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지리산 문수사 원덕 스님
마당에 서서 휘둘러보니 산줄기가 에워싼 절터가 아늑하다. 이제 막 해가 지고 산
마루엔 초승달이 걸렸다.그 풍경에 발을 들여 돌탑 아래 가만히 서 있자니 저만치
서 스님이 걸어와 법당에 불을 켜신다. 아무도 없는 겨울밤의 산사는 이토록 고즈
넉하다. 낮선 바람을 묻혀온 한낱 먼지는 그 가운데 앉아 구수한 무차를 마시며 거
룩한 이야기를 듣는다.
"앉아서 하는 공부를 마치고 행선 중입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 한결같이 나아가
는 것이지요."
원덕 스님은 전기도 전화도 없는 태백산 도솔암에서 1985년부터 홀로 15년을 참
선하며 살았다. 행자생활을 마치자마자 도솔암으로 향하며, 3년만 살면 되지 않겠
나 하는게 첫 마음이었단다.
"죽기 살기로 참선을 하다 보니 탄력이 붙었어요. 공부에 진척이 있으니 그 재미로
15년을 산거예요."
밥 먹는 시간과 용변 보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 외엔 무조건 참선만 했다. 은사 스님
께서 주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 앞의 잣나무'화두 들기를 쉬지 않았다. 한참
공부를 하다가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공부가 후퇴해 있었다. 그것도 아까웠다. 잠
을 자면 태엽이 풀리듯 공부가 풀리는 게 느껴졌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러
나 도솔암 밖으로 나갈 생각은 추후도 들지 않았다. 15년간 밖으로 나간게 채 열번
도 되지 않는다. 비구계 받을 때와 치과에 간 것과 은사스님께 공부를 물으러 가느
라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던 것.
"인공 위성을 쏘아 올릴 때 엄청난 추진력이 필요하잖아요. 대기권 밖으로 나가서
저절로 돌 때까지는 끝까지 밀어 올려야만 하지요. 그처럼 득력할때까지는 가슴이
타들어가도록 계속해서 밀어줘야 돼요. 산에서 바위를 굴리면 처음엔 슬슬 구르다
가 점점 가속도가 붙지요. 공부도 그와 같아요."
공부가 될 때는 목이 말라도 그 공부가 아까워 물을 먹지도 못했다. 밤에 배가 고
프면 얼른 물 한바가지 먹고 배를 불려 정신 바짝 차리고 좌복에 앉았다. 인적 드문
높고 깊은 산중이니 일체 신도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누군가 식량을 갖
다 주지 않으면 먹을 것 없이 버텨야만 하는 날들이었다.
'가장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한이 없어요. 그 공부는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누
가 빼앗아 갈수도 없는거잖아요."
3년쯤 되니 영양결핍으로 몸무게는 40kg대로 줄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6년쯤 되
니 이가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도솔암에 있는 동안 이가 일곱개나 빠졌다.
원덕 스님은 그때마다 불보살님이 도와 주셨다며 그 영험한 일화를 들려주신다.
처음에 이가 빠졌을 때다. 이 하나를 하는 값이 8만원이던 시절인데, 양쪽 이에 걸
어야 했으니 총 24만원이 필요했다. 며칠이 지나자 부산에 산다는 처사 둘이 올라
와 차 한잔 마시고는 돈을 놓고 가는데 그것이 꼭 25만원이었다. 24만원은 이를 하
고 만원은 여비를 하였다. 그러고 1년이 지나 또 아기 빠졌는데 그새 2만원이 올라
이 하나에10만원이었다. 그러니 30만원이 필요했다.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
고 1년이 지나자 이 하나에 12만원이라 36만원이 필요할 때는 두 처사가 와서 두고
간 돈이 꼭 필요한 40만원이었으니 소름이 끼칠 노릇이었다.이가 빠질때마다 사람
이 찾아오고 그때의 시세에 꼭 맞는 돈을 두고 갔으니 말이다. 마지막 7번째 이가
빠졌을 때였다.시세가 이 하나에 25만원이었는데 한쪽에서 두개가 빠지니 총 네 개
를 걸어야 해서 100만원이 필요했다.
이가 빠진지 며칠 되지 않은 날, 아침 해가 뜰 무렵부터 산 밑에서 두런거리는 소리
가 들려왔다. 워낙에 적막한 산중이다 보니 소리가 잘 들렸다. 그런데 어둑어둑해
질때까지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이상해하던 참이었다. 50대 부부와 아들이찾아
왔는데, 아버지는 쌀 40kg을 지고 아내는 20kg을 지고 체구 좋은 아들은 80kg을 지
고 왔다. 그것을 지고 오느라 온종일이 걸렸던 것이다.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여 밥을 해주려 했더니 어둡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며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을 하고 봉투만 올려놓고 나왔다. 어찌 왔느냐 물으니, 지난 밤 꿈에 부
처님이 나타나 태백산 도솔암에 있는 스님에게 가보라 했단다. 그들이 두고 간 봉
투를 열어보니 백만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불보살은 늘 수행자를 주시하고 있어요.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라 육안으로 안 보
일뿐이지 반드시 계시고 교감이 돼요. 정진만 열심히 하면 백두산 꼭대기에 있어도
불보살님이 도와주십니다."
한참 참선 중인데 축대가 무너졌다. 도솔암은 벼랑의 제비집과 같은 형세라 축대
가 무너지면 집도 무너지는 모양새다. 전화는 없고 나가지는 못하니 누가 찾아와서
대책을 세워주기만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축대가 무너져 걱정이 되니 화두가 '정
전백수자'가 아니라 '무너진 축대'가 돼버렸다. 이것이 경계다 싶었다.
"선관책진이란 책의 표지 그림을 보면 어미 사자가 새끼 사자들을 낭떠러지에 떨
어뜨려 놓고 끝까지 위로 기어 오르는 새끼만을 키운다는 그림이 있듯이 불보살들
은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혹독한 시련을 줍니다."
어느 정도 득력이 되면 반드시 그런 경계를 거치게 되니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밖
으로 나가지 않았다. 축대가 무너지기 전의 마음으로 정진을 하고 있자니 누군가
찾아와 축대를 쌓기 시작했다. 도솔암 축대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지족암에 계신 일
타 스님에게까지 닿아 스님이 동네의 소장에게 돈을 부치셨던 것이다.
"제가 후학들한테 하고 싶은 얘기는 ,득력하기 전까지는 나가지 말고 공부만 열심
히 하라는 거예요. 최소한 3년은 밖에 나가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하루에 14시간은
참선을 해야 합니다. 선방에 다니는 것은 십진구퇴일 뿐이예요."
목숨을 걸고서 참선을 했다. 죽을 고비도 여러번 넘겼다. 그런 시간을 견뎌 득력을
하니 이제 원덕 스님의 공부는 일부러 하지 않아도 계속 된단다. 화두를 들지 않아
도 화두가 저절로 나아간단다. 공부를 하기 위해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매
일여 잠을자나 깨나 한결같다.
"고봉 스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자라를 독에 넣어 놓으면 미끄러워서 도망가
지 못한다고, 그렇듯이 득력을 하면 공부는 절대 도망가지 못한다고."
지금 말을 하고 있는 중에도 공부는 계속 전진하고 있단다. 도솔암에서 정중공부
를 다 마쳤으니 지금은 주지를 하며 요중공부를 하는 중이란다.더 큰 깨달음을 위
해서 밖으로 나온 것이다. 1층은 지었으니 2층을 지으시려는 참이란다. 그것은 반
드시 정중공부를 거쳐야만 요중공부가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해야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똥걸레로 똥을 닦을 수 있나요?"
원효 대사가 말씀 하셨다. 여절익조 부구상공, 마치 날개 부러진 새가 거북을 등에
업고 하늘에 오르려는 것과 같다. 득력을 하지 않은 자가 어찌 중생을 제도하겠느
냐는 말씀이다. 허나 득력만 하면 부처님의 제자로서 반드시 나가서 포교해야 한단
다.
"득력만 하면 자기 공부도 하면서 중생을 제도할 수도 잇어요."
그래서 원덕 스님은 오늘도 한쪽으로는 공부를 하면서 또 한쪽으로는 중생을 제
도한다, 현재 우리의 불교는 기복불교에 가깝다. 허나 원덕 스님은 그것을 탓하거
나 나무라기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람이 있기에 모든 종교는 기복에서 시작되
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렇기에 신도들이 찾아오면 기복적인 것을 점점 낮춰가며
깨달음의 종교로 끌어 올려 주는게 스님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불자라면 꼭 수행을 해야 합니다. 염불이든 독경이든 자신의 근기나 처지에 맞는
수행을 해야 하는데, 그중에 가장 수승한 것이 참선입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게
수행을 통해 업장을 녹이는 거예요. 그리고 둘째는 남을 돕는 선행을 하는 것입니
다."
태백산 도솔암에서 15년을 살고 그 후 대구 도림사에서 포천 법왕사에서 김천 수
도암에서 산청 문수사까지, 스님이 걸어오신 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산중에 어
둠이 꽉 찼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만큼이나 칠흑 같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출가
하셨다는 원덕 스님께 이 길을 가겠다는 첫 결심이 어렵지 않았는지 여쭙자 스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다.
"오탁악세에서 한 사람이라도 나와서 밧줄을 던져서 그 급류에 휩쓸려가는 이들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밧줄을 던지기 위해 오늘도 저 깊은 산중의 좌복에 앉은 이가 있다. 기한을 발
도심으로 물에 비친 달을 바가지로 퍼 마시는 이가 있다. 양말을 꿰매고 속옷을 꿰
매며 누더기 옷을 걸쳐 입고도 눈빛 성성한 이가 있다. 그렇게 생명을 걸고 공부하
는 스님들이 있다. 원덕 스님이 말씀하신다.
" 그런 힘이 있기에 불교가 나아가는 것입니다."
(출처 - 취재 정리 / 정영 월간 해인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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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력하신 스님! 거룩하십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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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 합장.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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