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樵靑)이 여비(女婢)인가?』 재론(再論)
조선초 거창(居昌) 출신의 하양인(河陽人) 허광(許匡)선생의 효행(孝行)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增補東國輿地勝覽) 등에서 보는데, 대과(大科) 후 강관(講官)을 지냈으며 부모상(父母喪)에 3년 시묘(侍墓)하여 나라가 효자정려(孝子旌閭)를 내렸다는 기록이었다. 기타 문헌이나 석물(石物)인 약력(略曆) 기문(記文) 등에서는 또 “산중 묘하(墓下)의 여막(廬幕)에서 3년을 인고(忍苦)하는 효자의 시중을 여종(女婢, 樵靑)을 두어 받들게 하였다”는 내용의 글줄도 있었다.
근래에 어느 지인(知人)이 말하자면 인적 드문 심산중에 호랑이가 출몰하는 묘하(墓下) 여막(廬幕)에서 시묘(侍墓)하는 상주(喪主)를 여종(婢子)이 가까이 모셔 수발을 든다는 것이 가당치 아니하다는 사견(私見)을 토로(吐露)하였는데, 그런 의문에 대하여 소생이 응대(應對)한 바는 대충 다음과 같았다.
『그러한 사고(思考)는 크고 작은 세상사를 이치(理致)로 따지기보다는 대충 살펴 쉽사리 판단하는 세인(世人)의 천박(淺薄)스런 믿음일 수도 있어 보인다. 당해(當該) 문중의 보첩(譜牒), 비문(碑文) 등 자료를 보면 효자의 시자(侍者)를 분명 『남자종(奴子)』으로 기록한 곳도 있고, 또한 확연히 『계집종(婢子)』으로 보아야 할 내용 또한 있었다. 하기사 범인(凡人)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3년의 시묘에 출천(出天)의 효자(孝子)가 결코 설만(褻慢)히 여색(女色) 따위에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시자(侍者)가 노자(奴子)거나 비자(婢子)거나 문제 될 바 없는 것 아닌가? 여종(婢子)이라고 해서 가당치 않다는 판단이 차라리 가당찮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위와 같은 나의 글을 살펴본 다른 지인은 또 그 내용을 자신의 친지(親知)들에게 전하였더니 다수(多數)가 수긍(首肯)치 아니하고 불만스러워 하더라 전언하였다. 소생으로서도 그냥 듣고만 넘기기 미편(未便)하여 다시 이 한 글을 마련하여 참고삼도록 주었다.
우선 여염(閭閻)의 땔감을 위해 노역(勞役)하는 초인(樵人)에 ‘초부(樵夫), 초부(樵婦)’가 다 있으니, 시묘살이하는 이의 식음(食飮), 난방(暖房) 등을 위하여 땔나무를 채취(採取)하는 시자(侍者)는 당연히 남자종(奴子)일 수도 있고, 또한 여자종(婢子)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대학자(大學者)가 글로써 그러한 임무(任務)인 시자(侍者)를 꼭 찝어 『초청(樵靑)』이라 썼을 때에는 틀림없이 그 대상(對象)이 여성(女性)이고 여비(婢子)이어야만 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 두고자 한다.
하양인 허선생 연관 ‘孝子門重修上樑文’에서 여막(廬幕)살이 수발을 들었던 시자(侍者)를 가리켜 ‘초청(樵靑)’으로 쓴 분은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선생이었다. 조선 말엽 개화기(開化期)에 정이품(正二品) 의정부(議政府) 참찬(參贊)을 지낸 분으로 온 나라를 대표할 만한 대유학자(大儒學者)요 파리장서(巴里長書)의 민족대표였다. 이분이 초청(樵靑)이란 사어(詞語)를 쓰면서 그것이 여비(女婢)를 지칭하는 것임을 모를 수가 없었으리라. 또한 나아가 근대 중국문화의 시문(詩文), 서화(書畫) 작품에서 시제(詩題), 화제(畫題)로 빈번히 등장하는 초청(樵靑)을 분명히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었을 것임에 대해서도 의심할 여지가 없으리라.
이하(以下)에서는 그 초청(樵靑)이 여성이요 여비(婢子)이어야만 논거(論據)를 시문(詩文), 연축(聯軸) 서예(書藝) 작품, 서화(書畫) 등 자료를 중심으로 몇 가지 첨언(添言)하고자 한다.
1. 명말(明末) 청말(靑末) 중국 문인(文人) 계미(介眉) 허우(許友)의 시문(詩文)
道山僧寮紀事(도산승료기사)
道山僧寮紀事 (도산승료기사)-불도(佛道) 닦는 산중 승방(僧房)의 이야기
採水樵靑傍佛夜 (채수초청방불야)
願生幽福與人齊 (원생유복여인제)
山中侍者來城市 (산중시자내성시)
咲衜民間米價低 (소도민간미가저)
물 긷는 아낙네 여종(婢子)은 부처님 곁에서 밤을 새우며,
저승에서 누릴 복이 모든 사람 더불어 같아지기 발원하네.
절 일 시중을 드는 이가 성내(城內)의 사람이라,
요즈음 길을 가는 백성조차 쌀값이 헐해 좋아라 웃는단다.
위의 시문은 명말(明末) 청말(靑末) 중국 문인(文人) 계미(介眉) 허우(許友)가 어떤 일로 불사(佛寺) 승방(僧房)에 기숙(寄宿)하는 중에, 삶의 위상(位相)이 아주 보잘것없는 민초(民草)인 여인 초청(樵靑)의 선(善)한 불심(佛心)과 남정(男丁)인 시자(侍者)의 선(善)한 언행(言行)을 지극히 평명(平明)한 필체로 엮은 가작(佳作)의 시 작품이다. 기구(起句)에서 부처님을 향하여 내세(來世)에서 누릴 복록(福祿)이 모든 사람에게서 같아지기를 기구(祈求)하는 여인 초청(樵靑), 전구(轉句)에는 세상일을 좋게만 이야기하기가 본분인 남인(男人) 시자(侍者)가 바른 대(對)를 이룸에서 보듯이 초청(樵靑)이 여인인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림1>
2. 청말(靑末) 중국 서화가(書畵家) 반독초수(半禿樵叟) 조운학(趙雲壑)
죽리전다육언련(竹裏煎茶六言聯)
李白花前酌酒 (이백화전작주)
樵靑竹裏煎茶 (초청죽리전다)
이태백(李太白)은 꽃 앞에 앉아 술잔 기울이는데,
시종드는 여비(女婢)는 대숲에 들어 차(茶)를 끓이네.
아래의 연축(聯軸) 서예 작품은 청말(靑末) 중국의 유명 서화가(書畵家) 반독초수(半禿樵叟) 조운학(趙雲壑)이 전서체(篆書體)로 쓴 서예 작품 『죽리전다육언련(竹裏煎茶六言聯)』이다. 꽃을 완상(玩賞)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남인(男人) 시선(詩仙) 이백(李白)의 독작(獨酌)과 그 이백을 위하여 대숲에서 향기로운 차(茶)를 끓여 받드는 여인(女人) 초청(樵靑)이 하는 일을 바른 대련(對聯)으로 꾸민 작품이므로 그 초청(樵靑)은 당연히 여인이어야만 마땅한 것이다.
<그림2>
3. 청말(靑末) 중국 서화가(書畵家) 서원방(徐源舫)의 작품
죽리전다도(竹裏煎茶圖) 기타
아래 여러 서화 작품은 근대 중국 유명 서화가들이 그려 남긴 죽리전다도((竹裏煎茶圖)들이다. 위에서 본 죽리전다육언련(竹裏煎茶六言聯) 서화에서 본 바 죽림에서 이백에게 차를 끓이어 받드는 초청(樵靑)이 여인이며 여비(婢子)인 것은 아래 여러 죽리전다도(竹裏煎茶圖)를 보아 자명(自明)하여 진다.
아래 그림들에서 깊숙이 죽림(竹林)에서 노니는 신선(神仙), 은사(隱士)를 위하여 향기로운 차를 끓이어 받드는 시자(侍者)는 한결같이 여인(女人)으로만 그려졌다. 그래서 더욱 초청은 여성이며 여비(婢子)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1) 청말(靑末) 중국 서화가(書畵家) 서원방(徐源舫)
죽리전다도(竹裏煎茶圖)-선면(扇面)
<그림3>
(2) 청말(靑末) 중국 서화가(書畵家) 심심해(沈心海)
죽리전다도(竹裏煎茶圖)
<그림4>
(3) 청말(靑末) 중국 서화가(書畵家) 원배기(袁培基)
죽리전다도(竹裏煎茶圖
<그림5>
(4) 청말(靑末) 중국 서화가(書畵家) 임백희(林伯希)
죽리전다도(竹裏煎茶圖)
<그림6>
(5) 청말(靑末) 중국 서화가(書畵家) 주량재(朱良材)
죽리전다도(竹裏煎茶圖)
<그림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