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노라>(2024)는 스트립 댄서이자 성 노동자인 아노라가 러시아인 재벌의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서, 이 작품을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선정했다.
베이커: 저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를 촬영할 때, 고레에다 감독님의 <아무도 모른다>(2004) 등의 작품을 연구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님은 아이들의 생생한 감정을 연기처럼 보이지 않게, 설득력 있게 끌어내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거장으로서 정말 존경하는 분입니다.
고레에다: 저야말로!(こちらこそ) 얼마 전에 오랜만에 아노라를 다시 봤는데, 더욱더 유리 보리소프가 연기한 과묵한 보디가드 이고르의 팬이 되었습니다(웃음). 베이커 감독님의 작품은 언제나 모든 등장인물이 그들이 그려지고 있는 시간 외에도 계속 살아있는 것처럼, 그 자리에 계속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설명적이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배경과 삶이 제대로 보여지고 있는 점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마지막 장면에서 인물의 심정에 맞춰 차 밖으로 점점 눈이 쌓여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장면은 어떻게 촬영하셨나요?
베이커: 그 장면은 정말 시나리오에 쓴 그대로 찍었습니다. CG는 사용하지 않았고, 전적으로 미술팀과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노력 덕분에 찍을 수 있었네요. 하지만 진짜 눈을 사용해서 찍지는 않았습니다. 혹시 환상을 깨뜨렸다면 죄송한데요(웃음).
두 사람 작품의 공통점
─션 베이커 감독은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드 로켓> 그리고 이번 작품까지, 언제나 성 노동자를 등장인물로 내세우고, 사회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유머를 곁들여 생생하게 그려낸다. 고레에다 감독 또한 <아무도 모른다> <어느 가족> 등의 작품을 통해 비슷한 시각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베이커: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작품에는 공통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저는 동시대의 감독들 중에서도 특히 고레에다 감독님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슷한 주제를 비슷한 접근 방식으로 표현해 내려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조명하고 싶은 것은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빈곤, 차별, 사회적 지위 때문에 행복과 부를 추구할 권리가 박탈당한다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그 문제는 늘 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꿈을 꾸고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레에다: 그것은 결국 "이런 사람들도 분명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려내는 일이죠. 이른바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 영화의 한 가지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베이커 감독님의 영화에는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 인물이 등장하죠.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윌렘 대포가 연기한 모텔 관리인이나 아노라의 이고르처럼요. 그런, 일종의 윤리관 또는 자기만의 미학을 지닌 인물이 존재함으로써, 영화의 세계관이 절망으로 빠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고 느낍니다.
베이커: 그들은 관객에게 "내가 저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또는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두운 작품도 좋아하지만, 제 영화에서는 결국 희망이 담긴 미소를 그리고 싶습니다.
고레에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영화에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힘이 있다.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 두 감독은 "영화가 할 수 있는 일"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고레에다: 저는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지나치게 고민하는 시대는 그다지 좋은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대학에서 영상에 대해 강의하다 보면, 학생들이 "이걸 만들어서 어떤 이득이 있으셨나요?" "이 영화로 인해 복지나 법률이 바뀌었나요?"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영화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듯한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옵니다. 영화 제작에서도, 관객들 사이에서도 "이걸 보면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까?" 하는 분위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을 뚜렷이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목적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런 목적을 가지게 되면 그 목적에 맞지 않는 장면들은 아마 다 잘려나가게 될 거예요. 아노라에서 러시아인 재벌의 아들 이반이 바닥을 쓸면서 이동하는 장면도 사라졌을 테고요(웃음).
베이커: 하하하(웃음).
고레에다: 그런 부분을 즐길 수 없게 되는 것은 영화적으로 굉장히 재미 없어지는 일이죠. 아무도 모른다가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관객과 Q&A를 하면서 가장 기뻤던 감상평은 이거였어요. "영화를 보고 난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봤어요.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풍경이었는데, '이 아이들은 어디에서 사는 걸까?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몇 시쯤 집에 갈까?' 하고 너무 궁금해졌어요." 저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가 만약 어떤 역할을 하거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요.
ㅡ사회문제와 정치를 내포
베이커: 저도 고레에다 감독님의 말씀에 100% 동의합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언가를 설교하려는 영화는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고레에다 감독님도 마찬가지시죠. 영화 제작에 있어서 정치적인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둘 다 자연스럽게 사회문제나 정치적인 요소를 영화 속에 내포하고 있으며, 거기에 해석의 여지가 있어 논의를 촉발하는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는 엔터테인먼트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고, 고레에다 감독님의 작품이야말로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레에다: 아뇨, 아노라야말로 그런 작품이죠.
베이커: 고레에다 감독님의 신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고레에다: 작년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아수라처럼>의 촬영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올해는 영화를 촬영할 예정이라, 내년에는 어떤 형태로든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베이커: 기대하겠습니다. 미국에 오게 되시면 꼭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