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구름 잡는 소리....
법회후 단회를 하는데 토론 내용이 장산종사 법어 생사편 1장을 읽고 생사해탈에 대해
토론해보자는 내용이 나온다.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인종씨 어머님께서 불생불멸과 윤회에 대해 확실히 믿으신다며
자신의 남자 조카가 고1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었는데
그 3년뒤 그의 누나가 시집을 갔는데
죽은 조카와 똑같은 사람이 사위로 들어왔는데
정말 그 사람이 다시 태어났구나 싶더라시며
3년밖에 안되었지만 정말 윤회가 있더라 하신다.
나는 마음속으로 죽은 지 3년밖에 안된 사람이 그렇게 성인이 되어 나타날 수있을까
싶은 의문이 드는 경계다.
그 부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그 따님인 인종씨의 반응을 살피는 내가 있다.
인종씨는 자신의 어머니라 대놓고 아니다 반박은 못하는데
(자신의 엄마가 아니더라도 인종씨는 대놓고 반박하지는 않았을거라는 내마음이 있다)
그 내용을 수긍하지는 않는 눈치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사회를 보던 성진님이 마치려는데 연우씨가
한마디 하자면서
생사 해탈공부를 하려면 견성을 해야한다며 견성을 해야만 생사해탈이 완전히 될 수 있다하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는데 말이야 바른 말인데
저러다 어느 세월에 견성할꼬 싶은
내가 듣기에는 완전히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리고
저렇게 해서 언제 생사해탈 공부하냐 싶은 경계다.
그런데 다른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그렇게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서 언제 생사해탈 공부하겠느냐고...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연우씨가 무안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 지금 내 마음에 있어진 마음이 무엇일까요?
그렇게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서 언제 생사해탈 공부하겠느냐고... 하고 있지요?
그 마음을 보신다면 어떨까요?
연우씨 하는 말이 뜬구름 잡는 소리만일까요?
내가 듣기에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린 것이지요
그리고 상대가 무안하게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것은 상대가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깨치라 하고 있네요
그것은 네가 공부를 못하고 있으니 어서 너 깨치라는 소리지요
나는 다 깨친 것인가요
지금 너 깨치라고 하고 있는 내 마음을 보아야 이순간 깨치지요
말이야 바른 말인데 뜬구름 잡는 소리다 라고 하는 내 마음을 보아요
그럼 거기서 내가 배울 것이 있지요
거기서 배움은 말하는 연우씨 말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래 그 말이 맞아
그런데 견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더 설명을 해야겠구나! 하고
내 공부가 되었다면
아 맞아요 연우씨 말처럼 견성해야 생사가 해탈이 되어요
그런데 견성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생활 가운데 있더라구요
견성해야 한다 경선해야 한다고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어요
그런데 견성이란 글자 그대로 성품을 본다는 것이지요
그 성품은 경계마다 경계구나 하고 보는 것이더군요 ....하면서 은세상님 말을 전개 한다면
연우씨가 무안하지도 않으면서
내 공부의 방향을 잘 전달할수 있어지지요
그런데 내 공부가 내 경계롤 느끼지 못하니 거기서
지금 내 앞에 있는 연우씨가 열리지 못한다면서 쳐 버리는 것이지요 **
무안하게 여기더라도 헤매지 말고 공부길 바로 잡았으면 싶은 생각에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전생, 현생과 내생이 멀리서 보면 죽음을 경계로 하고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어제,오늘, 내일이고 더 가끼이서 보자면 바로 지금 아주 짧은 찰나가 현생이고
그전이 전생, 그 후가 내생이라며
생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숨쉬는 사이에 있으며
내 마음에서도 생사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한마음 일어날 때 그 때가 生이며 한마음 사라질 때 그때가 死라고.
생사해탈을 위해서는 애착,탐착,원착 끊는 공부가 중요한데
그 공부는 우리 마음이 경계따라 일어나는 것을 보고 원래 자리에 대조해보고
그마음이 사라지는 것을 공부할 때 애착, 탐착 원착 끊는 공부는 절로 되어진다며
우리 마음공부가 다 그공부 아니냐 했다.
연우씨는 아무말도 못하고 연세드신 익자님께서 동감임을 표하셨다.
연우씨가 다소 무안한 지경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빨리 미혹에서 벗어나 바른 길로 들어섰으면 하는 마음이었기에 아무런 후회도 없다.
그런데 연우씨가 아들과 먼저 나갈 때 내가 가방에서 천원짜라 하나를 꺼내어
꼬마 손에 쥐어준다.
아마 아닌 것 같았어도 연우씨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같다.
그런데 오늘 단회할 때 사회를 보았던 성진님이 전화를 했다.
성진님은 내가 단회 마무리를 아주 멋지게 결론 지어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성진님 남편인 원진님께서...하는데 무슨 말이 나올지 알겠다.
제가 연우씨 무안하게 했다고 하지요?하니 그렇다고 한다.
이미 짐작했던바라 원진님 마음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걸림이 없다.
아마 원진님은 내가 되게 잘난체 한다고도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그래도 그마음도 받아들여진다.
다른 사람이 나처럼 했으면 나라도 그런마음 들 수도 있었을 거 같다.
그러면서 성진님은 연우씨는 과거의 공부 방법에 자꾸 끌리는 가보다 이야기하시고
쉽고 가까운 길이 있는데 일부러 돌아가려고 한다며 안타까워하시고
원준님과 성조 형님 생각이 다르듯 그렇게 사람마다 다르다며 전화를 끊으신다.
전에는 연우님이 엉뚱한 소리를 한번 씩 해도 웃고 넘겨지고 봐줄 만 하더니
요즘은 저렇게 안열리까 싶어 갑갑한 마음이 든다.
벌써 몇 년째인데 하는 마음이 있어서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는데 그만하면 열리 때도 되었는데 싶은 마음이 있어서다.
그마음도 모두 연우씨 아끼는 마음이다.
선천적으로 진리를 좋아하고 가까이 하려하는데
과거의 공부 습성이 안떨쳐져 진전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어떻게 저 어둠을 열어줄까 연구가 되어진다.
어둠에 헤매는 저마음은 또 오죽 답답할까 싶기도 한 경계다.
어쩌면 자신은 자신이 어둡다고 인식하지도 못할 수도 있겠다고도 여겨진다.
** 결국 연우씨를 아끼는 마음이다라고 나를 또 변명하시는 군요
연우씨에게 너는 열리지 않고 있다 너는 공부를 못하고 있다라고 하고 있는
속 마음을 들여다 보세요
그것은 진정 아끼는 마음이 아니지요 **
첫댓글 속 마음 ...대체 속마음이 뭔데 이렇게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