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낡은 일기를 펼치고 싶어집니다. 책장 한 쪽에 가득한 일기는 언제 첫 번째 날을 기록했는가 궁금합니다. 초등학생때 부터 썼던 일기는 없어졌고, 중학생 때 쓰고 대학 2학년 때 까지 일기는 언젠가 없어진 채 그 이후 것만 남았습니다. 대학 4학년 23살 초겨울에 나는 파일롯트 Ultra Super 500을 가졌던 기록을 찾았습니다. 파일롯트에 대한 기억은 중고생때 가졌던 기억만이 있었지만 이때의 일기를 보니 이것을 가졌군요. 그 당시 만년필을 남대문 도깨비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사곤 했을 때입니다. 백화점에서 파는 외제 만년필은 신품도 있었으나 중고도 팔았습니다. 내가 만년필을 살 때 잉크를 찍어서 써보고 샀군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기 힘든 때였습니다. 부모님께 말쓸을 드려서 만년필 값을 얻었습니다. 날마다 일기를 대여섯장 씩 쓰는 자식을 부모님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만년필 하나쯤 사줄만 하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어렵사리 샀던 만년필 파일롯트 Ultra Super 500은 대학생 손맛과는 달랐습니다. 하룻밤을 넘기고 다음 날 파카 51과 바꾸었습니다.
먼 훗날 파일롯트 Ultra Super 500는 호사가들이 수집하고 싶어하는 만년필이 되리라는 것을 알 리가 없습니다.
40년 전 대학 4학년생은 만년필 하나를 갖고 싶었습니다. 손에 잡고는 견딜 수 없는 촉감에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그리고 떠나간 사랑은 그리듯 만년필을 그립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만년필 파일롯트 Ultra Super 500입니다. |
출처: 일파만파 원문보기 글쓴이: 일파 황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