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한순간에,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고 홀로 남겨진
열한 살 소년이 있었습니다.
세계 최대 모자 기업인 '영안모자'를 일군,
백성학 회장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
전쟁 직후 서울 거리는 생지옥과 같았습니다.
당장 오늘 밤 누울 자리도,
먹을 밥 한 숟가락도 없던 소년은 남대문시장과
청계천 거리를 떠돌며 구두닦이 통을 메고,
신문을 팔고, 온갖 궂은일을 하며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겨울이면 얼어붙은 발을 녹일 양말 한 켤레가 없어,
헌 신문지를 발에 칭칭 감고 청계천 다리 밑
가마니 속에서 추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는 아무런 미래도,
기댈 구석도 없는 '가장 비천한 고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소년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절대적인,
밑천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기도"였습니다.
소년은 아무리 배를 곯고 몸이 찢어질 듯 피곤해도,
주일이 되면 구두닦이 통을 내려놓고
교회 문을 열었습니다.
신문지를 감았던 손과 발을 찬물에 씻고,
가장 단정한 마음으로 예배당 맨 뒤 구석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부모 없는 설움과 세상의 멸시가 밀려올 때마다
소년은 하나님을 진짜 아버지라 부르며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부모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고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제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면
저는 결코 망하지 않을 줄 믿습니다.
오늘 저에게 정직하게 땀 흘릴 힘을 주십시오."
이후 그는 청계천의 한 작은 모자점의,
심부름 점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남들은 잔심부름이라고 대충 넘길 일이었지만,
소년은 주인이 보든 보지 않든 매일두 시간 먼저
출근해 가게 바닥을 윤이 나도록 닦고
모자 먼지를 털어냈습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라는 말씀처럼,
사람을 보고 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일하듯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성실의 땀방울과
기도의 씨앗을 심었던 것입니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
그는 미군 부대 천막 천과 자투리 천을 모아,
청계천에 작은 모자 가게를 직접 열었습니다.
그 작은 가게가 바로 훗날
전 세계 모자 10개 중 4개를 만들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글로벌 기업 '영안모자'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훗날 백성학 회장은 성공한 뒤,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코스타리카, 스리랑카,
에티오피아 등 전 세계 가난한 나라에
수십 개의 학교와 병원을 지어 기증했습니다.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담담하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청계천 다리 밑에서 얼어 죽을 뻔했던,
고아였던 저를 살려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제게 주신 성공과 물질은 제 것이 아닙니다.
그때 저처럼 울고 있을 이 땅의 고아와
가난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라고
하나님이 맡기신 것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혹시 '내 처지가 너무 초라해서',
'가진 밑천이 없어서', '배경이 없어서'
낙심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세상은 우리의 배경과 학벌,
통장 잔고를 보고 미래를 점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낮고 비천한 자리에서
어떤 기도의 씨앗을 심고 있는가를 보십니다.
청계천 다리 밑 차가운 바닥에서도,
주일 성수를 타협하지 않고 눈물로 엎드렸던
그 열한 살 고아 소년의 예배를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환경 탓을 멈추고 오늘 내가 머문 자리에서,
정직과 감사의 기도를 심으십시오.
가장 메마른 흙에서도 기도의 씨앗은
반드시 싹을 틔우며, 하나님께서는 진실하게
무릎 꿇는 자를 결코 비천한 자리에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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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예화: 청계천 뚝방길의 전쟁 고아가 품은 기도의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