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외면한
헌법재판소를 강력히 규탄한다!
지난 5월 25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비시각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다’라는 판결에 대해 전국의 시각장애인 단체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특수학교 교장단과 특수학교의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일제히 수업을 거부하며 강력한 항의에 나섰다. 이들은 대규모 결의대회에 참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6월 2일 기준 현재) 5일째 마포대교에서 진행 중인 고공시위와 한강 투신 시위 등 목숨을 건 투쟁에 함께하고 있다.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들 혹은 학교를 운영하거나 학생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이 이렇게 교육현장을 뒤로하기까지 하면서, 목숨을 담보로 투쟁하고 있는 이유를 과연 그들의 독점적 이해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현재 전체 시각장애인 1745명 중 무려 84%인 1462명이 비장애인과 완전 분리되어 특수학교에 재학 중이다. 시각장애인의 대다수가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의 교육과정은 직업교육 과목으로서 이료 교육(안마, 침술 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2005 장애인실태조사」와 「2005 특수교육실태조사」를 참조하여 추정해보면 매년 고등부를 졸업한 총 625명의 시각장애인 중 진학(9.7%), 무직(43.9%)를 제외하고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은 46.2%인 290명에 불과한데, 이 중 이료(안마, 침술)에 종사하는 시각장애인은 104명으로 그의 36%에 달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매년 경제활동에 진출하는 시각장애인은 고작 46.2%에 해당하고 그중 무려 36%에 달하는 시각장애인이 안마와 침술 등 이료 업종만을 통해 생계유지와 생존을 보장받고 있는 ! 셈이 되는 것이다.
현재의 비장애중심적․장애차별적인 교육․노동 구조와 속도 속에서 시각장애인은 배제되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반영하여 이미 외국의 여러 나라에서는 시각장애인 업종의 개발․운영, 특정 직종과 공무원에 대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할당 유보제, 복권판매의 전매권 부여, 정부기관 내 시설 운영권 부여, 시각장애인․중증 장애인 생산품 우선 구매정책 등을 펴고 있다. 이러한 정책으로도 부족한 현실은 다양한 직업교육과 통합고용사업 등을 통해 교육현장에서부터 시각장애인이 노동현장에 진출하는 것 등에 적극적으로 연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애연금과 자립생활연금을 지급해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장애차별적․배제적 노동구조와 시각장애인의 열악한 삶의 현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을 반영한 시각장애인의 교육과정․구조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드러내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장애인의 기초생계와 생존에 대해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에 책임을 느끼고 한국 정부에서 그나마 내놓은 보호고용, 지원고용, 유보고용 등의 고용특례 정책과 그의 일환으로 ‘안마사 자격을 시각장애인에게만 한정해 왔던 것’을 오히려 헌법재판소가 앞장서서 말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적인 법조계에서도 현재 보편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다른 것은 다르게 적용하고 판단 한다’라는 평등의 아주 기본적인 원칙조차 무시한 채, 헌법재판소는 시각장애인의 현실적 특수성을 외면하고 ‘무한 자유와 경쟁’를 조장하는 이와 같은 판결을 내렸다. 이는 더 이상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와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보장하는 수호기관으로서 작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업종은 이 사회에서 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직업적 보루이다. 현재 이료 교육으로만 획일화되어 있는 직업교육과 교육과정․구조의 적극적인 변화와 개혁의 단행 없이, 그리고 다양한 직업영역에 대한 고민과 통합고용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과 안정적인 대안의 마련 없이 안마사 자격을 비시각장애인에게도 개방하는 것은 이러한 최소한의 직업적 보루에서조차 시각장애인이 배제․도태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기만적인 처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최소한의 생존의 영역조차 다름 아닌 최고법률기관인 헌법재판소에 의해 말살당한다면, 이번 위헌 판결은 그렇지 않아도 벼랑 끝에 내몰려 있는 시각장애인의 숨통을 끊어 버리게 하는 일종의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어마어마한 잔인성을 내포한 것이 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이번 위헌 판결이 시각장애인의 생존할 권리에 미칠 수 있는 잔인한 영향과 파급력에 대해 적극 고민해야 한다.
전국 장애인교육권 연대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그 중 가장 권리를 침해당하기 쉽고 박탈당하기 쉬운 정치적 소수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구제하고 보호하기는 커녕 그것에 반하는 무책임한 이번 위헌 판결을 내린 헌법 재판소를 강력하게 규탄하는 바이다!
2006. 6. 2
전국 장애인 교육권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