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게을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여름날 장맛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비바람이 몰아치는 소리에 놀라 내다보니 구름이 내려앉아 앞산 허리를 휘감아돌고 있는 정경이 눈앞에 펼쳐져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머리에 스쳤던 생각이다.
무슨 날씨가 이러는지 모르겠다. 가을은 저만치 물러가고 심술궂은 겨울이 문턱을 넘은 것 같은데 날씨의 모습은 그게 아닌것 같다. 날씨와 계절은 제모습 다워야 가장 이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인데 말이다. 지금 시기를 이곳 산골에서는 늦가을이라기 보다는 초겨울이라고 말하는 표현이 훨씬 더 알맞은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론 그게 아니다. 지난해 일기를 보니 꽤 추웠던 영하 9도였다. 오늘 아침은 어떤가? 영상 15도까지 기온이 치솟았고 강풍주의보가 내려졌다. 엄청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다른 모습, 제모습을 보일거란다. 수은주는 영하로 뚝 떨어져 추위가 몰려올 거라고...
만년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농부이면서 매일 아침 일기나 겨우 쓰는 어쭙잖은 글솜씨로 감히 글쟁이라 말하는 것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촌부이긴 하지만 긴 세월동안 이어오는 나름의 습관이고 버릇이라 오늘도 뒤늦은 일기를 쓴다. 유명한 소설가 박완서 작가님은 이렇게 말했다. '삶이 곧 문학이다' 라고... 그 말씀을 나는 굳게 믿고 내 삶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딱히 한 일도 없는데 잡생각에 아침을 허비하고 이제서야 끄적거리고 있다.
어제 아침나절, 날씨가 추운 건 아니었지만 하도 우중충하여 난롯불을 지폈다. 아내와 커피 한잔 하는 분위기는 기가 막혔다. 너무 뽀송뽀송하고 실내에 온기가 퍼지면서 훈훈함이라서 좋았다. 바깥에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며 산골스런 정취를 더했다. 이런 호사에 산골살이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장독대 청소나 할까라고 제안을 했다. 아주 좋은 생각을 했다고 하여 이내 장독대 청소준비를 했다. 준비라고 해야 별 것이 없다. 두 군데에 물을 담고 수세미 두 개면 끝이다. 촌부가 먼저 애벌닦기를 하고 지나가면 아내가 뒤이어 깨끗하게 수세미를 번갈아 빨아가며 잘 닦았다. 다시한번 더 아내가 깨끗한 수세미로 마무리를 했다.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발효 먹거리가 저장된 장독이라서 너무 소중하여 정성껏 잘 닦았다. 반짝반짝, 반질반질 윤이 난다. 작은 일이 아니다. 너무나 소중한 아주 큰 일이다. 흐뭇하게 웃는 아내의 모습도 좋았다.
첫댓글
참 멋진 삶을 사시는
촌부님댁 이야기를 읽으면
저도 덩달아 설레는 마음 이랍니다
멋진 것은 아니고
그저 수수한 삶이죠.
덩달아 설레는 마음,
그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멋진 산촌 이네요
이렇게 되기까지
23년이 걸렸습니다.ㅎㅎ
와~~~ 보는 것 만으로도 멋지네요. 부럽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장독대가 보기 좋고 장작 타는 냄새에 커피 한잔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건강하십시요. ^^
함께하는 그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예전 도시에 살던 때
장독대가 있는 집,
난롯불을 지피는 집을
꿈꿨었답니다.ㅎㅎ
그만큼 갈고 닦으셨기에
그런 호사스런
생활을 하시겠지요.
반짝반짝
옹기종기 모여있는
항아리들도
소곤소곤 대화를
하는듯 합니다.
뽀드득 개운하다고.. ㅎㅎ
즐밤되세요~~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 둘
늘려가는 장독
그 장독들은
우리의 건강을 위해
간장, 된장, 고추장을
보듬어 곰삭아 가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