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가부좌 틀고
방학식을 하루 앞둔 칠월 셋째 목요일이었다. 제주 바깥으로 밀려나 잠시 주춤하던 장마전선이 활성화되어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이삼일 뒤 한반도를 향해 올라오는 태풍까지 겹쳐 이번 주말엔 바람에다 많은 비가 예보되었다. 동료들은 학기를 마무리 짓는 업무들로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다. 나도 별반 차이 없는 일과였다. 학생들의 교과 능력 세부 특기사항을 기재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모처럼 교내 급식소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여느 날과 다른 처음 본 식단이었다. 식후 교무실로 들어 생활기록부 성적처리 빈 칸을 더 채워볼까 생각하다 마음을 접고 교정을 빠져나왔다. 낮까지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쳐주어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시야에 들어온 산자락은 안개가 걸쳐져 있었다. 비가 그쳐 저녁 산책을 나서려니 망설여졌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와실로 들었다. 옷차림을 바꾸어 산책을 나서보려다 잠시 그친 비가 언제 쏟아질지 몰라 마음을 접었다. 급식소서 저녁을 해결했으니 와실에선 아무런 할 일이 없었다. 방바닥 먼지도 아침에 닦았는지라 깔끔했다. 입었던 셔츠나 빈 반찬통은 내일 챙겨갈 때 빠트리지 않으면 되었다. 날씨가 궁금해 텔레비전을 켜 뉴스에서 주말까지 기상 상황을 살펴두었다.
텔레비전은 더 켜 둘 일 없어 날씨 정보만 보고 꺼버렸다. 노트북을 켜 인터넷으로 뉴스를 더 검색해보다 지인들 블로그를 둘러봤다. 이후 무료한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만 베개에 머리를 뉘어 잠을 청했다. 낮에 노동 강도가 세지 않았다만 나는 자려 마음먹으면 뒤척이지 않고 언제든 쉬 잠에 든다. 얼마간 자고 일어나니 날짜변경선이 넘지 않은 열한 시 반이었다.
칠흑에 쌓인 한밤중인데 바깥은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직 날이 밝아오려면 네댓 시간이 더 남았다. 와실에 쌓아둔 책이 몇 권 되지 않아 읽을거리도 없다. 그렇잖아도 희미한 실내등 아래선 눈이 쉬 피로해져 책을 펴는 일이 드물다. 텔레비전을 켜 뉴스전문 채널에서 주말 날씨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주말이면 우리 지역이 태풍의 직접 영향권에 든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밤중 날짜가 바뀌어 금요일이 되었다. 연사 와실은 적막에 쌓여 있었다. 바깥으로 나갈 일은 없었다. 그때 진동으로 해둔 휴대폰이 드르륵해서 놀라 켜봤다. 은퇴 후 농막에서 지내는 밀양 지인이었다. 그는 속을 썩이는 조카로 잠을 이루지 못해 늦은 밤인데도 나와 통화를 나누면 답이 있을까 싶어 전화를 넣었단다. 나는 잠수를 탔다는 조카를 어서 찾아보라고 권했다.
주중이면 낯선 거제로 건너와 머문 지도 한 학기가 훌쩍 지난다.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이월 말 연사에 둥지를 틀었다. 금요일 퇴근하면 곧장 고현으로 나가 창원행 버스를 탔다. 떠나온 창원에서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을 보내고 일요일 오후 고현행 버스를 탔다. 예전은 마산과 고성 통영을 거쳤다만 요즘은 창원터널을 지나 장유와 녹산과 신항을 거쳐 거가대교를 건넜다.
날이 밝아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그래도 시간을 주체 못해 1인분 쌀을 씻어 밥솥에 담고 전원은 넣지 않았다. 밥은 이십 분 남짓이면 지어지는 지라 나중 끼워도 되었다. 찬은 어제 먹고 남겨둔 두부감잣국을 데우면 된다. 한 학기를 보내는 마지막 아침상이 되는 셈이다. 아침을 들고나면 들녘으로 사십여 분 산책해 학교로 간다만 어제오늘 출근은 비가 와 나설 수가 없다.
내가 수업에 든 고3은 여름 방학이 짧다. 오늘 방학에 들면 희망 학생들은 일주일은 방과 후 수업이 짜여졌다. 그로부터 일주 지난 팔월 초 개학이다. 아침나절 방학식을 마치면 곧장 창원으로 돌아갈 참이다. 방학이면 그간 밀려둔 일정이나 만나 안부를 나눌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적소에서 유배가 해제되지 않았기에 조신하게 지내다 보름 뒤 다시 거제로 복귀하련다. 19.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