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로 저쪽 사람들을 친구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했던 미국 공화당의 온건하고 타협적인 지도자 앨런 심프슨 전 상원의원이 14일(현지시간) 와이오밍주 코디에서 9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고 일간 USA 투데이가 가족 성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낙상해 엉덩이 골절을 당했는데 끝내 회복하지 못해 가족과 친구들이 임종한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했다.
수십 년 공화당 상원의 2인자였으며, 빼빼 말랐던 고인은 당내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는, 예를 들어 낙태권이나 동성애자의 평등권 같은 사안을 끄집어내 얘기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던 정치인이기도 했다.
키가 201cm였던 이 대머리 거인은 와이오밍주를 대표하는 상원의원으로 20년 가까이 일했으며, 1985~95년은 민주당이 상원 다수를 차지한 상태에서 소수당의 2인자로 채찍을 휘둘렀다. 고인이 상원에 남긴 가장 커다란 족적은 1986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서명한 이민법에 대한 두 당의 타협을 이끈 일이었다. 이 덕에 270만명의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살 합법적인 지위를 얻었다. 민주당의 로마노 마졸리(켄터키) 상원의원과 힘을 합친 결과였다.
이 개혁은 자격 없는 외국인들을 고용한 이들에 대한 법적 처벌을 강화하긴 했지만 사실상 사면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비판을 공화당 동료 의원들로부터 받았다. 고인은 2011년 상원의원 직에서 은퇴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어떻게 양당제가 쇠락해가는지 뉘우치는 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시사 주간 타임 인터뷰를 통해 "이제 그냥 팔꿈치를 바짝 올리고, 코커스에 앉아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말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저쪽을 상처낼까 궁리만 하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친근한 그의 스타일은 의회 건너편의 라이벌마저 동맹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2022년에 그는 오랜 친구이며 동료 상원의원이었던 조 바이든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의메달을 받았다. 미국의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이다.
1931년 9월 2일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태어난 고인은 코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0년대 서독 미군 기지에서 복무했다. 부친 밀워드 심프슨은 와이오밍 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지냈다. 고인은 1964~77년 와이오밍주 하원의원으로 일한 뒤 1978년 선거를 통해 연방 상원에 첫 발을 디뎠다.
대부분 보수적인 사안을 자랑스럽게 옹호하는 인물이었지만 낙태권과 동성애 권리에 대해서는 강한 자유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2011년 MSNBC 인터뷰를 통해 "나는 '낙태를 하다니 대단한 사람들이군'이라고 말하며 서명해 놓고 휙 달아나는 누군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추하다. 하지만 그들은 깊이 내성적이거나 개인적 결심을 하며, 난 남자 의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 투표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우리 당에도 동성애 공포가 있다. 그 점이 날 역겹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며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이라고 덧붙였다.
유머 감각, 성마른 기질, 속된 언사로 유명했다. 몇몇은 음란패설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견해를 가진 이들과 상대할 때 그런 것 별로 저어하지 않았다. 1987년 이란 콘트라 스캔들과 관련해 레이건 대통령에게 질문하겠다고 취재진이 소리를 질러대자 그는 새디즘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화가 잔뜩 나 "여러분은 답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묻지 않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지 않나. 여러분은 대통령이 평정을 잃을 걸 알면서 그의 엉덩이에 지팡이를 꽂고 싶어 그런 질문들을 해댄다"고 꾸중했다.
기성 제도에 도전하고 싶어했지만, 심프슨은 그 안에서 일할 줄 아는 효율성을 갖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했을 때 그는 막 은퇴한 상태로 연방 부채와 결손을 메우기 위한 상원 협의체를 주도했다. 2006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전쟁의 궤도를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79건의 건의를 한 이라크 연구그룹에 참여한 10명 중 한 명이었다.
심프슨은 2018년 12월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 추도사로도 유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화됐다는 여론이 비등하던 시점이었는데 그가 트럼프 면전에서 한 추도사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돼 가는 이즈음에도 돌아볼 만하다. "미움은 그것을 품고 있는 사람을 상하게 한다."(Hatred corrodes the container it's carried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