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실 때 주시는 대로 심어야 거두리라.(마16:24-27)
이재흔 목사 저. 24/01/14.
세상을 빙자하는 원수의 미혹이 점점 더 집요하고 교묘해져도
교회는 제자리를 견고히 지켜내게 하실 것을 감사하자.
동성애를 축복하는 교황은 성경을 부정하는 명백한 적그리스도다.
적그리스도가 아니라면 노아시대 홍수 사건과 소돔과 고모라의 저주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죄악과는 어떤 경우의 타협도 용납될 수 없다.
예수가 십자가에 왜 고난과 죽음을 한낱 에피소드로 만들면
그게 바로 적그리스도다.
1)제가 질 십자가를 부인하는 세력이 교회를 파고든다.
복음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이에 순종하는 것이 능력이다.
복음 순종은 자의를 전혀 개입시키지 않아야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과 구주 예수에 대한 영적 신뢰가 부족한 무리가 있어 신율법을 조성한다.
저들의 무지를 감추려고 자꾸만 억지스런 제 주장을 개입시키려 강변한다.
무리의 숫자와 화려한 스펙을 앞세워 자신들의 주장을 정설화한다.
따질 것 없다 사람의 생각과 욕구는 종교를 만들 뿐이다.
예수의 십자가 고난도 부활영생이라는 아버지의 약속으로 이뤄진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나님이 와 사람에게 신앙의 길을 달리라고 하시는가?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의 언약 즉 복음이 이뤄지는 영광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모든 상급에는 먼저 치러낸 대가가 있었고,
연단에는 먼저 약속된 상급이란 대가가 있다.
신앙 길에서 오늘의 상급을 내일의 성장동력의 씨앗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복음은 할 수 있으니 하라고 하는데 세상은 받기만 하라고 가르치는 무리를 기뻐한다.
2)영원한 생명을 버려도 되는 타협은 존재할 수 없다.
우선 먹기에 곶감이 달다고 많이 먹으면 대가가 있듯이
자의적 판단에 쉽게 여겨지는 곳에는
영원한 생명을 내줘야 하는 이 땅에서 느끼지 못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을 깨달으라 보여준 예수의 십자가 고난이다.
문자에 가두려고 달려들어 신앙길에서 은사나 비유를 배척하는 무리가 있는데
종교라면 능력이 있을리 없으니 버려도 될 것이다.
종교에서 능력이나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명백하게 미혹하는 마귀의 역사다.
저들의 생각과 요구대로 예수의 비유도 버린다면
영적 소경 귀머거리 중풍병자 문둥이 앉은뱅이가 된다.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 거지 사건을 생각하라.
우리의 일상생활도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잖나?
사회적 약자에 국가가 베푸는 복지가 있다고 모든 성도를 약자 되게 하는 교회는 옳지 않다.
바울이 신앙의 젖먹이들에게 한 말을 가지고 모든 성도를 젖먹이가 되게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영원한 생명은 목숨보다 중하고 중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오늘의 말씀 : 주실 때 주시는 대로 심어야 거두리라.
인간은 사람과 다르고, 목숨도 생명과 다르고, 종교와 신앙이 다르다.
복음과 율법은 같고 세례와 연단이 같고, 순종이 승리와 같다.
예수의 증거로 우린 영생의 길, 신앙의 길, 승리의 길을 간다.
아버지의 언약을 이루는 삶이 하나님의 영광되는 삶이다.
예수도 그 길을 살아냈고 부활 승천했으니
우리도 기쁨과 감사로 여호와께 순종하자.
할렐루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