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정사의 시체 태우는 막대기
이 교단의 막중한 책임을 지는 비구의 생애에 이르러서도 마음이 고요하게 머물지 못하는 비구들
을 부처님께서 시체를 태울 때 사용하는 부지깽이로 비유하셨다.
“비구들이여!
살아가는 것 가운데 사발을 손에 들고 얻어먹는 것이 가장 낮은 일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그
러니 너는 바가지를 들고 남의 문전에서 얻어먹는 일이나 하라.’고 저주를 한다. 그 정도로 저속하고
낮게 살아가는 것을 선한 남자들이 이익이 되는 결과를 바라서 가장 높은 위치에 둔다.“
“그들이 발우에 손을 들고 빌어서 살아가는 것은 왕의 위협 때문도 아니요, 강도의 괴롭힘을 받아
서도 아니다. 남의 빚을 갚을 수가 없어서도 아니고 전염병 등의 위험 때문에도 아니다. 또한 살아가
기 어려워서도 아니다.
사실은 삼사라(윤회)의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수행하는 것이 입
태하는 것, 늙고 병드는 것, 죽음, 뜨거운 번뇌, 통곡, 몸과 마음의 고통이라는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
는 길을 찾는 것이다.’라고 원해서 이 교단 안의 생애로 들어온 것이다.“
“처음에 들어올 때 이러한 마음으로 들어왔던 선한 남자들이 교단 안에 도착한 다음에도 세간에 있
을 때의 마음과 다르지 않거나 탐심과 화냄을 키운다면, ‘바르게 알아차리는 지혜(Sati
sampajana)'와 함께하지 않고 지낸다면, 마음이 고요하지 않고 태도가 잘 다스려져 있지 않아면,
그 남자는 세간 사람의 부귀도 놓쳐 버린 것이요, 비구의 호사도 완전하게 마음껏 가질 수 없다.
비유를 들자면 죽은 시체를 태우는 곳에 사용하는 대나무 장대는 아래쪽과 위쪽은 불에 타고 가운
데 부분은 시체물이 묻어 있다. 이 막대기는 마을에서 장작으로 사용할 수도 없고 숲 속에서 초막을
짓는 곳에도 쓸모가 없다.
그와 같이 수행자가 되었으면서도 마음이 고요하게 머물지 못하는 이는 세간 사람의 부귀와 출가
수행자의 호사 두 가지 모두를 잃어버린 것이 된다.“
앞에서 사까 종족으로, 사까 아들들과 팔짱을 끼고 친히 지내면서도 양쪽 편의 이익을 모두 잃어버
린 이들을 보여 주었었다. 그 원인이 충분해졌을 때 그들의 행동들을 보여주리라. 예를 들어서 보여
준 이들의 그릇된 행을 삼간다면 나쁜 쪽을 삼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교단 안에서 가장 나쁜 무리들을 들자면 육군비구(Sabbaggi)들의 이야기를 들지 않을 수 없다.
6명의 무리 가운데 맫띠야와 부마사까들을 앞에서 보여주었었다. 말라 종족 답바 마하테라께 엉터
리로 모함하였던 것이었다. 그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보여 줄 이들은 빤뚜까와 로히따까 한 쌍이다.
-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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