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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겨울판화(박윤배)
나는 내게 웃음을
박봉희 시인
믿을 건 믿지 않는 것밖에 없다
너도 남과 다를 게 없어
빠져드는 믿음에 마음을 주고
너는 빚 대신 예배당으로
나는 너를 지나 유원지 못가를 돈다
노인들을 선교하는 물휴지와 사탕
사람들을 산책시키는 애완견들
못 위 부유하는 중년의 죽음
몇 바퀴 도는 동안 나는 몇 번 죽었다 깨어난다
응급실 자동심장충격기처럼 무심하게 웃음이 작동한다
원수, 웃음, 부활
흔들리는 삼각관계
믿을 건 믿는 것밖에 없다
나는 내게 사이비웃음을 전도한다
ㅎㅎ 웃고 있어, 내 웃음을 믿기 시작한다
◇박봉희= 2013년 ‘시에’로 등단. 시집‘복숭아꽃에도 복숭아꽃이 보이고’, 테마시선 ‘따뜻한 이불을 덮고 주무세요’.
<해설> 마인드컨트롤? 그 순차적인 자기위로의 진술들이 타자인 독자들에게 마치 자신의 상처가 거기에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언어의 힘 혹은 언어로 빚어낸 스토리 또는 감정표출의 힘이 참 맛있는 그런 시다. 믿을 건? 믿지 않는 것 밖에 없다니, 믿을 수 없는 것도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믿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인가? 너는 빚 대신 예배당 가고, 나는 지금 너를 지나 유원지 못가를 돈다고 진술된 이 드라마틱한 묘사는 돌면서 죽었다 깨어나는 자신이 만난 것은 노인들을 선교하는 물휴지이며, 도리어 사람을 산책시키는 애완견이며, 못 위에 부유하는 중년의 주검이라니! 그냥 웃어야 한다. 웃어야 산다는 걸 시인은 원수, 웃음, 부활의 삼각관계에 빠진 독자에게 친절하게도 가르쳐 주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