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는 중국 오대산의 전설적인 은거승
묘법스님의 생생한 일화와 법문들을 정리한 《현대인과실록》이라는 책을
번역·출간한 것으로 주로 인과에 관한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다.
번역자 정원규 씨는 중국 속담 ‘가가도유일본난념적경(家家都有一本難念的經)’을
예로 들며 “이 책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는 일체 고(苦)를
어떻게 바로 이해하고 바로잡아 근본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를 제시해준다”고 밝혔다.
묘법스님의 법문을 한 예로 들어보자.
“불법을 받아들여 자기 과거의 모든 악업을 진정으로 참회하면 아무리 하늘 가득한 큰 죄라도
소멸될 것입니다. 마치 아무리 견고한 얼음덩어리라도 뜨거운 햇빛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또 문제를 해결하여 재난과 불행의 근원을 끊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보고 있노라면 불자들의 가슴속에 일여한 진리의 빛을 보여주려는
스님의 따스한 애정이 느껴진다. 장세훈 기자
저자 과경·각산/ 번역 정원규 / 불광출판사(02-420-3200) / 1만원
차례
● 인연|9
●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온다|18
● 병의 원인|19
● 금빛 털을 가진 수탉|21
● 공장에 있는 것은 우리 집에 다 있어요!|25
● 어둠공포증|30
● 음식물을 함부로 버린 과보|32
● 사소한 물건의 낭비|34
● 이쑤시개의 교훈|35
● 노예주(奴隸主)의 과보|37
● 돌아가신 아버지가 제도를 구하다|41
● 특이한 병의 원인|44
● 고기를 먹으면 왕생할 수 없다|47
● 잘못 가르친 죄|50
● 임신을 하면 지장경을 독송하라|52
● 태아가 지장경 듣기를 좋아하다|55
● 눈병과 금산사의 수몰|58
● 서유기와 봉신방|64
● 업장소멸 게(業障消滅偈)|69
● 한 집안의 정신병과 공포소설|71
● 모친을 굶겨 죽인 불효자들의 말로|76
● 인과응보는 대자연의 법칙|82
● 친구 영혼의 빙의(憑依)와 히스테리|87
● 관의 거사(管義居士)|90
● 어느 불량배의 참회|92
● 축농증의 원인|97
● 지계하며 염불해야 이익을 얻을 수 있다|100
● 어린 쥐와 어지럼증|104
● 고기머리에 못질한 과보|108
● 돼지족발과 발병|111
● 계란 전병과 허리디스크|113
● 소탐대실|119
● 천포창(수두)의 원인|123
● 경을 많이 읽으면 지혜가 증장한다|127
● 개미집과 머물 집|129
● 나무들의 하소연|131
● 호법이 어찌 공양을 탐할 수 있느냐?|135
● 몸소 실천하고 항상 좋다고 말하라|139
● 기공치료와 무당|143
● 미녀와 도적|149
● 천 년 된 느릅나무와 체면 없는 남편|155
● 부자 상인과 여종|160
● 김 사장과 이리의 악연|163
● 악연의 재생|171
● 당나귀가 빚을 독촉하다|180
● 미혼탕(迷魂湯)|182
● 죽은 개의 복수|184
● 태아의 죽음과 해원(解寃)|188
● 어느 노 수행자의 처절한 참회|192
● 정감천지(情感天地)|204
● 개구리 고기를 즐겨 먹은 과보|210
● 염불 왕생하신 외할머니|217
<부록>
●묘법 스님의 법문|227
● 선화 상인의 법문|235
● 고행두타 묘림 스님 이야기|243
인연(因緣)
나는 어릴 때부터 무신론(無神論)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또한 불교를 접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종교도 가까이 한 적이 없었다. 장성한 후 비록 절에 가본 적은 있지만 그것은 다만 여행 삼아 놀러 간 것뿐이다. 물론 호기심이 나서 친구들과 교회에 가본 적도 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모든 종교를 미신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어떻게 불교를 배우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가? 10년 전 여름 오대산(五台山)에 놀러갔을 때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다. 오대산은 우리나라(중국)의 4대 불교성지 중의 하나이며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상주하시는 도량이다. 그동안 유명하다는 절은 이곳저곳 놀러가 보곤 하였는데, 높고 장엄한 고찰(古刹), 향이 피어오르는 전각, 나아가 인간 세상의 속진(俗塵)을 없애는 듯한 종소리는 매번 내게 감동을 주었다. 그 무렵 오대산에 다시 오게 되었는데, 나는 갑자기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심산계곡의 한적한 절에 계시는 스님을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맑은 한기(寒氣)가 엄습하며 자색안개가 피어오르는 그 날의 새벽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다. 한결 기분이 상쾌해진 나는 행장을 정리하여 한 장의 지도를 옷 속에 품고 혼자 그윽한 곳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 날의 여정이 나와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오대산을 내가 새로 태어난 곳으로 여기고 있다.
집을 나선 뒤 나는 일부러 넓고 평탄한 길을 피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택하여 걸어갔다. 길을 따라가면서 높이 솟은 산봉우리, 그윽하고 깊은 계곡의 숲, 비취색 같은 서기가 눈에 비쳐 빛을 뿜어내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하고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듯하였다.
길은 가면 갈수록 험하여졌다. 아예 개울을 따라 구불구불한 계곡 길을 따라갔다. 고목과 차가운 바위, 흰구름 비치는 푸른 샘, 기이한 풀과 야생화들을 완상하면서 가다보니 몸이 산수간에 있는 것도 잊을 지경이었다. 계곡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정오, 그러나 은사(隱士), 한가로운 스님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다소 실망스러웠다. 내가 아득한 사방을 둘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목탁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왔다. 또르르 딱 또르르 딱… 신묘하면서도 고졸(古拙)한 여음이 산가를 맴도는데 마치 하늘이 서서히 열리는 듯하였다. 직감적으로 이 소리가 서쪽 안개 그윽한 산 계곡에서 들려오는 것으로 판단하고 곧바로 정신을 바짝 차려 한 걸음 한 걸음 잔돌을 밟으며 계곡 가운데로 나아갔다. 깊은 계곡으로 들어오니 다만 자색 기운과 우람한 나무들만 보이는 것이 이곳이 선경(仙境)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때 목탁소리가 먼 곳으로부터 가까운 곳으로 들려오더니 갑자기 끊어졌다. 여음을 들으면서 홀연히 맑은 개울물이 눈앞에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마치 인간세계로 내려온 선인같이 티끌에 물들지 않아 주옥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즉시 몸을 굽혀 물을 한 모금 떠 마시니 시원하고 달콤하며 입에서 향이 나오는 것 같았다. 물을 마신 후 손으로 얼굴을 씻으니 어찌나 상쾌하던지.
그때 갑자기 건너편에 사람이 한 명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수염과 머리털이 덥수룩하며 납의(衲衣)를 걸친 노스님이 두 손을 모으고 단정히 서 계셨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니 수염과 머리털이 휘날리며 납의가 표연히 흩날렸다. 서로 상대방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눈앞이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분의 눈은 맑고 깨끗하며 매우 자상해 보였다. 나는 어떻게 건너편의 스님 곁으로 가야 할지 몰랐다. 단지 그 노스님이 지난 세상의 부모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주, 방해가 되었소이다.” 노스님이 합장하며 말씀하셨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스님의 수도(修道)를 방해하였습니다.”
노스님의 말씀에 나는 매우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황급히 대답하였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출가한 스님과 대화한 말이다. 나는 빠르게 적당한 말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시주께서는 이렇게 그윽하고 적막한 곳을 좋아하시는가 보죠?”
“단지 시끄럽고 번잡한 곳을 피해 혼자 산 속을 거닐어보고 싶어서.”라고 답하면서 쑥스러운 듯이 뒷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기이한 만남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 그렇게 말하시니 정말 방해를 했소이다. 시주는 천천히 놀다 가십시오. 노납은 먼저 갑니다.”
내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노승은 이미 표연히 저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재빨리 몇 걸음 따라가면서 얼굴을 붉히며 말하였다.
“걸음을 멈추십시오. 사실 저는 스님과 같은 고승을 만나 뵙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요. 나는 고승이 아닙니다. 단지 우매하고 완고한 길을 인도하는 스님입니다.”
“방금 스님께서 목탁을 치셨습니까?” 나는 입을 크게 벌려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목탁을 치는 것은 꿈속의 손님을 깨우는 것이요, 맑은 개울물은 속세의 때묻은 마음을 씻어 없애는 것입니다.”
나는 묵묵히 노스님의 말씀을 되씹으면서 알 듯 모를 듯할 즈음 이미 노스님을 따라 숲을 돌고 등나무를 헤치면서 매우 넓고 탁 트인 곳에 도달하였다. 그 곳에는 단지 푸른 숲과 하늘만 보이고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만 역력하였다. 주위에 둘러 심은 늙은 배나무는 구부러진 채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북쪽 지세는 높고 평평하였으며 샘이 솟는 곳에 조그마한 초막이 있었다.
“제가 정말로 큰스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나는 매우 흥분되었으며 한편으론 의문이 생겨 입을 열려고 하였으나 범속한 소리는 도리어 속진이 끊어진 이곳을 오염시킬까 봐 말이 입가에서 맴돌았다.
“사바세계는 오래 몸을 숨길 수 없으며, 세월은 한계가 있어 죽음이 임박하기를 기다릴 수 없다. 명예와 이익은 언제나 공허하며 세속의 은애는 끝내 헤어지게 되고 원수는 서로 보복하기를 끝이 없다.”
노스님의 무심한 듯한 읊조림은 나에게는 우렛소리와 같았다.
“세상 사람은 단지 나쁜 짓을 할 줄만 알지 참회할 줄은 모르며, 단지 복을 구할 줄만 알지 복을 자기의 분수에 맞게 쓰려고 하지 않네. 염불 일성(一聲)이 무량한 복을 증진시키며, 예불 일배(一拜)가 강가의 모래알같이 많은 죄를 없애는 줄을 전혀 모르네.”
나는 나도 모르게 노스님 앞으로 가서 꿇어앉아
“스승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저는 스님께 불법(佛法)을 배우고 싶습니다.”
“불법은 바다와 같아서 오직 믿음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너는 믿느냐?”
노스님은 ‘믿음’이라는 자에 힘을 주어 말씀하셨다. 이 물음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때까지 나는 불교를 미신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 예배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어째서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노스님 앞에 경건히 꿇어앉아 있는가? 나는 스님의 물음에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공(空)’, ‘속진’, ‘참회’ 등등 이런 단어들이 이미 나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었으며, 아울러 내 마음속에서는 마치 오래간만이라는 정감이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내가 이처럼 넋이 나가 있을 때 따스하게 나를 응시하는 노스님의 자비로운 눈길이 느껴졌다. 이때 만감이 교차하면서 굵은 눈물방울이 노스님의 발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비록 스스로 추태라고 생각하면서도 눈물은 여전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렸다. 나는 마치 실수를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소리 없이 흐느꼈다.
“믿음은 도(道)의 문으로 들어가는 공덕의 어머니이다. 하지만 믿음은 바른 믿음과 삿된 믿음으로 구분된다. 소위 바른 믿음이란 바르되 삿되지 않으며 깨달아 미혹되지 않는 것이다. 불교에 귀의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정확한 지견(知見)을 수립해야 한다….”
“예불은 부처님의 덕을 경배하는 것이며, 염불은 부처님의 은혜를 느끼는 것이며, 간경(看經)은 경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며, 좌선은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며,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부처님의 도를 증득하는 것이다….”
나는 기갈에 허덕인 듯 노스님의 주옥 같은 법문을 경청하였다. 눈앞에 있는 작은 풀들이 모두 금빛으로 번쩍였다. 푸른 나뭇잎들이 모두 부처님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해는 서산에 기울었다. 노스님은 나를 배웅하려고 몸을 일으키셨다. 그리고 샘물 솟는 곳에서 배를 하나 꺼내 나에게 건네주셨다. 선황색의 배를 바라보면서 나는 비로소 아침과 점심을 먹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노스님께 감사 드리며 배를 한 입 베어 물으니 싱그러운 향이 입안에 가득하고 가슴이 상쾌한 게 마치 하늘의 선과(仙果) 같았다.
노스님은 그러한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린애같이 순진하게 웃으셨다. 웃는 모습이 마치 주름살 가운데서 즐거움의 꽃이 솟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스님의 웃는 모습은 나를 깊게 감동시켰으며 안 지 몇 년 된 오랜 친구같이 느껴졌다.
“이 배는 본래 써서 삼키기 어려운 것인데, 이 샘물에 담가 3개월이 지나면 이렇게 달게 변한다네. 이 샘은 겨울에는 부드럽고 여름에는 차가우며, 배를 따서 흐르는 물 속에 1년 동안 보존할 수가 있다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스님은 여러 해 동안 이곳에서 수행하셨겠네요?”
나는 호기심과 동경의 마음이 가득하여 물었다. 노스님은 미소만 지을 뿐 옳다 그르다 이야기하지 않았다. 옛달은 서리 같고 청풍은 물과 같으며 작은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있었다. 나와 노스님의 청담(淸談)은 이어졌다. 노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한기(寒氣)는 물론이고 먼길도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절로 돌아가는 큰길로 되돌아 왔을 때 노스님은 소매 속에서 작게 접은 종이를 꺼내 건네주시면서 두 손을 합장하고 이별을 고했다. 나는 사실 이별이 아쉬웠으나 여러 말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다.
“인연이 있으면 저절로 만나게 될 것이다.” 하면서 노스님의 모습이 소나무 숲 속으로 사라졌다.
은하수가 쏟아지듯 수많은 인가의 불빛을 마주하면서 나는 비로소 감동과 아쉬움을 느꼈다.
“오늘은 이미 지나가고 수명 또한 그에 따라 줄어드는 것이 마치 줄어드는 물 속의 고기 같은데 무슨 즐거움이 있겠느냐?”
나는 지금까지 그 날 같은 명철함과 평온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노스님은 곧 폐관(閉關) 수행을 끝내고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제도하면서 인연에 따라 법을 설할 것이라고 하셨다. 노스님의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객방의 탁자 앞에 조용히 앉아 이날의 꿈 같은 일을 회고하니 이 모든 것이 깊은 의미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노스님의 이름을 여쭙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이때 노스님이 나에게 남겨준 쪽지가 생각나 급히 펼쳐보았다.
“해지는 초당(草堂)에 부처님의 뜻이 깊어
홀로 앉아 옥토끼(달)를 닦네.
달이 차고 이지러져도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소박한 마음으로 번뇌를 막네.
이슬이 맺힌 난초, 새가 깃든 회나무
만물의 온갖 소리 구름 속으로 녹아드네.
쾌적한 바람이 소나무와 춤을 추고
거짓에 물들지 않고 진실을 꾸미지도 않네.”
몇 행의 소박하면서도 힘이 있는 글씨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래에 단정하게 쓰여 있는 작은 글씨, 석묘법(釋妙法)이라는 스님의 법명이 또렷하게 담겨 있었다.
‘거짓에 물들지 않고 진실을 꾸미지 않는 곳’이 묘법 노스님의 상주(常住)세계임을 알고 나는 무척 즐거웠다. 하루 빨리 법의 비를 다시 맞기를 바랬다. 오래지 않아 노스님과 연락이 되었고, 그 때부터 우리 사제간의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이 시작되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10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지금 내가 이미 회갑에 가까웠으니, 그 동안 심혈을 기울여 위법망구(爲法忘軀)하시며 중생을 교화하시는 노스님의 모습을 무수히 보아왔다. 그러나 내 자신은 세월을 헛되이 보내면서 아직 모든 인연을 놓지 못하고 진실을 수용하지 못하였으니(즉 도를 깨치지 못함을 뜻함)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신선하면서도 명확한 인과의 실례를 나 혼자 무덤 속으로 가지고 가기가 아까워 재삼 망설이다가 비록 글재주는 없지만 붓을 들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적당하지 못한 단어와 빠뜨린 곳이 많을 것이다. 여러 대덕 불자님께서 가르침을 주시기를 원한다. 마지막으로 한 수의 게(偈)로써 여러 불자님들과 함께 닦아가기를 원한다.
“탐욕과 성냄을 놓지 못하면 불경(佛經)을 헛되이 읽은 것이며, 약방문을 보고도 약을 먹지 않으면 어찌 병이 나아지겠는가?”
새 천년의 시작을 맞이하여 우리들 모두 삼근(三根)으로 수행하며, 이근(利根)과 둔근(鈍根)이 같이 수행하여 복혜(福慧)가 증장하며, 불도를 하루빨리 이루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