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렌 키에르케고르 (Søren Aabye Kierkegaard)
・ 202
키에르케고르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상인의 일곱째 자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내가 자식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자 당시 교회의 교리로 금지된 재혼을 감행했다. 두 번째 아내는 바로 그의 집 하녀였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난 키에르케고르는 어렸을 때 어머니와 다섯 오누이들을 몇 년 사이에 잃는 비극을 겪는다.
이러한 사건을 자신의 탓으로 여긴 아버지는 종교적 절망과 우울에 빠졌고, 그것은 어린 키에르케고르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뜬 후 유산을 물려받았으나, 그는 이것을 불려 나가기는커녕 제대로 유지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저녁에 시내 중심가를 산책하거나, 극장에서 오락장을 찾아다니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키에르케고르는 자기보다 열 살이나 어린 열일곱 살의 올센과 약혼을 했지만, 1년 후에 파혼을 해버렸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두 사람의 성격이 맞지 않아서 그랬다는 설도 있으며, 어렸을 적에 나무에서 떨어져 결혼생활을 할 수 없었다는 설도 있다. 어쨋든 약혼녀와 헤어지고 나서도 키에르케고르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으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일기에 자세히 기록했다. 또한 약혼녀가 자기와 같은 하찮은 존재와 이별한 것을 슬퍼할까봐 스스로 무위도식하는 자로 보이도록 애쓰기도 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발표하려다가 교회를 공격하는 내용이어서 출판을 망설이다가 결국 가명으로 출간했다. 이 밖의 저서로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불안의 개념」, 「기독교 입문」등이 있다. 그는 출간하는데 유산을 다 써버렸으며, 아무런 직업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길에서 졸도하여 세상을 떠났다. 이때 그의 나이 겨우 마흔두 살이었다.
이론보다는 삶이 중요하다
키에르케고르에게는 그저 이론이 아닌, 삶 자체가 중요했다. 삶의 현장에서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주관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아무리 휼륭한 철학을 주장한다 해도, 내가 그 속에 살고 있지 않다면 그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읽은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그것이 나의 실존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이 주장한 진리의 보편성에 대해 반기를 든다. 진리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일회적이고 내면적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진리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해당하는 진리가 중요하다. '나'야말로 모든 빛이 모여들고, 또 모든 빛이 퍼져 나가는 중심이다. 체계를 세우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행동이다. 그리고 보편적인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것, 즉 단독자다.
키에르케고르에게 '나'는 모든 것이다. 모두 아는 진리라도,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는지는 '나'의 고유한 결단에 달려있는 것이다. 모든 역사의 과정 역시 논리적으로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나의 확고한 결단에 따라 새롭게 생겨난다. 그리고 이런 일은 불안과 결합되어 있다.
죽음에 이르는 병, 불안과 절망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했다. "불안은 미리 앞질러 간다. 불안은 결과가 생기기 전에, 그 결과를 먼저 발견한다. 우리가 어떤 날씨가 다가오는 것을 저절로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언뜻 불안은 유익하게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현재의 나로서는 만족을 줄 수 없고, 나를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는 불안이 없다. 이와 반대로 천재에게는 이 불안이 많은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안을 배워야 한다. 만약 불안을 벗어나 저급한 향락에 빠지고 만다면, 그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동물로 전락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불안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은 불안 때문에 영겁의 불속에 빠져 죽지도 못한 채 발버둥치는 벌레처럼 살아간다. 자살도 소용없다. 인간은 오직 절망을 부둥켜안고, 이것을 뚫고 나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은 어디에서 유래할까? 그것은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죽을수도 없는 인간의 처참한 운명에서 유래한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그 병은 영원히 구원될 수 없는 정신의 병이다.
실력있는 의사라면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라고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참다운 철학자라면 "이 세상에 절망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라고 말해야 한다.
신 앞에 홀로 선 단독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발전을 세 단계로 구분했다. 첫째는 스스로 그 실존의 의의를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하는 직접적인 생존의 단계인, 미적 실존이다. 여기에서는 그저 "인생은 즐겨야 한다"를 모토로 삼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향락을 추구하다며 보면 피로와 권태가 따르기 마련이고, 우리는 결국 실망하고 만다.
둘째는 인간이 자기 실존의 의의를 잘 알고 윤리적인 사명에 충실하려고 하는 윤리적 실존이다. 여기에서는 스스로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하지만, 인간은 이미 자기가 혼자라는 사실을 알고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셋째는 그러한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고 종교적 실존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이겨낸 사람만이 '신 앞에 홀로 선 단독자'가 된다. 이것이 바로 종교적 실존이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당시의 세속화된 기독교를 비판했다. 세속적인 국가와 타락한 기독교가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왔다는 믿음과, 겉으로 보이는 일에만 열중하는 부르주아 교회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그 누구도 참다운 기독교인이 아니면서 누구나 기독교인임을 자처한다는 사실이 키에르케고르에게는 꽤 못마땅하게 보였다. 그에게 기독교란 너무나 숭고한 것이어서, 스스로 감히 진리의 증인이라거나 순교자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평생 세상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피했다. 심지어 후세에 그의 이름이 남용되는 것에 대비해서, "나의 유산을 물려받을 사람은 틀림없이 나에게 혐오감을 준 대학의 강사나 교수다. 그들은 나의 이러한 글까지도 강의의 소재로 삼을 것이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이렇게 키에르케고르는 완전한 체계를 갖추지 않은 그의 사상을 통해 철학사적인 의의를 갖는다. 실존주의란 인간의 구체적인 삶 자체를 문제로 삼으며, 그 삶이란 항상 변화무쌍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객관화되어 하나의 이론으로 변하는 즉시, 그것은 이미 실존사상과는 거리가 먼 어떤 것이 되고 만다. 둘째, 그가 사용한 언어들은 권태, 우울, 불안, 절망, 죽음에 이르는 등 온통 우울한 색깔로 덮여있다. 가령 "태초에 권태가 있었다. 신들은 권태로웠고, 그래서 인간을 창조했다"라거나 "나의 삶은 어두운 밤과 같다"라는 표현 등은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보다 더욱 음산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절망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것은 우리의 결단을 위한 토대이고, '죽음에 이르는 병'은 초월로 향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며, '불안과 절망'은 인간을 신앙으로 몰고가는 힘이 된다. 또한 20세기의 실존 철학이나 기초 존재론에 대해서도 우리는 키에르케고르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물론 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가령 교회에 대한 그의 비난이 교회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한다거나, 그에 의해 너무나 강조된 주체성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마저 가로막는다든가 하는 것이다. 또한 이웃과 세계에 대한 관심을 버린 채, 오직 자기 자신의 실존적 죽음의 문제에만 골몰하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