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리미티드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임상춘 극본 김원석 연출)는 지난 7일 1~4부가 올라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어 14일 5~8부 공개를 손꼽아 기다린 이들이 적지 않다. 시리즈 제목은 제주 사투리로 '엄청 고생했다'는 뜻인데 '깜박 속았다'라거나 '아이구나 놀랍네' 등의 뜻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1~4부를 보면 느낄 수 있지만, 달콤한 줄로만 알았던 인생을 살아보니 떫은 맛을 느낀다는 이 시리즈의 메시지를 함축한 제목으로 다가온다.
이 제목을 영어 자막은 어떻게 옮겼을까 궁금했다. 'When the life gives you tangerines'이다. 영어 자막을 옮긴 이는 어떤 배경을 갖고 이런 제목을 달았을지가 또 궁금해졌다.
이 표현은 1915년 작가 엘버트 허버드가 왜소증 배우 마샬 핀크니 와일더의 부음 기사 가운데 와일더가 장애를 극복하고 낙천적인 태도로 살아간 것을 칭찬하며 "그는 운명이 보낸 레몬들을 집어들어 레모네이드 가판대를 시작했다”(He picked up the lemons that Fate had sent him and started a lemonade-stand)"고 쓴 것에서 유래했다. 미국 최초의 자기계발 저자로 여겨지는 데일 카네기가 1948년 책 'How to Stop Worrying and Start Living'에
'If the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로 간명하게 옮겨 더욱 널리 알려졌다.
여기에 제주 특산품 감귤을 대입했다니 자막 번역자의 재치가 대단하다. 참고로 카네기는 저유명한 철강왕 카네기 가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본명이 Carnagey인데 철강왕 가문의 후광을 업으려고 Carnegie로 바꿨다니 대단하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욕을 한 바가지 먹을 듯한데 그보다는 '카네기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본 사례다. 워런 버핏이 그의 강의를 수강하고 용기 백배, 수강한 강좌 중 최고였다고 치켜세웠단다.
시리즈 1~4부를 보며 제주 방언의 아름다움을 영어 자막이 어떻게 옮겼을까 궁금했는데 1부의 30분 분량을 다시 돌려보니 그냥 표준어를 옮기는 데 그쳐 있었다. 그럼 그렇지 싶으면서도 상당히 잘 옮겨진 영어 자막이다 싶었다.
김원석 감독은 이 메시지를 한마디로 녹여냈다. "시대가 또 하나의 빌런이 되는 작품"이라고 했다.
모든 것이 중의적이다. 자신의 결점을 가리기 위해 요망짐을 선택한 여주인공 오애순(아이유와 문소리)와 순애보 속에 무쇠 같은 단단함을 감춘 양관식(박보검과 박해준)처럼 말이다. 제목처럼 삶이 속인 건지, 우리가 삶을 속인 건지도 헷갈린다.
생선처럼 퍼뜩대며 냄새가 풀풀 나는 삶의 드라마, 작가의 전작 '동백꽃 필 무렵'처럼 말이다. 임 작가는 "성별도 나이도 알지 못하는 작가"이고 싶다는 기혼 여성 작가로 알려져 있다. '쌈 마이웨이'(2017), '동백꽃 필 무렵'(2019)에 이어 이 작품까지 3연속 히트작 대박 조짐을 굳히고 있다.
아래는 미국 시사 주간 타임의 8일(현지시간) 기사 중 뒷부분이다. 앞 부분은 주인공 아이유의 연기 경력을 정리한 것이라 생략한다. 이 드라마를 관람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한다. 다만 이 프리뷰는 시리즈를 전혀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이 작품에서 아이유는 '나의 아저씨'를 연출한 김원석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김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일한 뒤 아이유의 연기가 어떻게 변했다고 느끼는지 묻자 “(나의 아저씨는) 그녀의 대단한 재능을 세계에 펼쳐 보일 기회를 우리에게 줬지만, 그녀는 이미 준비된 여배우였다. 이미 재능 있고, 이미 구체성이 살아 있고 뉘앙스도 있었다"고 답했다.
이 작품은 아이유에게 한 캐릭터를 인생의 여러 시점에 걸쳐 표현하며 같은 캐릭터를 맡은 다른 배우와 일해야 하는 독특한 기회를 선사한다. 우리는 맨먼저 1960년대 한국의 가장 큰 섬인 제주도에서 애순을 만난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심히 물질을 하는 해녀의 어린 딸로 애순은 엄마의 억척스러움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급장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받고도 부급장으로 밀릴 정도로 "물심양면이 부족한" 애순은 시인이 돼 돈을 많이 벌어 엄마에게 좋은 것들을 사주겠다는 꿈을 꾼다.
아역 배우가 표현한 것을 이어 아이유는 애순 캐릭터의 10대 후반과 20대를 표현한 뒤 문소리(바람난 가족, A Good Lawyer’s Wife)의 능수능란한 손에 애순의 40대와 50대를 넘긴다. 각기 다른 애순 인생의 단계를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아이유는 “감독님, 작가님과 많은 토론을 통해 해내갔다”고 말했다. 아이유와 문소리는 비슷한 말버릇을 체화하기 위해 상대의 대사를 해보곤 했다. “부모를 모두 잃고 이 세상에 나홀로 남겨진 느낌을 갖는 누군가처럼, 그녀의 많은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것을 여러분은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손쉽게 분노하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다. 그녀는 매우 괴팍한 것처럼 느껴지며, 이 모든 일은 그녀가 다른 이에게 약한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이유를 살려주는 것이 박보검(응답하라 1988, Reply 1988)인데 애순을 지극히 사랑하는 양관식의 10대와 20대를 연기하고, 김원석 감독의 '미생'에 출연했던 박해준이 40대와 50대의 양관식을 연기한다. 아이유와 박보검은 10대 시절 농심 라면 광고를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찍으며 익히 알던 사이다. 아이유는 “촬영 첫날부터 너무 편했다“면서 "함께 촬영한 뒤이 드라마 시리즈에서 일 년 가량 함께 일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미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보검은 진짜 대단한 사람이란 것이었다”고 말했다.
아이유는 박보검과 나란히 서른한 살(미국 나이로, 실제로 둘은 1993년생)로 자신들의 나이에서 10년 이상을 빼 10대 시절을 연기하는, 독특한 작업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여러분이 캐릭터들을 만날 때 10대로서 진짜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면을 가져가고 싶었으며, 동시에 억지로 만들어내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면서 “그래서 우리는 유기적이며 아주 사랑할 만한 에너지를 끌어대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했다. 우리는 아주 많은 각기 다른 토론들을 통해 해나갔으며, 촬영하는 동안 많이 다른 버전의 테이크들을 많이 만들었다."
임창욱(타임은 Lim Chang-wook이라고 표기했는데 임상춘의 잘못으로 보인다. 과연 실수였는지, 은연 중에 작가의 본명을 드러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작가의 각본을 “서로 돕고 서로 성장하는 연대에 대한 얘기"라고 정리한 아이유에게 연기는 솔로 음악 활동이 해낼 수 없는 방식으로 팀의 일원이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다. “연기할 때는 앙상블이죠. 맞죠?”라고 되물은 아이유는 “그건 집단의 노력이며 내가 잘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전체 케미스트리이며 함께 하는 일에 대한 것이다. 해서 소속돼 있다는 강한 느낌을 내게 주고, 어떤 의미로는 역시 훨씬 큰 보상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K드라마들은 커뮤니티와 연결에 초점을 맞춘 장르이고 앙상블을 내세우는 반면, 이 시리즈의 야망 넘치는 시야는 카메라 앞에서나 뒤에서나 특별히 인상적인 팀을 자랑한다. (K드라마 사상 가장 비싼 드라마란 소문이 돌았다) 제작비 예산이 600억원이란 보도가 몇몇 시청자에겐 놀랍게 다가올지 모르는데 그렇게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면 액션, 판타지, 공상과학(SF) 장르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일상에서 드라마를 찾아내는 인생 토막(slice-of-life) 스토리다. 이 시리즈는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그들 인생의 4계절에 걸쳐 캐릭터들을 따라간다. 4주 동안 매주 4편씩 한한 주에 4편씩 4주 동안 매주 금요일 삶의 잔인함에 맞서 사랑하고 슬퍼하며 꿈꾸고 기쁨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모든 세대를 빨아들일 수 있는 드라마로 2023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거의 일 년에 걸쳐 촬영했다.
김석원 감독의 말이다. “한 시리즈에 많은 세대들의 여정을 잡아내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들었다. 역시 아주 희귀한 일이기도 하다. 함께 뭉치게 하는 일이 도전적이었기 때문에 드물다고 생각한다. 큰 예산이 필요했다. 재능있는 스태프와 팀원들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위해 김 감독은 박찬욱의 '아가씨'와 봉준호의 '기생충'을 비롯해 한국의 걸작 영화들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류성희를 선택했다. 김 감독은 최윤만 촬영감독을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고 “미술부의 많은 재능있는 직원들이 모든 디테일을 꼼꼼이 살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감독의 말이다. “이 시리즈는 우리 부모 세대에게 바치는 헌사이며, 눈앞의 세계에 길을 찾는 아들딸들을 격려하는 노래다. 우리는 이 이야기가 세대간, 젠더간 보이지 않는 장벽을 부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다. 우리는 그저 그런 일에, 아주 조금이라도 그 일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
아이유는 시간 여행자와 초능력자 최고경영자(CEO)도 연기했다. 그녀는 수천명을 수용할 수 있게 지어진 스타디움 무대에서 혼자 노래하곤 했다. 그러나 대중의 눈앞에 선 지 15년 뒤,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연관된 역할을 찾고 있었음을 알아채고 있다. 더 어렸을 때는 그녀는 더 환상적이며 다른 장르와 연결된 역할을 추구했다.
마지막 그녀의 말이다. “난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여러분이 실제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스토리들에 이끌렸다. 서른을 넘기고서야, 난 아주 자연스럽고 근거를 둔 스토리들과 캐릭터들, 말하자면 인간적인 측면에 좀더 이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