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139) - 초고령 사회의 어른 구실
소한과 대한 사이의 한겨울, 추운 날씨에 몸이 움츠러든다. 그래도 매일 일정시간 걷는 것이 일상, 며칠 전 큰 길을 걷는 중 마주친 청년이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낯선 얼굴이어서 누구신가 물으니 어른이라서 경의를 표한 것이라는 대답,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내가 좋아하는 독일 법언(法諺), ‘우리는 여럿이 함께 일하고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한 사람이 혼자 죽는다.’ 점점 메마른 세상, 함께 일하고 상호 존중하는 밝은 세상이어라.
2024년 12월,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를 넘어 유엔이 정한 초고령 사회에 들어섰다. 저출산과 더불어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65세가 되면서 노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결과, 2017년 노인 인구 비중이 14%를 넘어 고령사회가 된 후 불과 7년 만에 일본(11년)은 물론이고 독일(34년)·프랑스(38년)·스웨덴(42년)과 비교할 수 없는 세계최고속의 초고령 사회진입이다. 고령화의 주된 원인은 보건의료 발전과 생활환경 개선에 따른 기대여명 증가,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추월해 조만간 세계 최장수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다음 날인 지난달 24일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무료급식소에서 노인들이 길게 줄지어 점심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초고령 사회를 박수로 환영할 수만은 없는 일, 이를 반기기에는 치러야 할 사회경제적 대가가 너무나 크다. 연금 고갈 시기가 앞당겨지고 복지나 의료비용 증가도 큰 부담, 한편으로는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감소 및 소비 위축에 따라 국가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걱정은 노인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시선이 부정적인 것,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경로(敬老) 아닌 혐로(嫌老) 사회다. 그렇다고 젊은 층을 상대로 세대 전쟁을 벌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럴 때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자기 성찰에서 찾는 게 훨씬 어른스럽다.
오늘의 노년층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끈 주역, 광복 및 한국전쟁 시기에 태어난 산업화 세대의 뒤를 이어 베이비붐 세대가 차례로 65세를 넘기며 지금과 같은 초고령 사회가 만들어졌다. 어른의 몫은 젊은 세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대화와 경청에 힘써야 하리라. 행여 나이를 벼슬 삼아 몸가짐이나 언행에 거칠거나 지나친 일은 없었는지 반성할 일, 작금의 혐로 세태를 반전시키는 일도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고령세대들의 또 다른 역사적 책무이자 보람이라 여긴다. 얼마 전 방송에서 접한 수퍼 시니어 김형석 교수의 회고, ‘젊은 때는 소유, 나이 들어서는 학문과 예술 등의 가치관, 80세가 넘어서는 사랑하는 인간관계가 중요하게 여겨지더라.’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언 16장 3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