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까치는 댁에서 기르는 까친가요? / 문혜영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말주변이 없기로 유명한 어떤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친지가 상을 당해 문상을 갔는데, 도무지 무엇이라고 해야 좋을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그냥 나올 수만은 없어서 상주에게 건넬 말 한 마디 찾느라고 고심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조문객들은 하나둘 돌아가고 결국 그 사람만 남게 되었더란다.
그때까지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지만 더 앉아 있기도 뭣해서 일어서서 나오려는데 댓돌 위에 자기의 신발만 달랑 놓여 있는 게 아닌가. 그러자 그는 신발을 신으며 대뜸 한 마디 했다.
“에끼! 나쁜 사람들! 자기들 신발만 다 신고 가고, 내 신발만 이렇게 남겨 놨군.”
한 마디 하고 나니 속은 좀 후련했으나, 순간 말을 잘못한 것 같아 마당에 내려서서도 찜찜한 마음에 선뜻 대문을 나서게 되지 않았다.
그때 마당 한편에 있는 감나무 가지에서 까치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그는 다시 까치를 가리키며 따라 나온 상주에게 또 한마디했단다.
“저 까치는 댁에서 기르는 까친가요?”
길을 걷고 있을 때나 전철 속에 앉아 있을 때, 문득 말주변 없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르면 어디선가 깍깍 까치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혼자 실실거린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밉지 않고,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세상만사에 미숙하기만 했던 시절, 특히 애경사에서의 처신이 가장 어렵게 느껴지던 나이였다. 위의 문상객처럼 나도 무슨 말이건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국내 학계의 명망 있는 어느 선생 댁 혼삿날이었다. 선생 자녀분들 중 첫 혼사라서 예상했던 대로 호텔 예식장 입구부터 많은 축하객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얌전히 접수나 하고 식장으로 들어갔으면 별 실수가 없었을 텐데, 어쩌자고 혼주이신 선생 내외분께서 먼저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으시는 거였다. 평소대로 그냥 웃음만 지어도 결례가 아니었다. 아니면 그냥 “축하합니다.”만 했어도 충분했는데, 뭔가 한 마디 더 정중하게 덧붙이고 싶었다. “첫 경사를 축하합니다.”라고 했어도 그냥 넘어갔을 것을, ‘초혼初婚’이란 단어가 불쑥 뱉어진 거다.
순간, 어리둥절해하시는 선생의 눈빛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아차차! 대형사고구나. 낭패감으로 심장이 벌렁거리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러나 선생은 얼른 웃음으로 덮어주시며 가볍게 악수를 청했다. 대학자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집에 와서 사전을 뒤져 보았다. 초혼初婚을 찾으니 ⑴ 처음으로 하는 혼인, ⑵ 같은 말: 개혼開婚이라 되어 있다. 개혼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으니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우기고 싶지만, 남의 집 경사스러운 첫 혼례식장에서 재혼의 반대말로 더 익숙한 그 말을 굳이 꺼낼 일은 아니었다. 더위를 먹어 내 머리가 어떻게 되었던가 보다.
그날 이후, 말이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부적절한 말을 꺼내 부지불식간에 무식함을 드러낸 것이 어찌 그때뿐이겠는가. 가만히만 있으면 모자람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얕은 말로써 어찌 해보려다가 화를 부른 적이 아마도 많았을 게다.
지난 섣달 그믐날엔 한참 만두를 빚고 찌고 동동거리는 중에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받았다. 내 강의를 듣는 회원에게서 온 문자였다. 지독한 독감으로 2주째 앓고 있다더니 새해에 나의 건강을 기원해주는 내용이었다. 바로 답신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정신없이 하루가 저물고,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허리를 폈다. 순간, 문자 생각이 났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답신을 보내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조급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열었다.
새해를 맞고, 초사흘이 되는 느지막한 밤이었다. 누군가의 메시지에 답신을 보낸 후, 저장된 발신 메시지들을 무심코 훑어보다가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아프다더니 좀 나아졌나요. 걱정했어요. 새해엔 더 간강하게, 사망하며….’
숨을 쉴 수가 없는 충격이었다. 명색이 말을 가르친다는 선생인데, 덕담을 해도 모자랄 새해 벽두에 이럴 수가….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 황당한 문자를 읽으며 망연자실했을 꽃 같은 얼굴이 떠올라 그 밤 내내 한잠도 이룰 수가 없었다. 죄책감이 파도처럼 나를 후려칠 때마다 휴대폰 탓을 했다. 먼저 쓰던 S사의 휴대폰은 글자 배열이 잘되어 있어서 쓰기가 편했는데, 지금 쓰는 M사의 휴대폰은 2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아직 손에 익숙하지가 않다. 메시지를 보내다가 자꾸 오자가 찍히는 바람에 짜증이 나서 그냥 통화버튼을 눌러버릴 때가 많다. 에구구, 이제 와서 휴대폰 탓을 해봤자 어쩔 건가. 몇 해 전부터 돋보기를 안 쓰면 오자가 잘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확인하지 않고 전송 버튼을 누른 것이 잘못이지. 제발 읽는 사람도 침침한 시력으로 ‘간강’을 ‘건강’으로, ‘사망’을 ‘사랑’으로 읽어주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입으로 잘못 뱉은 말은 상처는 남을지라도 증거를 남기지 않는데, 문자로 잘못 날린 말은 꼼짝없이 증거를 남기니 이 노릇을 어이할까. 죄인이로다. 죄인이로다.
밤새 내 머리맡에서 깍깍 까치가 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