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135) - 광장을 가득 메운 여성파워
내일(12월 21일)은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 반년 동안 짧아졌다 길어지는 양의 기운 따라 침체하고 냉기 가득한 대지에 밝고 편안한 기운 넘치라.
동지 앞 복지관의 점심 메뉴는 붉은 팥죽, 사회전체에 도사린 음습한 기운 물렀거라.
지난 12월 3일 밤에 선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조치는 국회의 신속한 계엄해제 요구안의 통과로 6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이어진 비상상황은 12월 14일 오후에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7년 만에 다시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받는 상황에 놓였다. 우려했던 유혈사태나 파멸적인 헌정 중단 상태로 치닫기 전에 계엄 상황이 종료된 것은 다행이지만,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되었고 대한민국은 상당 기간 큰 불확실 정국에 빠져들었다. 국회의 탄핵소추를 이끌어 낸 것은 강력한 계엄반대 국민항거, 그에 앞장선 주력부대가 2030 여성들인 것이 흥미롭다. 엊그제 만난 고향후배들의 일치된 증언, 계엄선포반대시위현장에 젊은 여성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많고 적극적인 것에 놀랐다. 계엄 상황을 다룬 내 글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이들도 여성들이었다.
그 중 한두 개,
‘정말 아찔한 상황, 수준 미달의 지도자가 정신 나간 행동을 했어요. 이를 막은 우리가 희망이요 빛입니다.’
‘윤 대통령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이런 미친 짓을 했을까요? 사리분별 안 되는 사람이 한 나라를 통치하고 계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무섭고 개탄스럽습니다. 온 세상에 뿌려진 부끄러움은 저의 몫인가요? 누가 손가락질 안 하는데도 부끄러워요.’
탄핵정국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 ‘12월 3일의 계엄 선포는 잠복한 탄핵 여론을 점화시켰다. 야권 일각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거론 했을 때가 지난 8월이었다. 한국사람연구원과 한국리서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하는 여론은 8월 23~26일 조사 당시 과반에 못 미치는 48%였다. 하지만 계엄 직후엔 75%(12월 6~9일 조사)까지 상승했다. 탄핵 찬성 목소리가 특히 낮았던 20대 남성(44%P 증가), 50~64세 남녀(31%P 증가), 65세 이상 여성(30%P 증가), 중도층(32%P 증가)에서 여론이 들끓었다. 또 65세 이상 남녀, 대구·경북(59%), 부울경(66%), 보수층 등 상대적으로 윤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었던 계층에서도 찬성 의견이 8월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 밖에 찬성률이 높은 집단으로는 진보층(96%), 호남 거주자(90%)였고, 18~64세 남녀 집단에서도 80%대를 넘어서며 탄핵 여론을 주도했다. 그리고 이는 14일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을 뒷받침했다. 또 최근 통신사 데이터 기준으로는 20대 여성의 집회 참여도가 두드러졌던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번 조사에서도 18~34세 여성의 탄핵 집회 참여 의향(51%)은 절반을 넘었다. 하지만 18~34세 남성, 이념적 중도층, 서울·경기·인천·충청·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는 집회 참여 의향이 31~40%대에 그치며 상대적으로 낮았다.’(2024. 12. 19 한국일보 정한울의 글, ‘탄핵 민심에 불을 지른 뜬금없는 비상계엄’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14일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모습, 2024. 12. 19 한국일보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18~34세 여성이 탄핵 여론을 주도하며 광장참여에 적극적이라는 점, 이를 다룬 칼럼 ‘여성들은 언제나 광장에 있었다’를 살펴보자.
‘여성들은 언제나 광장에 있었다
이번 탄핵 촉구 집회에는 젊은 여성이 많았다는 말이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다. 현장에서 체감하기로도 여성이 눈에 띄게 많았고, 서울시 생활 인구 공공데이터 분석 결과에서도 20대 여성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MZ세대 여성들의 응원봉 집회라는 분석까지 보인다.
집회와 시위는 필연적으로 약자의 활동이다. 그리고 세계경제포럼 세계성평등지수 순위가 최하위권인 우리나라에서, 여성은 언제나 차별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었고, 사회적 소수자로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이 모여 거리를 가득 메웠던 이런 활동을 이 글에서 처음 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젊은 여성들만의 일도 아니다. 수십 년 전 민주화의 선봉에 함께 섰던 여성들, 호주제 폐지를 위해 분투했던 여성들이 있었다. 2008년 촛불집회, 2014년 세월호 추모 집회, 2016년 탄핵 집회에도 여성들이 많았다. 한국 사회의 젊은 여성은 언제나 정치사회 고관심층이다. 주요 선거 투표율 또한 또래 남성들보다 현저히 높다. 젊은 여성들은 항상 한 명의 동등한 시민으로서 주체적으로 정치에 참여해 왔다. 이들은 특정 정당이나 조직에 동원된 것도, 잘생긴 정치인의 팬클럽인 것도 아니다. 그만들 신기해하라. 이제 젊은 여성들이 유독 정치 고관여층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불공정과 차별에 더 주목하라. 만약 미래 한국 정치사에 또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면 그때는 그때의 젊은 여성들을 새롭게 발견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응원봉 집회가 우리, 기성세대에게 남긴 과제다.’(2024. 12. 20 동아일보 정소연의 글, ‘여성들은 언제나 광장에 있었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