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이었다.
오래전의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 같은 그날의 소식을 듣던 날은 대한민국 땅이 아닌
저 멀리 중국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직전 공항가는 버스 안에서 였다.
그날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날아오는 급 비보 소식에 버스 안은 술렁거리기 시작했고
개인적으로는 경악스런 일이라 설마....였지만 계속 지인들에게서 날아드는 부고 소식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있어 살아오는 동안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자 그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 없는
그런 대통령이자 여전히 애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정치적 회오리를 견뎌낸 가장 드라마틱하고 아픈 삶을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고
여전히 내 가슴 속에서는 뜨거운 불꽃같은 존재로 자리잡은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바보"라는 별명을 지녔을까 싶을 만큼 기득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정치가였으나
그런 그가 지키고자 하였던 원칙과 철칙을 반대하는 그야말로 기득권 세력에 의해 무너진 사람이기도 하다.
별별 허물과 책을 잡기 위해 그를 난도질 하였던 사람들은 그가 당선되자 마자 물어뜯고 할퀴고
그야말로 그런 치졸스런 패악과 패대기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 던졌으나 그는 꿋꿋하게 잘 버텨내고 있었다.
도대체 나랏님이 되는 요건에 그 누가 학벌을 제시했을 것이며 패거리 집단이길 바랐을 것이며
또 그 어떤 행태의 금손 그러니까 정치, 경제, 사회적인 배경이 있는사람이어야 정치에 입문할 수 있다고 정하였다는 말인가.
고졸 출신의 인권 변호사는 감히 대통령을 꿈꾸면 안된다는 철칙이라도 있었다는 말이던가 말이다.
그야말로 척박하기 짝이 없는 정치권 바닥에 자신이 가고자 하는 올바른 길을 위해 끊임 없이 도전을 해내며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면서 가장 안정된 서울 종로를 버리고 야당의 무덤이었던 부산에 도전, 또 도전했으나
결국 지역 이기주의에 의해 낙선을 거듭하며 시민들로부터 "바보 노무현" 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던 그였다.
이후 계속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가 2002년 역사상 유례없는 국민들에게 노풍, 노사모, 노빠의 바람을 일으키며
제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때는 그야말로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고 그를 짓밟고 명예를 훼손 시키려는자들의 마구잡이 횡포를 겪어내는 꼴을 보아야 했다.
권위주의 라고는 1도 없는 친근한 대통령으로서 진정으로 소시민을 위하고자 했던 그의 정치적 신념은
그야말로 정치적 폭군들과 무지몽매한 기득권들의 발작으로 날로 피폐해져 갈 만큼 위태로웠으며
또다시 헌번재판소에 그의 대통령에 대한 가부를 선택받아야 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싶었고 나 역시 노심초사였다.
헌번재판관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까봐 애면글면 하였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끝내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발전된 소시민의 대통령으로서 권위주의 타파는 말할 것도 없고
사법제도 개혁-국민참여제도 및 로스쿨 도입- 정경유착 근절, 지방 균형 발전-세종시 및 혁신도시 추진-등을 이끌었다.
그러면서 그는 끊임 없이 소시민을 위한 정책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그 과정 중에는 견딜 수 없는 치욕과 모욕을 감내해야 앴다.
그렇게 꿋꿋하게 버텨내던 노무현 대통령이 제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농부로서의 삶을 구현하고 싶어했으나
역시 그꼴 조차도 볼 수 없었던 정치권 세력은 그를 가만히 살게 내버려두지 않았으며 그가 가진 자존감과 자존심을 건드려서
모멸감을 느끼게 하고 상처를 입혔으며 그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잃게 하였다.
그리고 전해진 2009년 5월 23일 오전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전해진 서거 소식은
전 국민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거대한 충격과 슬픔은 안겼으며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놀라 거의 실신 지경이었다.
아니라고,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통탄해 마지 않았던 그날의 충격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그러다 보니 부고 소식은 소탈하고 친밀했던 전직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위기감이,
개인적으로는 이성이 감성과 충돌함은 물론 시민들 사이에서도 깊은 정서적 부채의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집권여당과 대통령은 서거 전후의 몰염치한 거대한 압박과 사후 정국 통제에 집중하여
국민들에게 날선 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미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살아남은 힘없는 자들의 부채만 늘어갔다.
평범한 농부로 살아가던 그에게 먼지털이식 수사를 벌이고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실시간으로 언론에 흘리는
피의사실 공표로 고인에게 모독을 주었던 정계 인물들, 위정자들은 이후 시민들의 슬픔이 정권퇴진이나
대규모 시위로 번질 것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서울광장을 전경버스로 촘촘히 둘러 시민들의 발길을 막았으므로
"명박산성"이라는 웃지못할 오명을 갖기도 했으므로 그 또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 되겠다.
빈농의 아들에서 청문화 스타, 그리고 대통령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가 농부가 되었던 고인의 소탈한 모습이 그립다.
오로지 소시민을 위한 대통령으로 존재하고자 하였던 고 노무현 대통령....여전히 그의 사명감은 유효하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그가 얼마나 소시민을 애정하였는지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현 시점에서 우리는 지금의 이재명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대치는 이미 이재명 대통령이 꿈꾸는 세상엔 고 노무현 대통령이 가고자 했던 길과 일맥상통 할 터.
그 역시 그가 부르짖는 "실용적 민생 개혁"과 "공정성' 이라는 소신을 바탕으로 국가 지도자라는 막중한 임무를 해내야 할 터이다.
뿐만 아니라 통합과 포용을 통한 정치적 리더십을 확립하여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국민 통합을 이뤄내는 것.
법치주의 존중과 사법 리더십의 투명성을 대통령이라는 명목 하에 공정성과 법치주의에 대한 소신을 증명하여
국민적 신뢰를 얻어 법치주의를 존중하는 모범을 보였으면 한다.
더불어 미래지향적인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을 이끌어 가면서
기후 위기 시대에 걸맞는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먹거리를 위한 과감한 투자도 이어가면서
교육, 일자리, 주거가 연계된 종합적인 균형발전 정책을 소신껏 해냈으면 한다.
말하자면 정치적 소식을 구체적인 민생 성과와 제도로 증명해내는 동시에
야당과의 끊임 없는 소통과 협치를 통해 정책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소신과 책임감을 올바르게 이뤄내는 핵심 길 일 것이므로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욱더 대통령의 올바른 정치만으로도 국민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음을 증명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온 과정까지 비슷했으나 결과를 다를 것이라 확신하면서 고 노무현 대통령과 가는 길이 똑같을 수는 없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향하는 바 역시 두 분 다 소시민을 위한 , 나라를 위한 일꾼으로서의 과정은 같다고 여겨지니
내 삶자락에 빛나는 두 분 고 "노무현" 대통령과 현 "이재명" 대통령을 응원할 수 있어서 나머지 삶자락도 뿌듯 할 것 같다.
한 시대를 관통하며 올은 나랏님을 건재하는
두분이나 되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일 것이다.
하여 2026년 6.3 선거일에는
확실한 자신만의 투표권을 행사하길 바라는 마음을 덧붙인다.
첫댓글 저는 지리산 산행 중에 들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참으로 애통하고 할 말 없는 그런 비보였습니다.
그렇게 사지에 몰아넣은 권력자들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소신을 이해못하던 특권층 시민들.
그들은 잘도 살고 있더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