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개보다 물안개가 먼저 닿는 땅, 산청 하정리 경남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
소소한 아침 풍경, 너무도 고요한 산청의 아침입니다. 물소리, 바람소리만이 머물다가 자연보다 먼저 깬 사람들이 머뭅니다. 자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 산청 어느마을의 작은 풍경입니다.
산촌의 강가에 기대어 사는 어느 어부의 아침, 일이리 그물을 건져봅니다. 그리고 다시 내려 좋습니다. 기대했던 만큼의 수확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묵직한 그물일 것 같은데, 그물 속을 드려다 보던 어부는 다시 얌전하게 내려 놓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촌강가 어부의 표정, 몸짓에서 실망한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자연에 기대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자연이 주는 그만큼의 수확만을 거두어 들일 줄 알기 때문입니다. 어부는 강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농를 젓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쉼터로 돌아갑니다.
욕심을 버리는 방법, 비우는 방법을 알고 있나 봅니다. 자연의 앞에서는 욕심 자체가 필요 없음을 알며 살아가는 어부의 말 없는 몸짓으로 가르칩니다. 이른아침 산청 어느 땅에선가 만난 작은 풍경, 길손은 무엇인가 가볍지 않은 교훈을 받고 돌아 옵니다.
아직은 때 이른 시간, 달도 미처 피하지 못한 시간이지만 산청의 상쾌한 공기에 잠에 깹니다. 맑은 산소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느끼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더 시원스럽고, 상쾌하고 청량합니다. 산청 경호강, 강바람이 살랑일때면 옷깃을 여밉니다. 모가지 사이로 흘러 들어 온 가을 바람은 온 몸을 움츠러 들게 합니다. 부르르 떨리게 만드는 상쾌함입니다.
가을, 깊은 가을은 산청에도 찾아 들었습니다. 지리산 자락의 땅, 사람이 머물러 사는 그 곳에는 여지없이 강이 들어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원지마을은 경호강과 양천강이 흘러 마을의 끄트머리에서 하나로 합쳐지면서 남강으로 흘러 들어 갑니다. 작년 태풍으로 범람의 위기까지 왔을 때는 물이 한꺼번에 빠지면서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은어들이 수변공원에 가득이었다고 할 정도로 물이 맑은 경호강가에 섭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다리 하나, 누구도 지나는 이 없는 조용한 교각의 아래에 서 봅니다. 위, 아래 어느곳도 생명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 자리에서 계속 머물게 됩니다. 멀리 보이는 산자락을 서서히 잠식하는 산안개가 길게 늘어서기 시작하는 설익은 모습에 한참동안 눈을 두게 됩니다.
그 때, 어디선가 물첨벙 소리가 들립니다. "덩치 큰 새일까?" 쪽배에 올라 서서히 강 중앙으로 다가서는 산촌에 살아가는 어부입니다. 이른 시각, 어부는 지난 날 펼쳐 두었던 그물을 확인 하는가 봅니다. 몇번의 그물을 들었다 놓았다는 반복합니다. 수확의 기쁨을 누렸으면 좋으련만 그물을 조용히 다시 내려 놓습니다. 맥 없이 놓는 손 놀림이지만, 물 속 세상 놀라지 말라고 조용히 조심스럽게 내려 놓습니다. 이제 어부는 돌아갑니다. 처음에 들어섰던 강가에 쪽배를 대고 내려 섭니다. 기지개 한번 펴고, 자신의 쉼터로 돌아갑니다. 산촌에 사는 어부의 모습은 여유롭습니다. 수확의 많고 적음이 아닌 오늘도 하루의 아침을 만나고 있다는 작은 일상입니다. 늘 그래왔다는 듯, 묵묵한 걸음으로 강가를 벗어 납니다.
백로 한마리가 수면 위를 바짝 붙어 나릅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백로 무리, 가족의 품입니다. 어부가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고 있는 시간, 백로도 아침을 맞으며 가족을 만납니다. 소란스러운 무리들의 틈에 앉습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누가 누군인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제 품에 가족을 안고 울어 댑니다. 반가움, 그리움, 행복함을 모두 섞은 울음입니다.
산촌의 아침은 늦습니다. 한시간여를 경호강에 서 있는동안 여전히 하루를 시작하는 해는 동산의 뒷편에 머물고 있습니다. 구름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동해바다 같으면 벌써 더 올랐을 아침해이건만, 참으로 더딘 해오름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의 바쁜 걸음이 있고, 공사장으로 향하는 바쁜 차량들의 행렬이 지나갑니다. 오늘 하루도 피곤을 위해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지요. "움지럭 거릴 수 있을때 까지는 움지럭 거려야지.." 어제 밤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비울 때 옆에서 대화하던 어느 노동자의 혼잣말입니다. 살아 있음을 알고 있는 만큼, 살아 가는 방법도 알고 있는 분들의 피곤한 대화, 그러나 지금의 피곤함은 달콤한 내일을 위한 것이라 생각 하고 계시겠지요.
자연의 시간 보다 빠른 산청사람들의 아침, 부지런한 이들을 벌써 마당을 쓸고, 산책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솟습니다. 장쾌하고 화려한 해오름이 아닌, 아주 익숙한 흐린 하늘 속의 해오름. 눈 부신 하늘이 아닌 부드러운 수채화와 같은 아침을 산청의 원지마을에서 만납니다.
늘 되풀이 되는 일상적인 아침, 가끔은 멀리서 바라봅니다. 가차이 자리하여 빠르게 지나는 속도전의 사이에서 모처럼의 여유를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여유를 찾게 됩니다. 운전대를 잡지 않고 뒷자리에 앉았을때 늘상 지나가던 길이었으나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익숙한 길에 새로움을 만나는 즐거움처럼, 익숙한 하루의 시작이지만 오늘은 상쾌하고 즐거운 일이 가득할 것만 같습니다.
by 박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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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길손의 旅行自由 원문보기 글쓴이: 길손旅客
첫댓글 아름다운 아침풍경을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평화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