때, 순종하는 것이다.
[자기 몸을 위하는 것과 똑같아]
아내를 양육하는 것은 아내의 필요를 돕는 것이며, 아내의 발전을 돕는 것이다.
아내를 보호하는 것도 아내를 대하는 자세를 말한다.
아내가 평안을 느끼게 하고, 아내의 안전을 위해 도와야 한다.
이것은 남편들의 자세인데, 정확하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향해 대하는 자세다.
그래서, 남편은 실질적으로 아내의 삶도 도와야 하고, 애정어린 돌봄을 계속 해야 한다.
아내의 행복을 위해 하지만, 사실 자신의 몸을 위해 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자기 몸이 잘될 때, 기쁜 것처럼 똑같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
남편이 아내의 필요를 맞출 때, 자기가 행복할 것이다.
아내가 남편이 자신을 잘 돌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위로, 안심, 평안이 깃들게 될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평안을 갖는 것과 똑같다.
교회는 주님으로 인해, 평안을 갖는다.
[신뢰, 위로, 평안]
신뢰, 위로, 평안을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는다.
시23: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그가 다 제공하시니까, 내게 부족함이 없다.
그가 내 개인을 따로 불러 돌보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돌보신다.
우리 다 위로받고 있다.
주님으로부터 위로받고, 평안하신 분은 아멘하라.
만약 남편이 아내를 밥해주는 여자, 집안일 해주는 여자로 보고 있으면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삶은 굉장히 불안할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힘들 것이다.
그러지 말고, 아내는 돌봄을 받아야 하고, 소중히 여김을 받아야 하고, 귀하게 여길 하나님이 주신 보물이다.
엡5:28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는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오늘은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본문의 문구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지말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대로 해야한다.
본문의 구절에 대해 여성비하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가 감히 나를 양육해?
본문은 그런 식으로 보면 안된다.
본문은 머리가 몸을 자기 소유로 삼고, 잘 대해주는 차원이 아니다.
5장끝까지 육체, 몸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육체는 살덩이를 말하고, 몸은 내 전체, 소마를 말하는 느낌이다. 전인적인 나를 말한다.
엡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28절에는 네 몸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고, 33절에는 자기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몸은 자기 소유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성경은 사실 현대 여성인권주의자들보다 여성을 더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엡5:23,30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주님은 교회를 자신같이 보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모든 신자들은 그의 지체다.
우리는 단지 그의 소유가 아니라, 교회는 주님의 정체성이다.
또 우리들은 그 몸의 지체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시키고, 연합시키므로,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주셨다.
교회와 주님의 관계는 아무도 이간할 수 없고, 꺨 수 없다.
우리는 많은 시간동안 이간으로 상처받아왔다.
누구도 주님의 것을 이간할 수 없다.
누구도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간하면 안된다. 누구도 주님의 것을 뺴앗을 수 없다.
우리는 주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다.
오늘날 남편도 이 모델을 따라 행하는 것이 옳다.
주께서 새롭게 주신 삶을 사는 것에 합당한 모습이다.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들이다.
다 참여하라는 것이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가정에서도 그리하라.
주께서 우리를 얼마큼 돌보시고, 양육하시는 것을 이해하고, 주의 몸을 이루기에 합당한 성도들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