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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4년 송구영신 예배 시나리오
청정한 삶을 지향하는 구도자이면서도 제 마음을 갈고 닦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허영과 교만과 욕심의 때가 낀 제 마음의 창문은 게을리 닦으면서 다른 이의 창문이 더럽다고 비난하며 가까이 가길 꺼려한 위선자였습니다.
처음에 지녔던 진리에 대한 갈망과 사랑에 대한 열망은 기도의 밑거름이 부족해 타오르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침묵의 어둠속에서 빛의 언어들을 끌어 들이시는 주님 지난 한 해 동안 당신이 선물로 주신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밝고 부드러운 생명의 말보다는 칙칙하고 거친 죽음의 말을 더 많이 건네고도 제때에 용서를 청하기보다 변명하는 일에 더욱 바빴습니다.
제가 말을 할 때마다, 주님은 제 안에 고요히 머무시어 해야 할 말과 안 해야 할 말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고 남에 관한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소서.
제 작은 머리로는 다 헤아릴 수 없고 제 작은 그릇엔 다 담을 수 없는 무한대이며 무한량의 신(神)이신 주님, 한 해 동안 걸어온 순례의 길 위에서 동행자가 되어준 제 이웃들을 기억하며 사람의 고마움과 삶의 아름다움을 처음인 듯 새롭히는 소나무 빛 송년(送年)이 되게 하소서.
저무는 이 한 해에도 솔잎처럼 푸르고 향기로운 희망의 노래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희망의 새해로 이어지게 하소서.
지금 가고 오는 시간의 중간지대에 우린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해를 잘 마무리 할 수 있고, 또 한해를 축복 속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느 예배보다도 진지한 마음으로 예배에 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촛불예배로 드립니다.
에덴동산에 밝은 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자 그 밝은 빛은 어둠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때 강단을 제외한 모든 불을 끈다 / 담당 : 한슬기, 한지혜)
그 후 우린 이렇게 늘 어둠속에서 내일에 대한 소망도 없이 살아 왔습니다. 늘 불안했고, 늘 뭔가에 쫒기며, 내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속에 생활해 왔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런 어둠속에 있어야 합니까?
지금 밝은 태양되신 주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이 어둠은 반드시 물러갈 것이고, 새벽은 우리에게 옵니다.
태양은 반드시 떠오릅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나 그 태양이 비추지는 않습니다. 밝고 깨끗한 자에게만 비춥니다. 내년을 기대하며, 내년은 밝은 태양만이 나를 주관해 달라고 기도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어둠의 문제를 이 시간 해결합시다.
에덴에서 잃어버린 밝은 빛을 이 시간 다시 찾읍시다. 그 길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입니다.
여기 작은 불빛이 있습니다.
(이때 담임목사는 강단의 촛대 위에서 촛불을 옮겨 받는다)
이 작은 빛을 받고 태양처럼 큰 빛 되신 주님을 모시는 시간을 갖길 원합니다.
이때 반주자가 258장(샘물과 같은 보혈은)을 천천히 친다.
여기 강단의 불빛을 받아 여러분에게 나누길 원합니다.
남, 여 전도회장님은 나와서 불을 받아 나눠 주시기 기도합니다. (한슬기 집사님, 한지혜 전도사님)
이때 두 분이 나와서 불을 받아 좌, 우편의 교회 공동체들의 초에 불을 붙이며 들어간다.
불을 다 붙여 주었으면, 반주자는 반주를 멈춘다.
다 같이 묵도 드립니다.
큰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2:20-21).
알파와 오메가 되시어서 만백성들을 하늘 사랑으로 돌봐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송구영신예배에 저희 가족모두를 초청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지은 죄와 잘못을 도말하여 주시고 새로운 영으로 거듭나 예비된 하늘 충만한 은총을 받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죄악에 잠든 영혼들을 깨우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지난 1년을 정리하면서 회개의 기도를 저와 여러분이 교독으로 드립니다(순서지를 참고해 주시기 기도합니다).
온 맘을 담아서 한 구절 한 구절에 힘을 주어 고백 드립시다.
집례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가장 하나님을 아프게 했던 잘못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참회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다같이 :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며 하늘의 신령한 비밀을 자녀들에게 주시는 아버지! 하늘의 참되고 신령하며 크고 비밀한 일들을 알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주님이 주신 놀라운 사랑을 누리고 살았지만 수시로 세상을 바라보며 죄를 범하는 구습을 버리지 못하는 저희들의 죄를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연말연시만 되면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새 출발해도 몇 날이 못 되어 죄의 생활로 돌아가는 믿음 없는 저희들의 행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지금까지의 지난 행실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부름받아 은혜로 누린 축복은, 우리가 특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특별하게 구별된 살을 살라고 주신 것을 깨닫습니다. 귀한 달란트를 헛되이 낭비하며 자랑하고 교만하게 살았던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 방법을 생각했던 저희들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한해를 돌아보며 이룬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저희들에게 오래 참으심으로 기다려 주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지금부터 1~2분간 조용히 지난날을 돌아보며 주님 앞에 점검 받을 부분들을 점검받고 새로운 한해를 맞이합시다.
-반주자는 계속 (305장 찬송)
주님의 주권에 의해 움직이기 보다는 내 뜻대로 살아왔던 것을 회개합시다.
주님을 위해 쓰여 진 시간, 달란트, 물질이 아니라 나를 위해 사용했던 것들을 회개합니다.
주님이 하라고 하신 일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주로 했던 지난날을 회개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사역의 열매보다 내가 하고 싶고 내가 맺고 싶은 열매를 향해 매진해 얻어진 결과로 만족하며 살았던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제 새롭게 결단하오니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성령님 함께 하셔서 똑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지 않도록 내년을 인도해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의 고백을 들으시고, 주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
아멘과 동시에 다시 불을 켠다(담당 : 한슬기,한지혜)
각자 앞에 있는 불을 끄고 찬송 412장을 드립시다.
특별히 찬송하면서 우리의 결단을 새롭게 하는 기회 되길 기도합니다.
4절부터 다시 부르며 여러분이 “늦은 비” 말씀 묵상하면서 한해를 정리했던 죄 덩이들을 물두멍에 넣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회개 했고, 주님의 사죄선언이 있었으며, 지금 우리가 찬송하면서 주님께 가까이 갑니다. 정말 죄를 경멸하고, 멀리 하겠다는 결단과 함께 여러분의 죄의 제목을 기록한 종이를 한분씩 나와서 물두멍에 넣어 주세요.
다 끝나고 “말씀 보십시다.” 할 때 물두멍은 나간다.(담당 : 한지혜)
말씀 보십시다. 성경은 창세기17:15-22절입니다.(페이지는 구약 14페이지입니다)
새롭게 약속을 기대하는 사람들
성경 : 15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9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20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22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창세기17:15-22)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여는 대망의 2023년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이란 너무나 의미 있는 시간이고,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소중한 시간에 어디에서 누구와의 만남을 갖고 있느냐는 것은 그 새로운 한해를 성공적으로 사느냐 아니면 시작부터 실패하느냐라는 갈림길에 서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에게 절대로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이 만남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17장1절을 보시기 기도합니다.
“아브람의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앞장 마지막 절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 86세 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직도 자식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자식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하갈을 통하여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는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방법이 믿음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편법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다시 13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13년은 아브라함에게 영적 황무지와 같은 시기였습니다.
잘못했다고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이 반응을 보이시지 않고 침묵으로 지내온 13년은 아브라함에게 너무나 긴 시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얻은 이스마엘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것은 잘못된 방법이라고 책망을 하신 다든지, 아니면 아브라함에게 다른 말씀을 주시어 잘못됨을 깨닫게 하였더라면 더 나을 텐데 13년 동안을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13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도, 대화도 없는 메마른 영적 건조기를 지내야 했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에게 지금 겪고 있는 13년은 가장 험난한 고통의 세월이며 뼈를 깎는 아픔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들도 아브라함처럼 믿음 생활을 곧 잘 해나가다가 그만 넘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들은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하나님이 더 이상 축복을 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나무라고 힐책하고 심지어는 우울증에 빠져 자포자기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고, 내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침묵은 반드시 축복을 거두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내가 잘못을 회개하고 깊이 반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침묵은 내 믿음을 정돈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들이 넘어진 허물의 분량에 비해서 오히려 더 많은 은혜를 뿌려 주시려고 우리를 다시 찾아오십니다.
로마서5:20에 의하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씀하심이 실감납니다.
이제 하나님은 13년간의 침묵을 깨고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13년 만에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말씀입니다.
철저하리만큼 지칠 때로 지친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언약.v2 언약.v4 언약.7 언약.v9 언약.v10........(무려 17장 한 장에만 12번 사용)
이것을 영어 성경에는 ‘새로운 하나님의 약속’(언약)이라고 했습니다.
왜 아브람에게 하신 첫 말씀이 언약 즉 약속이라는 단어입니까?
그것보다 더 좋은 단어가 없습니까?
'언약 신앙'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언약, 약속이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약속은 우선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계시입니다.
1절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 첫마디는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와 부정적인 방법으로 작당을 하고 하갈을 통해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힘이나, 사라의 재간이 없이도 자신의 약속을 달성시킬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두를 아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둘이서 아이를 나아보자고 생각해서 낳았던 이스마엘을 어떻게 낳은 것을 아십니다.
둘만의 시간으로 속삭이며 했던 말들을 다 아십니다.
아니 하나님은 말없이 눈짓으로 하는 그들의 속을 뚫고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지금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 사라는 90세 이었으니 인간적으로 보면 절망적인 때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불가능은 하나님의 가능을 낳게 하는 최적의 기회임을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저지르는 많은 실수의 원인도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인식 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 경우에서 저지르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속성이 전능자시라면 그 속성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의 삶은 계속해서 힘을 얻고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이 말씀의 만남이 아브람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은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요구합니다.
1절에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측면을 강조했었고 지금 17장에서는 생활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믿음이 먼저요 그 다음이 생활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이 믿음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마치 오늘 드리는 송구영신 예배의 주제가 “변화 그리고 새 출발”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변화를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놓치지 마십시오. 믿음이 바로 서 있어야 생활이 변하게 됩니다.
다시 본문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 앞에서 행하라는 말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음으로써 신앙의 뒷걸음을 쳤던 사건을 회상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의식이 없이 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지난날의 아브라함에게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비추어 성령의 조명 아래에서 자신의 태도가 바로 잡혀있는지를 가려가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말에 넘어간 것도 자의적 판단이 앞섰기 때문이지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 앞에서 걷는 삶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완전 하라는 말씀은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완전무결함을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일편단심으로 한 가지 일을 위해 전력투구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 곁길로 가거나, 자기 꾀로 살려고 하거나, 적당주의와 편법으로 산 것에 대한 잘못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타협적인 자세를 버리고 목표를 향해 오직 한 걸음씩 몸가짐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런 믿음과 자세로 사는 사람은 사라의 허튼 수작에 한눈을 팔 시간이 없습니다. 온 정신을 하나님께 맞추고 살아갈 뿐입니다.
거룩하고 의로운 삶이란 내면에서부터 외부로 퍼져나가는 파장을 일으키는 역동적인 삶이며 곧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절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진행시키며, 하나님이 종결지어 주십니다.
빌립보서1:6을 아십니까?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5:24을 아십니까?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공로나 자격으로 얻은 보상이나 권리가 아닙니다.
마치 구원 자체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 자체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약속을 이루시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불평을 합니다.
약속은 선물이지 내 자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넷째, 하나님의 약속은 새 이름을 부여 해 줍니다.
5절에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조상이란 뜻입니다.
새 이름의 수여는 본인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드러내주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새 출발을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송구영신예배의 주제가 변화 다음에 새 출발이라는 이유를 이제야 아시겠습니까?
사래도 사라라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15절에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그러니까 자식이 없어서 조롱을 받던 자를 열국의 어미에(16절)로 만들어 준다는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부부가 새 이름을 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그들의 허물을 잊으시고 사랑의 새 사람임을 보여 주신 의미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들이 열국의 아비와 어미로서 자신들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타일러 주고 동시에 이처럼 귀한 사명을 위해 다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자비와 관용을 그들의 새 이름 속에 새겨 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성도라는 새 이름을 받고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에베소서4:1-3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새 이름을 받은 사람들은 새 이름값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매일 같은 날로 반복되게 만드시지 않고 하루를 24시간으로 일 년을 365일로 만들어 놓으셨습니까?
왜 2023년의 새 아침을 우리들에게 맞이하게 하십니까?
새 날에 새로운 사람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새 해에는 새 사람으로 다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새날을 맞이하는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바뀌듯이 우리의 이름도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 신령한 사람으로, 교회를 멀리하던 사람이 교회를 가까이 하는 사람으로, 약하여 이리저리 넘어지던 사람이 강한 사람으로, 헌신 없이 사는 사람이 헌신의 사람으로 바뀌어 새로운 새 시대에 새로운 새 사람으로 이름값을 하며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찾고 계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약속이 지향하는 목표는 물질이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7절에 “너와 네 대대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와 어미에 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새 언약에 보면 이런 약속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하나의 화살표였음을 알게 됩니다.
즉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 다윗 왕이 나왔고, 그 혈통을 타고서 메시아가 탄생되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으로 각 나라에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의 열국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언약의 차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날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이상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들이 우리가 받을 약속의 유업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의 최대 관심은 유업으로 받을 보상 자체보다도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완전한 일치와 연합에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있어서의 언약은 자식을 얻고 얻지 않는 문제가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미래적 약속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약속은 변화의 사건입니다.
10절에서 “다 할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할례란 자신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외형적인 의식이지만 동시에 내면적인 믿음생활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실제적인 분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약속들을 기억시키기 위해서 두 종류의 시각 교재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는 하늘의 별들이고 다른 하나는 아브라함의 생식기입니다.
별들은 후손의 수효와 관련 되어있고, 생식기는 후손의 번식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시각교재입니까?
할례가 상징하는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님이 인정 할 수 없는 일체의 생각과 행실들을 내 몸에서 절단하는 것입니다.
육신을 죽이고 마음의 가죽을 베는 것을 의미합니다.
할례는 내 신체의 극히 작은 살 껍질을 잘라내는 것이지만 제일 예민한 곳이며 아픈 곳이기 때문에 육신을 죽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상기 시켜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새롭게 변화되는 것은 고통 뒤에 오는 결과입니다.
일곱째, 하나님의 언약은 나의 뜻에는 ‘아니오’를 하나님의 뜻에는 ‘예’를 요구합니다.
19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13년 동안 길렀습니다.
이스마엘은 불신의 씨앗이 맺은 열매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13년이 지나도록 약속의 자식을 낳을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연히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아들을 낳아 줄 것이라고 하자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18절)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너무도 오랜 세월을 이스마엘을 쓰다듬으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내 육신의 소욕을 끌어안고 있는 한 나는 믿음의 씨앗에 대한 그리움을 모른 채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눈앞에는 불신의 이스마엘 만 있었기에 믿음의 이삭이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아들을 낳아 준다는 말씀에 어찌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17절)라고 오히려 응수했던 것입니다.
내 눈이 불신의 이스마엘에게 쏠려 있는 한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 성취에 대해서 어찌하는 의문과 반발을 묻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이삭의 탄생은 이스마엘의 부정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의 욕망이 낳은 불신의 서자로만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런 식으로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제발 더 이상 괴롭히지 마십시오. 저는 기적을 행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 나이 100세이고, 고령이라는 것을 생각 좀 해주시고, 제 아내 사라 나이 90세입니다. 이미 죽은 것과 같은 우리들을 붙잡고 계속 농담 아닌 농담으로 저희들을 시험하시나이까?
저에게는 이미 13세나 된 이스마엘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스마엘이나 축복해 주십시오. 이스마엘도 제가 낳은 자식이 아닙니까? 저의 노력과 계획으로 생산해서 잘 기른 훌륭한 열매입니다. 제발 제 것을 써 주십시오.’
아브라함의 말은 그 동안의 시련과 기다림을 완전히 끝내고 싶어 자신이 이룬 육신의 성공을 하나님이 축복해주고 인정해 달라는 호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요청을 한마디로 ‘아니다’라는 말로 잘라 말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처럼 단호하게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꿈과 소망이 다 흩어지는 환멸을 느꼈을 것입니다.
100세나 되도록 애지중지 길러온 이스마엘 독자를 상속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허망할 뿐입니다.
할례는 아픈 것입니다.
이스마엘과 작별을 고한다는 것은 더욱 아픈 할례입니다.
다시 새로운 자식을 갖는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할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체험하려면 고통스러워도 이 길을 가야합니다.
나의 노력과 술책으로 성공시킨 내 육신의 자랑들을 모조리 잘라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이스마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해야 됩니다.
나의 이스마엘에 대해선 ‘아니오’라고 ‘no'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선 ’예‘, ‘yes'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당일 곧 이 날에 (23절) 할례를 단행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99세였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예’하고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13년의 공백 기간을 지나게 한 후에 다시 만나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빈손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의 손에는 21절에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에 대한 약속 성취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우리들도 아브라함처럼 메마른 영적 황무지를 순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환상도, 말씀도, 감동도, 기쁨도 없는 나날들의 여러 해를 거듭했을지 모릅니다.
여러 가지 악 조건으로 인하여 고통의 나날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오는 동안 괴로운 세월로 지내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명년의 약속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결코 빈손으로 자기 백성을 방문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꼭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명년의 약속을 선포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의 육적인 소망과 불순종의 자아에 대해서는 할례를 행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아멘으로 순종하는 삶의 모습에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2023년은 지나갑니다.
그리고 2024년은 바로 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명년에는 하나님의 약속된 이삭을 준비하시고 우리들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약속된 우리들의 이삭을 바라보며 명년 이 기한에 태어날 하나님의 이삭을 준비합시다.
명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 성취가 준비된 교회 교우 여러분에게 나타날 것을 확신하며 오늘의 고통과 인내가 명년에는 반드시 기쁨과 회복의 열매로 거둬지는 능력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할렐루야!
말씀을 붙들고 우리도 그동안 가졌던 약속이 아니라 13년의 침묵을 깨고 오셔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기대하며 명년에는 반드시 침묵을 깨시고 우리에게 오셔서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도하십시다.
특별히 새해에 여러분들이 교회와 가정과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이루고저 원하는 소원(비전, 꿈)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주님 앞에 조용히 침묵하며 소원을 아뢰고 이룰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자. 성령님이 함께 해 달라고 간구하자. 나를 통해 우리 교회에 목회행전이 세워지며, 사도행전 29장을 써내려 가길 원한다고 하나님께 간구하자. 하나님의 허락 속에 신바람 나는 한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약속이 이뤄지는 한해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내년엔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신 구원의 축복이 우리 교회와 가정 그리고 나에게 이뤄달라고 간구하는 시간을 갖자.
내년 한 해 동안 하나님이 나를 통해 뭘 하시길 원하시는지 조용히 묻는 시간이기길 원한다.
신년을 알리는 싸인이 있을 때 까지 기도하자. - (반주/찬송304장)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여러분
대망의 2024년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큰 맘과 큰 가슴으로 2024년을 맞이합시다.
2024년을 맞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시편1편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다 같이 마음을 열고 내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1-6/ 구약 페이지 805)
찬란한 빛으로 인도하는 주님을 찬양 합시다.
한만설 목사님 가정 나오셔서 찬양해 주시기 기도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시간입니다.
내 인생의 문제 내일의 문제, 삶의 문제, 직장의 문제, 가정의 문제에 답을 주고 길을 열어주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하나님 말씀 밖에 없다.
오늘 올 한해 내가 붙들고 달려가 모든 문제를 풀어
낼 수 있는 생명의 말씀을 달라고 기도하자.
우린 지난 한달 동안 올 한해 내게 주실 생명의 약속이 무엇인지 기대감을 가지고 살았다.
그리고 내게 꼭 맞는 말씀을 주시라고 기도하며 왔다.
한 가정씩 나와서 여러분의 손으로 말씀카드를 뽑자.
기대감 없이, 기도 없이 왔다면 나중에 뽑더라도, 꼭 기도하고, 기대를 가지고 올 한해 나를 인도할 생명의 말씀을 주시라고 소원하면서 뽑자.
먼저 가족단위로 나와서 여러분의 <소원기도제목>을 헌금함에 넣어라. 거기에다 헌금 넣지 말라. 따로 헌금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개인별로 뽑고 옆에 제가 서있을 것이니까 나에게 오라. 그러면 나와 박 장로님이 여러분을 위해 축복기도 하겠다.
그리고 들어가면서 한슬기 집사님에게 각 개인의 말씀카드에 나와 있는 성경구절을 알려주고, 옆에 한지혜 전도사님이 교회 생활카드를 주실 것인데 그것을 받아 들고 자리에 돌아가라.
들어가셔서는 말씀카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성경에서 찾아 교인생활카드의 올해의 말씀 란에 기록하고 그 말씀이 내게 어떤 영향력을 줄 것인지를 묵상하라.
그리고 그 말씀이 꼭 이뤄지길 소원하면서 기도하라.
오늘은 여러분 개인 것만 받으라. 참여하지 못한 식구들은 주일날 받으라. 개인에게 집중하라.
전체가 다 받을 때까지 기도해 준다.
“2023년,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아멘”
전체가 다 받았다면 여러분이 뽑은 액자를 앞에 들어라. 그 말씀을 3번 읽도록 하겠다. 시작!~
이 시간 신앙의 가장이, 올 한해 자녀를 위해 손을 잡고(얹고) 축복기도, 소원의 기도를 해주라. 청산유수처럼 안해도 좋다. 진정한 마음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주면 된다. 쑥스러워 하지마라 정말로 중요한 시간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족장들이 자녀들 위해 기도한 것들을 보라, 다 이뤄졌다. 자녀를 위해, 그 말씀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이뤄지길 소원하면서 기도해 주라. 그 말씀카드가 그대로 이뤄지길 위해 기도하라. 그 기도 후에 내가 기도하겠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 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119:97)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119:165)
사랑의 하나님! 올해 처음 주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갖습니다. 오늘 내가 받은 말씀이 올 한해 주께서 저를 위해 계획하신 말씀인줄 믿습니다. 그 말씀이 이뤄지게 하여 주옵소서. 그 말씀을 믿는 교회 공동체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루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여러분이 가진 교회생활카드를 꺼내라.
주일 예배 52주 정말 빠지지 않고 참석하겠다고 결단하자. 따라 하자! “나는 올 한해 예배생활에 성공하겠습니다.”
30년 목회사역의 첫째가 사도행전으로 세워가자고 했다. 즉 땅 끝까지 전도하는 것이다.
주님 올 한해 예수이름으로 100명 이상을 만나겠습니다. 다짐하자.
최소 10명 이상은 집중적으로 만나겠습니다. 다짐하자.
그리고 기도의 삶 매일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결단하고 성경1독 이상 하겠다고 결단하자.
이모든 것을 묶어서 하나님께 주일예배 서약 란에다 여러분의 이름을 기록하자. 지금 써라.
성령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결단을 하자. 다짐도 없이 어찌 이룰 수 있겠는가?
지금 불가능해 보여도 성령님께 강력히 요청하면서 기록하자.
매 주일마다 정검 하고 매 주일 마다 교회에서 주님 앞에 보여드리자.
결단하고 서약 것을 꼭 이뤄 주실 것을 소원하면서 찬송208장을 드리자
준비해온 헌금을 헌금함에 넣고 우리가 주님 앞에 했던 결단을 다시 상기하며 결단하자.(헌금 위원/한슬기, 한지혜 전도사)
지나간 날들 동안 사랑으로 함께 해주시고 은혜로 역사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은 부족한 저희들에게 일용할 양식과 하늘의 만나로 먹여 주시고 구하는 것마다 필요한 것을 채워 주셨습니다. 나약한 저희들에게 하늘의 권능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가정을 지켜 주셨고 일터를 지켜 주시고 나라와 민족을 지켜 주셨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성껏 주님 앞에 올해의 첫 예물을 드립니다. 또한 올 한해 이뤄지길 소원하며 소원을 담아 드렸습니다.
존귀한 하나님! 저희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로움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드리는 손길과 정성과 그들의 기도가 주님 앞에 상달되어 응답으로 축복해 주옵소서.
새해에는 더 많은 복을 주셔서 믿음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주어진 모든 일에 100배의 열매와 복음의 증거들이 나타나게 하소서. 오병이어의 복을 허락하시고 올 해는 더 많은 물질과 정성이 주님 앞에 드려지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독생자를 통해 구원의 빛을 주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은혜와 진리의 증거자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새해 첫 시간 주님 앞에 예배하며 한해를 설계하고 신앙의 삶을 다짐하는 모든 성도들과 저들의 가정위에 영원토록 함께하시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자유롭게 기도하시고 교회 공동체들끼리 인사하시고 돌아가시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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