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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잘못된 점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 끼란 바바
나는 스승이 아니라 그대의 친구입니다.
나는 그대와 나란히 걸으면서 이 삶의 길을
어떻게 걷는지 보여주고 싶을 뿐입니다.
이 삶의 길은 도처에 수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이 있고,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온갖 문제와 괴로운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삶의 길을 편안하게 걸어갑니다.
내가 이렇듯 편하게 걸을 수 있다면
그대 역시 이렇게 걷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그대의 손을 잡고 이렇게 편안한 행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왜 그대 자신을 괴롭힙니까?
자진해서 불행의 구렁텅이로 들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이해를 그대와 나누어 갖고 싶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나는 이 삶과 더불어 춤추듯이 살아갑니다.
이것이 나의 길입니다.
나는 특정한 방편이나 명상법을 제시하는 스승이 아닙니다.
나는 그대를 꿈속으로 밀어 넣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꿈을 팔아먹는 장사꾼이 아니라,
오히려 그대를 깨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꿈을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어떤 꿈도 팔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그대 앞에 이 삶의 진실을 제시함으로써
꿈에서 깨어나도록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대 앞에 놓인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 앞에는 저마다 다른 삶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문제들이 놓여 있고,
저마다 다른 양태의 삶이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자기만의 해답을 발견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의 해답도 그대의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다른 문제들이 놓여 있으므로
저마다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이 삶은 우리 모두에게 다른 문제들을 안겨준 것처럼
우리 각자에게 다른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해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대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런 삶을 위해서는‘이해’가 필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그대와 나누어 갖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이해한 바를 여러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나는 어떠한 방편도 제시하지 않으며
그대가 따라야할 노선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나의 이해를 그대와 나누어 갖고 싶을 뿐입니다.
나는 그대에게도 똑같은 이해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가슴을 열고 귀 기울이면 그대 안에 틀림없이
어떤 이해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말은 그대가 어느 지점에서부터 어긋나
이 삶을 오해하게 되었는지 알아차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마음과 에고, 이 삶의 정체에 대해
수많은 오해와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삶의 의미가 무엇이고 이 삶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이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내가 이해한 바를 그대와 나누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의 정체가 무엇이며 어떤 식으로 생겨난 것인지,
에고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그리고 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이 꼭 필요한데 왜 그러한 것인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나는 그대의 이해를 도우려고 합니다.
그대가 가슴을 열고 듣는다면 어느 지점에서부터
삶과 다시 연결되어야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그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이해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입니다.
지금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십시오.
이 받아들임은 어쩔 수 없는 절망감이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삶의 본질이 무엇이며 마음과 에고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는 사람,
이 마음과 에고의 작용을 통해
삶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 안의 어떤 것도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대에게 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삶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그대를 창조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첫 번째 단계입니다.
나는 이것을‘실천적인 지침’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말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실천적 지침은 그대의 일상적인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대는 내면의 모든 불완전한 요소들과 더불어 절대적으로 완벽한 존재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십시오.
이렇게 받아들이면 그대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자신에 대한 미움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그 미움은 자기 안의 어떤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할 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대 자신을 사랑하면 이 삶의 변화무쌍한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세상만물은 이 삶의 에너지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것이며,
모든 사람 각자가 고유의 독자성을 갖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먼저 이것을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 단계는
외부세계와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먼저 그대 자신과의 관계가 변하면 외부세계와의 관계도 변하게 됩니다.
그대는 자신이 얻은 이해를 주변 사람들, 가족, 사회 등
모든 외적 관계에도 적용하게 됩니다.
내적인 조화로움을 회복하면 외적 관계도 조화롭게 됩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조화를 이룬 삶이 진실로 평화로운 삶입니다.
이제 그대는 투명한 시각을 갖게 됩니다.
이 투명성은 깨어있는 의식의 본질입니다.
이제 그대는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어느 것에도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과 외부세계로부터 도망치지 않습니다.
투명한 시각이 열리면서 그대의 내면에서 무엇인가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봄으로써 더 많은 이해를 얻게 되고
모든 의심과 질문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내가 그대와 나누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진실로 평화를 갈구한다면 여기에 그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일상적인 삶에서 직접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며
그대에게 직접적인 경험을 안겨줄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대는 자기만의 이해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삶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대는 알게 될 것입니다.
삶은 비극이 아닙니다.
삶은 고통이 아닙니다.
삶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삶을 사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몰이해가 온갖 복잡한 문제들을 양산합니다.
만약 진실로 이런 이해에 도달한다면 이 삶의 변화무쌍한 모든 것들과
함께 하면서도 그대는 평화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은 이렇게 단순명료한 이해입니다.
그대가 진실로 이해한다면 이 삶과 조화를 이루는 평온한 상태가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 도달하려면 먼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삶을 외면하고 자기만의 골방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 그대는 줄곧 그런 일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아무리 도망쳐도 소용없습니다.
다시 삶으로 돌아오면 전과 똑같은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대가 얼마나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여기 뿌나의 명상센터에 와서 3개월이나 6개월을 머물다 갑니다.
하지만 그대의 나라로 돌아가면 변함없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나 또한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자,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 정답은, 그대가 이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 자체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삶과 더불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법을 깨우쳐야 합니다.
이 삶이 그대에게 독창적 방식의 감응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 유일무이하게 독창적인 존재입니다.
그들의 삶도 그렇게 독창적인 방식으로 발현됩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문제들도 그렇게 독창적인 것들입니다.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 삶의 에너지가 어떤 식으로 그대를 창조했고
어떤 식으로 문제를 만들어내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해를 위해서는 실제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이 삶과 조화를 이루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대 앞에 놓인 삶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도망치지 마십시오.
지금의 모습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십시오.
자신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자신을 순화시키거나 정화하겠다는 노력을 그만두십시오.
그대가 이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삶을 바꾸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신에게 이 삶을 변화시킬 자유가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대에게는 그럴 자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은 그대의 자유입니다.
삶 자체를 바꿀 수 없지만 이 삶을 대하는 자세는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명료한 이해를 통해서 가능한 일입니다.
수피들은 이런 이해에 도달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평화롭고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해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대는 이 삶이 빚어낸 독창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그대에게 잘못된 점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불완전한 모습들과 더불어
자신이 독창적인 존재라는 사실 또한 받아들이십시오.
그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십시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이 삶을 변화시키는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삶은 기쁨인 동시에 고통입니다.
고통이 찾아오면 그 고통을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은 시시각각 움직이는 삶의 흐름일 뿐입니다.
기쁨이 찾아오면 그것 또한 받아들이십시오.
그 기쁨에 집착하거나 붙잡아 두려고 하지 마십시오.
기쁨 또한 삶의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사라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제 갈 길로 가도록 놔두십시오.
이 삶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에 깔고 삶을 대하십시오.
그러면 그대만의 경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오쇼의 것도 아니고 끼란의 것도 아닌,
그대 자신이 직접 터득한 그대만의 고유한 방식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삶의 길입니다.
내가 여러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 끼란 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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