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593신 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6 : 북한
이여송의 조상 묘소가 있다는 위원군
시중군 아래쪽은 위원군이다. 『택리지』에는 “위원 지역에 명나라 사람 이성량의 조상 무덤이 있다. 성량의 아비는 위원 사람이었는데 사람을 죽이고 도망쳐 중국 광녕에 들어가 살다가 성량을 낳은 것이다. 그래서 그의 아들 이여송은 항상 ‘나는 본디 조선 사람이다’라고 하였다”라는 기록이 실려 있다. 『여지도서』에는 위원군의 풍속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학문의 풍습은 없으나 순박한 인심이 넘쳐, 서로 다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길 가던 나그네가 경계에 들어서면 여비와 양식을 꺼내지 않아도 된다.
위원 지역은 이렇듯 다른 지역과 달리 인정이 넘쳤던 듯하다. 위원군의 남동쪽 경계에 있는 숭적산에는 대수봉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대수봉에는 명나라 이여송 장군의 조상(선친 이성량 또는 조부) 묘가 있다고 하는데, 이 묘에서 치성을 드리고 제사를 지내면 산삼을 캘 수 있었다고 한다.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위원군의 본래 이름은 이산군(理山郡) 도을한보(都乙漢堡)였다. 조선 세종 25년에 보가 사방과 멀리 떨어져 있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면 곤란하기 때문에 강계와 이산 땅을 나누어 위원군으로 고쳤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땅이 메마르고 기후가 차며 풍속이 사냥을 숭상한다”라고 기록된 위원군의 당시 호수는 217호이고 인구는 1514명이었다.
1949년 자강도가 신설되면서 자강도에 속하게 된 위원군에는 높은 산들이 포진하듯 서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진산은 북산이고, 옛 이름은 대비라(大非羅)다. 숭적산, 백암산, 삿갓봉 등의 산 사이를 비집고 압록강과 그 지류인 독로강, 위원강이 흐른다.
인심이 좋은 지역으로 알려진 위원군과 전천군 사이에는 오군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그 고갯길로 자동차들이 왕래하며, 그 산 남쪽 기슭에 창덕약수가 있고, 초산군과 위원군의 경계에는 파발령이 있다.
위원군 서쪽에 자리한 초산군은 본래 고구려, 발해의 옛 땅이었다. 발해가 멸망한 뒤 여진족이 살게 되면서 이름을 두목리(豆木里)라 하였고, 조선 태종 13년에 이산군으로 개편되었다. ‘백성의 성품은 꾸밈이 없고 정직하다. 농사와 누에치기에 힘쓰고 무예를 숭상한다’는 이곳은 경종 4년(1724)에 초산으로 개칭한 뒤 도호부로 승격하였고, 1949년에 초산군이 되었다. 이여송의 조상이 묻혀 있다는 숭적산이 이 군의 진산이다. 산악 지대인 초산군에는 삼각봉ㆍ독측산ㆍ피난덕산ㆍ대바위봉ㆍ남해태산 등 해발 1000미터 안팎의 산이 솟아 있고, 압록강과 그 지류인 충만강ㆍ초산천 등이 흐르고 있다.
평안북도 경계에 있는 자강도의 우시군은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안북도 벽동군의 우시면ㆍ가별면ㆍ오북면 전부와 벽동면의 일부를 통합하여 새로 만든 군으로, 1954년에 자강도로 편입되었다. 부어골산ㆍ대바위산ㆍ대봉산ㆍ조골령 등 높은 산과 고개가 있다. 초산군 동쪽의 고풍군은 본래 초산군의 중심지였으며, 1952년 12월 초산군에서 고면ㆍ풍면ㆍ강면이 갈라져 신설되었다. 북동산, 고암봉 등의 높은 산과 고풍분지가 발달하였다.
고풍군 남쪽의 송원군은 청천강과 충만강 상류에 있다. 동북부에는 고암봉과 주사산, 서남부에는 피난덕산과 우현령 등이 있으며, 전창약수ㆍ월현약수ㆍ동소약수ㆍ단풍약수ㆍ붉은물약수 등 약효가 뛰어난 약수가 많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