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일기 첫째장#
오늘의 부제 : "네 아버지가 널 찾으신다. 네 아버지가 널 찾으셔."
Top을 향한 나의 머나먼 여정, 그 길은 언제나 외롭다. by J은짱
지금은 2010년.
입헌군주제가 이어지고 있는 '대한제국'이다.
"엄마,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잘다녀오세요, 우리 딸-."
여느 집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가정집.
아니, 조금은 다르달까.
이상하게 이 집에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잠시 자리를 비운 걸까, 아님 돌아가신...??!!
"모두들 잘 지냈어? 오늘도 즐거운 은비가 왔답니다."
"하이고? 오늘도 즐거운게 아니라, 발광을 하는거겠지."
"하이! 은비, 왔어? 오늘은 왜케 일찍 와?"
"지각대장 하은비가 일찍오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자칭(?) 명랑인간, 고1이라는 파릇파릇함을 지닌 이 소녀는,
오늘도 친구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고 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이름은 하은비.
그녀의 인사에 일일히 대답해주는 사람들은,
아마 그녀의 친구들일 것이다.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지각을 수도 없이 많이 한듯하다.
"쳇! 쳇! 나는 뭐 일찍 오면 안되는 법 있어?
흥이다~뭐! 원래 미인은 잠이 많은 법이라구우~!"
"우웩-! 하은비! 오바이트 쏠린다. 어디가서 그딴 말 하지 마라."
"하..하...은비야?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어?"
그녀는 약간 공주병 끼(?)도 가지고 있나 보다.
그렇지만, 그녀의 말은 과장됨이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
그녀는 자칭 미인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학교 '예지고등학교' 얼짱이기도 했다.
음... 소위 학교의 간판이랄까?
그녀의 외양을 이모저모 따져보기로 하자.
그녀의 얼굴의 반...은 너무 심할 듯 하고,
대략 3분의 1정도는 차지하고 있는 듯 보이는
올망똘망한 눈망울.
게다가 크게 진 쌍꺼풀은 그녀의 눈을 더욱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시선을 내리자 보이는 그녀의 코.
콧대가 날카롭지는 않지만,
그녀의 생글생글한 눈에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코가 제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내리자 보이는 건 그녀의 입술.
촉촉히 물기를 머금은 그녀의 입술은,
도톰하면서도 작은, 예쁘고 붉디붉은 입술이었다.
연예인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작은 그녀의 얼굴에,
잡티 하나 허용치 않은 말끔한 피부.
게다가,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환상의 몸매의 소유자, 그것이 바로 하은비 그녀였던 것이다.
학교의 배출을 위해 고3 특별관리지도에 나선 예지고등학교.
그 덕분에 아직까지는 야자를 하지 않는 은비였다.
"은비야, 오늘 시간 어때?"
"하은비! 오늘은 그 빡세다던 공부 때려 치우고 죽어라 놀아보자, 응?"
"그.........글쎄................;;;;;"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은비다.
친구들의 감언이설에 서서히 꼬드김을 당하려는 찰나,
때마침 울리는 은비의 핸드폰 진동 소리.
드르륵-.
[은비야?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오려무나^^ - Mommy]
문자를 확인하곤,
탁-. 소리나게 플립을 닫아버리는 은비.
"왜 그래? 무슨 안좋은 일이라도 있어?"
"엄마가 호출했어. 후....... 오늘은 진짜 놀고 싶었는데..................."
아쉬운 듯, 자꾸만 말끝을 흐리는 은비였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달래듯,
"어차피 너네 아주머니, 니가 공부 빨리 끝내면 놀게 해주시잖아.
공부 무쟈게 빨리 하고 텨와. 그때까지 놀고 있을 테니깐."
"그래, 은비야! 우리 오늘 놀고 죽을 거걸랑. 빨리 공부하고 와."
"은비, 홧팅! 가능하면 빨리 와야 해!"
결국, 은비는 친구들과 헤어져서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녀의 눈앞에는
한옥과 양옥을 잘 퓨전시킨 아담한 집 한채가 보였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그래, 우리딸^^. 다녀 왔니?"
"엄마! 나 오늘 공부 빨리 하고요, 친구들하고 놀아도 되요?"
조심스레 엄마에게 물어본 은비였지만,
어쩐지 엄마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평소에 인자한 웃음을 달고 다니시던 엄마의 모습이 아닌,
어쩐지 불안한...어쩐지 어색한... 그런 엄마의 모습이랄까.
"은비야, 오늘은 그냥 일찍 자는 편이 낫겠구나."
"엄마, 무슨 일 있어요?"
"우선 공부부터 하고 일찍 씻고 자거라."
애써 은비의 대답을 회피하시는 은비의 어머니.
평소 같았다면 "그래, 공부 끝나고 놀렴."하고 대답해주셨을 텐데,
어쩐지 평소와는 다른 엄마의 모습에
조심스런 불안감이 생기는 은비다.
"오늘은 여태까지 공부했던 것을 총 정리해보도록 하자꾸나."
"네, 엄마."
"대한제국을 세우신 분은 누구지?"
"대한제국을 세우신 분은 고종황제예요.
고종황제께옵서는 대한제국을 세우신 후, 광무개혁을 하셨고요.
그 분께서는 광무개혁을 통해 군사와 산업, 교육의 진흥을 꾀하셨어요."
"고종황제께오서는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변형하셨다. 그 목적이 무엇이더냐?"
"그 동안 떨어진 자주 독립 국가로서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였어요."
총정리를 하는 것이라 그런지,
은비의 어머니의 질문은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어머니 때문에,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는 은비.
친구들에게 아무래도 못 갈 것 같다는
그런 내용의 문자 한 통이라도 보내면 좋으련만,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끌려가(?)
수업을 받는 은비에게 그럴 시간이 없었음에
은비는 속이 초조함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그런 은비의 초조함을 눈치챈 은비의 어머니.
"수업을 할 땐 집중하라는 말을 내가 몇 번이나 일러주었더냐!"
".....죄송해요, 엄마."
"마지막 질문이다. 그러니 조금만 참으려무나."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은비의 훈육에 대해 남달리 열심이었던 은비의 어머니다.
평범한 서민층이라면 절대 신경쓰지 않을,
천자문과 사자소학, 논어, 중용, 맹자, 대학 등등까지
세세히 가르쳤었던 은비의 어머니다.
게다가, 여자의 기본기라고 하여서
어렸을 적부터 바느질을 익히게까지 했었다.
머리에 그릇을 얹고서 사뿐히 걷게 하는 연습은 물론,
늦은 밤에는 외출을 아예 금지시키는 은비의 어머니다.
"대한제국의 벼슬에 대하여 말해보거라."
한참의 고심 끝에, 은비의 어머니 입에서 나온
마지막 질문.
"대한제국의 제일 위에는 대왕 전하께서 계십니다.
원래는 황제 폐하라 칭해야 옳지만,
전대 황제를 끝으로 중국의 압박으로 인해,
다시 대왕 전하라는 호칭을 쓰고 있습니다."
약간 어려운 질문이었을까?
그녀는 머뭇거리다 다음 말을 이었다.
"그 밑으로 삼정승이 있습니다.
삼정승에는 으뜸으로 영의정이 있고,
그 밑으로 좌의정과 우의정이 있습니다."
"잘 알고 있구나. 계속 하거라."
"그 밑으로 6조가 있습니다.
6조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가 있사옵고
그 으뜸으로는.....................그 으뜸으로는....................."
약간 머뭇거리는 듯 했지만
술술 말을 했던 은비였다.
어렸을 적부터 수도 없이 반복해왔으니,
그만한 일은 은비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린 건지,
말을 잇지 못하는 은비.
"그만하면 되었다. 멈추거라."
대답을 잇지 못하는 은비를 보면서,
평소에는 추상과 같은 호통을 쳤겠지만
오늘은 조용히 넘어가는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선 은비에게 묻는다.
"은비야, 네 아버지가 보고싶으냐."
"하지만 엄마! 아빠는 우릴 버렸잖아요, 흡...,,, 버렸잖아요........."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마자,
그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을 툭! 떨구고는,
아빠가 자기를 버렸다는 얘기만을 반복하는 은비다.
"은비야, 내 말을 잘 듣거라."
"흐...흡...........무슨.....말씀인데요? 흐흑........"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슬픔에 젖어
조용히 떨려온다.
그런 그녀를 애처롭게 쳐다보며
비장한 각오로 말문을 여는 그녀의 어머니.
"네 아버지가 널 찾으신다. 네 아버지가 널 찾으셔."
그 말에 눈물을 툭툭 떨구고 있던 은비의 고개가
번쩍 올라가고,
불안함에 작게 떠는 그녀의 입술은 조심스레 벌리어진다.
"아.......버지..............가 저를.......요?"
그녀의 물음에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이시는,
그녀의 어머니.
그렇게 그들의 밤은,
때아닌 눈물로 그렇게 점점 깊어져만 갔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눈가를 비비고서 서서히 기지개를 켰다가,
어제의 일이 생각남과 동시에 재빨리 몸을 일으키는 은비다.
조심스레 엄마의 방에 다가가서는,
문 앞에 공손히 서서
"엄마, 기침하셨어요?"
"그래, 들어오려무나."
엄마의 앞에 살포시 무릎을 꿇고 앉는 은비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은비의 어머니는 은비에게
곱게 다려진 한복을 내어 준다.
"우리 은비, 머리 땋아 줄까?"
"응, 헤헤. 오랜만에 엄마가 나 머리 손질 좀 해주라."
"그러자, 그럼. 은비야, 머리 많이 길었네?"
찰랑찰랑 윤기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면서,
한갈래로 곱게 땋아내리는 은비의 어머니.
엄마의 손길에 편안히 눈을 감던 은비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아빠가 왜 보자고 하시는 건줄 알아?"
"글쎄, 아빠가 갑자기 은비가 보고 싶으신 걸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은비의 어머니도 은비도 그 말이 절대 사실이 아닐 거라고
마음 속으로 깊이 생각하고 있다.
정략결혼으로 인해 맺어진 은비의 아버지와 어머니.
허구헌날 외도를 해대는 은비의 아버지 덕에
파란만장한 청춘을 큰 기왓집 담 속에서 썩어나야만 했던,
은비의 어머니였다.
어쩌다 갖게 된 아이.
은비의 아버지는 그 아이를 낳게 되는 순간,
그 아이가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버리곤,
그가 무척이나 아껴하던 첩을 집 안으로 당당히 데리고 왔다.
그는 대한제국의 이조판서였다.
은비가 지난밤, 엄마의 질문에 선뜻 이조판서라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이유,
그것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같아서는 내쫓고 싶었을 은비의 어머니와 은비였지만,
명색이 이조판서라는 벼슬 때문에
다른 이들의 이목이 두려워 집 한채를 주고는
아예 연락을 끊고 살았던지 어연 17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은비에게 때아닌 호출을 한 것이었다.
끼익-
갑작스럽게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처음 들어보는 사내의 낮은 목소리.
"마님, 안에 계십니까? 아가씨를 보내시라는 대감마님의 명이 계셨사옵니다."
"잠깐만 기다리게. 은비가 한복을 다 입을 동안 기다리게나."
빠른 손놀림으로 은비는 한복을 입어나갔다.
다 입은 한복의 매무새를 다시 한 번 만져보고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사내에게 다가섰다.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몸을 돌아서며) 가시죠."
"예, 아가씨."
..........
..........
..........
..........
..........
넓디 넓은 기왓집.
서울에 이런 집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크다.'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집이었다.
"대감마님, 아가씨 드셨사옵니다."
"들라 해라."
태어나서, 정말 태어나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란 사람의 목소리.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눈물을 꾹 참아내곤,
방 안으로 몸을 움직인다.
"아버님, 소녀 오랜만에 문후드리옵니다. 그간 만수무강 하셨..............."
아빠를 보면 무어라 말해야할까,
오는 내내 그 생각만 한 그녀의 조심스런 첫 인사를
무참히 잘라내는 목소리.
약간은 간드러지면서도, 날카롭고도 높은 목소리.
아버지란 사람의 첩.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 것이냐. 이름이나 말해보거라."
"................................."
대답없이 입을 꾹 함구한 채로 앉은 은비.
"지금 내게 반항을 하겠다는 것이냐?
나는 네 어미나 마찬가지다. 당장 그 입을 열지 못할까?"
"제 어머니와 마찬가지라 하셨습니까?
세상 천지에 자식 이름조차 모르는 어미가 어디있답니까?"
어머니와 마찬가지라는 아버지의 첩인 그녀에게
어머니 자리를 뺏었다는 마음에 그만 울컥해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말대꾸를 해버린 은비다.
"크흠. 그만하거라. 이름이 무엇이냐?"
약간 위압감 있는 그녀의 아버지의 목소리.
그래도 핏줄은 핏줄이라, 공손히 대답하는 은비였다.
"하은비라 하옵니다."
"내가 너를 부른 이유를 알고 있더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역시, 이유가 있었던 거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은비였다.
'그럼 그렇지, 까닭이 있었겠지...'
그런 그녀의 귓가를 스치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
"너는 대한제국의 세자빈이 될 것이다."
"예?"
"잘 듣거라. 지금 조선 왕실에서는 조심스레 세자빈을 간택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느냐?"
"모르고 있었사옵니다."
"쯧,쯧... 대체 네 어미는 무얼 하길래 아는 것이 이리도 없는 것이냐."
'엄마를 욕하지 마세요, 욕하지 마세요, 그러지 마세요...'
차마 입밖에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맴도는 그 말을
몇번씩이나 되풀이하는 은비였다.
"내가 중전마마께 조심스레 말씀을 올렸다.
내 여식이 17살이라고, 현 세자마마와 나이도 같으니 어떻겠냐고 말이다.
알다시피 나는 이 나라의 이조판서이고,
나와 손을 잡으면 해로울 것이 없었기에
중전마마께서는 단박에 승낙을 하셨지."
"저는요? 저는 보지도 않으시구서요?"
"은비야, 네가 세자빈이 되어야만 우리 가문이 번창할 수가 있어."
내게 부탁 아닌 부탁, 명령 아닌 명령을 하고 계시는
우리 아빠, 아니, 아버지라는 존재.
나도 모르는 새에 추진되던 세자빈 간택.
그게 왜 내가 되어야해? 우리 가문을 위해서?
"대체 아버지께서는 왜 저를 쫓아내셨나요?
그 어린 것을 품에 따뜻이 보듬어주지도 않은 채로............"
"흠, 흠. 그 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단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뇨! 그런 말이 어디있나요?!"
격한 마음에 순간적으로 아빠에게 따지는 말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곧바로 날아오는 화살같은 아빠 첩의 말.
"이년이 배부른 소리하고 자빠졌네."
".................................."
"남들은 되지 못해서 안달인 자리야, 이년아."
".................................................."
"가문을 위해서 네 년 하나쯤이야 영광이라 생각하고 희생해야되는 거 아니니?"
가문을 위해서라니요.
아줌마, 아줌마는 제가 진짜 자식이 아니니깐
그런 말 함부로 하실 수 있을지 몰라도요,
전...저는.........제 일이라서 절박하거든요.
전 평범한게 좋거든요, 평범하고 싶거든요.
"세자빈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질 말거라.
네가 도망치거나 세자빈이 되기를 거부하는 즉시,
네 어머니와는 바로 이혼하게 될 테니까.
그 집도 내 명의읜 거 알고 있겠지?"
참으로, 참으로 독하십니다.
엄마는 아직도 아빠를 잊지 못해서,
달 밝은 밤이면 저 몰래, 남몰래 눈물을 훔치시곤 하는데...
아버지께서는 어찌 그리 모진 말을 뱉으신단 말입니까.
"한 가지 약조해 주실 수 있으세요?"
"무엇을 말이냐?"
약조라는 말에 잠시 미간을 찌뿌리시더니,
다시금 인상을 펴고 물으시는 아빠, 아니 아버지라는 존재.
"제가 세자빈이 되면요, 그러면요, 엄마 다시 본가로 오게 해주세요."
"뭐야? 이년이 미쳤나? 감히 우리 집에 누굴 들인다고?"
"원래 이 자린 엄마 자리잖아요? 아줌마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에요."
"하, 이년 말 꼬라지좀 봐라. 여보~ 뭐라고 야단 좀 쳐봐요."
경박한 아빠 첩의 말투에, 나는 결코 질 수 없었다.
엄마를 위해서, 엄마를 생각해서 절대 질 수 없었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자,
결국 아버지에게 구원 요청을 하는 첩 아주머니.
"........알았다. 어차피 이목도 있고 해서 다시 데려오려고 생각했었다."
"여보! 여보, 지금 미쳤어요? 그럼 저는 어떡하구요?!"
"당신은 내가 따로 방편을 마련해 주리다."
"무슨 방편이요? 지금 얘 엄마가 오겠다는데 무슨 방편이요!"
"좀 기다려봐요, 사람이 차근차근 생각을 할 줄 알아야지................"
예상했던대로 심하게 난리를 피우시는 첩 아주머니.
엄마가, 이 틈바구니 속에서 잘 살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든다.
"내일 중전마마를 뵙게 될 것이다.
기본 법도는 네 엄마를 통해서 잘 익혔으리라 생각한다.
내일 궁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너는 세자빈 거행식이 있기 전까지,
나는 물로니거니와 니 엄마까지도 볼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작별인사는요? 말 한마디 제대로 못건네고 와버렸는데...........
마지막으로 엄마와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도록 해라.
내일 궁에 들어가게 되면 아마 웬만해서는
궁에서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런 줄 알아라."
".........엄마.......는요?"
"대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엄마를 찾는 것이냐?
여봐라, 이 아이를 처소로 데려다 주어라."
매몰차게 나를 끌어내시는 아버지란 존재.
너무...........하십니다.......................아버지.......................................
"예! 대감마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나를 끌어내는,
이 집 하인들.
"아가씨, 이 곳이 오늘 아가씨께서 머무르실 곳입니다."
"알겠어요, 그만 돌아가 보세요."
"예, 아가씨. 안녕히 주무십시오."
내게 꾸벅 인사하고는 뒤돌아 사라지는 하인들.
하인들이 나가자마자, 고이 감춰두었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우선 엄마에게... 엄마에게 연락을 하자...
단축번호 1번을 꾸욱 누르고, 신호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빠른 속도로 문자를 쳐서 전송시켰다.
[엄마, 나 은비에요. 엄마, 나 내일이면 궁에 들어가게 된대.
엄마도 놀랍지? 내가 세자빈이 된다네. 엄마 얼굴은...
세자빈 거행식이 있을 때, 그 때 볼 수 있다네.]
여기까지 문자를 친 후에, 그 다음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너무 가슴 아파서, 그래서..........
그냥 전송시켜버렸다.
그 후에 마음을 추스리고, 문자를 보려 한 사람들은,
내 친구들이었다.
[얘들아, 안녕? 얘들아, 나 세자빈이 된대.]
전송을 시키려다가 너무 뜬금없는 말인 거 같아서 지웠다.
[음...얘들아, 나 이제 너네 얼굴 못보겠다.]
후............. 이것도 너무 이상한데.....
[얘들아, 있잖아. 나 내일 궁...]
똑, 똑, 똑.
갑작스런 노크 소리에 당황한 나는,
문자를 치고 있던 핸드폰 플립을 닫아버리고,
"들어오세요."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 들어온 사람은,
우리 집에서 일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한 시비였다.
내 소싯물(세수하는 물)을 들고 와서는,
내게 말을 건냈다.
"아이구~아가씨는 피부가 너무 곱습니다유."
"...칭찬 고마워."
"아니구먼유, 진짜 부러운 걸유? 그나저나 세자빈 되셔서 좋으시겠시유."
"......................................."
그러자 꾹 다물어진 내 입.
세자빈, 정말 하기 싫은데.............
정말... 정말 하기 싫은데...................
"아닌가? 하긴, 안좋을 수도 있겠구먼유.
세자저하께서는 따로 사귀는 사람이 있으시니....."
"응? 뭐라구? 따로 사귀는 사람이라니......???"
따로 사귀는 사람이라니?
그럼 난? 난 뭐야?
하......... 누가 속시원히 내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이건 그냥 나도는 말이구먼유.
세자 저하께오서 따로 사귀는 사람이 있으시다고유.
근데 그 사람은 엄청 집이 가난한가 봐유?
그래서 중전마마께오서 세자 저하께 자꾸만 헤어지라고 하시구......."
"........................."
아무 말이 없어서 무안했던 건지,
더 이상 끄낼 얘기가 아니라 생각되었던 건지,
나가려고 하는 그 시비.
"잠깐만 여기 앉게."
"예?"
"잠깐만 여기 앉아서 내 말동무가 되어주시게."
"알겠구먼유."
이 시비한테라도 물어야겠다.
평범하게 살아왔던 내가, 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미리 궁에 대해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깐.
"현 세자저하의 이름이 모야?"
"에고, 그런 것도 모르셨세유?
그러고도 어찌 이 나라 사람이라고 하실 수 있으세유?"
내가 살아왔던 세상에서는,
현 세자의 이름따위는 필요 없었으니까.
그저 각자 삶에 충실하고, 서로를 향해 웃고
그랬으면 되었었으니까. 근데 이제는 그런게 안통하네?
"현 세자저하의 성함은유~ 성은 '이'에, 이름은 '하'자, '민'자 이십니다유."
"이하민...???"
"아이구~아가씨가 경칠 소리를 하고 계십니다유.
어찌 세자 저하의 이름을 그리 함부로 부르십니까?"
"괜찮아, 그나저나 나한테 궁에 대해서 얘기 좀 해주면 안돼?"
"세자 저하께는 다른 저하가 2분이나 계십니다유.
현민세자와 유민세자라고 불리우는데 이 3분이 왕세자 자리를 놓고
엄청난 대립 구도를 취하고 있습죠."
으엥? 대립구도라니?
이미 정해진 왕세자 자리 아니었어?
"왕이 되기 전에 폐세자가 될 가능성도 있으니,
나머지 두 분 저하께는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죠.
하지만 아가씨께서는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당께유."
"응??? 왜.......???"
"그게 말입니다유, 아마 마마께옵서는 지금 이 상태로라면
하민 세자 저하와 결혼하게 되실 것입니다유.
하지만 만약에, 이건 진짜 만약인디유!
하민 세자 저하께옵서 폐세자가 되신다 하시더라도
아가씨께서는 전혀 피해 볼 게 없단 말씀이지라우."
그게 무슨 소리야?
인정하긴 싫지만 내 남편이 되는 거잖아.
그런 남편이 폐세손이 되는데 왜 나한테 피해가 없는 거야?
궁금한 내 마음을 눈치라도 챈 것인지 계속 말을 잇는 시비.
"그게 말이지라우, 현민 세자 저하께옵서 하민 세자 저하를 제치고
왕세자 저하가 되었다고 칩시다우.
그러면 아가씨께옵서는 음.......쉽게 말해서 서방님이 바뀌게 되는 것이라우.
아가씨는 계속 빈궁 자리에 머무르게 되시는 거구,
바뀌게 된다면 세자 저하가 바뀌게 된다는 말씀이지유."
갑자기 머리가 띵- 해왔다.
드라마나 소설을 보았을 때의 상황이 내 현실이 된 것만 같은 기분...
꼭 그런 데를 보면 궁궐은 정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곳으로 나온다.
근데, 그 설정이 거짓이 아닌가보다.
하...........
남편이 순식간에 바뀔 수가 있단다, 바뀔 수가..........
아무리 정략이라고 해도 한 번 정해진 건데......................
내 의사와는 상관 없이,
내 의사는 무시된 채로,
내 말 따위는 들어주지 않는 채로,
그렇게 궁궐 일은 진행될 수 있나보다.
Top을 향한 나의 머나먼 여정, 그 길은 언제나 외롭다. by J은짱
안녕하세요? J은짱입니다.
미숙한 제 소설을 보기 위해 클릭하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 소설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꼬리말로 남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약간 지루할 법한 이번 편은, 다른 소설의 프롤로그나 다름없구나~
하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욱 더 열심히 소설을 쓰는 J은짱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카페 게시글
BL소설
퓨전사극
#궁중일기 첫째장#
J은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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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46
07.10.28 03:2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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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ㅋㅋ 재밌어요~다음편도 기대기대!! 건필하세요~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에 미치도록 노력해볼게요ㅠㅠ
재미있어요^^
보셨군요~☆ 이렇게 댓글까지 달아주시다니^^;; 재밌게 보셔서 다행이에요.
이거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박소희작가님의 '궁' 이랑 너무 똑같아요
제가 '궁'이랑 다르게 하려고 설정부터 바꿔 났어요ㅠ_ㅠ;; 채경이는 평민이었잖아요! 얘는 아니란 말이에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