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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명품 “made in 하나님”
중견탤런트 김민정 권사의 간증
“나를 최고의 명품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내가 이태리제 옷을 입고, 명품 화장품을 바른다고 명품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져지고 만들어진 나의 모습이 최고의 명품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소녀같은 미소, 기쁨이 넘치는 환한 얼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김민정 권사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이다. 그녀가 연예인이어서? 아름다운 외모를 소유하고 있어서? 아니면 고가의 옷으로 온 몸을 둘렀는가? 아니다.
“지난날 화려하고 부유한 스타 삶이 아니어도, 나이가 들어 주름이 하나 더 늘어도, 명품 가방을 들지 않아도 저는 오히려 더 자신감이 넘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주셨기에 나는 그 무엇보도다 가장 값진 명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은혜로 매일 매일 기쁨이요, 천국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김민정 권사.
그러나 불과 10년 전만 해도 그녀는 항상 불안하고, 우울하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대궐 같은 집에 살면서도, 값비싼 옷들을 걸쳐도 내 자신은 보잘 것 없어 보였고 불평과 불만 투성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 모든 것에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전 보다 물질적으로 외적으로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오히려 더 마음이 부유하고 기쁨이 넘치는 것이다.
도대체 그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민정 권사가 하나님을 처음 만난 것은 결혼 후 허무함과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였다. 1969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이후 사극 ‘장희빈’으로 인기를 얻으며 1970년대 최고의 스타가 된 그녀였다. 그리고 갑자기 결혼과 동시에 모든 활동을 접었다. 스타의 자리를 계속 누릴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더 이상 배우를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팬들에게 잊혀져 가면서 허무함과 존재감 상실로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을 앓기 시작했다. 결혼이 가져다 준 부유함은, 넓디넓은 집은 내 자신을 더욱 외롭게 만들 뿐이었다.
“당시 내 몸은 살짝만 건드려도 바스러질 것 같은 정신과 육체가 모두 바싹하게 마른 상태였어요.”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니 만성위염에 피부병 등 각종 질환을 앓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사람과의 만남을 꺼리던 그녀에게 유일한 친구,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단 한명의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죽음을 앞둔 그녀는 기도원으로 올라갔는데 당시에 김 권사에게 “네가 불쌍하다면서 기도원에서 함께 기도하자”고 한 것이다. 죽음을 앞둔 자신보다 더 불쌍한 처지에 있는 친구에게서 오히려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그래서 그녀는 죽어가는 친구를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기도원에 갔다.
그곳에서는 당시에 연예인 교회 건축을 앞두고 작정기도를 하러 올라온 동료 연예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들의 모습에 도전을 받은 그녀는 하나님 사랑이 궁금해졌고,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다 그녀는 보름만에 성령의 뜨거움을 체험하고, 방언 받고, 질병의 고침도 받았다.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던 친구는 4년을 더 살고는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친구가 죽고 난 후 믿음이 곧 시들해졌다. 믿음의 맨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민정 권사는 전남편과 이혼 후 방송을 다시 시작했지만 중년의 나이에 돌싱(돌아온 싱글)으로 온 그녀에게는 험난하고 실망스러운 일들 뿐이었다. 다시 자신을 자악하고, 죄악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물론 주님을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 눈치만 보고 믿음 좋은 척만 했죠. 신앙도 샤머니즘적으로 흘러 교회가지 않으면 재수 없을까봐 억지로 주일을 지키고 있는 거예요.”
죄도 한두 번 지을 때는 죄책감이라도 들었지만 그 이후에는 무감각해져서 어떤 죄의식도 없이 죄악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주님을 외면하고 세상으로 가는 그녀에게 하나님은 다시 강한 은혜 빛을 비춰주시는 사건이 있었다.
1992년 2월 29일. 갑자기 그녀의 두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이혼한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벌어진 회사 경영권 다툼이 그녀를 법정에 서게 한 것이다. ‘사기’, ‘공금횡령’이란 오물을 뒤집어쓰고 말이다. 물론 나중에 무혐의로 판결이 나 풀려났지만 그녀는 이 사건으로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생각만해도 어둡고 추운, 갑갑한 그 감옥소 생활. 그런데 김민정 권사는 감옥에 들어간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가 인생에서 최고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수송차에 타는 순간 나는 내 장례식을 치뤘습니다. 수송차는 영구차 같았고, 죄수복은 수의, 감옥은 무덤, 판사는 죽은 후 주님 앞에서 심판 받는 것 같았습니다. 죽음을 경험하면서 나는 세월을 아끼지 않았구나, 백년 천년 살 것처럼 오만 방자하게 살았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감옥에 들어가는 그 첫날 주님을 다시 새롭게 만나며 6개월간 주님의 특별한 훈련 시간 안에 거하게 됐다.
눈만 뜨면 말씀을 읽고 예배하는 생활을 한 그녀는 20일 만에 성경 1독, 그리고 그곳에서 2독을 더 했다.
그 전에는 말씀을 읽어도 믿어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꿀송이처럼 달고 성경 말씀 하나 하나가 너무 귀하게 여겨진 것이다. 김 권사는 혼자만 은혜 받는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같은 교복을 입은 사람들과 예배를 드리며 복음을 증거하며 전도하기 시작했다. 핍박을 일삼던 불자도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사건도 있었다.
또 그녀는 하루에 한 끼 금식, 한 달에 두세 번은 3일 금식 등을 하며 그곳에서 영적인 훈련을 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한밤 중 갑자기 감옥에서 나오게 됐다. 보석을 쓴 것도, 집행유예도 아니고, 탄원서를 보낸 것도 아니었는데 하나님의 훈련이 끝나자 나오게 된 것이다.
그날 밤 김민정 권사는 감옥을 뒤로 하며 “십자가 군병 훈련 잘 받고 나갑니다” 고백했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는 은혜만 받았지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없었고, 말씀을 알지 못해 참 자유가 없었다. 들어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감옥에서 제대로 신학 공부를 한 것이다.
또 그전에는 죽음은 생각도 하기 싫은 것이었다. ‘죽음’ 단어 그 자체가 재수 없는 것 같고 불길한 징조와 같은 것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늘 주님 곁에 갈 그날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가 되었는데 이 세상에 무엇을 걱정할 것이 있겠는가. 예수 안에서 참 자유를 얻게 된 그녀가 기쁘지 않을 일이 무엇이 있을까. 또 ‘기도’라는 무엇이든 이길 수 있는 도구를 주셨는데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김민정 권사의 변화는 지금의 남편을, 세 자녀까지도 변화시켰다. 둘째 딸은 전도사로 아름다운 믿음의 일꾼이 되었다.
“고난이 유익이었습니다.”
죄 많고, 부족한 나를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 감사와 사랑의 하나님, 내가 만난 주님을 이제는 전하며 살고 싶다는 김민정 권사. 나의 작은 간증이 좌절과 아픔,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복음을 토해 ‘믿음 안의 자신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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