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맨 밑에 첨부될 인용 글은 '87년' 당시에 한줌의 주사파 학번 대열에서 바라본 분석 글이다. 그렇다면, 뻥쟁이들에 억압당하면서 숨막히며 대학생활을 살아본 사람들에게는, 이 주제를 다뤄도 더 객관적일 수 있다.
요점부터 말하자. 가장 고상한 이미지를 담는 좌익 지식인 몇명만 허위의식을 완전히 해체 하듯 파헤쳐 버리면, 그들은 정신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적인 순간마다 우파 기성세대만을 만족시키며 뻥쟁이들에게 억압당하면서도 뻥쟁이들에 손을 들어줄만한 아직도 납득이 쉽지 않은 '실익'을 보장할 수 없는 단순한 '조지기'(?)식 접근방법은 납득 하기 어려웠다.
인터넷 글쓰기로 뭔가 행동을 하니 투쟁을 하니 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안된다. 우파 행동주의의 원조는 1946년 이전의 김구 선생식의 독립운동 방식에 뿌리를 닿고 있다. 김일성의 북한 진입과정에서 갖가지 벌어졌던 우파들의 반격 시도들은 결코 '말'이 아니었다.
나는 386 뻥쟁이들의 인간형에 소속될 사람들의 다수가, 우파 사이트에서 북한의 일본 공격의 북한공산주의적 상투성을 전혀 못 읽는 글 같은 것(다음 까페 박사모 자유게시판 29336번 글)을 보면, 있다는 게 분명히 드러난다. 여기서, 좌파들은 워낙 대한민국 코드를 해체하는 역사적 사명(?)이 있다고 해서, 일국사회주의 공산당에 뿌리를 두는 진영론을 쓸 수 있을 텐데, 우파 사이트의 좌파 공산주의자들의 진영론 빌어 쓰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한없는 울화가 치민다.
87년 무렵에 한줌의 주사파보다 같거나 위의 시점에서 그때 선동당한 대중들의 우매함을 야유하는 이 글의 접근방식은, 성토주의 좋아하는 기성세대 우파들의 비위에 딱 맞아서, 잘 돌아갈 것으로 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뻥쟁이들에 시달리는 고통속에서 배운 게, 그 뻥쟁이들의 바탕이 사실은 별 것 아니란 것이다.
1. 한줌의 주사파가 일으킨 87항쟁에, 나머지는 뻥쟁이들이고 바보이다. 그러면, 어떻게 87항쟁을 읽는 한줌의 인간 빼고의 사고방식은 역사 속에서 사장되어야 쓰겄네?
대부분의 학생운동 분석글이 놓치고 있는 바는, 대부분은 박정희 대통령 때 어린 시기를 보내고, 그 환경에서 우등생이고 싶어했던 이들이라는 점이다. 근대화론에서 서구를 따라잡는 바탕 이미지를 아주 어린 날에 강하게 형성해준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세상에 뻥은 없다. 모든 뻥은 그들의 내부에 담긴 진실을 담고 있다.
좌파의 모든 화두는 거의 대부분이 우파에서 시작된다. 북한의 민족주의론을 강화하는 반제국주의 지향의 민족이념을 독점하는 공산당 이념의 대중화로서의 친일비판론, 박정희 대통령의 반일반공이념과 비슷하다고 혼란을 일으키면서 분석적 사고에 침묵을 강요하는 김동리의 문학론을 방패 삼아서 국문과 배경으로 자주 벌어졌다. 대한민국 국가의식을 해체하는 수입이론으로서 들뢰즈 이론을 해석할 때 등장하는 유목주의는, 몽고인의 상무정신을 배우라는 측면에서의 뿌리를 갖고 있고, 좌파들의 유물사관은 박대통령의 근대화사관과 비슷하다는 혼란유발과, 순수학문의 자유로 검증해보라는 식의 감성 유발과 검증 성과 제출에는 권력이 있으니 회피한다는 차원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줌도 안되는 뻥쟁이들은 왜 속았을까? 한줌의 이들이 87년을 일으켰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좌파를 비판하는 것 같으면서도 대단하게 뻥쟁이들의 '전형적 교만'을 갖고 있는 듯하여 답답하다. 좌파들에겐 허수아비 로보트로 취급당하고, 기성세대 우파들에겐 젊은 세대는 모두 좌익 단위로 <꽉 꽉 언어의 감옥에 갇힌 한 세대>가 불쌍하다고 생각은 안드시는지요?
2. '자괴감'은 어떻게 주입되었을까? 서울대 김윤식교수와 그 시대 문학판을 알면 답이 보인다.
기성세대 우파들과 인터넷을 통해서 바로 세대 초월해서 만나는 것은 시대의 발전을 느낀다. 그런데,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 끼어서 새로워지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 세대만이 느끼던 왜색물을 아랫세대에 전부 끼얹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의 청소년세대는 객관적으로 할아버지 세대보다도 더 왜색적이다. 일제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조로'증을 비판할 때, 기성세대 권력자의 그것을 보고 배우며 일찌감치 미움 속에서 몸에 그러한 스타일의 코드를 배워가는 것으로 지적했다.
'자괴감'을 느끼며 주변에서 촛불시위로 막 끼어든 이들을 조롱하는 시선은, '자괴감'이 바라보던 '선망의 대상'만이 느끼던 공포스러운 왕자병(공주병)이라 본다. 이러한 시선은 일국 사회주의 공산당에서 이론 독점 계급이 군중들의 정치성을 비판하는 때 쓰는 방식에 가까우며, 그러한 방식의 구조를 쓰되 그 구조를 고발하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아니며 색깔공세 하지말라는 의미로 '정확하게 맞췄다'는 표현을 듣게 된다.
사실, 체험적으로 볼 때 영남 지역 사람들은 호남 지역 사람들에 비해서 예술가적 재능은 턱 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기업가적 재눙은 호남지역 사람들은 영원히 영남 지역 사람들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 영남 출신의 기성세대 우파들은, 박대통령 시대에 어린 시절을 배운 이들을 혼란시키는 좌익의 선동 이념에, 혼동 방향을 더욱 혼동 방향으로 불질렀던 일본지향적 우파 이념의 한계성을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서울대학교 김윤식교수 1명과 [조선일보] 문화면의 만남은, 대중적 문화지형을 뿌리째 좌파쪽으로 바꾸었다. 이것은 우파 지식인들이 슬로건몇 개로 가지는 도식에 맞아들어가지 않는다.
1) 사회구성체 논쟁 : 중앙에서 복작복작..... 대학가에서 어느 잡지에서 어느 지식인들이 복작 복작. 못알아들을 이야기. 공부하자. 공부하자. 으쌰 으쌰.
2) 문학사 다시 쓰기 운동 : 중앙에서 복작복작..... 대학가에서 어느 잡지에서 어느 지식인들이 복작 복작. 못알아들을 이야기. 공부하자. 으쌰 으쌰.
사회구성체 논쟁은 현재 한국 사회과학 서점들의 원초적 코드를 만든 것이고, 문학사 다시 쓰기 운동은 대중사회의 좌파적 코드의 표본을 만든 것이다. 그것은 전부가 서울대 좌익 지식인과 명문 사립대학의 바탕에서 '고학력 학위'를 상품성으로 활용해서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서, 보수 언론이 인정을 하게 됨으로써, 그것만이 소중한 것인양 하는 단계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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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일보] 문화면이 신춘문예 심사자로 제발 좀 대한민국 좌익 지식인의 몸통인 김윤식교수를 위촉 하지 말기를 원했다. 그런데, 서울대 좌파 인사가 아닌 다른 보수 쪽 젊은이를 뽑았지만, 결과는 똑같다. 그것이 소중하고 위대하다고 세뇌되는 시스템 속에서 있었기 때문에, 반공이념을 믿는 교회에 우수한 신자였으면서도 문학평론당선글은 국가해체적 공산이념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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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한 자괴감의 형성단위를 안다. 정운찬 총장님이 아무리 서운해 하더라도, 분단체제론의 저자가 국립대학교로서 서울대 대학원의 지식생산의 책임의식 결여를 바탕한 대학원 중심대학론을 이어 쓰는 한, 아무리 개혁하려해도 '386 뻥쟁이'들을 세뇌하는 시스템을 사수하는 방식이 된다. 통신 은어로 분단체제론의 저자로 국립대학으로서의 책임감을 부담감 가진 이의 정책은 '빨아도 걸레'란 말이 적절하다. 그 정책을 이어서 정운찬 총장님이 쓴다 해도, 서울대 학위로 좌익 이념의 고매하고 고상하게 그리기가 멈춰지지 않고 그것을 모방하고 선망하는 자괴감은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3. 대부분의 좌파 지식의 쓰임새는 전혀 비판되지 않는다. 그것은 선망 어린 군중들의 시선을 먹고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 발목걸기, 흔들기, 말 안듣기, 색깔론 씌우기, 기타등등...... 이 모든 논의는 공부 한번도 안하고 그 좌익 지식인들을 선망하는 이의 수준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파는 좌파 지식인을 선망하도록 짜여진 판 속에 길들어진 이들이, 좋아하는 대상이 공격당할 때 참지 못하는 것을 너무나 과소평가한다. 그 과소평가는 전적으로 기독교인 기질의 지나친 확장에서 빚어진 한계이다. 각 종교 내부의 국민국가 지향적 포괄력을 극대화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한나라당과 탄핵파들에 분풀이를 하는 그들을 마냥 저주할 수 없다. 우파 내부는 단 한번도 박정희 대통령과 권력 주변만이 연구되도록 허락되었고, 박대통령을 지지하던 마을의 소시민들의 생활상을 권력 외부에서 연구하여 대중화할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보수 언론마저도 북한의 유물사관 따라 배우기를 주장하는 김윤식교수의 주장을 빵빵 때리고, 우파는 박대통령을 찬양하던지 대학가에서 인문학 하지 말라고 하고, 그 상황에서 그들이 그들 입맛에 맞는 역사를 배울 기회나 있었을까?
한국의 좌파는 '문학'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신문'으로 옮겨서 이제는 '방송'으로 바뀌었다. 대중화 매체를 선택하면서 바뀌어 갔다. 뻥쟁이들에게 표본 이념으로 알려지는 <그 사고의 축>인 지식 쪼가리들에 대해서 공격할 기회는 , 철저한 전복과 해부를 하는 기회는 <조지기>식 접근방법 외에는 자생적인 인문문화의 성립을 허락하지 않는 기성세대 우파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유예되고 있다.
4. 한줌의 주사파가 부여 하는 대로 87년 항쟁의 의미가 고정되며, 대다수의 우매한 대중들이 세뇌당하고 이용당하고 쪽쪽 빨려진 채, 우파에 원성과 좌파에 버림당하기 직전 상황이 엽기적인 것이다.
한줌의 주사파가 부여하는 의미를 넘어서서 봐야만 한다. 기성세대 우파는 자주 젊은 세대를 통째로 좌익으로 만들어 흔들어 버리는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체험적으로 [조선일보] 문화면에서 키워진 좌파 코드를 먹고 자란 젊은 세대의 양적 크기를 무시할 수도 없고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본다. 최근에 대한민국사를 해체하자는 임지현교수가 주관하는 학회의 일꾼 역할인 임승휘 교수의 우파에 아부하는 글이 실렸다. 왜, 자꾸 좌파의 눈가리고 야옹을 [조선일보] 문화면은 키우는가? 임지현이 하는 학회 학회지 서문을 딱 펴보라. 그 서문의 코드의 원 바탕이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아님을 모른다면, [조선일보] 문화면의 필진선정자는 머리가 모자란 것이다.
나는 [조선일보] 기자 분들 중에서 철학적 사유에 밝은 이한우 기자님 같은 분이, '문학사 다시 쓰기 운동'에서 갖는 역사관과 송두율 역사관과 북한문학사관의 유사성 문제를 풀어 해치며, [서울대 좌파 교수들을 믿지 마세요!!!]란 여론 일으키기 있었으면 좋겠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레슬링'은 쑈 라는 차원의 뿌리 깊은 실망이 나타날 수 있도록, 뻥쟁이들이 신뢰해 마지 않는 바탕 코드 자체의 좌파적 꼬임을 풀어내는 게, 젊은 세대들 내부를 분열시키는 것이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 아니다. 한줌의 주사파만이 독점하는 역사가 역사이더냐? 역사는 계속 다시 쓰여지는 것이다. 후대의 적대왕조에서 역사가 고쳐진다는 것 자체는, 사무라이즘을 자기 내화하는 바탕에서만 가능한 역사철학에 깡통만이 할 수 있는 사고이다. 역사는 사무라이 국가의 농민들에 주입하는 코드 잡기 수준을 처음부터 넘어선다.
87년 6월은 한줌의 주사파가 시험 보기 싫어하는 이들을 꼬득여 일으킨 것이라고?
그렇게, 그렇게, 세파에 휩쓸려 조종당하며 좌파가 쌓은 권력(진리)테두리에는 끼지도 못한 채, 자신의 본질도 모르는채 공산주의를 지지하지도 않으면서 좌파 주장에 복면 복창하는 이들이 불쌍하다면, 서울대 김윤식교수 문학사의 정치성을 공격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일일 것이다.
-인용문 시작-
<6.10항쟁에 대한 자기고백> (이미경)
6월항쟁이란 무엇일까.. 6월항쟁은 당시 학생운동의 양대세력 중 하나였던 NL세력(주사파세력)의 전위대인 "서대협(서울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에 의해서 기획인 된 집회였다.. 당시 남한의 학생운동은 전통맑스주의를 추앙하는 CA세력과 김일성 주체사상을 추앙하는 NL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NL세력은 우리사회를 미제국주의에 지배되는 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규정하였다..
이들의 목표는 남한을 미제국주의로 부터 독립시켜 진정한 "조국해방"을 쟁취하게하는 것이고, 북한 체제로 남한을 편입시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각 대학에 점조직으로 구성된 NL운동권 세력들은 자취방이나 카페 등을 전전하며 서대협에서 내려온 주체사상 문건이나 강령 등을 공부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문건의 서두 대부분이 "위대하신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문건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며 이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을 추앙하고 자신들이 주체사상의 순교자가 되기를 자처하고 다짐했다.. 6월항쟁은 바로 이들에 의해 "반미 조국해방"을 위한 전술의 일환으로 기획된 집회였다.. 물론 당시 대학에서 이들 주사파 운동권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 대학에 수백명남짓으로 구성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정체성과 386세대의 정체성에는 괴리가 있다.. 앞서 이야기를 했지만 386세대의 의식구조의 정체성은 단 19일의 기간만에 형성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한줌도 안되는 주사파 학생운동권은 6월항쟁을 기획하고 촉발시키는 촉발제 역할을 한 것이다..
5. 6월항쟁의 전개과정...
당시 6월항쟁은 주사파 계열인 서대협의 주관으로 전두환의 호헌을 규탄하는 집회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주사파 세력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조국해방과 북에의한 통일이라는 자신들의 전략적 목적을 철저히 숨겼다.. 이들은 호헌의 비민주성을 설파하며 군사독재 타도를 슬로건으로 삼고 대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하였다..마침 6월 10일은 대학들이 기말고사를 시작하는 시기였다.. 서대협의 6.10집회는 이러한 시기에 대중적 호응과 맞물려 대학별로 광범위한 시험거부투쟁을 불러일으킨다..
386세대의 정체성은 시험보기를 싫어하는 극히 보편적인 심리에서 시작된다.. 전두환의 호헌도 나쁘지만 시험보기는 더 싫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학교에 나가지 않자니 기말고사 시간표가 불안하게 한다.. 그렇게 되다보니 우리 386세대의 대학생들은 학교로 가서 눈치보기를 하기로 결정을 한다.. 학교에 나가 시험도 안치고 눈치만 보자니 심심하다.. 심심한 발걸음은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집회장으로 모여든다.. 주사파 세력은 전위조직으로 활동을 하고 시험을 치기 싫은 룸펜들은 집회장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이들이 명동으로 쏟아져 나가자 명동에 모인 대가리 수는 장난이 아니다.. 이런 집회는 날마다 계속된다.. 왜냐면 학교측에서 시험거부를 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론을 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치보러 학교에 나가고 할 일 없어서 집회에 참석하고, 명동으로 쏟아져 나가기를 반복한다.. 물론 명동에서도 앞에서 돌 던지고 꽃병(화염병) 던지는 애들은 주사파 애들이다.. 나가서 머리수 채우는 386 룸팬들은 구호 몇번 외치다가 전경들 쫒아오면 튀기만 바뿔 뿐이다..
그러나 대가리 수로 요약되는 군중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언론이 집중보도를 하고 시민들도 이들에게 심적인 호응을 보낸다.. 이로인해 노태우는 19일만에 그 유명한 6.29선언을 하며 사태를 종결 짓는다.. 시험치기 싫고 눈치보여 거리로 뛰어 나갔던 386룸펜들은 당연히 과분한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그 유명했던 80년 6월항쟁은 19일만에 끝을 맺는다.. 시험치기 싫어 눈치보기작전으로 시작한 19일간의 집회는, 군대생활 못지 않은 엄청난 무용담을 386 룸펜들에게 안겨준다..
6. 아웃사이더와 뻥쟁이들..
386세대의 심리상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열등감에서 비롯된 소영웅주의"라고 표현을 할 수가 있다.. 앞서 이야기를 한 것 처럼 80년대 6월항쟁은 동상이몽의 학생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한반도에서 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민족해방,적화통일을 이루고자 했던 주사파와, 시험 치기는 싫고 눈치는 보이고, 그런 비겁한 심리를 민주주의와 독재타도라는 대의명분으로 희석시키고자 했던 386 룸펜들의 동상이몽이었다.. 그런데 6월항쟁의 전위에 섰던 자들은 주사파들이었다..
주사파는 대가리 수로 따지면 당시 길거리를 메웠던 전체 숫자의 1-2% 남짓한 숫자였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집회장의 99%를 차지하는 386룸펜들에게는 영웅이었다.. 그리고 386룸펜들은 열등감과 자괴감을 느낀다.. 왜냐면 자신은 19일간의 항쟁을 주도한 "운동권"에 속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 대다수는 그 주사파 운동권의 진정한 속내조차도 모른다.. 아니 그들이 위대한 수령을 예찬하며 주체사상을 공부하는 지도 몰랐다.. 단지 위대한 6월항쟁의 전위조직으로만 인식했을 뿐이다..
386세대는 자신이 "운동권"이라는 영웅의 대열에 끼지 못한 비겁함에 대하여 자괴감을 느낀다.. 그런 열등감과 자괴감은 군대생활 편하게 한 놈처럼 99%의 뻥으로 구성된 무용담만 남발하게 만든다.. 이런 아웃사이더의 열등심리가 바로 386세대의 의식구조의 정확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대학시절 19일간의 추억은 영원한 무용담으로 남아 한편으로는 비겁한 자신을 탓하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무용담을 부풀린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그들에게 기회는 찾아왔다..
7. 길어서 힘들다.. 이만 결론 내자..
촛불시위는 아무런 위험 없이 15년전의 비겁함을 만회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나가 옛날의 추억을 곰씹으며 반미를 외친다.. 그 시절 아웃사이더로 전위대에 포함되지 못했던 자신의 비겁함은 자신들보다도 더욱 비겁한 이들을 찾아네어 마타도어를 하게 함으로써 해소한다.. 물론 그 대상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다.. 촛불시위에서 술자리에서 그리고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민주화의 순교자라도 되는냥 떠벌린다.. 6월항쟁에 참가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매도하며 이땅의 민주화는 자신들의 손으로 일구어냈다고 무용담을 떠벌린다..
이것이 바로 우리시대의 386세대들의 의식구조의 본질이다.. 비겁한 아웃사이더 심리, 열등감을 다른이를 왕따시킴으로써 풀고자하는 보상심리, 그리고 자신의 무용담을 부풀리는 뻥쟁이 심리, 이런 심리들은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여 새로운 타도대상을 만들게 한다.. 친일파, 차떼기, 수구꼴통이 바로 이들의 새로운 타겟이다.. 2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독재와 싸우는 것도 모자라 5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친일파와도 싸운다.. 옳다고 느꼈던 당위적 행동을 자신의 비겁함으로 인해 하지 못했던 자괴감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변태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바로 이러한 386세대의 변태적 자기합리화로 인해 또 한번의 모순을 겪고 있다.. 세계는 보수화되는데 한국은 좌경화되고, 세계는 발전하고 있는데 한국은 과거로 회귀를 하고 있다.. 이들의 의식구조를 정확히 파악한다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작금의 현실이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을 한다.. 민주화가 철철 넘처 흐르는 이 시기에 민주주의를 외치며 이 땅의 민주화를 자기들이 일구어냈다고 자랑을 하는 저들의 무용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80년대 학생운동을 한 사람 중에 이 글을 반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용문 끝-
첫댓글 자기가 좌파도 아니면서 젊은 대학가에 떠도는 지식쪼가리가 좌파 물건 밖에 없어서 그러한 행동 하는 이들이 불쌍하다면, [조선일보] 문화면에 김윤식교수 비판과 좌익 지식인 제발 좀 그만 쓰라고 주장해야 될 것입니다.
한줌의 소수파들에 착각을 갖도록 유도한 보수 언론의 좌익지식인 띄우기의 10여년의 결과를 봤다면, [조선일보] 문화면은 정신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성세대 우파는 어중이떠중이도 다 좌익으로 몰지 말고, 분열시키는 한 분열시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