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년전 반도서쪽 , 천수만 근처의 이마을 저마을에서 고고의 성이 울렸읍니다. 십수년후에 중학교에 입학할 촌뜨기들의 출생의 서곡 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그들이 세상에서의 첫 만남은 찢어지게 가난한, 절대 빈곤이었습니다. 모든것이 부족하고 힘들었던 이때 혓바닥이 시커머 지도록 먹어댔던 칡뿌리와, 단물만 쏙 빼먹고 뱉었던 단수수깽이는 당대 최고의 간식 이었습니다. 검정고무신에 꼬질꼬질한 책보를 둘러메고 학교를 다닐때 타고다녔던 무지개는 분명 빨간색의 무지개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6년의 훈련병 시절을 무사히 마치고 앞으로 3년간 근무를 해야하는 오서산 근처의 조그만 부대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정해진 복장과 정해진 규율대로 지내야하는 다소 경직된 분위기에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해 나갈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작은 꿈도 키우며 순수하기만 했던 그들은 제대할 무렵에는 사춘기 라는 엄청난 정신적 시련을 겪으며 3년간 연장근무를 하기위해 더러는 다른지역의 부대로 배치를 받아 모두 헤어져야하는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시절 그들이 탔었던 무지개는 아마 주홍색의 무지개 였을것입니다.
3년의 연장근무를 마친 그들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길로 각자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학문의 길로, 삶의현장으로 각자 선택한 길로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선택한 길은 달랐지만 그들은 그즈음 통기타와 청바지에 팝송을 한 두곡 쯤은 따라 불렀고, 포장마차에서 밤새워 잔을 기울이며 버지니아울프의 작품을 이야기 하고 인생을 논하던 시절 그들은 이성과의 숙명적인 만남을 통해 한층더 성숙 되어갔습니다. 결혼이라는 피할수없는 통과 의식을 통해 인생의 또다른 전환기를 맞이하며 그들이 탔었던 무지개는 틀림없이 노란색의 무지개 였을것입니다.
초보가장으로, 초보주부로, 사회초년생으로 넘치는 의욕과 왕성한 활동으로 낮에는 일터에서 저녁에는 가정에서 나름대로 그들의 위치를 다져나가려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조물주께서는 그들이 항상 여유롭고 행복할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인자함 보다는 그들이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가끔은 고약한 심술을 부리며 그들의 인내를 시험하는 엄중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고달픈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과 인고의 나날을 견디어야 했고, 때로는 좌절과 질곡의 세월을 버티어야만 했으며,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위해 절규하듯 앞만보며 줄달음쳐 왔습니다. 초록색갈의 무지개에서 파란색의 무지개로 바꿔탄 줄도모르고 강산이 두번이나 바뀐사실도 모른채 그들은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려 왔습니다. 뒤돌아볼 틈도없이 달리던 그들은 어느날 우연히 거울앞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짐짓 놀라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희끗희끗한 머리, 탄력잃은 피부와 잔주름,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에 자신이 없는 몸, 되돌릴수 없는 현실앞에 망연자실하며 잠시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들은 어느샌가 파란색의 무지개를 타고있으며 그것도 벌써 무지개의 정점에 서있다는걸 아는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있으면 이 무지개도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내려가야만 하고, 그러면 남색과 보라색의 무지개로 연거푸 바꿔타야 합니다. 그리하여 남아있는 두가지 색깔의 무지개를 기어이 바꿔타고 끝내는 맨 처음 무지개를 타기 위해 그들이 모였던 작은 운동장으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일주일 전에 그들중 친구 하나가 자는듯 홀연히 그들곁을 떠났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운동장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탔던 그 빨간색의 무지개를 다시 탈수있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이야기 해주지 않았나 봅니다. 그 친구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 나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마 시월 단풍처럼 선명하고 보석처럼 찬란한 무지개 나라에서 초대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랬으면 "내가 지금은 바쁘니 좀 한가해지면 가겠노라" 고 이야기하면 그것으로 그만인것을 그 흔한 핑계한번 안대고 뭐가 그리 급했는지 황망히 그들곁을 떠났습니다.
유리창에 부딪혀 흐르는 겨울비가 오늘따라 더욱더 차갑게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술한잔 해야될것 같습니다. 언제 초대받을지 모르는 그들과 잔을 부딪히고 싶습니다. 맨 처음 탔던 그 빨간색의 무지개를 타기위해 맨 처음 만났던 그 작은 운동장으로 기어이, 그리고 모두 같이가자는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기대이겠지만 잔을 나누는 동안 만이라도 세월의 시계가 잠시 멈출수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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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슴에 울림이있네요.
공감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