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EMlNEM
엄마는 김치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결혼 후에는 한 번도 직장을 갖은 적 없었던 엄마가 늘 집에만 있으면서 겨우 찾은 취미이자 특기였다. 겨우내 먹을 김장 김치를 만드는 것이 엄마의 가장 큰 연중행사였다. 특히 여름이 되면 열무나 알타리를 한가득 들고 낑낑거리며 걸어오는 엄마를 저 멀리서 발견하는 일이 잦았다. 그럼 나는 한 걸음에 뛰어가 엄마 대신 뺏어 들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무슨 김치를 또 만드냐며, 이거 다 먹을 사람도 없다며 엄마를 타박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만들면 다 맛있게 먹더라 하며 웃어넘겼다. 그로부터 이틀 뒤엔 어김없이 새 김치가 밥상에 올라왔다. 한 여름에는 오이김치가 맛있다며 이미 밥을 먹기 시작한 내 밥상 위에서 오이김치를 수북이 담아 국물까지 쪼르륵 따르고는 먹어보라고 권했다. 그때마다 나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마지못해 하나씩 집어먹곤 했는데 그때마다 '맛은 있네' 하면서 한마디를 던졌다. 그렇게 싹수없는 나의 반응이 뭐가 그리 중요한 건지 엄마는 테레비 속 요리 대회라도 나간 듯 나의 시식 평을 숨죽여 기다렸다. 밍숭밍숭한 나의 반응에도 엄마는 기뻐했다. 나의 타박으로 만들어진 김치는 사실 아주 맛이 좋았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나는 엄마가 담아준 오이김치 한 접시를 모두 비웠다. 그렇게 한여름이 지나가고 겨울이 오고 봄이 오고 다시 여름이 왔다. 간만의 휴일이었다. 그 사이 나는 독립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작은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엄마는 내가 집에 없는데도 김치를 담갔다. 어느 날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김치 조금만 싸줘, 가지러 갈게' 하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열무, 알타리, 오이김치 3종 세트가 튼튼한 종이가방에 예쁘게 담겨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엄마는 우리 딸 버스 타고 집에 가는데 사람들한테 엄마 김치 보이면 창피하니까 집에 굴러다니던 약 봉투를 살짝 덮어 놓았다며 잘 들고 가라 당부했다. 그래서 그냥 두말없이 김치를 가지고 나왔다. 집에 도착해서 김치를 1인용 냉장고에 넣으니 공간이 꽉 찼다. 이걸 다 어떻게 먹지. 그 생각을 하며 빤히 냉장고 안을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오이김치는 밖에 하루 둬서 익혀 먹고 열무는 금방 익으니까 꼭 냉장고에 넣고, 열무는 반찬 없을 때 반숙 넣고 비빔밥 해 먹으면 참 맛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엄마의 문자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화면을 껐다. 그냥 가끔 라면 먹을 때 곁들일 김치 정도만 있으면 되는데....
그렇게 또 한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고 봄이 가고 다시 여름이 왔다. 휴일 아침부터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 잠을 설쳤다. 나는 일찌감치 부엌으로 가 어제 사 온 열무를 손질했다.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만들었다. 유튜브를 보면서 어설프게 만든 것치곤 맛이 그럴듯했다. 금방 먹을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반찬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그 옆을 보니 지난여름 엄마가 만들어준 김치에 곰팡이가 예쁘게도 펴있었다. 나의 타박으로 만들어진 엄마의 김치. 그것을 한참 쳐다보고 있으니 눈이 매웠다. 나는 정성스레 반숙 프라이를 만들고 밥에 열무와 참기름까지 넣어 씩씩하게 비볐다. 휴대폰을 켰다. 그때 미처 다 읽지 못한 엄마의 문자를, 겨우내 아까워서 들어가 보지도 못했던 엄마의 흔적을 들여다봤다. 혼자 산다고 대충 먹지 말고 반찬 없으면 꼭 엄마 열무김치 넣고 비빔밥 해먹어. 그리고 그 뒤에 어설픈 하트와 우리 딸 사랑해 그 말이. 밥으로 꾹꾹 눌러도 소용없는 그리움을 못 참고 나는 시끄러운 매미와 함께 울어버렸다. 엄마가 떠난 어느 여름날이었다.
첫댓글 아....가슴이 미어진다....
눈이 시큰해지고 가슴이 먹먹하네...
여시야 좋은글 고마워...잘읽고가
아 가슴이 미워진다
나 자취할때도 엄마가 저렇게 말했었는데
... 이제 크니까 알겠어
전부 엄마가 나에게 준 사랑이라는거. 마음아파
여시야 좋은 글 고마워
제목보자마자 눈물이 줄줄줄 흘러서 읽는 내내 울었어ㅋㅋㅋ너무 공감가고.. 좋은글이야
다먹지도 못하는 반찬과 김치들. 말려도 말려도 왜 그렇게 많이 주실까 했는데 너무 사랑해서 그러셨나봐
좋은 글 잘봤어요
하 눈물난다ㅠㅠ
슬프더 ㅠ
엄마랑 요즘 좀 자주 다투는데... 잘 봤어 여시야
고마워 엄마 보고싶다
비상비상 ㅠㅠㅠㅠㅠㅠ 글 너무 좋다 여시야
여시가 쓴거야....? 여시야 나 지금 알바하는데 이거 보고 눈물 막는중.........아놔........
진짜 너무 공감이 가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ㅠㅠ 좋은글 고마워 엄마 보고싶을 때 종종 보러올게
엄마아아 ㅜㅜ..
잘쓰네 ㅠㅠ
나 눈에 지금 온천수나와
비상...
비상
결혼 한 후 내 모습 같다. 나는 모질게 김치 다 두고 먹을만큼만 딱 들고오거든...근데 그게 내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드네....통에 그득 담으면서 엄만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