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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밤에 오줌을 싸고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다녀본 기억이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키는 오줌을 쌌을때만 쓰는 것이 아니라 곡식을 까부르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키질하는 모습이 보인다. 바람에 날리고 밑에서 쭉정이를 끌어내는 모습이 보인다
채질은 얼금얼금한 채로 돌이나 불순물을 골라내는 것으로 보통 키질을 통해 날라가는 검불등을 걸러내고 난후 채질을 한다
높이 올라가 바람에 가벼운 쭉정이는 날려보내고 무거운 알곡만 밑으로 떨어뜨리게 하는 작업이다
키질은 우리나라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세계 모든곳에 있어왔다. 성경에도 알곡과 가라지에 대해 많이 나온다. 가라지는 모아 불태운다며 신앙심이 없는 사람을 가라지에 비유했다
동남아 키는 우리와 조금 다르게 둥글게 생겼다
중국 농부들이 키질하는 모습
옛날에 키를 이용해 곡물을 수확한후 알곡과 쭉정이를 선별작업을 했는데 곡물이 적을 때는 그래도 할수 있었겠지만 많다면 이걸 모두 키질을 한다는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양이 많고 바람이 안불면 이것을 어떻게 했을까?
이것도 다리에 끼우고 양손으로 펄럭 거리면서 할려면 엄청 힘들었을듯 하다
실학자 박지원의 "과농소초"에 그가 경상도의 한 곳에 현감으로 가서 농부들이 부뚜질하는 모습을 보고서 능률도 떨어지고 힘들고 삯도 많이 드는 폐단이 있음을 알고 중국에 갔다가 본 "양선"한 대를 만들었다고 한다. 양선은 양식을 선별하는 기계라는 말로 풍구를 말한다. 박지원은 어린애가 가볍게 발판을 밟아도 하루 아침에 백 섬의 곡식을 까불었다니 부뚜에 비할바가 아니었다고 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 풍구가 쓰기 시작한듯 한데 그 뒷부분을 읽어보면 농민들은 논 주인에게 정선한 알곡으로 갚게 될것을 겁냈으며 관에서 겨나 쭉정이가 섞인 곡물을 빌려주고 정선한 알곡으로 갚게 할까 봐 두려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대지주인 양반들은 상것들이 게을러질것을 우려해 도입을 망설였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기계의 도입이 늦어진듯 하다
그럼 여기서
중국에서 본 양선이란 무엇일까?
양선이란 지금의 풍구라 보면 된다
시골에 가면 이런 것을 볼수 있다 이것이 바로 풍구다. 옛날에는 손으로 돌려 그 바람으로 쭉정이를 골라냈는데 지금은 전기를 동력으로 선별한다. 박지원은 발로 밟아 돌리는 풍구를 만들었는듯 하다.
풍구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중국에서는 전한 시대부터 있었을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로 말하면 고조선시대부터이다. 당삼채중 풍구 모양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자세히 보면 오늘날의 풍구와 별차이가 없다. 뒤에 서있는 사람이 손으로 돌리면 앞의 사람이 위의 구멍으로 곡물을 넣고 앉아서 정선된 곡물을 받아내는 모양이다
낙양에서 발견된 한나라 시절의 풍구 모양 도자기
여기도 손으로 돌리는 형태이다.
중국에서는 송나라때의 기록에도 풍구가 나온다
18세기 일본의 풍구
일본은 에도시대에 중국에서 풍구가 들어와 널리 보급되었다한다. 일설에는 우리의 고려시대와 겹치는 가마쿠라 막부시대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일본 농민들은 우리나라 농민들 같이 그런 걱정은 없었는듯 하다. 지배 계층들도 농민들이 게을러질것을 걱정하지 않은듯 하다. 키질하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해 다른 생산적인 것에 쏟을수 있었을 것이다. 왜 일본이 우리보다 생산성이 높았는지 단적인 예로 볼수 있다.
이건 조선 후기의 문신 서호수(1736~99)가 지은 해동농서에 나온 풍구 그림이다. 중국의 농기구들을 소개하는 글에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도 조선 후기에 소개되었다고 볼수 있지만 농민들은 양반들의 농간을 두려워하고 양반들은 농민들이 게을러질것을 경계해 도입을 하지 않은듯 하다.
유럽의 풍구도 중국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마 중국에서 개발되어 퍼진듯 하다. 유럽은 손으로 돌린것도 있지만 풍차로 맷돌질을 하면서 풍차의 동력을 이용해 풍구를 같이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니 농업 생산성이 우리의 몇배가 되었을 것이다. 이걸 바탕으로 경제력을 키워 산업혁명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풍구는 조선말에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들어온듯 하다. 옛날 우리 선조들의 요상한 우려때문에 도입이 늦어지면서 발전이 많이 늦어진듯 하다.
지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선풍기가 있으면 위와 같이 하기도 했고
선풍기가 없을때는 수동 선풍기로 바람을 일으켜서 키질하기도 했다
중국 한나라때는 양거 또는 양선거라 불린 풍구가 지금도 풍선거라 불리기도 한다. 바람으로 곡물을 선별하니까.
이까짓 풍구가 뭐라고? 키질하거나 부뚜질을 해서 하루에 얼마나 정선할수 있었을까? 아마 풍구의 십분의 일도 못했을 것이다. 인력도 두세배는 더 들어갔을 것이다. 깨끗하게 되지도 않았을것이다. 여기에서 인력과 시간을 절약해 더 생산적인 곳에 투자했다면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말기같이 가난하지도 않았을테고 좀더 다른 나라가 될수도 있었을 것 같아 안타깝다. 왜 중국은 한나라때부터 있었던 것이 우리나라는 조선 말기에 가서야 겨우 일본을 통해서야 도입이 되었을까 하는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요즘은 이런 풍구도 보기 어렵다
소규모일 경우만 이런것을 쓰고 양이 많을 경우 대형 기계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첫댓글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를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긴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