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은 오키나와에서도 의미심장한 곳을 찾기로 했다....헥소고지.
태평양 전쟁의 가장 참혹했던 종착지이자 오키나와 전투에서 펼쳐진 "헥소고지-마에다 고지-의 이야기는
전쟁의 광기 속에서 피어난 가장 기적같은 휴머니즘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1945년 5월, 미군은 일본 본토 진격을 앞두고 오키나와를 반드시 함락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던 마에다 고지는 12-15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거대한 암벽이었다.
이 절벽이 마치 쇠톱-Hacksaw- 같다 하여 미군은 "헥소고지"라 불렀다.
이 암벽 내부를 지하 요새와 동굴 진지로 구축해두고 철저히 숨어있던 일본군은
미군이 절벽 위를 올라오기만을 기다렸다가 기관총과 박격포로 전멸시키는 그야말로 "인간도살장" 이었다.
사실 입장의 차이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전투는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느냐 마느냐의 생존의 갈림길에서 더욱 처절했을 터.
하지만 이 지옥같은 전장에 배치된 의무병 "데스몬드 도스"는 양심적 집총거부자로서 총을 만지는 것조차 거부하며
군대에서 겁쟁이라 불려도, 왕따를 당해도, "작전의 걸림돌"이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남들이 생명을 빼앗을 때, 나는 생명을 살리겠다"며 의무병으로 참전했던 것.
그런 그는 일본군이 헥소고지를 점령하여 미군들을 후퇴시킬 때에도, 생존자들을 확인사살하기 시작할 때도
그 공포의 순간에 총 한자루 없던 도스는 도망치지 아니하고 홀로 고지에 남았다.
그리고 "주님, 제발 한 명만 더 구하게 해주소서"라며 기도 올리며 살려야 할 생명에 대한 염원을 하였다.
이후 자욱한 포연과 총탄을 뚫고 다니며 부상병들을 한 명씩 찾아내어 절벽 가장자리로 끌고 가서는
눈여겨 보았던 나비매듭으로 부상병들을 묶어 아래에 있는 미군들에게 한명씩 내려보냈다고 한다.
일본의 총탄이 빗발치는 곳에서 무려 12시간이나 반복하여 부상병을 살리고자 애썼던 "인류애"에는 할 말이 없다.
적군까지 살려낸 그날 밤, 그는 혼자 75명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기록되었으며 이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헥소고지 전투에서 빛나는 영웅이 되었고 훗날 해리 트루먼 대통령으로 부터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총을 들지 않은 양심적 집총 거부자가 이 훈장을 받은 것은 미국 역사상 최초라고 하는데
암튼 헥소고지에 가면 절로 몸에 전율이 일 정도인지라 심약한 사람은 찾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전쟁이라는 야만적인 공간에서 오직 생명을 살리겠다는 신념 하나로 기적을 만든 위대한 인간 승리는
헥소고지의 진정한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살아돌아온 것은 완전히 기적입니다. 그 기적의 이름은 데스몬드 도스였습니다"
뭉클함과 전쟁의 상흔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그런 헥소고지를 다녀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찾아드는 길목은 주유소를 기점으로 하면 되고 올라가는 길에 만나는 기록 전시실에 들러보아도 좋다.
만약 들어가는 길을 놓쳤다면 다음 골목으로 올라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헥소고지를 찾으면 된다.
물론 그 곁자락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헥소고지 전투를 기억하며 찾기도 한다.
그리고 슈리성을 찾았던 날, 설명을 듣고 반드시 찾아가보리라 하였던 슈리성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남동쪽의 작은 섬...
오키나와 본섬 남동쪽, 치넨 반도에서 동쪽으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길게 누워있는 작은 섬이 바로 "쿠다카섬 久高島" 이다.
둘레가 8킬로키터 남짓한 이 나지막한 산호초 섬은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류큐신화가 시작된 "신들의 섬-神의島-이자 가장 신성한 성지로 여겨진다.
오키나와의 고대 신화에 따르면 하늘의 최고 신이 세상을 만든 후 나라를 다스릴 신으로 "아마미키요"를 지상에 내려 보냈다.
이때 아마미키요가 가장 먼저 발을 디디고 류큐열도를 만들기 시작한 거점이 바로 쿠다카섬의 동쪽 끝에 있는 '이시키하마" 해변이다.
하여 지금도 섬주민들은 이 해변에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신들의 축복이 도달한다"고 생각하며 깊은 경의를 표한다.
쿠다카 섬을 방문하게 되면 지켜야 할 주의사항이 있다.
신들의 기운이 있기 때문에 섬의 모든 자연물은 절대로 섬바깥으로 가져나가면 안된다.
섬 곳곳에 있는 "우타키-제사 터-나 "카베오룰-최고 성지-같은 곳은 주민 외에 출입이 금지된 곳이 많으므로 안내판 필독.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섬 한바퀴를 돌아보며 소란을 피우지 않는 것을 암묵적으로 실행중이므로 마음가짐을 정갈하게 한다.
쿠다카섬은 한적한 섬이기도 하고 푸른 바다와 바위 사이에 어우러진 숲이 우리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기도 하지만
오키나와 신앙과 자연이 주는 울림을 느낄 수 있으며 그안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길게 시간을 소요하지 않아도 워낙 크지 않은 섬이라 자신 만의 속도로 산책을 하면서 햇살을 맞아보는 것도 권장한다.
무튼 쿠다카섬은 화려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푸른바다와 바람,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고대의 신화가
고스란히 멈춰있는 듯한 묘한 평온함을 주는 곳이며 슈리성 전망대에서 남동쪽으로 바라보이는 섬이기도 하다.
시간이 넉넉한 사람들은 꼭 들러보길 권한다...배로 15분 정도면 충분히 섬에 들어갈 수 있는 고로.
그 하루 여행자로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재작년에 생겼다는 코스트코를 방문하기로 했다.
가는 길이 얼마나 멀던지 이렇게 먼곳까지 장을 보러 오나 싶었어도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역시나 시내쪽은 땅값이 비싼지라 외딴 곳에 코스트코가 들어서자 마자 주변 땅값이 덩달아 올랐다는 말에
어딘들 땅이 이름값을 하기 위해선 뭔가 존재감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본토출신 졸부들이 많이 생겼다는 후문.
어쨋거나 코스트코에 들어가보니 우리 식품들도 즐비하여 역시나 거국적인 마트가 맞다는 생각을 하면서
8시 30분이면 끝난다는데 퇴근 후 그 먼길을 달려 여전히 꾸역꾸역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웃고 만다.
하긴 오키나와에서 몇군데 나름 커다란 장소가 있기는 하나 다양한 일상용품을 사기는 만만치 않으니
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유명하고도 필수품을 사기엔 마땅한 유일한 식료품 대형 마트인
"코스트코"로 몰려드는 것일 것 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뒤로 하고 다시 내일을 맞는다.
물론 점심메뉴로 먹었던 우리나라 감자탕과 비슷한 푹 고아낸 돼지갈비 -소키-에 숙주나물을 올리고
마늘 두 접시를 첨가해 먹는 국물이 어찌나 생각나던지, 작년에 먹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인지라 잊지 않고 다시 찾아들었다.
유난히 깊고 맛있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을 수 없어 "바로 이 맛이지"를 절로 읊조리게 된다는.
자유여행을 꿈꾼다면 혹은 패키지여도 자유시간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가보기를 강추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일이요 굿굿굿이라는 소리를 절로 하게 될 것이다.
첫댓글 "데스몬드 도스" 정말 멋진 인류애자인듯~!
맞아요.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세상이 돌아가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