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규 시 이순신 곁에서
나는 조부님이 기묘사화에 연루돼 몰락해버린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아산 땅 백암리 외갓집으로 옮겨 어린 시절을 살았다 나이 더 들어 보성군수를 지낸 어른의 따님과 결혼을 하고 아들 몇 낳고 딸도 낳아 길렀으나 삶은 두고두고 큰 파도 같았어 스물여덟에 낙방하고, 서른 둘 되서야 겨우 이룬 무과급제이래 군기보수를 하지 않은 이유로 무고를 당해 파직됐었는가하면 증병요청이 거절된 채 오랑캐들 습격을 당한 둔전관시절도 있었지 녹둔도를 도발한 이 전투서 졌다는 죄로 옥살이 한 것을 비롯 그 후 또 치른 옥고며, 음해로 생긴 갖가지상처가 어찌 말로써 풀릴까 천오백 구십이 년 초봄은 지자포와 현자포를 실험하던 임진년 그해 사월부터 영토를 침범한 왜적들과 싸운 칠년 동안 남쪽바다는 내내 아비규환과 붉은 핏물이 넘쳐흐른 지옥의 바다였다 교전에서 이기고 죽은 아군과 지고 죽은 수천수만 적군들시신들이 옥포 사천 안골포 한산도며 그 어느 데서든 물결 돼 떠다녔던 거야 그런 와중에도 나는 건듯하면 조정으로부터 날아온 모함은 물론 정상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임금의 끈질긴 불신과 의심을 받았지 첫째아들 면이 아산본가를 침입한 왜적과 싸우다 죽은 이태 전 봄은 삼도수군통제사를 파직당하고 옥고 치른 뒤 백의종군을 할 때 소식 듣고 아들 얼굴 보려 찾아나선 늙은 어머니를 마중나가다가 그 어머니가 아들은 미처 못 만나고, 돌아가셨다는 비보도 들었어 칠천량에서 패한 원균이 죽어 거기서 남은 열두 척 전선만 이끌고 어란 앞바다로 나가 싸워 이기고 노량해전서는 내 목숨도 버려 저주받은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지만, 근심은 여전히 남았구나 소문 없이 뒤에서 죽어간 조선 땅 민초며 아군의 중음신들이 사백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억울한 곡절들을 헐벗은 양손에 들고서 변한 것 하나 없이 거짓으로 뿌연 산과 바다를 떠돌아 안타까워 |
출처: 시와 새 원문보기 글쓴이: 제이알
첫댓글 어느 시대든 위정자들이 자기 일신을 위하여 음모와 사술을 쓰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실한 투사는 항시 그들에게 가시와 같기에 요즘도 공안정국을 이끌고 있는 것이지요... 나라가 망해 가는 그 때에도 그들은 자기일신만을 생각하면서 국가를 위한다고 방어를 치며 말하지요...어느 시대든 그러한 희생자들이 진정 나라를 이끈다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적군들시신들'=='적군들', '정상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끈질긴'=='질긴', '첫째아들'=='셋째아들', '아들은 미처 못 만나고'=='나는 미처 못 만나고', '근심은 여전히 남았구나'=='안타까움은 끝이 없구나','떠돌아 안타까워'=='떠돌지 않더냐'로 고침<김선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