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27일(현지시간) '행동 경제학’의 창시자이며, 심리학자로는 처음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이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은 세간에 알려진 대로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 조력 사망한 것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금도 인터넷 포털 등에는 고인이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사망했다고 정리돼 있는데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가족과 친구들은 고인이 조력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길 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갖게 된다.
사실 죽음을 맞기 전, 그의 건강 상태는 아주 멀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앓다가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다고 마음 먹어왔고 "신장 한 쪽이 무너지는 느낌"을 갖고 무엇보다 "아흔을 넘겼으니 갈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를 주변에 털어놓곤 했다.
일간 월스트리트 저널(WSJ) 칼럼니스트이며 고인과 30년을 알고 지내 온 제이슨 츠바이크가 일 년 만에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는 지난 14일 지면에 실은 칼럼을 통해 고인이 스위스의 조력 사망 시설의 도움을 얻어 세상을 등졌다고 주장했다. 스위스는 외국인의 조력 사망을 법적으로 허용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로 한국인들도 10명쯤이 이용해 세상과 작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스테디 셀러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2011)의 저자로 낯익은 고인은 이스라엘 텔아비브 태생의 심리학자 및 경제학자로 프린스턴 대학 명예교수를 지냈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량 학살) 시기 프랑스 남부에서 숨어 지냈던 아픔도 간직하고 살았다.
심리학과 경제학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의 비합리성과 그에 따른 의사결정에 관한 연구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합리적 인간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학의 판을 바꾼 것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행하는 인간의 (비합리적) 판단과 선택’을 설명하는 ‘전망 이론’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츠바이크 칼럼니스트는 2년 정도 고인과 함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위한 연구와 저술을 함께 하다 2008년에 "책 이혼"을 했다. 그 뒤 그는 WSJ에 입사했고, 고인 혼자 책을 완성했다.
츠바이크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3월 중순 동거녀 바버라 트버스키와 함께 미국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딸네 가족과 만나 여러 날 파리 시내를 걷고 박물관들과 발레 공연을 보러 갔다. 수플레와 초콜릿 무스를 탐닉했다. 같은 달 5일 90회 생일을 맞았던 그는 그 달 22일쯤 친했던 이들에게 수십 통의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작별 인사를 미리 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망 전날 가족을 남겨두고 스위스로 날아가 조력 사망으로 삶을 끝냈다.
츠바이크 칼럼니스트는 사망 전날 고인이 가족에게 남긴 이메일 작별 인사의 일부를 공개했는데 “나는 10대 시절부터 인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치를 고통과 수모는 불필요한 것으로 믿어 왔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적었다. 츠바이크는 “대니얼은 무엇보다도 긴 쇠락(decline)를 피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맞이하기를 원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카너먼은 부인이 몇 년 동안 혈관성 치매로 고통받으며 2018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척 괴로워했다. 그의 모친도 인지 기능 저하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츠바이크 칼럼니스트는 평소 고인이 “나는 매몰 비용(sunk costs, 프로젝트 진행 여부와 상관 없이 발생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 없소”라고 즐겨 말했다며 죽음을 얼마 앞둔 그 달 5일에도 투석을 받지 않았으며 심각한 인지 저하나 우울증 징후 없이 연구 논문을 여럿 작성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츠바이크는 대학생 때 부친이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극단을 선택한 아픔이 있었다. 해서 아주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고 그가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아울러 그의 죽음이 심오한 질문들을 던지게 한다고 했다. "결정 과정에 대해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가? 어떻게 좋은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교훈에 얼마나 가까운 결정을 내렸을까? 어떻게 그의 결정을 초고령화의 부정적인 점들에 대한 점증하는 논란에 맞췄을까? 우리는 얼마만큼 스스로의 죽음을 통제할 수 있으며, 그래야 하는 것인가?"
뱀의발일 수 있겠는데, 고인과 마지막을 함께 한 바버라 트버스키의 이름이 낯익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녀의 전 남편이 이스라엘 출신 아모스 트버스키로 오랫동안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한다고 주장해 온 심리학자다. 고인은 그와 오랫동안 연구를 수행하다 나중에 비합리적 행동과 선택 쪽으로 연구 중심을 옮겼는데 그의 전처와 마지막 여정을 함께 했다니 그것도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