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다해 3월14일 [(자) 사순 제1주간 목요일]
제1독서 에스테르기 4,17(12).17(14)-17(16).17(23)-17(25)
복음 마태오 복음 7,7-12
◈ [서울] 사순 제1주간 목요일
2019년 다해 3월14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모처럼 성당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외국에서 살다 귀국한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위해서 성실하게 살았던 친구들의 중후한
멋이 느껴졌습니다. 나이테가 있어서 나무는 높이 자랄 수 있듯이,
친구들도 저마다 삶의 나이테가 있었습니다. 즐거울 때가 많았지만
때로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대화의 단절, 일방적인 희생,
갑자기 찾아온 건강 이상,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퇴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모든 어려움을 견디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믿고
함께하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딸바보인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판단하고, 따져보고, 고민하지만 딸의 이야기는 조건
없이 들어주게 된다.’ 다른 친구들도 그 말에는 동의했습니다.
‘최고의 우선순위는 자식이지!’ 제 삶의 나이테는 어떻게 생겼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최고의 우선순위는 무엇이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머니, 동생, 형님이 있습니다. 제게 필요한 분도 있지만, 저를 필요로
하는 분도 있습니다.
미세먼지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미세먼지의 원인을
이야기합니다. 편서풍을 타고 외부로부터 날아온 미세먼지가
많았습니다. 국내에서 발생한 미세먼지도 있었습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입니다. 미세먼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미세먼지를
숨 쉬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를 만들어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몰랐고, 우리의 욕심 때문에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입니다. 외출을 자제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자주 씻는 것입니다.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것들의 사용을 자제하고,
이웃 나라와 협력하는 것입니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 외출을
자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자연과 환경을 보존하려는
연대와 협력입니다. 인간이 만든 미세먼지를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나무, 꽃, 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사람은 마스크라도
착용하지만, 그들은 마스크도 없기 때문입니다.
미세먼지에 대한 책임입니다. 계절이 변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미세먼지가 날아오는
바람에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미세먼지를 만드는 나라에 책임을
묻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바람까지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회는 미세먼지 발생 방지에 대한 법안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강력한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이웃 나라와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두드리면 열릴 것이고, 구하면 얻을 것이고, 청하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모가 자식이 원하는 것을 주듯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차고 넘치도록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미세먼지를 없애
달라고 청하면 될까요? 우리나라로 오는 미세먼지를 오지 말라고
청하면 될까요?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청을 알고 계시고, 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따르기만 한다면, 우리의
욕심과 욕망을 버리기만 한다면, 풍요와 발전이라는 바벨탑에서
내려온다면 맑은 공기, 깨끗한 물, 파란 하늘은 곧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이 여러분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여러분도 남에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원하는 것을 너무 오래
청하지 말라
2019년 다해 3월14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원하는 것을 너무 오래 청하지 말라>
복음: 마태오 7,7-12
과월절을 앞두고 한 유태인이 랍비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랍비님, 저는 너무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없는 것이 많아 골머리가
아픕니다. 못 살겠습니다.”
랍비는 무슨 근심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과월절이 다가오는데
무교절 빵을 살 돈도 없고 포도주, 자기 옷, 아내 옷, 자녀 옷은 물론
고기도 살 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랍비는 물었습니다. “무교절 빵은 얼마요?” “5000원입니다.”
“포도주는 얼마요?” “1만원이요.” “자네 옷은?” “5만원이요.”
“아내 옷은?” “10만원이요.” “자녀 옷은?” “3만원이요.” “과월절
고기값은?” “2만원이요.”
이 말을 들고 랍비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제 자네는 돌아가서 너무 많은 걱정을 하지 말고 한 가지 걱정만
하게. 21만5000원 걱정 하나만 하게. 그리고 하느님께 한 가지만
기도하게. 21만5000원을 달라고 말이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청하면 반드시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가 청하는 것을 다 얻나요? 그렇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복음 끝에 나오는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라는 말씀에 주의를 덜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왜 청하면 반드시 받을 수 있다는 말씀 끝에 다시 내어주라는 말씀을
덧붙이신 것일까요? 청하는 것에 대해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줄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주님께 무언가를 청할 때도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목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청하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것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게 됩니다.
받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는 것은 이미 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믿고 청해야 다 받게 됩니다. 믿는데 왜 걱정이 있어야할까요? 그러니
받은 것을 다 내어줄 줄 아는 마음으로 청하라는 뜻입니다.
내어주려는 마음이 믿는 마음입니다. 또 채워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는 봉헌하는 마음이 믿는 마음인 것과 같습니다.
봉헌하면 다시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봉헌한 밀떡과 포도주는
주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살과 피로 되돌려주십니다. 십자가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이 아니면 예수님께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청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청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말은 아예
신경을 끄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을 받게 되던 받게 되지 않던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무엇이든 청하되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면 다 좋은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다
잘 되게 해 주십니다. 그런 믿음 안에서 불안감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불안하지 않아야 주님께서 나를 통해 좋은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노자 도덕경에서도 ‘위이불시’ 즉 ‘행하되 결과를 기대하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 많은 사람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항상
걱정하는 일만 생깁니다. 그 걱정하는 것을 받을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계시고
그것을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런 분임을
믿기만 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청할 때 그것을 진정으로 얻고 싶다면 “짧게”
청하십시오. 원하는 것을 너무 오래 청하면 그 청하는 것이
근심거리가 됩니다. 받는다는 것보다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짧게 청하고 그 다음부터는 주님의 기도나
성모송을 바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맡기고 하루를 평안히 사십시오.
잔잔한 호수라야 하늘을 비출 수 있듯 평안한 마음이라야 은총을 받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면 나머지는 덤으로 받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런 이유로 복음서에서 항상 ‘주님의 기도’ 다음에
무언가를 청하라는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의 기도만
열심히 바치면 됩니다. 그리고 짧게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만 가지면
다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바라야 할 유일한 것은 내 마음을 넘어 이
세상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뿐입니다.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원]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느님|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14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느님
복음: 마태 7,7-12: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려라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기도를 잘
아는 민족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듣는 귀가
말하는 입 가까이 붙어있는 것과 같이 하느님은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가까이 계셔 들어주신다.” 그리고 하느님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요구를 내놓을 줄 아는 이를 더 사랑하신다.”
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7-8절)
라고 가르쳐 주신다. 문은 청하고 구함으로써 두드리는 이에게만
열린다. 우리가 청하는 것은 사랑의 계명을 완수할 수 있는 힘을
청하는 것이며, 찾는다는 것은 복된 삶을 위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의 참된 지식은 복됨으로 가는 길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열렬한 마음으로 청하여야 한다. ‘찾아라.’는 의미가 이런
뜻이다. 무엇을 찾는 사람은 찾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며 주변 상황에는
관심이 없다. ‘두드려라.’는 말씀은 열정적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곧 열어 주시는 것 같지 않아도 우리는 그곳에
남아 계속 문을 두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분께 항구하게 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삶을 예를 들어 설명하신다.
즉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9-11절)하신다. 우리가 악하다 해도 자식들에게는 좋은
것을 골라 준다. 그러니 하느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속이지 않듯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속이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12절) 예수님께서는 이 한 마디로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일을
간단히 요약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덕은, 즉 선행은 간단하고 쉬우며
모든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것임을 가르치신다. 그래서 ‘너의 동료가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도 네 이웃에게 해 주어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12절) 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가 무엇인지 안다. 몰랐다고 핑계를 댈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할 때, 이중적으로 대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현세적인 이익을 바리지 않는 마음으로 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게 참된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하여 그분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는 것 같이 우리도 이웃을
대할 때 그런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내가
청하는 것을 이루어주시기를 원하지 않는가?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도회]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 7)|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강론
2019년 다해 3월14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 7)
아름다운 봄꽃을 열게하시는 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기도의 또 다른 이름은 바뀔 수 없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로 생명의 길을 찾게됩니다.
비로소 우리 안에서 열리는 자유의 기쁨입니다.
많은 문들이 아니라 진짜 필요한
하느님과 우리자신의 관계라는 門입니다.
기도로 말씀을 읽게 되고 말씀을 듣게 됩니다.
기도의 주인은 언제나 주님이십니다.
언제나 우리를 향해 계시는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닫힌 문을 열어주십니다.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선물이 됩니다.
기도의 방식은 사랑의 방식입니다.
사랑의 방식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감사입니다.
문을 두드렸을 뿐인데 언제나 더 많은 은총을
주시는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열려야 할 사랑의 관계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받은 것입니다!
2019년 다해 3월14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받은 것입니다!
기도와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오 복음 7장 7~8절)라는 말씀은, 생각하기에 따라
오해의 소지라 많은 말씀이라 신중한 해석이 요구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는 말씀에
굳은 확신을 갖고, 목숨을 다하여 간청했습니다. 십 년, 이십 년,
평생에 걸쳐 청했지만, 그러나 그 어떤 응답도 받지 못한 채, 실망하며
빈손으로 떠나갔는지 모릅니다.
특히 너무나 절박한 상황 앞에서, 극도의 가난 앞에서, 극심한 고통
가운데, 간절히 청하고 또 청했지만, 끝내 주님께서는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불치병으로 앓던 아들은 세상을 떠났고,
안전한 귀향을 바랐던 남편은 전사했습니다. 결혼은 파국으로
마무리되었고, 정든 집과 고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기도하던
백성들은 박해를 당했고 교회는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이토록 무자비한 현실은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는
예수님의 말씀과는 너무나 대치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웃들이 겪는 이해할 수 없는 참혹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우리는 주님께 청할 것, 그리고 그분께서 주실 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가 보다 폭넓고 보편적인 기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와서, 꽃같은 시절이 있었다면, 꽃이 지는 시절도
있는 것입니다. 막 출고된 신차처럼 건강미 철철 넘치는 젊은 시절이
있는가 하면, 노후된 중고차 처럼 여기 저기 아프고 골골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한 인간 존재로서, 대자연의 순환주기와
생로병사의 큰 흐름 안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현실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수용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주님께 청할 것,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넘치도록
주실 것은 세상에서의 복락이나 승승장구가 아니라 오직‘성령’
이십니다. 간절히 청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을 받은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의 댓가로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은총이 뒤따릅니다. 그토록 이해할 수 없었던 비극적인 현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억울한 사건들도
수용하게 됩니다.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 고통과 십자가, 죽음마저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께서 친히 우리 마음의 문을 여시고,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정착하십니다. 우리 안에 굳건히 현존하십니다. 주님의
눈으로 세상만사를 바라보게 됩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청주] 가장 강력한 힘|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9년 다해 3월14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마태7,7-12)
가장 강력한 힘
“기도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전지전능하신
분도 양보하시는 힘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특권입니다.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그 자녀의 필요와 염려에 관심을 나타내실 수 있는 길이고,
주 하느님나라의 창고는 기도로 열리며 믿음은 그 열쇠를 돌리는
것입니다”(작자미상).
그런데 기도의 응답은 때때로 즉각 이루어 주십니다. 가르멜 산위에서
기도한 엘리야의 기도를 듣고 곧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 천천히 적당한
때에 이루어주시기도 합니다. 다윗왕은 성전을 건축하려 하였지만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케 하였습니다. 어느 때는
이루어주지 않음으로 응답이 되게 하십니다. 기도의 응답은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 유익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들어주어서 손해가 될
것은 들어주지 않음으로 해서 유익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큰 사랑으로 우리의 필요를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최선의 방법으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7,8). 라고 하셨습니다. 각자의
바람이 많이 있겠지만 세속적인 만족과 위로를 찾고 구하기보다 먼저
하느님을 찾고 갈망하여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청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욕정을 채우려는데
쓰려고 청하기 때문(야고4,3)이라고 하였으니 헛된 수고의 기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하느님께 마음의 문을 열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울지 않는 아이는 젖도 못 얻어먹는다.”고 했습니다. 먼저 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울 자리보고 발 뻗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들어주실 것을 청하십시오. 에둘러서 하거나 구구절절 설명하려들지
말고 그냥 청하십시오.
사실 문이라는 것은 열릴 때 열리고, 닫을 때는 닫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에는 열고, 악에는 닫아야 합니다.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께는 물론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녀에게, 부모에게, 형제에게, 이웃에게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부와 명예, 명성의 유혹에는 문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마음은 열고 욕심의 입은 닫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주실 수 있는 분이고 따라서 우리는 받을 수
있으니 행복합니다.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만 구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고마운 응답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청하고, 찾고 두드리되 내 뜻이 아니라 주시는 분의 뜻대로
이루어 주시길 바라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7,1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좋은 의향을 가지고 마음껏 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반복해서 청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그분 손에, 그분의 처분에 맡기고, 마음 깊은 곳에서
그분의 음성을 조용히 듣는 것입니다.” “기도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입니다”(마더 데레사). 우리의 바람과 기도가 헛되지 않기를
빕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주는 것인가, 받는 것인가?
내가 무엇인가를 받을 때,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가?
주님과 더불어 베풀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기타] 3월 14일 (목) - 부모님께 불순종 하는자
오늘은 ‘부모님께 불순종 하는자’라는 내용으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잠언 30장 17절 말씀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기본 인격을 갖추지 못했기에 아버지를 조롱 합니까? 또
자기를 낳은 어머니에게 왜 순종하지 못합니까?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이 되느 것이지요.
그들의 눈은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힌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되는 일이 없는 집안이 되고 맙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는 내용은 가정의 질서는 말 할 것도 없고
직장이나 공동체나 어디에서든 윗사람에게 순종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저희들도 가끔 보면 어린 아이들이 어른을 조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어른에게 불순종하며 무엇을 시켰을 때 같잖지도 않게
생각하며 투정을 부리며 엉뚱한 행동을 하며 결코 안 된다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한마디로 어른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을 또 어린 아이들이 보게되면 그 자녀들도 이와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자신에 대해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 대까지 연결되어져 이 불순종과 조롱하는 고리가
대를 이어 간다면 되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완전히 끊어 버리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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