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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15일 목요일 말씀묵상 ♣
성경:시편104:1-9(구878P)
제목:그리스도인의 추석 명절
1.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2.주께서 옷을 입음 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 같이 치시며/
3.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4.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5.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6.옷으로 덮음 같이 주께서 땅을 깊은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로 솟아올랐으나/
7.주께서 꾸짖으시니 물은 도망하며 주의 우렛소리로 말미암아 빨리 가며/
8.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곳으로 흘러갔고 1)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9.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할렐루야!오늘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 명절입니다. 온 가족 하나님께 예배드리시고 명절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제목}***“그리스도인의 추석 명절”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합니다.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 가정에 복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감사를 돌려드립니다.
오늘 우리 가정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추석은 민족의 가장 큰 명절로 시기적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서늘하며 들녘엔 오곡백과가 넘실댑니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들은 고향이나 식구들을 찾아가 이날을 즐깁니다. 올해도 수천 만 명의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부터 추석은 한가위라고도 하고 중추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추석은 유교에서 시작된 것인데 햅쌀로 송편을 빚고 새로 나온 과일과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 곧 추석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날을 맞으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1. 이 날은 부모 형제와 친척들과 기쁨을 나누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추석이 되면 모든 이들은 고향을 찾고 싶어합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고향을 더 가고 싶은 것은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멀리 고향을 떠나 살면서 아무리 전화 한 통, 일자 편지조차 안 하던 불효 자식이라도 이 날이 되면 고향을 찾고 싶어합니다.
선물을 살 돈이 없어서 차마 가지 못하는 자라도 추석날 둥근 달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어머니, 아버지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있다는 것과 찾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분들은 승용차로 4-5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두고도 가지 못한 채 벌써 66년이 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때문인지 그렇게 차가 밀려 한번 다녀오면 완전히 녹초가 됨에도 너나 없이 고향을 향해 떠나는가 봅니다.
한국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가족과 친지, 친구 사이의 유대감입니다. 다소 무뚝뚝한 한국인들은 유대감을 겉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나 이런 명절을 핑계 삼아 선물을 주고받으며 유대감을 공고히 하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앤드루 브램스톤이라는 외국인은 “한국에서 살아보니”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썼습니다.
“한국에 온 뒤 두 번째 맞는 추석이다. 추석은 2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내가 가장 즐겁게 보낸 명절이다. 내 고향 영국에도 추수감사절이 있으나 간소하게 보내는 것과 달리 한국인들은 사나흘 동안 연휴를 즐기며 고향을 찾는다. 고향 길에 가족과 친지에게 나눠줄 선물을 양손 가득 챙겨 가는 모습은 훈훈하기만 하다. 한국인들의 추석 나기를 보면서 나는 한국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흔히 우리 기독교가 불신자들에게 가장 나쁜 말을 듣는 것 중의 하나가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 불효의 종교라는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처럼 철저한 효도를 강조하며 가정의 화평을 강조하는 종교도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효도를 강조했는지, 10계명 중 제5계명, 그것도 인간에 대한 계명 중 첫째에 넣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0세까지 가정을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아버지 요셉이 일찍 돌아가므로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 자매 다섯 등 거의 6-7명의 식구들 위해서 목수 일을 하신 것입니다.
사실, 목수 일은 일 중에 가장 고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힘든 것인데, 17-18세부터 30세까지 가정만을 위해서 그 직에 종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도 최후순간까지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할 정도로 효도하신 분이십니다.
공생애의 사역은 3년이시라면 가정을 위해서 일하신 날들은 거의 12년 정도였던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 등 신앙의 열조들도 모두 효성이 지극한 분들이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효를 인간 윤리의 기본적인 요소로 삼고 있습니다. 다만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주안에서 효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그 영혼에게 예배하고 절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효도에 게을리 하는 교인들은 아주 잘못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부모님이 살아 생전에 효도를 잘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잘못된 효도의 모습은 살아 생전에는 별로 돌봐 드리지 않다가 돌아가신 후에 묘지를 크게 꾸미고 제사상을 크게 차리면 효자라는 칭찬을 들어왔습니다.
아주 잘못된 태도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죽은 자의 종교가 아니라 산 자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죽는 것을 “안식한다”, “잔다”고 표현합니다.
다시 말하면 몸은 죽어 썩어지나 그 영혼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다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부활의 몸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위해 제사 지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자녀 여러분들이여! 돌아가신 후에 울고불고 수백 만원 돈을 들여 산소를 꾸미고 뻑적찌근 음식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지 마시고 살아 생전에 잘 해드리시고 용돈이 궁하지 않도록 해드리십시오.
어느 유교 집안에 많은 형제 있었는데 그 중 셋째 아들이 믿는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더니 제사를 지낼 때는 절을 하지 않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대단히 화를 내면서 절하지 않으려면 제사 드리러 오지 말라고 야단쳤습니다. 다른 형제들의 핍박도 대단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과 며느리가 제삿날이면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다가 돌아가고는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 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어느 아들이고 그 병든 아버지를 모시려고 하지 않으므로 셋째네 집에 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그 부부가 지성으로 아버지의 병 수발을 드는지 아버지가 감동을 받고 결국 “그 동안 내가 너희를 너무 오해했구나. 너희가 믿는 종교를 나도 믿고 싶다.”면서 세례를 받게 되고 시골에 있던 논과 밭도 그 아들에게 대부분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번 추석에는 부모님과 형제들, 친척들과 화목하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이 날은 불우한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예로부터 추석날에는 이웃간에 깊은 정을 나누는 날이었습니다. 서로 송편이나 부침개를 만들어 이웃집이나 동네 어려운 노인이나 병든 집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운 집이라도 추석이면 배불리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주 어려운 시절이지만 그만큼 인정이 많은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아마 백 배나 잘 살게 되었음에도 점점 인정이 메말라 추석날에도 옆집에 음식을 나누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날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가난한 이웃, 불우한 이웃, 고독한 이들에게 떡 한 그릇, 과일 몇 알, 양말 한 켤레라도 나누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마25:35-36에서 보면 예수님은 심판날에 의인 편에 선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의인들이 의아해 하면서 “우리가 언제 그랬습니까?”라고 묻자, “여기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기독교인은 빛입니다. 빛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을 나타내지 않는 기독교인은 생명이 없는 기독교인과 같습니다.
여러분! 이번 추석명절을 맞아서 가난한 이웃,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불우한 기관들, 나그네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기회로 삼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이 날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돌리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일년 중에 가장 아름다운 날이 바로 추석날입니다.
알맞은 기후, 맑은 공기, 오곡이 무르익은 들판, 단풍으로 채색되어 가는 산야 등,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아름다운 자연과 숲, 맑은 공기와 풍부한 곡식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돌리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온 자연에게 “온 만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1).1-12절에 보면 여호와께 찬양할 자들이 누구인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자들, 모든 군대들, 해와 달, 별들, 하늘 위에 있는 물들, 용과 바다, 불과 우박, 눈과 안개, 산과 과목, 백향목들, 짐승과 모든 가축들, 기는 것과 나는 새들, 특히 세상의 왕들과 백성들, 방백과 땅의 모든 사사들, 청년들과 남녀노소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온 만물들, 온 인간들 모두는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아름다운 계절에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그리고 땅에 있는 모든 자연과 생물들, 그리고 모든 인간들이 찬양한다면 대 합창단, 대 교향악단이 될 것입니다.
아마, 어느 날 우리가 천국에 가보면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어서 그러한 놀라운 모습과 합창을 듣게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추석날 조상의 묘에 가서 예배 드리면서 오늘 본문을 읽어보시면서 온 만물이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모습을 상상하신다면 큰 은혜를 받으실 것입니다.
(2).13-마지막 절까지 보면 찬양할 이유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찬양할 이유는 하나님만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온 천지에 뛰어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날에 가장 아름다운 찬양과 감사를 받으실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왜냐하면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운행하시는 하나님만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온 천지에 뛰어나시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감히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과 찬양을 차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만물의 영장으로 가장 지혜가 뛰어나다는 인간들이 이 날에 조상에 묘지에 가서 제사 지내면서 “조상님들, 올해도 지켜주시고 풍년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내내 우리 후손들을 지켜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고, 심지어 아무 힘도 없어서 태양 빛을 받아 비취는 보름달을 보고 복을 빌고 있으니 이야말로 하나님을 심하게 모독하는 행위가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멀쩡하게 살아 있고 지금까지 자녀들을 위해서 갖은 수고를 다했음에도 이번 추석에 여러분의 자녀들이 다른 사람이나 무슨 조각상 앞에게 가서 선물을 드리면서 “아버지 어머니 지금까지 키워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사랑을 베풀어주십시오.”라고 한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다시는 그런 놈을 보지 않을 것이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제1계명을 주시면서 “나 외에 다른 신께 절하지 말라”고 명하셨고, 제2계명에서는 우상을 만들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우상 숭배하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로 알아서 3-4대 후손에 이르기까지 그 죗값을 갚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조상 묘에게 가서 절하고 복을 비는 것은 복을 받는 행위가 아니라 벌을 자초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조상 묘에 가서 절하는 것은 우상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효의 발로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고전10:20에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불교나 유교에서는 음식을 차려 놓고 그 앞에서 경배를 하면 조상의 혼이 와서 그 정성을 받는 줄로 생각하고 있으나 그것은 무지에서 오는 미신적인 행위입니다.
사람은 한번 죽으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영혼은 천국에 가서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와 반대로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음부로 가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조상의 묘 앞에 가서 음식을 차려 놓고 절할 때에 조상의 영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탈을 쓴 귀신이 와서 대신 경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제사행위는 조상을 오히려 귀신을 만드는 형국이 됨으로 큰 불효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우상 숭배하는 자의 마음에 귀신이 들어가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간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해 죄를 저지르는 사람이나 부부 싸움이나 심지어 교회 안에서의 다툼도 깊이 파고 들어가면 악령의 역사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만 찬양하고 감사하는 자가 됨으로 성령에 붙잡힌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코 우상 숭배함으로 악령이 잡혀서 죄를 저지를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자신 뿐 아니라 후손들까지 벌을 받게 하여서는 안됩니다.
***{결론}***
그렇다면 이 날을 맞으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과연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1. 이 날은 부모 형제와 친척들과 기쁨을 나누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2. 이 날은 불우한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3. 이 날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돌리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추석 명절날에 온 자연과 함께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날로 삼을 뿐 아니라 부모형제와 친척들과 화목의 교제를 나누고 불우한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날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시편104:1-9절입니다. 추석날 아침에 이 말씀을 묵상하시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와 영광을 돌리시기를 소원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시1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