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 기도 타종식 나들이길
'시와 늪' 발전과 가족 모두의 무탈과 복을 빌었다. 무술년의 두 번 째날 꼭두새벽에 기상했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에 목욕재계하고 채비를 한 뒤에 서둘러 집을 나서 밀양의 영산정사(靈山精寺 : 무안면 가례리 서가정(영축산))로 달려갔다. 이 사찰에 초행이 아니다. 몇 해 전에도 찾았었기 때문에 낯익은 곳으로 도착하여 먼저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부터 둘러봤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4층의 10만 패엽경(貝葉經)을 비롯한 다양한 경전부터 살폈다. 그리고 아래층으로 차례로 내려가면서 전시물을 감상했다. 3층의 백만과에 이른다는 부처님 진신 사리, 2층의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모은 다양한 불상과 염주, 1층의 많은 대선사들의 존영을 그린 불화 따위를 설렁설렁 훑어봤다. 그리고 정오 무렵 사찰의 입구 왼쪽 요사채 옆에 위치한 범종각으로 자리를 옮겨 세계 최대의 범종(영산정사 대종 : 중량 27톤(t))을 정확히 10번 타종했다.
타종식을 마치고 절을 떠나면서 절을 위해 한 가지 빌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다름 아니라 이 절에서 지난 2003년부터 시작했던 세계 최대 와불(臥佛) 불사가 버거웠던지 15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재개되리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 엄청난 불사에 공력과 울력이 모아져 하루 빨리 완성되길 빌었다. 와불의 좌대 길이 120m, 불상 길이 77∼82m, 높이 21m 규모라는 귀띔이다.
올해 ‘시와 늪’ 창립 10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하며 ‘시와 늪’ 가족 모두의 무탈과 복을 기원하기 위한 타종행사로 배성근 회장에 주선했다. 함께한 길동무는 배회장과 구도순 관장, 김시윤, 배만식, 김종대, 박재원 문우에 나까지 합해 고작 일곱으로 매우 단출했다.
밀양고을 무안 땅은 고추와 깻잎을 비롯한 비닐하우스가 매우 발달한 부촌이라는 얘기이다. 그보다 유명한 게 돼지 국밥이다. 그 옛날부터 경상도에는 돼지국밥이 유명했다고 한다. 그 돼지국밥의 최초 발상지가 이곳 무안이란다. 그런 까닭에 무안에는 명불허전의 돼지국밥집이 즐비하다는 전언이다. 타종을 마친 다음에 밀양 터줏대감인 배만식 문우의 안내로 돼지국밥집을 찾아 게 눈 감추듯 뚝딱 한 그릇 비우고 나니 함포고복에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살포시 밀려오는 오수(午睡)의 끈질긴 유혹을 매정하게 뿌리칠 계제가 못되어 무척 곤혹스러웠다.
천근만근 무거워진 눈꺼풀과 씨름하며 달려간 곳이 창녕비봉리패총전시관(창녕군 부곡면 비봉길 7)이었다. 아직도 나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원흉인 오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흐리멍덩한 채 전시관 문을 밀고 들어가 얼렁뚱땅 둘러보고 나오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번개 치 듯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곳 패총에 대한 내력 하나하나가 허투루 지나칠 수 없는 매력 덩어리였다.
비봉리 패총(貝塚)은 2004년 봄에 양배수장(揚排水場)을 건설하던 중에 발견했다고 한다. 지금은 낙동강 줄기에서 한참 벗어난 외돌아진 들판 가장자리이지만 신석기시대엔 바닷가였던 곳이란다. 이 패총은 신석기 시대 조기에서 전기 시대(기원전 6500년~35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5개의 조개 층 다시 말하면 5개(맨 아래에서부터 땅 표면 쪽을 향해 제 5패층, 제 4패층, 제 3패층, 제 2패층, 제 1패층)의 패층(貝層)으로 이루어 졌다. 여기서 출토된 주요 유물은 대충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제 5패층에서 출토되어 8천 년 전의 것으로 판명된 배는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가장 오래 된 선박이라고 한다. 또한 제 1패층에서 출토된 망태기는 국내에서 출토된 유일한 것으로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문양과 모양의 토기와 생활용 도구, 똥 화석, 장신구, 낚싯바늘 따위의 고고학적 가치는 따져보기 어렵다는 얘기이다. 아울러 또 다른 유형의 출토품인 도토리와 복숭아 씨앗을 비롯한 동식물 유체, 유기물 따위는 현재 국립김해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 함께 했던 일행은 기껏해야 일곱이었다. 하지만 삶터가 포항과 부산, 밀양, 창원, 마산 등 네 곳인 까닭에 승용차가 네 대가 동원 되었다. 패총 전시관 관람을 한 뒤 차를 나누어 마시고 뿔뿔이 헤어졌다. 나는 배 회장의 승용차 신세를 졌다. 아침에 배 회장이 우리 아파트로 와서 동승하고 국도 5호선을 따라 내서를 지나 계속 대구 쪽을 향해 달리다가 낙동강을 건너 조금 뒤에 창녕 도천의 우강 교차로에서 1022번 지방도로로 진입했다. 낙동강변의 둑 위로 개설된 길을 따라 직진하다가 보니 4대강 사업 흔적인 낙동강 ‘창녕∙함안보’가 오른쪽 수면 위에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그 보(洑)를 지나 계속 달리면서 길곡면을 지나 부곡면인 “인교”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 밀양시 무안면으로 향하면 된다. 돌아오는 길은 비봉리 패총 앞마당에서 출발하여 몇 미터 나오다가 곧바로 우회전해 1022번 지방도로로 진입하여 아침에 달려왔던 길의 역순으로 되짚어 마산의 집으로 귀가했다.
돌아오는 길에서 배 회장이 길가에 차를 세우며 개비(犬碑)를 구경하자고 했다. 의아하지만 잠자코 차에서 내렸다. 도로 옆 산비탈 작은 마을 입구 두어 평 됨직한 낮은 직사각형 쇠 울타리 안에 묘하나가 있고 그 앞에 ‘개비’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묘를 둘러싼 쇠 울타리 한쪽엔 ‘낙동로 1983-1~1983-18’이 적혀 있었다. 이는 그 학포리 동네가 ‘낙동로 1983번지 1호에서 18호까지’라는 뜻이지 싶었다. 그 개의 묘는 네모진 형태로 누군가가 벌초를 했고 개비에 새겨진 내용은 오랜 세월 풍화작용 때문인지 글자가 깡그리 마모되어 판독할 수 없었다.
안내판에 적혀있는 내용에 다소의 첨삭을 가한 개비에 대한 유래는 이랬다. 옛날 옛적 창녕군 부곡면 학포리(노리부락)과 임해진(청암리)에 성(性)이 다른 두 마리의 개가 살고 있었다. 이들 한 쌍 사이에 애정이 깊고 깊어 두 부락 사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갔다. 그런데 두 부락 사이를 오가는 길이 없어 낙동강을 따라 깎아지르듯이 가파른 절벽을 개들이 곡예 하듯이 타고 오르내리기를 수없이 되풀이 하다 보니 자연스레 작은 길이 트였다. 그렇게 개들이 천애절벽 같은 산속을 오가며 만들어진 오솔길을 사람들이 왕래하게 되어 불편을 덜었다는 얘기였다. 개들이 뜻 없이 한 일이지라도 사람들은 개의 고마움을 영원히 기리려고 비를 세웠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비를 개비(犬碑) 혹은 개로비(開路碑)라는 이름으로 불러지고 있다. 지금은 낙동강 변을 따라 발달한 가파른 절벽을 깎아서 닦은 번듯한 도로가 완공되어 그 옛날 전설은 아련한 전설처럼 묻혀 사라져 가고 있었다. 두 마을 사이의 도로는 지난 1986년 11월 육군 39사단 1116 공병대가 군사작전용으로 시공했고, 주민들의 청원으로 경상남도와 창녕군의 예산 지원을 받아 완공했다고 했다. 한편 그렇게 마무리해 두 마을 사이를 잇는 반듯한 포장길은 청암리와 학포리의 이름을 합성하여 청학로로 명명했다는 전언이다.
오늘 날씨는 유난히 포근하고 맑아 이른 봄날을 연상시켰다. 신의 축복이었을까. 단순히 무탈과 복을 비손하던 멋없는 길이 아니었다. 우리 선조들의 얼과 혼이 오롯이 살아 숨 쉬는 역사적인 비봉리 패총을 만났던가하면 작은 동네에 숨겨진 주옥같은 ‘개비’ 전설과도 조우하는 행운이 활짝 열렸던 옹골진 하루였다. 삽상한 기운을 느낄 정도로 청아한 날씨에 문학적 맥락을 함께 하는 동행들과 어우러져 길을 나섰던 하루가 상서로운 기운으로 가득해 무척 행복했다. 새해의 첫 나들이에 은총이 담뿍 내려진 것 같아 마냥 뿌듯하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2018년 1월 2일 화요일
첫댓글 잘보았습니다 교수님
일출을 가슴에 품듯 뜻 깊은 새해를 맞이하셨군요. 덕택에 무안 여행을 함께 걷는 느낌으로 다녀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요.
씨실 날실
어쩜 이리도 곱게 촘촘하게
잘 엮어 놓으셨는지
생생하게 현장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교수님
함께 여서 감사한 일정이었습니다!
교수님, 회장님, 여러 선생님들과 동행한 뜻깊은 나들이 행복했습니다. 시와늪문인협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 합니다.
교수님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존경합니다.
교수님 ?같이 다녀온 감흥이 전해집니다?늘 편안하고 이해하기 쉽게 적어주시는 글 어릴적 어른들이 전해주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늘 건강하십시요~~~^♡^
고운 글 감사합니다
교수님
기억이 새롭습니다
글을 읽으니 교수님과 같이 시와늪 회원들과 2016년도에 영산정사에 갔던때가 생각납니다.
언제나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