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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품 브랜드 통영 12공방의 부활 도전기
명품 명장 통영 12공방 이야기
<명품 명장 통영 12공방 이야기>는 조선 시대부터 안목 있는 호사품으로 자리 잡았던 조선의 명품 브랜드 통영 12공방이 현대 디자인과 만나 세계의 명품 브랜드로, 전통과 혁신이 함께 어우러진 대한민국 대표 디자인으로 거듭 나려는 크래프트 12 Craft 12 프로젝트를 기록한 책입니다. 지자체와 전통 공예 장인들 그리고 현대 디자이너들과 디자인 전문 회사가 의기투합해 만들어낸 이 아름다운 도전의 기록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목 있는 호사… 조선 명품 되살리기 프로젝트
통영 12공방에서 크래프트 12 Craft 12로
통영은 공예와 예술의 도시입니다. 박경리, 윤이상, 유치환, 김춘수, 전혁림… 이 도시를 고향으로 두고 있는 예술가들의 이름은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지요. 400여 년 전 조선과 일본이 전쟁을 했던 때부터 이 도시엔 빼어난 솜씨를 갖춘 장인들이 모였습니다. 그 장인들의 본거지가 12공방이었고, 12공방에서 만들어진 공예품들은 그대로 조선 전역에서 꼽히는 명품이었습니다. 멋을 아는 남성들이라면 통영 갓을 구하고자 돈을 아끼지 않았고, 살림 호사를 아는 규중 여인들은 통영 자개를 소망했습니다. 그뿐인가요. 통영 소목이 만든 가구들은 선비들이 계를 해서 마련할 정도의 인지도가 있었고, 통영 부채와 통영 소반 역시 격조 있는 집에선 다들 갖추고 싶어 하는 물품이었습니다. 통영이라는 도시는 그 이름 자체로 브랜드였던 셈입니다.
통영 12공방의 전통은 우리가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입니다. 더구나 통영에는 평생토록 한 길을 걸어온 여러 전통 공예 장인들이 있습니다. 조선 때부터 내려오는 12공방의 후예들인 셈입니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바닷가 작은 도시에 이렇게 많은 무형문화재와 명장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은 사실 조금 놀랄 만한 일이지요.
왼쪽 나전칠기 경대 | 조선 후기 | 통영시향토역사관 소장
오른쪽 나전칠기 빗접 | 부분적으로 옻칠과 붉은 칠, 주석 장석 | 조선 후기 | 통영시향토역사관 소장
조선 명품이던 12공방의 전통을 새롭게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크래프트 12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현대 디자이너와 전통 공예 장인들의 협업으로 이뤄집니다. 통영 12공방을 되살린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2008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2009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와 이탈리아 밀란 가구 페어에서 대중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크래프트 12는 프로젝트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통영 전통 공예를 현대화한 브랜드의 이름입니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명품의 아름다움은 이미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명품을 갖기 위해 비싼 값을 치르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고나 행동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눈과 마음을 여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합니다. 우리 옛 것의 아름다움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그래서 전통이란 으레 고리타분하고 침침한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품고 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아름다움은 사실 학습되는 것이니까요.
왼쪽 통영 돌쪽바지기 눈쟁이연 | 김휘범 장인 작품
오른쪽 나전칠기 사군자 서류함 | 조선시대 | 통영시향토역사관 소장
이 책은 통영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시작합니다. 통영다움이란 무엇인가, 통영의 전통 공예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다른 지방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먼저 말합니다. 그리고 이 고장에서 예술가로 자라났고 자신의 예술로 다시 이 고장을 표현하는 예술가들을 만납니다. 크래프트 12 프로젝트가 어떻게 비롯되어 펼쳐지는지, 이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일한 디자이너와 장인은 누구인지도 소개합니다.
통영에서 시작한 이 책이 통영에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책은 분명 통영이라는 도시와 그 고장의 전통 공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통영은 우리가 잊어가는 전통 공예 전체에 대한 작은 상징인지도 모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전통을 어떤 방식으로 고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좀 더 많은 이들이 뜻과 마음을 모았으면 합니다. 좀 더 많은 이들의 삶 속에 안목 있는 호사가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장인 혹은 쟁이 12공방을 이어가다 전통 공예가 사양길에 접어든 이 시대에 고집스레 일생을 장인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장인이라는 거창한 호칭보다 쟁이라는 겸손한 이름으로 만족하는 오늘의 통영을 대표하는 10인의 장인들.
왼쪽 나전장 송방웅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책 읽기를 좋아하던 열아홉 청년. 장인이던 아버지의 권유로 나전에 입문하다. 10년간 두문불출하며 기술을 연마. 이후 10년간 전통 나전 작품들을 연구한 끝에 1980년대 이후 한국 최고의 나전칠기 장인으로 자리 잡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한국 나전칠기의 상징적인 인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스스로 자개쟁이로 자처하며 죽는 날까지 전통밖에 모르는 삶을 살겠다는 통영 공예계의 큰어른. 나전칠기 목침. 문양을 살린 부드러운 주름질과 가장자리를 장식한 끊음질이 잘 조화를 이뤄낸 작품으로 통영 자개의 품격을 보여준다.
오른쪽 나전장 박재성 경상남도 최고 장인 지정 나전이 무엇인지 모르던 15세 때 나전칠기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다. 흥성하던 나전칠기 산업이 쇠락하며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할 때 나전칠기가 좋아서 떠나지 못하다. 선명한 초록색의 자개 빛깔과 꼼꼼한 끊음질 솜씨는 누구와도 구분되는 특징이다. 자개는 늘 가까이 두고 손으로 만지며 돌볼수록 아름다워진다고 말하는 겸손한 장인이다. 나전칠기 팔각 다과상. 고도로 계산되어 배치된 정교한 거북 무늬가 감탄을 자아낸다.
왼쪽 나전장 김종량 경남 공예대전 수상…통영나전칠기협회회장 통영에 한 집 걸러 하나씩 나전칠기 공방이 있던 시절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기술을 익히다. 이후 도안을 직접 하는 능력과 특유의 마케팅 감각을 바탕으로 나전칠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다.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나전칠기 체험 교육을 여러 해 동안 진행하며, 자개를 응용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실험에 도전 중이다. 나전칠기 이층아기장. 장의 전면을 가득 채운 자개의 화려함이 붉은 칠로 인해 더욱 돋보인다. 장인이 직접 도안한 십장생 무늬가 자개로 장식되어 있다.
오른쪽 소목장 김금철 무형문화재 소목장 전수 조교 당대 최고 소목장 아래에서 16세부터 소목 일을 배우다. 톱질을 잘 못했을 때 떨어지는 선생님의 호된 꾸지람이 무섭고 힘들었던 소년이 어느덧 40년 경력 소목장이 되다. 전통 공예 중에서도 공정 까다롭고 어렵기로 손꼽히는 소목 일이지만 자연 그대로의 목리를 살려내는 작품들에 매료되어 매일 이른 아침부터 작업장을 지킨다. 김금철 장인의 이층농 한쌍. 통영 소목이 만든 장롱은 화려한 디테일이 구사된, 조선 소목 기술의 종합이라 할 수 있다.
1 통영전통비연연구소장 김휘범 누구나 연을 날리는 고장에서 손재주 뛰어난 한 청년이 그 연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다. 충무공 이래 400년을 내려오던 통영 연이 비로소 전통 문화로 인장을 받다. 연을 만드는 것은 예술이지만 연을 날리는 것은 풍류라 말하는 연의 장인. 어느덧 50년 동안 하늘에 풍류를 띄워 왔다. 강렬한 오방색, 아름다운 기하학적 문양을 지닌 대문짝만 한 연이 짙푸른 통영 앞바다에 뜨면 다시금 어린 시절로 돌아가 가슴이 뛴다. 통영전통 연들의 일부. 왼쪽부터 기바리눈쟁이연, 중모리연, 삼봉산눈쟁이연, 긴고리눈쟁이연.
2 두석장 김극천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드리고 잘라내 만든 금속 조각으로 가구의 기능과 모양을 돋보이게 하는 장석이 4대째 가업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이순신 장군 때부터 장석을 만들어온 집안이라 한다. 일일이 가구며 기물에 맞춰서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장석인지라 마지막 다듬질까지 마음과 손을 놓지 못하고 마무리를 해야 한다. 화려한 나비 모양과 섬세한 입사 공법이 특징인 통영 장석의 맥을 잇는 장인이지만 아직도 아버지의 솜씨에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한다. 반닫이 자물통과 화려한 장석은 통영 장석의 매력이다. 자물쇠의 정교한 입사 장식은 김극천 장인의 솜씨가 돋보이는 부분.
3 갓일 정춘모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 하나를 엮고 나면 시력을 버리고 온몸에 진이 빠져나간다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아니면 조선 전래의 명품 통영 갓의 명맥이 끊어진다는 자부심으로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대올과 명주실을 엮는다. 스무 살 넘어 뒤늦게 통영 갓의 아름다움과 정교함에 매료되어 나라 최고의 장인들로부터 갓을 만드는 수십 개 공정을 전수받다. 지상에서 가장 가볍고 우아하며 공교로운 모자인 갓을 만들기 위해 기교 이전에 신명을 바쳐 세월을 익히다. 갓이라고 다 갓이 아니지만 그 갓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이 장인은 서운하다. 가장 한국적인 숨김과 드러냄의 미학을 보여주는 장신구 통영 갓.
1 염장 조대용 중요무형문화재 제 114호 아버지에게 배워 발을 엮기 시작하다. 철종 임금 때 무과 급제 했던 증조부가 손수 발을 엮어 왕에게 진상하여 치하를 받았다는 집안 내력이 있다. 일반 대나무 발보다 훨씬 섬세하고 가늘게 대오리를 뽑아 정교한 무늬로 엮어가는 통영 발은 규모 있는 집안이 안목을 과시하는 상징적 물품이었다. 전통 명품이 현대 공간과 만나 오히려 모던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있어 통영 발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가느다란 시룻대와 미색 명주실을 사용해서 엮은 이 발은 언뜻 보기엔 그 섬세한 문양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살펴볼수록 은근하게 드러나는 아름다움에서 장인의 정교한 솜씨를 발견할 수 있다.
2 소반장 추용호 도지정 무형문화재 제24호 온 나라로 불려 다니며 일을 할 만큼 소문이 짜하던 소목장의 아들로 태어나다. 스물네 살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받아 놓은 주문을 완수하기 위해 스스로 소반을 만들기 시작하다. 통영 소반이라 하면 모든 여염집 여인들의 꿈이던 시절이 있었으나 통영에서도 소반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소목장은 그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물려받은 예술적 감각과 솜씨는 다른 통영 장인들로부터도 인정받고 있다. 주위에 소반이 흔한 것 같아도 뜯어보면 정작 아름다운 비례와 섬세한 마무리를 함께 갖춘 소반은 찾기 힘들다. 소반장 추용호의 소반은 그 보기 드문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다.
3 통영누비 조성연 통영누비협회 회장 중학교 졸업 후 봉재 일을 해오다 15년 전부터 통영 누비에 전념하다. 아마도 그 선택에는 통영 토박이로 자라며 길러온 솜씨와 눈썰미가 작용을 했을 것이라 한다. 재봉틀로 한 땀 한 줄 누벼 촘촘하고 튼튼한 통영 누비가 저가 대량 생산 기계 누비와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고급화, 명품화, 차별화가 통영 누비의 살 길이라고 생각하며, 통영누비협회 회원들과 함께 누비의 브랜드화를 위해 노력한다. 통영 누비는 사용되는 색깔의 대조가 명확하며 화려한 자수를 포인트로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은 처네의 일부. 대량생산된 기계 누비에서 볼 수 없는 통영 누비만의 꼼꼼하고 단단함.
통영 12공방의 영화는 사라졌다. 조선 명품이던 12공방은 21세기를 맞은 오늘날 400년 전의 전설로 남아 있을 따름이다. 이런 현실에서 2008년 통영 12공방의 명성을 오늘날 되살려내고자 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무모한 도전인지도 모른다. 통영 외의 지방에서 전통 공예의 고장 통영의 명성을 아는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고, 도시 안에서도 수많은 장인들이 생계에 밀려 뿔뿔이 흩어지거나 전업을 해버리고 몇몇 사람만이 남아 힘겹게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날마다 더욱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각 분야의 수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전통은 그저 양념일 뿐인 경우가 많다.
전통이 그저 과거의 영광에 대한 전설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 통영시와 진의장 통영시장은 12공방이라는 전통의 공예에 현대적인 디자인을 입히고자 했다. 조선의 명품 브랜드이던 12공방을 새로운 현대 명품 브랜드로 만들어내어야 하는 상황에서 통영시가 파트너로 선택한것은 디자인하우스였다.
디자인하우스는 통영의 12공방을 브랜드로 만들어 2009 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와 이탈리아 밀란 가구 페어에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일정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디자인하우스는 두 사람의 디자이너에게 손을 내밀었다. 국내 대표적인 브랜드 네이미스트로 꼽히는 크로스포인트의 손혜원 대표와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김욱선 아공디자인 대표였다. 이들이 통영 12공방을 새로운 브랜드로 만들어내는 작업에 나서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통과 장인에 대한 존경은 크래프트 12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두 사람의 디자이너가 갖추고 있던 소양이었으며, 평소 그 애정을 본인들의 작품에 살려내는 특기를 발휘해온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크래프트 12를 발의합니다 _ 진의장 통영 시장 “크래프트 12 프로젝트는 산업으로서의 공예와 문화예술로서의 공예를 함께 되살리려는 노력입니다. 12공방의 전통을 이어온 통영의 손끝 야문 장인들의 작품이 현대 디자인의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크래프트 12 프로젝트의 골자지요. 저는 전통 공예 장인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할 수 있기 바랍니다. 이탈리아 오르비에토에 있는 두오모는 고딕시대 성당입니다만 현대 조각가 에밀리오 그레코가 만든 청동문으로 인해 더욱 아름다워졌습니다. 역사적인 건축물에 현대 예술가의 작품이 결합되면서 더욱 유명해지고 아름다워진 것입니다. 전통은 현대와 만날 때 더욱 빛날 수 있습니다.”
지은이 _ 조윤주 1968년생. 서울대와 서강대에서 한국 문학과 한국 영화를 공부했다. 자유기고가로 시작해 방송작가, 문화콘텐츠 기획자, 영화제 스탭, 저널 편집자 등 글과 방송, 영화와 관련된 여러 일을 했다. 현실문화연구 편집장 시절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연애의 탄생> 등 다채로운 근대의 시작을 탐구하는 여러 책을 만들었다. 지금은 전통문화와 디자인, 음식과 치유 등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와 출판 기획, 집필 등을 집중하고 있다. 지은책으로 <함께 마음으로 듣는 소리> <보나페티 남자요리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