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6.17. 부산 기장군.
앞에 아무 것도 안 붙은 걍 길앞잡이를 오랜만에 만났네요. 제 생각에는 다른 모든 길앞잡이들보다 훨씬 더 화려해서 대표 이름으로 삼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오죽하면 '비단길앞잡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무늬가 화려하고 색깔도 선명하거든요. 크기도 가장 큰 편에 속하고요.
하지만 이쁘게 생긴 녀석이 사납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지요. 구멍을 파고 땅속에서 먹이를 낚아채는 애벌레 때도 그렇지만, 성충이 되어서도 지나가다가 만만한 크기의 벌레만 보이면 순식간에 덮쳐서 날카로운 큰턱으로 찢어서 먹지요. 오죽하면 영어 이름이 'tiger beetle(호랑이 딱정벌레?)'겠습니까? 그 정도로 탐욕스럽고 사납다는 것이겠지요. 심지어 길앞잡이 종류는 짝짓기도 아주 난폭하답니다. 암컷이 보이자마자 구애고 뭐고 없이 그냥 냅다 올라타고 반항하는 암컷의 목덜미를 큰턱으로 물고는 순식간에 정자 주입까지.... (햐, 이런 거 부러워할 남자들 제법 있겠네요.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그게 가능하다니... 그런데 또 한편으론 절대 안 부럽기도 하겠네요. 그렇게 성공해놓고는 허무하게 몇 초 만에 끝나버리다니... 토끼도 3초라는데... ㅋㅋㅋ)
모처럼 날씨가 무덥던 토요일 오후. 물을 따라 새나 찍으려고 했더니 그늘도 없고 새도 없고 재미도 없고 갈 데는 없고.... 그러다가 부산 치유의 숲을 발견하고, 그래도 좀 그늘이 있겠다 싶어서 천천히 산책 겸 걸어갔다가 원점 회귀 했답니다.
산이 높지 않아서 계곡에 물이 많이 없어서 시원한 멋은 덜했지만 소나무와 참나위 위주로 이루어진 젊은 숲에는 싱그런 공기가 가득해서 더위를 참고 견딜 만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사실 알랑가 모르겠지만.... ㅋㅋㅋ) 길앞잡이들은 그늘보다 땡볕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어서 이 녀석들 만나서 땡볕에 꼼짝도 안 하고 조심조심 찍어댔답니다. 워낙 예민한 놈들이라서 멀리서 줌으로 당겨 찍고, 천천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금씩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 겨우 거리를 좁혀 나중엔 드디어 105mm로 사진을 담을 데 성공했답니다. 오죽이나 오래 멀리 있는 땅을 찍고 있었으면 지나가던 아저씨가 아줌마한테 한 마디. '저 양반은 땅바닥을 찍어서 뭐 하노? 이상한 사람인갑다.' ㅋㅋㅋ 졸지에 정신 나간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ㅠㅠ
(우선 이 사진들은 똑딱이 줌으로 찍은 것들만)
후다닥 앞으로 갔다가도 가만히 멈춘 채 주위를 살펴보다가 한순간 개미 한 마리 잡아서 후다닥... 그러다가 동료 개미가 나타나자 줄행랑. 개미보다 수십 배나 무섭게 생겼고, 개미보다 몇 십 배 크게 생긴 녀석이 그 조그만 개미에게 쫓겨 달아나는 모습은 시쳇말로 '확 깬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것 같더군요. 그렇게 개미로부터 안전한 곳까지 가서는 턱을 움직여 잘근잘근 씹어먹고... 그 모습까지 선명하게 찍혔으면 좋았을 텐데 똑딱이는 거기까지는... ㅠㅠ 그래도 이 정도 건진 것만도 충분히 행복하답니다. (첫 사진말고는 전부 똑딱이 사진임다.)
'마, 니 뭐 보노? 한판 뜨까? 붙자. 싸우자.'
요래 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봅니다. ㅋㅋㅋ
'몸은 금록색, 금적색, 금록청색의 여러 가지 색이 어우러져 보석처럼 호화스럽게 빛나는데, 산지에 따라 딱지날개의 빛깔은 여러 가지 변이가 나타난다.'고 어떤 도감에 적혀 있는데 정말로 맨 아래 사진은 녹색이 많이 돌더군요. 그 외엔 대개 적색과 청색 계통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